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초콜릿
김륭
열심히 사는 게 우두커니 앉아있는 거나
벽에 붙어있는 거다 한 마리 날벌레처럼
날개도 없이,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지만, 나는
그걸 가끔씩 안경을 쓰는 우리 집 고양이에게 배웠다
벽을 자꾸 긁어대는 고양이
바닥으로 끌어내리려는 듯 벽을 온통 긁어놓았지만
핏자국이 없다
그럼, 피가 없는 짐승? 오늘도 벽에 붙은 날벌레 한 마리를
벽이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고양이의 문장은
물 반에 고기가 반, 밥 반에 똥이 반인
세상의 개털들과는 격이 다르지
문밖의 인기척에 고양이는 발톱마저 버린다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때 나는 침대에 누워 초콜릿을 먹고 있었는데
입을 벌릴 때마다 뱃속에 들어간 초콜릿이
자꾸 울었다
고양이가 긁어놓은 벽에 초콜릿을 발라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아있는 여자보다
죽은 여자와 더 많이 살았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좋았을 걸
고양이의 문장은 어렵다, 피보다 진한
울음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침대 밑으로 기어드는
초콜릿 한 덩어리
—《발견》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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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 1961년 진주 출생. 2007년 〈문화일보〉신춘문예 시, 〈강원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동시집『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