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성당 옥상에서 작업을 하다가 작업화의 뒤축이 드디어 다 닳아 떨어져나가서 더 이상 신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0년 전에 부산에 갔을 때 지인께서 신발 공장 직영점에 저를 데려가서 사주셨던 등산화였습니다. 가격이 꽤 비싼 등산화여서 조심조심 신었는데, 홍천에 와서 어찌어찌되어 작업화가 돼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작업 현장에 그 등산화는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 신발은 진흙탕에 빠지고, 시멘트에 범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신발을 신으면 뱀이 많은 숲길을 갈 때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매 번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신발 끈을 힘껏 조여 매면서 저의 마음도 흐트러지지 않고 불평하는 마음 생기지 않게 저 자신도 꼭 붙들어 묶곤 했습니다. 뒤축이 떨어져 나가 발을 디딜 때마다 약간 뒤뚱거리게 돼서 불편할 수도 있었는데, 그 불편함보다는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 신발과 함께 일했던 작업과 공사 현장들이 떠올라서 오히려 살짝 감동스러웠습니다. 이것이 그 신발을 신고 일하는 마지막 작업이 될 테니 고별식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침내 일을 끝내고 신발을 벗었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리고 그냥 그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결국 그냥 쓰레기통에 그 신발을 넣었습니다. 단순히 오래 신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힘들고, 어렵고, 제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게 하는 때 함께 있었던 절친한 친구 같은 존재였기에 그렇게 보내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16년 전 이곳에서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궂은일과 힘든 일은 도맡아 하는 쎄레스(1톤 덤프트럭)와 많은 비로 길이 망가지면 평소에는 폐차처럼 보이다가도 털털거리며 일어나서 꺼억 소리 내면서 길을 고쳐주던 고물 굴삭기(이름 : 막파)가 떠올랐습니다. 두 장비 모두 시세로 치면 고철 값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에겐 아니 최소한 저에겐 참 소중한 친구들이랍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나면 그 장비들을 툭툭 치면서 애썼다고 말해줍니다.
세상은 머리로 살아가겠지만, 사람은 가슴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은 따뜻한 가슴과 바위 같은 신뢰와 믿음을 원합니다. 따뜻한 가슴과 신뢰와 믿음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의 삶에 함께 할 때, 특히 어렵고 힘겨운 시간에 그와 함께 있음으로 조금씩 생겨나고 만들어집니다. 비록 낡았지만 그 작업화를 신을 때는 힘이 생겨났고, 쎄레스 핸들은 잡으면 정겹고 푸근한 맘이 생기며, 막파에 앉아 조정관을 잡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런 자신감과 안정감 그리고 신뢰를 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자리에 함께 계셨고, 잊어버리고 싶은 아프고 부끄러운 그 자리에도 함께 계셨던 그분은 우리가 무한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첫댓글 쎄레스/막파는 가끔 보고싶어요 특히 막파는 기계가 돌아가는것 자체가 신기하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왠만하면 좋은 등산화 새로 장만하시죠 10년짜리로 ㅎㅎㅎ
야호! 작업화 생겼습니다. 진짜 작업화요, 못도 뚫지 못하는 신발요. 작업화는 좋은데... 에고고
아~~~지금의 성전이 있기까지 애쓰셨던 모습이 눈에 그려지네요.
감사합니다. 제가 그곳에 갈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저의 형제 스테파노를 위해서
지금 냉담중에 있거든요. 물론 저의 책임이 크지만....
몸도 마음도 힘들때 만난 그곳에서 맘의 평화를 찾았으니 늘 그리운 곳입니다.
신뢰의 하느님께 내 모든 것 내어 드릴 수 있는 삶이 되길 바라며.....언젠가 신부님께서
들려 주셨던 " 땅에 발을 굳건히 딛고 살기를 ....." 기억합니다.
건강하셔요.*^^*
단단히 딛고 사시는군요. 진짜 냉담중이라면 이곳을 찾아오시지도 않으셨겠죠.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으신다고 하더군요. 좋은 날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