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대중화
대전 유성구 구성동 갑천 변에 위치한 중앙과학관의 정문 대형 간판에는 한때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기관’이라고 쓰인 적이 있었고, 지금은 ‘학습은 반, 창의력은 두 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우리나라의 대표, 중심 과학관으로서 참여와 소통으로 과학기술을 탐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연 백 만 이상의 관람객을 자랑하는 과학문화 공간이다. 전시관은 자연사관과 과학기술관으로 크게 나누어져있으며 각종 체험관과 과학 탐구관이 있어 청소년들이 과학과 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에듀테인멘트(edutainment)의 광장이다.
인접한 여러 국책연구소에도 전문 홍보관이 있지만, 특히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질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지질과학 테마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올해로 기원 100년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지질자원연구원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국내의 지질표본과 자원 조사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지질과학의 대중화를 위하여 2000년에 표본관에서 박물관으로 확장하여 매년 수많은 관람객에게 지질과학의 기본원리와 지구의 역사를 쉽게 알려주고 있다. 필자도 다년간 지질박물관 전시기획과 전시품 수집업무에 참여한 바 있어 친정을 찾을 때마다 지난날의 감회가 새로웠다.
1980년대에는 육상과 해상에서 석유자원탐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됨에 따라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따라서 곳곳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민원이 쇄도하였고, 우리 석유자원연구실은 속출하는 민원 처리에 바빠 기본연구사업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였다. 민원의 내용은 대부분 비과학적이거나 무리한 조사를 부탁하는 것으로서, 석유 부존 여부를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웬만한 지질학적 지식을 필요로 했다. 그때마다 기본적인 지질상황을 알려줘야 하는데, 이해력이 낮은 민원인의 경우 장시간 입씨름을 해야만 되었다.
환자가 의사의 말을 믿어야 하는데 막무가내 진찰을 공짜로 해달라는 식이다. 석유란 지하 심부에 존재하므로 부존 가능성을 알려면 장시간의 지표 지질조사와 지하 물리탐사 및 지구화학탐사를 실시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시추조사를 한 후에 결정되는 것인데,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민원담당자도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전시장이라도 있었으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석유자원조사 민원의 유형을 정리해보면 첫째 지질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지질학이 풍수지리설의 지세나 지형 정도로 알고 추상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석유(石油)가 돌에서 나오는 기름이니만치 기본적인 삼대 암석(화성암, 퇴적암, 변성암) 정도라도 알면 좋으련만. 그래서 석유를 배태하는 암석은 여자 돌(퇴적암)이지 남자 돌(화성암)이나 노인 돌(변성암)은 기름을 생성하기 어렵다고 해당 지질도를 펼쳐놓고 비유법으로 설명을 하지만 못 알아들을 때도 많았다.
두 번째 경우는 신의 계시를 받고 석유를 찾아 달라고 오는 경우이다. 자기가 믿는 신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며 엄청난 유전이 지하에 분명히 있는데 국가가 막아서야 하겠느냐는 식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석유부존 조건을 아무리 쉽게 설명해봐야 헛일이다. 과학과 종교의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설득을 해도 종교가 과학보다 더 확실한 믿음을 준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이럴 때는 제 마음이 돌아서도록 열심히 기도해 달라며 거꾸로 부탁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 유형은 약간의 사기성 민원인 경우이다. 지질학적 지식도 갖고 있으면서 주위로부터 권력과 재력을 끌어들여 쳐들어오는 경우로서, 가장 피곤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외국의 사이비 전문가까지 동원하고 유력 정치인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한번은 국회에서 공청회까지 연 적도 있었다. 1980년 모 씨는 돈 많은 분의 지원을 받아 경북 의성 모처에서 나름대로 장공 시추(그 당시 국내 시추회사 최대 심도 1,535.4m)를 한 적도 있는 데 예상대로 되지 않아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끼친 적도 있다. 1975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포항 석유사건도 ‘무식하면 무모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2008년부터 중앙과학관 자문과학자로 위촉되어 자연사 전시물의 심층해설과 과학지식 맨토링을 수행하면서 과학의 대중화 사업에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대상은 청소년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성인들을 대상으로 지질과학에 대해 심층해설을 하면서 ‘대중의 과학화’가 중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지구 역사와 화석의 전시물 해설 중 가장 많이 부딪치는 부분이 진화론과 창조론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어떻고, 노아의 방주가 어떻고, 최초의 인류가 어떻게 진화해 온 것인지 과학적으로 당연한 사실들을 기독교인들은 꽤 듣기가 거북스러운 모양이다. 그래서 과학과 종교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므로 다투면 서로 상처만 남으니까 그렇게 이해해 달라고 했다.
뇌과학에 의하면 좌뇌는 이성을 지배하고 우뇌는 감성으로 채워져 있어, 이를 연결하는 뇌량의 크기는 성별로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좌우 뇌가 서로 균형이 잡히지 않고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불행해진다고 한다. 과학과 수학은 좌뇌 영역인 반면에 문학예술부분은 우뇌에서 관장한다니 이를 서로 융합하고 통섭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학의 대중화를 넘어 대중의 과학화는 특히 합리적 사고가 부족한 한국인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문 사회학은 창의력을 발현하는데 필요하지만 차가운 이성은 부족한 체, 뜨거운 가슴과 우뇌만으로 경제가 발전되고 안보가 굳건해 지겠는가?
국내 과학의 메카인 대전에서 국립중앙과학관과 지질박물관을 오가며 심층해설을 하고 나아가 각종 과학강연을 통하여 강조하는 것은 합리적 사고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대중의 삶에 녹아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종합선진국이 될 것이다.
첫댓글 과학기술 대중화 매우중요합니다. 뜻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구 절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감사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