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의 부족한 믿음에 대해 꾸짖으신다.
구약 시대에 다른 민족 사람들은
솔로몬의 지혜와 요나의 설교를 듣고 마음을 열었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인
예수님을 보고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요나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리하여 예언자가 되기 싫어 도망을 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이끄심에 결국은 승복하고 ‘니네베’로 갑니다.
당시 니네베는 이방인의 큰 도시였습니다.
그가 할 일은 도시의 멸망을 예언하는 일이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의 상징이 바로 니네베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요나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죽었다가 새롭게 태어난 요나를 통하여
니네베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이방인들도 요나의 외침에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언자가 ‘되기 싫어했던’ 사람의 설교를 감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조건을 답니다.
스승님께서는 그들의 간교함을 꾸짖으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 없이’ 기적을 바라는 것을
‘악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계십니다. 엄청난 말씀입니다.
기적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매일매일을 ‘기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상의 기적’을 모르는 사람이 특별한 기적에 감동할 수는 없습니다.
신기해할 수는 있어도 감동을 받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요나의 기적을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 사건은 기적이라기보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이에 응답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이 빚어낸 혁명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돌려 회개한다는 것은 혁명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을
주님께 되돌려 놓는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산다면,
우리의 삶은 날마다 기적 속에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