|
잠시 동안의 행복...
‘먹고 자기만 하는 식충이도 복 찰 주머니는 있다’고 했다. 못 믿겠다. 그래도 가끔 복권을 산다. 결과는? 당연, 매 번 반으로 찢은 용질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했었는데, 로또복권이 발매되기 이 전엔 주택복권을 샀었다. 당첨금이 오천만원 이었던가..? 당시로선 크게만 여겨지던 액수였지만 그 역시 만 원짜리 한 번 맞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로또 복권이 나왔다. 당첨금의 액수도 컸다. 매 주마다 신문과 라디오에, tv는 tv대로 추점과정을 중계까지 했었기에 그야말로 로또신드롬을 이루었는데, 얼마 전의 그 누구는 혼자 40억 가까운 액수를 챙기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사행이니 어쩌니 말이 없진 않았지만, 당첨이 그저 신기루이기만 한 건 아니고,10억이니 20억이니 하는 당첨금 액순 숨어서라도 해 볼만 한 투자? 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쩌다, 그야말로 어쩌다 5등에 당첨된 적이 있었다. 복권을 샀다는 것조차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나 복권판매점을 찾아 복권을 내밀었더니 5등이라 했다. “어이구! 웬 떡..!” 배당금이 오만 몇 천원에 불과했지만 기분은, 오십 만원은 되는 것 같았었다.
오늘, 그런 복권을 다섯 장이나 샀다. 뭐 돼지나 소가 새끼를 줄줄이 달고 들어오는 꿈이라도 꾸어서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인 충동에 의해 사게 됐을 뿐이다. 목요일. 당구장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을 만큼 한산했다. 그저 취미삼아 운영하는 것도 아닌 터. 당연 심란하기 짝이 없어 장고를 끌어안고 목소릴 높여 보았지만 신명이 일지가 않았다. 그런 참, 꼬맹이 손님이 부몰 앞세우고 들어왔었다. 첫 손님. 일단은 반가웠다. 초등학교 1~2학년으로 여겨졌다. 펌 머리에 동그란 얼굴이 귀여워 보였는데 ,손님 대부분이 남자들이지만 가끔 남녀가 짝을 지어 들어 올 때도 있다. 거의 젊은 애들이고, 가만 놓아두면 당굴 치며 둘이서 알콩달콩 잘 노는데, 종종 부부가 함께 오기도 한다. 아내가 남편을 꾄 건지, 남편이 아내에게 당구를 가르치려 함께 온 건진 알 수 없지만, 젊은 애들과 달리 운전연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둘이서 당구를 치다말고 더러 토닥거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삐친 여자가 남자를 버려두고 가버린 적도 두어 번 있었는데, 버려진 남자의 치다꺼리는 당연 내 몫이었다.
공을 차려 준 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 올리며 음료를 가져갔다. 색색의 음료가 이상해 보이기라도 한 양, 연녹색의 음료가 담긴 컵을 가리키며 꼬맹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이건 뭐예요.?” “응..! 멜론 맛 쥬스..” 건성으로 답한 뒤 꼬맹이가 음료수 잔에 손을 뻗는 걸 곁눈질하며 돌아섰지만 발길이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장구를 치기는 손님이 마음에 걸렸다. 나좋다고 남도 좋단 법은 없으니까.. 멈칫거리던 발길이 자연스레 pc를 향했다. “아줌마예요..?” 항상 카페 창을 열어두고 있기에 작업표시줄의 바를 클릭만 하면 아무 때던 민욜 들을 수 있는데,부모들 곁에 있던 꼬맹이가 어느 사이 다가와 모니터에 떠 있는 선생님을 응시하며 또 말을 걸어 왔다. “아니..” 성가시다는 느낌이 들어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누군데요..?” 그 참엔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맑은 눈이 날 향하고 있어 목소릴 낮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유명한 선생님..” 달리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노래 들어 볼래.?” 죽여 두었던 볼륨을 살렸다. -오봉산 꼭대기 에루화 돌배나무는 가지가지 꺾어도 에루화 모양만 나누나~- “이런 노랠 뭐 하러 배워요.?” 한 소절이 끝나기도 전 꼬맹이가 시큰둥한 목소릴 냈다. “왜.? 듣기 싫으니..?” “......” 말이 없기에 다시 소릴 낮추었는데 갈 줄로만 여겼던 녀석이 생뚱맞은 소릴 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예쁘죠..?”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됐다. 테이블 곁에 서서 아일 지켜보고 있었을까 아이 엄마와 눈이 마주 쳤다. 아이의 말이 들렸는지 웃는 듯 마는 듯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젊어 보였다. “응..그러네..” 예쁜 엄마가 좋아서, 저 딴엔 자랑스러워서 한 말일 것인데, 고만한 나이에 고운 엄마가 있다는 것보다 더 자랑스러울 게 뭐 있을까. “넌 이름이 뭐냐..?” “재욱이..” “그렇구나, 재욱이..예쁜 엄마 두어서 좋겠구나.” “재욱아.” 그 참 아이의 오지랖을 제지할 양 아이 엄마가 나지막한 소릴 냈는데, 문에 달아 둔 풍경이 울린 것도 그 직후의 일이었다.
“날씨가 오늘은 좀 쓸쓸하네.” 문을 열고 들어 선 건 교복 집 사장이다. 지금쯤 밀려 든 주문에 정신이 없을 만큼 바빠야 하는데, 올 해는 사정이 달라 당구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 게“ “어이구..! 시장 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낮이 익은 둘 사이의 농. “오늘 쉬는 날인가..?” “쉬는 날은 무슨 쉬는 날..터 닦아 놓았더니 생판 보도 듣지도 못한 놈이 내 자리에 떡하니..형님. 아무거나 하나 좀 시켜 줘요.” 한과 행상을 한다. 아파트나 풍물장터, 혹은 사람의 왕래가 많은 시장 입구에 차를 대놓고 센배과자와 강정을 즉석에서 만들어 판다. 네겐 몇 안 되는 ‘진상’ 손님중의 한 사람이기도 한데, 한 게임 치는 동안 큐를 바꾸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는 건 흔한 일이고, 공이 잘 맞아 주지 않을 때 하는 테이블 타박도 만만치 않은데 당구는 120을 친다. “그런데 가만히 놔뒀어..?” “저나 나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생, 하루만 한다니까..또, 벌려 놓은 좌판 치우라고 하기도 그렇고..” 녹녹치 않은 세상살이, 힘이 없음 독하게 태어나지 않은 이상 모질기도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가 진상이던 뭐든 모질지 못한 사람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한 사장이 큐를 고른 뒤 테이블에 공을 뿌리는 걸 지켜보던 중 갑자기 인 충동에, 나갔다 오마, 란 말도 않고 슬그머니 가곌 나왔다. 큰 사거릴 낀 대로변. 빠르게 내달리는 차들이 힘없는 이들의 쫓기는 삶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는데,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서자 저만치 복권방의 조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가계엔 주인 혼자였다. 나인 알 수 없지만 초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성 싶었는데, 내가 가계 안으로 들어 서도 복을 파는 가계라서인지 인사말 한마디도 없다. 몇 달 전 찾았을 땐 아주머니가 계셨었다. 부부라고 해서 꼭 닮으란 법은 없고, 할 소리도 아니겠지만 희끗희끗한 구레나룻, 좁은 미간과 광대뼈조차 불거져 어딘지 모르게 강퍅해 보이는 게 둥글고 살 오른 얼굴이 복스러워만 보이던 아주머니완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지갑을 꺼내 들었다. “염병.. 재수도 더럽게 없네..” 그 참, 문이 열리기 무섭게 얼굴을 들이 민 양복 차림의 사내의 까칠한 목소리가 가겔 울리는가 싶더니 날 제치고 매대 앞으로 다가선 사내가 지갑을 열고선 복권을 뭉텅이로 꺼내 진열대 위에 내던지며 다시금 까칠한 목소릴 냈다. “봐봐! 아니..스무 장 중 오천 원짜리 두 장이 뭐냐? 두 장이..제미 0팔..” 스무 장이면 십 만원 일 것이다. 적잖은 돈을 한 순간에 날렸으니 부아가 일만도 하지만, 맞고 안 맞고는 저의 복 일터인데 화풀일 남에게 하는 것이 그도 진상 손님중의 하나만 같았다. 그런데 뭐라고 한마디 할 것 같기도 한 주인은 이러쿵저러쿵 한마디 말도 없이 다시 자동으로 뽑아 낸 복권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그도 스무 장인 것 같았다. “단골인가 봅니다.” 받아 든 사내가 돈을 내고 가곌 나간 뒤 주문을 한 것도 아닌데 스무 장을 뽑은 게 생각나 매대 앞으로 다가서며 열어 본 입이었다. “매주 오지요.” “그 때마다 저렇게 많이...?” 한 달이면 40만원이란 생각에 이어 본 말이었는데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더 많이 사는 손님도 있죠. 뭐 많이 사면 확률이야 높아지겠지만 꼭이라곤.. 복 있는 과부는 허릴 내려도 요강 꼭지에 내린다고, 맞을 복이면 한 장인들 안 맞겠습니까?” 입에 지퍼라도 채운 줄만 알았던 주인의 말을 듣고서야 가겔 나왔는데, 석 장 사려든 게 꼬맹이가 생각나 넉 장이 되고 말았다. -아이에게 이런 걸.- 복권이란 게 제 엄말 자랑한데 대한 선물치곤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쩌다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고 신호등에 붉은 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 서서 당구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르지도 않은 오후. 자릴 비운 사이 손님이 든 걸까 전면 창에 커튼이 드리워진 게 보였다. 내가 내린 게 아니다. 박 사장이나 한 사장이 내렸을 것이다. 좋은 손님이든 진상 손님이든, 서로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이고 또, 그런 사람들이 돌려주는 당구장 이다. 한 장의 복권이사 그들에겐 하찮은 선심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행여 뜻하잖게 행운이라도 맞는다면, 떡이 크면 고물을 흘리게 마련이라고, 그들이 내 낡은 차를 새 차로 바꾸어 줄지도... -이 푼수..!- 순간적으로 인 엉뚱한 상상. 고소를 머금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잠시일지, 며칠간 누릴 수 있는 기쁨일지는 모르지만 가슴에 넘실거리던 심란함이 사라진 건 셔츠 주머니에 든 복권 때문임을 자신, 알고도 남았다.
|
|
첫댓글 작은 소품속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입니다, 일주일의 행복한 상상... 로또
짧지도 않은 글...
요즘 긴 글을 싫어하는 편인데 읽어 주셔서 고맙단 말씀 드립니다.
고운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