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비가 온다
아니 내린다
가을 비가
그 옛날 양철 지붕 위에 내리며 멜로디를 선사하던 그 가을비가
온 다.
또가닥 똑딱
도로록 또옥 또옥
밤새 내리는 비에
천장에서 새는 비를 이리저리 피하며
그 가을은 깊어갔다.
아파트에 살면서부터
비온다 하면 베란다에 서서 지나는 차의 윈도어 브러시를 살핀다.
움직이는지,
속도는 어떤지,
거리의 행인은 우산을 썼는지.
분명 아스팔트위에 흥건한 빗물이 보이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
우산도 없이 1층으로 내려가
비를 맞아본다.
차를 타니 그렇고
흔한 우산이 그렇고
수 많은 빌딩과 오피스 건물에 몸을 숨기는 데 익숙하다.
지하철에서는 비가 오는 지
눈이 오는 지
알 길이 없다.
문득
그 옛날
하얀 머리의 코가 큰 외국인이
보리와 우윳가루를 대충 섞어
큰 가마솥에서 휘휘 저어 깡통에 담아주던
왜 그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으나
분명 서럽고 힘들던 우리의 지난날의 초상이다.
정숙이 누나는 유난히 힘이 없었다.
사흘을 굶었단다.
요즘 애들은 ‘쌀 없으면 라면 먹음 되지’라고 웃어넘긴다.
얘들아 그 시절엔 라면은 없었단다.
해안가엔 불발탄이 수북했고
한국동란에 부상당한 장애인들이 거리에 넘쳐 났지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 과거사
비가 온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각 세대에 보일러 소리 요란하고
실컷 먹고, 잘 입고, 잘 살지만.
얘들아!
삶은 그게 다는 아니란다.
90살 늙은 엄마를 나가 살라고 내치고,
즈들은 스키며 해외여행을 우습게 떠나면서
늙은 엄마 아빠에게 몇푼이라도 용돈을 꼬박 주는 녀석은 없더라.
우리 세대는 위로 부모님 받들고
아래로 자식에게 헌신하다 보니
그만 노후 자금이 없구나
영악한 너희는 부모님 용돈은 주지 않지만
우리의 처참함을 보고 노후 준비도 하고 있겠지.
바닷가를 놀러 갈 땐 엄마 아빠 빼고 가고,
집 안 청소면 빨래, 취사는 늙은 에미가
등을 두드리며 함에도
화장실서 냄새가 난다거나
밥이 왜 맛이 없냐고???
에혀~
진작 가야 할 길을
이리 애둘러 사는 인생이 덧없어라.
흔한 말로
너희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도 보았고
현재 늙고 있다.
옛날 고려장 이야기가 생각 나는구나
늙어 쓸모 없어진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는 뒤에
그의 아들이 따르고 있었다.
노모를 산속 깊은 곳에 내려 놓고
하산하는데
아들이 지게를 메고 따라온다.
“지게는 버리지 왜 메고 오니?”
“예! 아빠가 늙으면 져다 버리려고요.”
깜짝 놀란 애비는 늙은 노모를 다시 업고 내려 왔다지.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모두가 내 탓이로다.
하늘에 나는 새는 곡식을 모아두지 아니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