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동역
곽대근
기차가 지나간 뒤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간간이 초가을의
두꺼워진 잎새 속에 머물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산을 넘지 못하고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레일 위에 서성거린다
이름처럼 묘한 녹동역
노룻재를 굽이굽이 돌다가
내려다 본 세상은
마음속이 텅 빈
찾지 않는 대합실과 같다
우리도 언젠가는 잊혀질 때가 있고
저 열차의 뒷모습처럼
희미한 삶을 살다가
그리우면 한 번 서 본 역을 찾는다.
곽대근 시집 [간이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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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는 숨어있는 작은 역도 많다. 산이 높고 골이 깊으니 철로는 산세를 의지할 수밖에 없고 역들도 제비집인 양 그렇게 철로 가에 있는 듯 없는 듯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이다.
어느새 가을, 영주에서 봉화를 거쳐 춘양으로 가는 국도변의 가로수 잎들도 온통 녹슨 기차바퀴의 빛깔을 띠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땅에 떨어진 고엽들이 이리저리 쓸려 다닌다. 추수를 끝낸 산골 들판도 텅 비었다.
경북 영주시와 강원도의 강릉시를 잇는 철로 영동선에 달려 있는 <녹동역>의 행정구역은 봉화군 법전면이다. 춘양목으로 이름난 춘양이 지척인데 영주 쪽에서 보면 춘양역 다음이 녹동역이다. 시에 나오는 노루재는 녹동역에서 동해 바다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있어 차를 운전한다고 해서 예전처럼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내릴 일은 없다. 널찍한 35번 국도를 끼고 있어 역에 접근하는 일도 생각 밖으로 쉽다. 큰길가에는 드문드문 식당과 농가들이 있긴 하지만 여느 산촌마을 같은 오붓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먼 데서 바라보는 역 건물은 시골 변전소 혹은 식품 가공 공장 같다. 붉은 벽돌로 벽을 세운 단층 집인데 얕은 지붕 색깔도 벽면의 그것과 흡사하다. 쇠 그물을 친 울타리가 역 건물을 빙 두르고 있는 탓에 마치 특수 시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근무하는 역무원들이 없는 탓에 굳이 이런 설비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 겹의 쇠문을 통과하여 플랫폼에 나서면 아연 색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넉넉한 산자락이 드리워진 가운데 가을볕 속으로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철길과 그를 배웅하듯 도열해 있는 철로 변 수목들이 한 폭의 전형적인 가을 풍경화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한 플랫폼에서 제멋대로 자라서 시들고 있는 풀들조차 이 풍경화에서는 빠질 수 없다.
가을 풍경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고즈넉한 산촌역의 정취에다 쓸쓸한 인생론을 가미시키고 있는 시에는 세 가지 중심 요소가 있다. 산을 넘지 못한 채 레일 위에서 서성이는 나뭇잎 소리와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텅 빈 대합실 같은 산 아래 세상, 그리고 희미한 삶을 사는 이들이 뭔가 그리울 때 더러 서 보는 역이 그것이다.
우리네 삶은, 역을 떠나 멀리 사라지는 기차 같은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뒤에 남는 적막 같은 것이거나 조금 전 마지막으로 본 기차 뒷모습처럼 희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음의 기척은 있으나 그것은 멀리 퍼져 나갈 것도 아니다. 그러나 폐역의 텅 빈 대합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삶에도 그리움은 있는 법, 그것은 떠난 것에 대한 상대적인 정서다. 하여, 떠남으로 인해 그리움을 가진 삶은 그 떠남의 계기적 공간인 역에서 가을 잎새 같은 소리 하나로 서성거릴 도리 밖에 없다.
녹동역은 그 미미한 삶의 낌새 하나까지도 모두 헤아리며 오늘도 영동선에 서 있다.
[해설 : 최학(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