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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을 일컫는 말이다.
會 : 모일 회(曰/9)
者 : 놈 자(耂/5)
定 : 정할 정(宀/5)
離 : 떠날 리(隹/11)
(유의어)
무상전변(無常轉變)
생자필멸(生者必滅)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일생을 살면서 사람은 무수히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 만날 때마다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삶을 지속할 수가 없기에 안심시키는 말이 많이 내려온다.
산 사람은 필히 사라지고 만나는 사람은 필히 이별한다고 生者必滅 會者定離(생자필멸 회자정리)라 했다. 거기에다 이별 후에 다시 만난다고 희망을 주기도 한다.
'설온 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고려가요 가시리)'라고 희망하거나 유명한 독립운동가 시인 한용운(韓龍雲)의 절창대로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님의 침묵)'고 노래한다.
심지어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거자필반(去者必反)이란 말도 남겼다. 하지만 실제 떠난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통 사람도 안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만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열반(涅槃)에 드실 때 제자에게 한 말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영축산(靈鷲山)을 출발하여 입멸하기까지 교화와 설법, 가르침으로 일관했던 석존의 만년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고 자세하게 전하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실렸다.
최후의 순간 슬퍼하는 제자 아난(阿難)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난이여, 슬퍼하지 말라.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빠짐없이 덧없음(無常)으로 귀착되니, 사랑하는 자나 좋아하는 자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평소에 말하지 않았더냐? 비록 내가 한 劫(겁; 무한히 긴 시간) 동안이나 머문다 하더라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 본 바탕이 그런 것이니라.'
가르친 法(법)과 律(율)을 후세의 스승이 되게 하라는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총명한 제자 아난이 구술했기 때문에 경전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인생이란 이 세상에 단 한 번 밖에는 못 오는 곳이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이란 책이 있다. 모리는 미국의 브렌다이스 대학의 사회학 교수다. 그런데 이 분이 루게릭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의미 있는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리한 책이 바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책이다.
루게릭병은 근육이 무기력해지는 병이다. 그러니까 손끝 발끝서부터 근육이 힘을 못쓰는 것이다. 정신은 말짱한데 점점 그것이 위로 번지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아주 극심한 통증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은 모리 교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동료교수의 장례식에 참석을 했다. 휠체어를 타고 장례식에 참석한 후 돌아온 다음에, 그 장례식이 너무나 허망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이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좋은 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정작 그 얘기를 들어야 할 분은 세상을 떠나서 듣지를 못한단 말이다. 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하니까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는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친척과 친구들 자녀들에게 살아있는 동안에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해보자고 장례식을 먼저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하여 장례식을 하면서 조시도 읊고, 조사도 하고, 조가도 부르고 다 이야기를 하였다. 모리는 미리 하는 장례식에서 그 얘기를 들어가며 같이 울고, 웃으면서 진정한 사랑을 모두와 함께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참을 더 살아야 할 친구들이 여러 명이나 앞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고인에 대한 얘기들을 한다. '좋은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다,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성실한 사람이다. 부지런한 사람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다. 감사한 사람이다. 등등 말을 한다.
아무리 나빴던 사람이었어도 장례식장에서는 예의상 험담을 할 수 없다. 장례라는 그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는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 골치 아픈 인간이었지. 가깝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성질 더럽다. 인정머리도 없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만날까봐 겁나는 사람이다.'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소리를 하면서 잘 죽었다고 하면 상주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회자정리 즉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말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학교에서 만나고, 직장에서 만나고, 또 사회활동 중에도 만나고 이처럼 수없는 만남의 관계를 맺는 것이 인생살이다. 그러나 어떤 만남이든 영원한 만남은 없다.
부부의 연으로 만나도 이혼으로, 사별로 헤어지게 되어 있다. 직장생활로 맺은 동료관계도 직장을 떠나면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져야 한다. 정년이라는 종착역에서 내려 직장을 떠나 온지도 오래되었다. 떠나온 그곳에 나에 대한 기억은 남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기억해 주고 있을까? 이것이 무척 궁금하다.
나름대로는 선하게, 성실하게 생활을 했는데 남아 있는 사람들이 떠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 줄려는지 모르겠다. 나보다 먼저 직장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호불호로 갈린다. 생각만 하면, 얼굴만 떠올리면,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다.
그러가하면 어떤 사람은 생각하고 싶지 않고 가급적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직장을 떠나건, 세상을 떠나건 떠난 뒤에 악평을 듣지 않으려면 온화한 마음으로 은덕을 베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나,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할 때는 슬픔과 아픔이 따른다.
인생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속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 속에 머무는 것이다. 모든 인연은 순간의 틈 속에서 회자정리가 반복 되는 것에 익숙한 것 같지만, 내가 속한 인연에는 크게 다른 심상 인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것은 반드시 돌아오고, 산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필귀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냉정하지만 그러나 현실이며, 자연의 도도함이다. 나와 인연은 필연에서부터 우연까지 귀한 인연인 것은 사실이다.
그 중에서 혈연(血緣)은 가장 귀한 필연이며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무한의 큰 인연이다. 혈연으로 맺은 인연 속에 사랑이 충만하고 세상으로 출발시킨 존귀함이 가득하다. 그 소중한 인연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소중한 인연의 끈을 언젠가는 놓아야 한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잘 해야 헤어질 때 덜 아프고 덜 미안하계 이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家族)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치는 이별인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고 말했다.
회자정리의 유래는 석가모니가 베사리성의 큰 숲에서 열반에 들 때가 왔음을 제자에게 얘기하자 제자인 아란존자가 슬퍼했다. 그때 석가모니가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귀착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례 그런 것이거늘, 아난존자는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는가?”라는 데서 비롯됐다.
우리는 은퇴라는 또 다른 위치에 서면 누구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던 추억을 한 번쯤은 떠올려 본다. 그 인연 속에는 순연도 악연도 함께 뒤섞여 느낌표로 깊이를 측정해 본다. 그 인연에는 내 인생의 흐름에 박수로 응원한 인연도 그 흐름을 방해한 인연도 함께 흘러 왔다. 만날 때마다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삶을 지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생자필멸 회자정리라 했다. 산 사람은 반듯이 소별되고, 만나는 사람은 언젠가 떠난다는 순리를 깨달아야 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와의 인연들에겐 배려와 나눔 그리고 사랑으로 대한다면 이별 또한 크게 아프지 않을 것이며 따뜻한 세상을 함께하는 이치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멸이든, 마멸이든 결국 빈 것이 되고 만다. 부모님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비관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소멸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서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 헤어짐에 덜 미안하고 덜 속상하고, 덜 아픈 이별은 그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일 것이다.
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
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은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 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들을 오래 곁에 두고 싶고,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많이도 변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이 언제나 항상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기를 기원하면서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봅니다.
회자정리란 만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아쉬운 이별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會者定離 去者必返
회자정리 거자필반
불경에서 나온 말로, 만난 것은 헤어지게 되고 떠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이다. "이런 까닭으로 마땅히 알지어다. 세상은 모두 무상하여, 만나면 반드시 떠남이 있으니, 근심과 괴로움을 품지 말라. 세상의 형상은 이와 같다(是故當知世皆無常 會必有離 勿懷憂惱 世相如是).
부처님의 마지막 유언을 적어둔 불유교경(佛遺教經)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가 처음 나오고, 거자필반(去者必返)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상에서 법화경(法華經)에 거자필반(去者必返)까지 나온다. "만난 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가버린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會者定離, 去者必返)."
원문을 검색해보면, 해당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은 한국에서 만들어낸 사자성어로 보인다. 헤어진다고 하니까 아쉬우니 다시 만나게 될꺼라고 말하면서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덧붙인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는 '이별', 거자필반(去者必返)은 '재회'를 뜻하는 말로 볼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지만, 거자필반(去者必返)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많다.
이별한 커플의 경우 오히려 재회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으며, 학교나 군대, 직장 등 사회적으로 맺어진 관계의 경우 그 만남이 종료되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죽음을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윤회를 고려한다면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
중국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며 대신 회자정리일기일기(会者定离一期一祈)를 많이 쓰는데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과 달리 헤어지면 만날 수 없으니 모든 만남을 소중히 해라는 뜻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 회자정리(會者定離)
시절인연(時節因緣)은 중국 명말 선사 운서주굉(雲棲株宏)이 조사의 법어를 모아 편찬한 선관책진(禪關策進) 경산대혜고선사답문(徑山大慧杲禪師答文)편에서 유래한 말로 인연의 시작과 끝이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와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피하려 해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모란은 이미 바람에 흩어지고 함박꽃(작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틀 쉬고 출근했더니 덕수궁 정관헌에 오르는 계단 화단에는 함박꽃이 만발했다. 함박꽃이 피면 여름 들머리인 입하(入夏)가 지났다는 표시다. 요즘 날씨는 제멋대로라 종잡기 힘들지만 그래도 며칠 사이로 대강은 맞아떨어진다.
계절의 여왕인 5월, 찬란한 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마땅하지만 필자에게는 회한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맘때면 5•18 광주민주화운동때 스러진 꽃들이 여전히 필자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고, 벌써 7년 전에 암으로 졸지에 저세상으로 떠난 막내동생이 떠올라서다. 그날은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불가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업설(業說)과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돼야 일어난다는 말이다. 우리가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모든 일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 원인이 있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중국 명말 선사 운서주굉(雲棲株宏)이 조사의 법어를 모아 편찬한 선관책진(禪關策進) 경산대혜고선사답문(徑山大慧杲禪師答文)편의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저절로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바로 깨어나 나가게 된다(時節因緣到來 自然觸著磕著 噴地醒去)’라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시절인연에는 때와 장소가 맞아야 한다.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든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와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피하려해도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시간적 차이를 세가지로 나눠 삼시업(三時業)이라 한다. 첫째 순현업(順現業)은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는 것이고, 둘째 순생업(順生業)은 전생에 짓고 금생에 받거나 금생에 짓고 내생에 받는 것이며, 셋째 순후업(順後業)은 여러 생에 걸쳐서 받는 것이다.
예를들어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코스모스꽃을 보는 것은 현생에 업을 짓고 그 업을 받는 것이기에 순현업에 해당되고, 전생의 인연으로 금생에 부부, 부모형제, 친구가 되거나 금생의 연분으로 내생에 그렇게 되는 것은 순생업, 지은 선업이나 죄업이 커서 여러 생에 걸쳐 공덕이나 죄업을 받거나 몇 생을 건너서 받는 것을 순후업이라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뜻이고, 거자필반(去者必返)은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만남은 맺고 흩어지지만 떠나도 흔적은 남고, 그 흔적은 또 다른 인연의 씨앗이 된다.
석가가 열반에 들려하니 다문제일(多聞第一) 제자인 아난다가 슬퍼하자 석가는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인연으로 맺어진 이 세상 모든 것은 덧없음(無常)으로 귀결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거늘 어찌 슬퍼하고 근심만 하랴."
아난다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하늘이나 땅에서 가장 거룩하신 스승님께서 곧 열반에 드신다니, 어찌 슬퍼하고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세상의 눈을 잃고, 중생은 자비하신 어버이를 잃나이다."
석가는 다시 아난다의 슬픔을 달랬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내가 비록 한 겁을 머문다 해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 본바탕(性相)이 그러하니라."
석가모니의 열반을 중심으로 편찬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실려있는 얘기다. 여기에서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란 말이 유래한다.
회자정리는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과 선이 닿는다.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거자필반과 대구로 많이 쓰인다.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소멸한다는 생자필멸도 회자정리와 함의는 같다.
사람은 말할나위 없고 어떤 사물도 그냥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 공간적인 인연이 닿아야 만나게 되는 것으로 큰 틀에서 보면 이들 세가지 성어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만남은 귀중하다. 내 안의 나와 마주침이기 때문이다.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스쳐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삶의 성숙과 진화를 가져온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달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겉껍데기에 눈이 멀어 귀중한 만남의 뜻을 온전히 찾지 못할지라도 그저 소중히 받아들일 수만 있어도 충분하다. 모든 만남은 맺고 흩어지지만 떠나도 흔적은 남는다. 그 흔적은 또 다른 인연의 씨앗이 된다.
늦봄 비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을 보며 덧없음을 느낀다면,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마지막 구절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를 읊조려 볼만하다. 가수 이찬원의 '시절인연'을 조용히 따라 불러도 괜찮겠다.
▶️ 會(모일 회)는 ❶회의문자로 쌀을 찌는 도구에 뚜껑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오직 뚜껑의 뜻이 되어 나중에는 상하가 合(합)치는 데서부터 만나다, 모이다의 뜻이 되었다. 나중에 사람인(人=亻; 사람)部와 增(증; 불리다)의 흙 토(土; 흙)部 생략형의 합자(合字)로 생각하게 된다, '모임'의 뜻이다. ❷상형문자로 會자는 '모이다'나 '만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會자의 갑골문을 보면 뚜껑과 받침 사이에 음식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음식을 보관하는 찬합을 그린 것이다. 會자는 이렇게 찬합이 결합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모이다'나 '모으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사물이 결합하는 모습의 會자는 후에 사람 간의 만남이나 만남의 시간과 관련된 의미를 파생시키게 되어 지금은 '만나다'나 '시기'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會(회)자는 (1)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조직한 단체 (2)회의(會議) 등의 뜻으로 ①모이다 ②모으다 ③만나다 ④맞다 ⑤능숙하다, 잘하다 ⑥이해하다, 깨닫다 ⑦통계를 내다 ⑧합계를 산출하다 ⑨반드시 ~해야 한다 ⑩~할 가능성이 있다 ⑪집회, 회합(會合) ⑫계(契) ⑬모임 ⑭기회(機會) ⑮시기(時期), 기회 ⑯잠깐 동안, 짧은 시간 ⑰회계(會計) ⑱대도시(大都市) ⑲때마침, 공교롭게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을 모(募), 떨기 총(叢), 둥글 단(團), 모일 준(寯), 모을 촬(撮), 모일 주(湊), 모일 사(社), 모을 췌(萃), 모을 수(蒐), 모을 축(蓄), 모을 찬(纂), 모을 종(綜), 모을 취(聚), 모을 집(輯), 모을 집(集)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흩을 산(散)이다. 용례로는 모여서 이야기 함을 회담(會談), 여럿이 모이어 의논하는 모임 회의(會議), 모임을 대표하는 사람을 회장(會長), 어떤 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회원(會員), 서로 만나 봄을 회견(會見), 돈의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대한 셈을 회계(會計), 서로 마주 대하고 이야기함을 회화(會話), 집회나 회의 따위가 열리는 시기를 회기(會期), 일정한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임을 회동(會同), 기대하던 그때로 일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를 기회(機會), 특정한 공동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합을 집회(集會), 여러 사람의 모임을 대회(大會), 회원이 협동 일치하여 설립 유지하는 회합을 협회(協會), 회의 도중에 잠깐 쉼을 휴회(休會), 남모르게 갖는 모임이나 남모르게 모이거나 만남을 밀회(密會), 얼굴을 대하여 만나봄을 면회(面會), 마음이 맞아 의기가 통하는 벗을 일컫는 말을 회심지우(會心之友),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을 일컫는 말을 회자정리(會者定離), 회계산에서 받은 치욕이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진 치욕 또는 마음에 새겨져 잊지 못하는 치욕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회계지치(會稽之恥),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견강부회(牽强附會), 뜻하지 아니한 때에 우연히 서로 만남을 일컫는 말을 불기이회(不期而會), 구름과 용이 만나고 바람과 범이 만나듯이 밝은 임금과 어진 재상이 서로 만남을 이르는 말을 풍운지회(風雲之會), 썩 드문 만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청지회(河淸之會), 평생에 단 한 번 만남이나 그 일이 생애에 단 한 번 뿐인 일 또는 사람과의 만남 등의 기회를 소중히 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일기일회(一期一會), 정신을 가다듬어 한군데에 모음을 일컫는 말을 취정회신(聚情會神)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 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者자는 ‘놈’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者자는 耂(늙을 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者자는 耂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노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者자의 갑골문을 보면 이파리가 뻗은 나무줄기 아래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탕수수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즙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탕수수’를 뜻했었다. 후에 者자는 ‘놈’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者(자)는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어떤 일에 관계되는 사람을 관계자(關係者), 물자를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勤勞者), 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被害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勞動者), 희생을 당한 사람을 희생자(犧牲者), 부부의 한 쪽에서 본 다른 쪽을 배우자(配偶者), 그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을 당사자(當事者), 권리를 가진 자 특히 선거권을 가진 자를 유권자(有權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定(정할 정/이마 정)은 ❶형성문자로 㝎(정)의 본자(本字), 顁(정)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정(正)의 고자(古字)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正(정; 바르다, 정돈하다)과 사당이나 집 안(宀)의 물건을 정돈하여 넣기 위해 자리를 정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정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定자는 '정하다'나 '안정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定자는 宀(집 면)자와 正(바를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正자는 성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바르다'나 '올바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正자에 宀자를 결합한 定자는 '집이 올바르다' 즉 '집이 편안하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집안이 무탈하여 매우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正자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정하다'나 '바로잡다', '평정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定(정)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集中)하여 움직이지 않는 안정(安定)된 상태(狀態). 선정(禪定)의 뜻으로 ①정(定)하다 ②정해지다 ③바로잡다 ④다스리다 ⑤평정하다 ⑥편안하다 ⑦안정시키다 ⑧머무르다 ⑨준비하다 ⑩자다 ⑪그치다 ⑫이마(앞머리) ⑬별의 이름 ⑭반드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정할 전(奠)이다. 용례로는 정해진 값을 정가(定價), 작정한 시각을 정각(定刻), 일정한 규례를 정례(定例), 규정에 의하며 미리 정해진 인원수를 정원(定員), 일정한 방식을 정식(定式), 일정한 수효나 수량을 정수(定數), 정한 기한이나 기간을 정기(定期), 일정한 시기나 시간을 정시(定時), 결정된 안건을 정안(定安), 일정한 직업이나 업무를 정업(定業), 어느 곳에 자리잡아 오래도록 사는 것을 정착(定着), 예정한 계산을 정산(定散), 죄를 판단하여 결정함을 정죄(定罪), 일정한 액수를 정액(定額), 일정한 분량을 정량(定量), 마지막으로 작정함을 결정(決定), 옳다고 믿고 정하는 일을 인정(認定),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하여 미리 정하여 두는 것을 예정(豫定), 규칙으로 정하는 것을 규정(規定), 꽉 결단하여서 틀림없이 정함을 확정(確定), 추측하여 판정함을 추정(推定), 분명히 그렇게 가리켜 정하는 것을 지정(指定), 일이나 마음이 평안하게 정하여 짐을 안정(安定), 어떤 일을 잠깐 임시로 정함을 잠정(暫定), 골라 내어 정함을 선정(選定), 헤아려 정함을 측정(測定),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이부자리를 보살펴 안부를 묻고 따뜻하고 서늘하게 한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을 정성온청(定省溫淸),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을 일컫는 말을 회자정리(會者定離),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자식이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을 이르는 말을 혼정신성(昏定晨省), 바둑을 두는 데 포석할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물을 명확한 방침이나 계획을 갖지 않고 대함을 일컫는 말을 거기부정(擧棋不定),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개관사정(蓋棺事定), 노인도 소년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뜻으로 사람의 목숨은 덧없어 정명을 알 수 없으므로 죽음에는 노소가 따로 없음을 이르는 말을 노소부정(老少不定), 풍채와 안색이 일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금방 기뻐했다 금방 성냈다 함을 이르는 말을 채색부정(采色不定),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밤에는 잠자리를 정하고 아침에는 안부를 살핀다는 뜻으로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을 온정정성(溫凊定省), 무엇이든지 하나의 규칙이나 척도에 맞추려고 하는 융통성 없는 태도를 이르는 말을 표자정규(杓子定規), 한 번 정하여져 바뀌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정불역(一定不易), 죽일 죄인을 죽이지 아니하고 귀양을 보냄을 이르는 말을 감사정배(減死定配),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진다는 뜻으로 들떠서 어수선한 것이 가라앉음을 이르는 말을 풍정낭식(風定浪息), 짐을 실을 수 있는 정량을 일컫는 말을 적재정량(積載定量), 비위가 뒤집혀 가라앉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밉살스런 꼴을 보고 마음이 아니꼬움을 이르는 말을 비위난정(脾胃難定), 확실한 안심을 얻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심결정(安心決定), 믿음을 얻어서 극락왕생이 틀림없음을 이르는 말을 왕생일정(往生一定), 한 번 정하여져 바뀌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정불변(一定不變), 태도만 침착할 뿐 아니라 말도 안정케 하며 쓸데없는 말을 삼감을 일컫는 말을 언사안정(言辭安定) 등에 쓰인다.
▶️ 離(떠날 리/이, 붙을 려/여, 교룡 치)는 형성문자로 离(리)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꾀꼬리란 뜻을 나타내는 글자 离(리)로 이루어졌다. 꾀꼬리, 떨어진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은 剺(리)의 차용(借用)이다. 그래서 離(리, 려, 치)는 ①떠나다 ②떼어놓다, 떨어지다 ③갈라지다 ④흩어지다, 분산하다 ⑤가르다, 분할하다 ⑥늘어놓다 ⑦만나다, 맞부딪다 ⑧잃다, 버리다 ⑨지나다, 겪다 ⑩근심 ⑪성(姓)의 하나 ⑫괘(卦)의 이름 그리고 ⓐ붙다, 달라붙다(려) ㉠교룡(蛟龍: 상상 속 동물)(치) ㉡맹수(猛獸)(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눌 별(別), 상거할 거(距),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합할 합(合)이다. 용례로는 떨어져 나감을 이탈(離脫), 부부가 혼인 관계를 끊는 일을 이혼(離婚), 서로 갈려 떼어짐을 이별(離別), 맡은 바 임무에서 떠남을 이임(離任), 인심이 떠나서 배반함을 이반(離叛), 떨어져 흩어짐을 이산(離散), 비행기 따위가 땅 위를 떠나 떠오름을 이륙(離陸), 물 위에 있다가 물에 떠남을 이수(離水), 두 사람 사이에 하리를 놀아 서로 멀어지게 함을 이간(離間), 직업을 잃거나 직장을 떠남을 이직(離職), 농민이 농사짓는 일을 그만두고 농촌에서 떠남을 이농(離農),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직선의 길이를 거리(距離), 서로 등지어 떨어짐을 괴리(乖離), 서로 나뉘어서 떨어지거나 떨어지게 함을 분리(分離), 멀리 떨어지게 함을 격리(隔離),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유리(流離), 분명하지 못한 모양을 미리(迷離), 이별해서 헤어지기로 마련되어 있음을 정리(定離), 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을 이합집산(離合集散), 동문의 벗들과 떨어져 외롭게 사는 것을 이군삭거(離群索居),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음을 이고득락(離苦得樂), 고기 그물을 쳤는 데 기러기가 걸렸다는 어망홍리(漁網鴻離),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교제하는 데 겉으로만 친한 척할 뿐이고 마음은 딴 데 있음을 모합심리(貌合心離),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