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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 24.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
3. 가라지 비유 ( 13: 24-30 )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 24.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 같으니 -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하셨다.
1]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비유로 가르치심은 들을 귀 있는 자만 듣게 하시기 위함이다.(13절)
2]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여기서 ' ... 과 같다'는 말은 아람어의 관용적 표현인 'X의 경우는 Y의 경우와 같다'는 뜻을 반영하고 있다(Jeremias).
따라서 본 구절은 '천국은 ... 한 사람의 상황(경우)과 같으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원문에 더 가깝다.
좋은 씨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 반면 본문의 좋은 씨는 마지막 주님의 심판을 직면(直面)해야 하는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제 밭에 뿌린 사람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하는 설명(37절)에 따르면 본문의 구절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대하여 그의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말씀이다.
주의 몸 된 교회만이 그의 것이 아니라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다(시 24: 1).
'제 밭'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창 1: 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는 말과 의미상 동일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이후에 그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관여나 관심을 기울이시지 않은 것이 아니다. 본문에서처럼 사람의 거듭난 탄생을 위하여 세상을 보호하시고 가꾸신다.
이 세상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버려진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악이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가꾸어지는 좋은 땅이다.
마 13: 25.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
어떤 사람이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렸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가라지’라고 번역된 원어(지자니온zizavnion)는 ‘독보리’를 뜻한다고 한다(BDAG).
1]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잘 때에'란 농부의 태만함을 꼬집는 말이 아니라 원수가 농부 모르게 슬그머니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절호(絶好)의 기회를 암시하는 말이다.
악한 어두움의 세력은 주로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경계(警戒)도 하지 않는 평화와 안식의 시간인 밤에(at night) 활동한다.
농부의 원수도 농부가 휴식을 취한 밤에 몰래 들어와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이다. 당시 로마에서는 보복하기 위해 상대방의 밭에 가라지와 같은 잡초들을 뿌리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수(怨讐, Enemy)는 사람의 마음에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반대자, 적대자, 적의를 가진 세력과 국가 또는 군대를 말한다.
성경에는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은 뱀과 여자를 서로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 창 3: 15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때 사용된 '원수(에바)'는 '적대감', '증오감'이란 뜻으로 그리스도와 성도들에 대해 사탄과 그의 하수인들이 갖게 될 악감(惡感)을 의미한다.
* 요 15: 18-19 –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러나 성도들은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즐거워해야 하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우리의 상이 커지기 때문이다.
* 마 5: 12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구약성경에서 원수는 대개 이스라엘의 국가적 원수들을 언급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개인의 원수를 의미하는 데에도 사용된 경우다.
* 출 23: 4 -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 삿 16: 23 –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 삼상 18: 29 –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반면 신약에서는 개인적인 원수를 언급하고, 종종 이방 민족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 마 13: 25 -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 갈 4: 16 –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 눅 1: 71 -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 눅 19: 43-44 –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 출 20: 5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 신 5: 8-10 –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바울은 죄인을 하나님의 원수라고 했고, 세상의 친구는 하나님의 원수라고 언급하고 있다.
* 롬 5: 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빌 3: 18 -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약 4: 4 -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사탄은 진리의 가장 큰 원수이며, 사망은 그리스도의 통치에 굴복할 최후의 원수이다.
* 마 16: 23 -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 행 13: 10 –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 히 10: 12-14 –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 고전 15: 26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십자가에서 원수를 이기셨다.
2] 곡식 가운데 가라지(*, 지자니온)를
가라지는 독보리(lolium temulentum)의 일종으로 '가짜 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싹의 모습이 밀이나 보리와 흡사하여 이삭이 패기까지는 얼른 식별하기 어렵다.
잘못해서 먹었을 경우 급한 설사와 구토 등의 증상이 있으며, 심할 경우에는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예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로서(38절), 사람들을 의의 자리에서 넘어지게 하는 자이며, 불법과 부정을 행하는 자들이다(41절).
가라지의 특징은
(1) 위장성(僞裝性)
곡식과 가라지가 싹이 난 초기부터 결실을 거둘 때까지 사람들의 눈에 잘 분별될 수 없다.
이처럼 이 세상 끝이 올 때까지는 성도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잘 분간되지 않도록 위장되어 있다.
(2) 잠복성(潛伏性)
이삭이 나오기까지 평상시에는 곡식과 같은 외형과 생장 과정을 보이는데 일단 이삭이 패면서부터 알곡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가라지들이 평소에는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그 감춰진 마각(馬脚)을 드러내 놓고 알곡에게 해를 끼친다.
(3) 해독성(害毒性)
가라지는 알곡 뿐 아니라 인간에까지 큰 피해를 안긴다.
3] 덧뿌리고 갔더니(*, 에피스페이로)
'위에'를 뜻하는 말인 '에피'(*)와 '씨를 뿌리다'의 뜻인 '스페이로'(*)의 합성어로서, 뿌린 씨 위에 한 번 더 씨를 뿌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레 19: 19과 신 22: 9에서는 다른 종류의 씨앗을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하는 규정이 있다.
* 레 19: 19 -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 신 22: 9 -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이는 두 씨앗 중 어느 한 씨앗의 열매조차도 올바로 수확할 수 없기에 생겨난 조항인 동시에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과 비타협성을 상징하는 교훈적 율법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과 민족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가나안의 이방 신앙과 그들과의 혼혈 결혼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악한 씨앗, 곧 가라지의 씨앗을 곡식의 씨앗 사이에 덧뿌려 놓은 원수의 행위는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 모두 부정한 것이었음이 명백해진다.
마 13: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 -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
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때에 곡식뿐 아니라, 가라지도 보였다.
1] 싹이 나고
씨앗이 막 싹 틀 때에는 식물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쉽게 구별할 수 없다.
2]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결실할 때'는 영적으로 최후 심판이라고 하는 마지막 추수기 이전까지의 기간으로 악의 세력과 죄악의 관영이 절정에 달한 시기를 상징한다.
빛의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고난의 때이고 신앙의 환난을 통과하는 때이다.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과 영생의 약속이 실현되는 때를 의미한다.
* 마 10: 22 -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3] 열매를 향한 계절
서 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뜻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려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많이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 13장에서는 비유 장이라 부르듯 8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첫째, 둘째, 셋째 비유는 씨앗에 관한 내용이다. 천국은 마치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씨를 뿌리는 데 똑같은 씨앗임에도 씨앗을 받는 마음 밭이 4가지 있다고 말씀하셨다.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서 말씀을 받지만 말씀을 받는 결과는 4종류라는 말이다.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 밭이 길가인가, 돌밭인가, 가시덤불인가, 옥토인가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 밭이 잘못되어 실패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말씀은 알곡의 좋은 씨와 가라지의 비유에서 밭은 하나인데 뿌려지는 씨앗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좋은 씨앗이 떨어지는가 하면 주인이 자기 밭에 씨를 뿌리고 잠을 잘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똑같이 좋은 밭이지만 씨앗이 잘못 던져질 때 열매를 다르게 맺게 된다는 내용이다.
겨자씨 비유가 있는데, 씨앗이 1개이고 밭도 하나다. 그런데 이 씨앗은 아주 작았지만 크게 팽창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것과 같다고 했다. 좁쌀의 1/10정도 되는 작은 씨앗이지만 그것을 땅에 심었을 때 잘 자라 나중에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성장한다고 말했다. 이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 가지 씨앗의 비유로 말씀하시고 그 이하에 5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 오늘은 본문 말씀, 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가지고 수확의 계절에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 될 것인가 살피려 한다.
본론
(1) 좋은 씨와 가라지의 파종자
이 비유를 보면 씨를 심는 사람이 두 명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 씨앗의 종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농부는 옥토를 골라 좋은 밭을 꾸며서 좋은 씨를 잘 심었다고 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천국 복음의 좋은 씨앗을 이 땅에 계속 심고 계신다.
예수님은 좋은 씨를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셨다. 그래서 천국의 아들들을 이 땅에 계속 심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난이나 시험의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농부의 손길에 따라 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때가 오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된다. 좋은 씨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밀은 밀을, 가라지는 가라지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린 씨는 반드시 좋은 결과와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며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 15: 5)고 했다.
그러나 원수는 잠을 잘 때에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했다. 마귀가 뿌린 씨앗도 처음에 잘 자란다. 땅은 질이 좋은 밀이든, 원치 않는 나쁜 씨 가라지이건 다 잘 자라게 수용하기 마련이다.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란다.
주님께서는 그 해와 비를 악한 자나 선한 자에게 골고루 내려 주신다.
* 마 5: 44-46 –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열매를 맺기 전까지는 어느 것이 밀인지 또는 가라지 인지 구분키 어렵다. 가라지는 팔레스타인의 독보리를 말하는데, 수화기가 되면 구별하기 쉽게 된다. 좋은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으나, 독보리 가라지는 열매를 맺는다 해도 사람에게 유익을 못 주고 그것을 먹을 때는 구토, 설사, 현기증을 일으키는 마취성 알칼로이드 성분을 냅니다. 옥토에서 좋은 양분을 약탈하여 자라나, 결국은 아무 쓸모 없는 잡초로 뽑히어 풀무에 던져진다.
(2) 둘 다 주인의 보호로 공존한다.
온 우주 안에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듯, 같은 세상에 선과 악이 같이 있듯이, 신자와 불신자도 또한 같은 교회 안에 있다. 사람의 마음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한다.
사도 바울이 고민한 그대로 우리 마음속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거하여, 이 두 마음이 언제나 싸우며 갈등을 일으킨다.
* 갈 5: 17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롬 7: 21-23 –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이 두 마음 중 성령의 소욕이 이길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거두지만,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썩어질 것을 열매맺어 거둔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선이나 악중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세상이며,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든 선택의 결단에 의해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된다.
주인의 관심은 오로지 알곡에게 있지만 그래도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의 은총을 내리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가라지를 처음에는 분간치 못하고 나중에 구별한다 하더라도 추수 때까지는 그냥 둔다.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다치게 될까봐 추수 때까지 기다리는, 알곡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恩寵)이 선인과 악인에게 모두 공평하게 베풀어진다고 불평하지 마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사랑하시거나 보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통해 선인을 보호하고 돕기 위함이다.
가라지의 때가 추수할 때까지 인것처럼 그들의 때는 최후의 심판 때까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오래 참으시며 죄인의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구속의 섭리(攝理)가 여기 있다.
(3) 때가 되면 분류하여 심판하신다.
가을이 와서 추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로 구분된다. 빛깔과 모양과 열매를 보아 밀과 독보리는 완연하게 구분할 수 있다. 추수 때, 가라지와 같은 잡초는 먼저 뽑아서 태워버리고 알곡은 타작하여 곡간에 들인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하나만 데려가고, 두 사람이 매를 갈다가 하나는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남게 된다.
* 마 24: 40-41 –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나중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에 양과 염소를 나누듯 주님은 쉽게 밀과 가라지를 나눈다. 같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미련한 다섯은 기름 준비를 못하고 슬기로운 다른 다섯은 기름과 등불을 함께 준비하여 신랑을 맞게 된다고 했다. 종국적으로 선악은 공존할 수 없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의 도성 속에 있는 롯을 기억한다. 추수 때란 세상의 종말을 말한다.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추수 때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백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때이다.
의인은 상급으로 악인은 영벌을 면치 못하는 심판이 온다. 노아의 홍수 때는 어떠했나? 홍수가 올 줄 몰랐지만, 홍수는 내렸고, 노아 가족 외에는 모두 심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악인의 형통함에 대해 하나님은 무얼 하시느냐고 질문했다. 예레미야도 12장 1절에서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하고 물었다.
이 세상에서 어쩌면 악인들이 세력을 누리고, 포악한 자들과 죄인들이 가라지처럼 무성한 꼴을 본다. 장마기에는 가라지가 무성하다면, 비가 그치고 열매의 추수기가 오면 밀이 더욱 무성하고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한다.
주님은 악인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시지만, 의인의 고통을 결코 간과하시지 않으신다. 어떠한 환경과 여건에서도 보호하고 인도하시며 잘 간수해 주신다.
* 시 91: 7 -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4) 추수와 심판의 기준
추수 때 가라지는 먼저 가려내어 풀무불 속에 들어간다. 즉 가라지와 같은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이 갈 곳은 풀무불과 같은 지옥뿐이다.
그러나 알곡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끗하게 죄씻음을 받은 의인이다. 추수 때 알곡이 곡간에 들어가듯 의인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어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의인과 악인의 구별은 곧 믿음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믿는 자는 알곡을 심은 밭이요 믿지 않는 자는 가라지를 심은 밭이다. 의인과 죄인,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믿음이다.
사람의 죄악은 행위에 앞서서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며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의 구별 기준 곧 의인과 죄인의 구별은 믿음이며, 이 믿음에 의해 의인과 악인의 구별뿐만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구별이 이뤄진다.
* 롬 14: 23 -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다음으로 의인과 악인의 구별은 행함에 의해 이뤄진다. 주님께서 늘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고 했다. 그 열매를 보아 알 듯, 의인은 선한 열매를, 악인은 악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인과보응다.
선이 무엇이며, 선을 행하는 것과 어떻게 행할지를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 이것에 의해 선인과 악인이 구별된다. 이러한 선행은 곧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 약 2: 17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약 4: 17 -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 마 16: 27 -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결론
우리의 마음 밭에 어떤 새싹들이 자라고 있는지요? 주인 농부가 심은 좋은 씨앗으로 곡식이 자라고 있습니까? 가라지를 거둘 악한 새싹들이 자라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그 마음 밭을 기경하고 갈아엎어서 그 밭은 좋은 씨앗을 파종하시오.
영국의 성직자 칼렙 C.콜턴은 말했다. ‘악을 뿌리 뽑을 수있는 힘을 가진 자는 그 자리에 덕을 심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수고해야 할 것이다. 잡초가 자랐던 토양에 아무것도 나지 않게 하는데 드는 수고보다 훨씬 적은 수고로 잎이 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도 추수 때까지 기다리시지만 추수기가 지나면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선인의 무리 중에 있다고 선인은 절대로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있다고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다. 많은 인조 보석(imitation)이 있다. 껍질만 도금한 것도 많다.
가짜일수록 위장한다. 진실은 늘 여상하다. 염소가 양무리 속에 섞여 있다고 양인 것 같이 안심하면 안 된다. 완전 위장은 없다. 하나님의 눈은 불꽃 같다. 악인은 여지없이, 가차 없이 풀무에 던지신다.
알곡은 눈동자처럼 살피시고, 하늘의 곡간에 넣으신다. 아직은 늦지는 않았다. 사람의 때가 늘 있는 것 같으나 지나가면 돌아오기 어렵다. 다시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보자. 자신을 도마 위에 얹어 놓고 분석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고후 6: 2 –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은 늘 여상하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진실은 늘 여상하다.
설교 감사합니다.
진실은 늘 여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