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나간 스타킹을 신고 나간 꿈 밖에서
여세실
잠이 안 오면
쥐와 의자가 싸우는 상상을 해
너의 아버지가 아끼는 단술은
부엌 구석에, 밥솥 밑에,
보자기에 쌓여있단다
그걸 한 잔 마시고
물을 채워놓으렴
나무 의자를 갉아먹는 쥐를,
쥐의 이빨과
빛나는 작은 모서리를
주사위를 굴리면 내가 나아가야할 미래가
몇 칸 앞인지 나오지
나를 건너뛰어
앞으로 나아가는 너는
몇 번째 모서리에서 두 번쯤 차례를
쉬게 된댔지
그래서 소중해
보잘 것 없기 때문에
내 전생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과 매번 반복되기 때문에
누가 향을 피워놓았니?
매캐한 이 냄새는 어디서부터 오는거니?
잠에서 빠져나오면
길게 하품을 하고
밤새 젖어 있었던 발바닥을 씻어
머리를 빗고
입을 헹구렴
너의 단잠 속으로,
오지 않는 너의 단잠 속으로
빠져나가려는 손가락 하나가 있다면
현악기를 연주하는
가느다란 손가락
인간의 손가락이 음악을 알아듣기까지
얼마나 오랜 숙련의 시간이 필요한지 아니
음악을 빨아들여 싹둑 잘라버리려는
가위 하나가 있다면
얘야, 모르겠으면 꼭 모르겠다고 말해야 한단다
우리 할머니는 내 입에 늘
박하사탕 하나씩을 넣어주시며 얘기했어요
너의 할머니가 늘 부르시던 노래는
명주실로 기워놓은 것이었지
치매에 걸렸을 때에도
그 노래의 가사는 잊지를 앉았어
너는 뭐든 될 수 있을거야
그 잔인한 가능성 속에서
너는 오줌을 참고 있구나
조금씩 소진되어 가고 있는걸요
저는 점점 지쳐가는 걸요
잠시 잠깐 기다렸다가
현을 눌렀다가 손가락을 떼렴
박자를 맞추고
리듬을 타며
박하사탕 냄새가 나는 이 노래 현 위에 올라타
노래 부르라고 내 등을 떠밀던 사람
주사위는 텅 빈 우주를 가리키고
자 이제 내 차례인데요?
----애지 여름호에서
약력
2021년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휴일에 하는 용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