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긴장 상태!” 첼시 경영대표 피터 케년이 영국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묘사한 첼시 클럽의 모습이다. 물론 그는 클럽 내에 감도는 건강한 유형의 긴장이 첼시를 발전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함에 있어 유익한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클럽의 ‘피스메이커(peace maker)’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케년의 대외용 표현 — 혹은 희망사항 — 과는 달리,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벌어져온 일련의 상황들은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문제의 중심에는 감독 조세 무리뉴와 그를 데려왔던 억만장자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 사이의 ‘필연적 수순’의 갈등이 존재한다.
‘무리뉴 vs. 아브라모비치 갈등’의 구체적 씨앗이 뿌려진 것은 어쩌면 2005년 여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브라모비치가 거액을 들여 토트넘의 기술이사 프랑크 아르네슨을 영입, 첼시의 선수 스카우트와 유스 육성을 담당하게끔 했던 일은 축구 세계에서 ‘친숙한 유형의’ 분란을 일으킬 공산이 애시당초 컸다.
그 ‘예의 친숙한 분란’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는 감독의 역할과 권한의 범위에 관한 ‘두 가지 다른 구조들’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감독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선수 수급의 많은 부분을 호안 라포르타 의장과 기술이사 치키 베히리스타인에 의존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플로렌티노 페레스와 라몬 칼데론, 그리고 호르헤 발다노와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프레드락 미야토비치와 같은 인물들 — 감독이 아니라 — 이야말로 선수 수급의 상당 부분을 취급해온 장본인들이다.
이러한 구조가 유럽 대륙의 클럽들에게 좀 더 보편화되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잉글랜드에서의 전통은 상이하다. 잉글랜드리그의 감독들은 적어도 ‘팀’과 직결된 문제들에 있어 두드러진 권한을 행사해왔다.
어떠한 구조가 클럽에 더 큰 성공을 안겨줄 수 있느냐의 문제를 떠나, 후자의 구조는 감독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의 팀을 만들어가기에 훨씬 더 유리한 방식일 수 있으며 특히 ‘자의식’ 강한 감독들에게 선호될만하다. 물론 전자의 구조를 따를 경우, 감독은 선수들을 관찰, 영입하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지 않아도 된다. 감독이 라커룸과 그라운드의 일에 열중하는 동안, 선수 영입에 관한 연구는 다른 전문가(이자 권력자)가 담당한다.
그러면 쉽사리 예상가능하게도, 어떤 잉글랜드 클럽이 잉글랜드에서 보편화된 구조를 깨뜨리려 했을 때 ‘예의 친숙한 분란’이 발생한다. 그러한 사례들을 기억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프랑코 바레시를 기술이사로 영입했던 모하메드 알-파예드 풀햄 구단주의 야심적 행동은 당시 감독 쟝 티가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이외의 어떠한 유익함도 가져오지 못했다.
해리 레드납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수차례 유사한 일을 경험한 인물인데, 벨리미르 자예치가 기술이사로 영입되며 포츠머스를 떠났던 레드납은 라이벌 클럽 사우스햄튼으로 옮긴 이후에는 ‘럭비 영웅’ 클라이브 우드워드가 이사직에 오르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다시 포츠머스로 돌아온 그는 현재 새 구단주 알렉산더 가이다막의 ‘수상쩍은 영입’인 기술이사 아브라함 그랜트와 더불어 일하고 있는 상태다 — 설사 그랜트가 앞서의 사례들과는 달리 아직까지 레드납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고 있기는 하더라도.
물론 이러한 분란의 사례들 속에는 아르네슨의 과거지사 또한 포함된다. 아르네슨은 이미 토트넘에서 감독 쟈크 상티니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 상티니의 재임기간을 빨리도 마감시켰던 핵심 원인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전 클럽 PSV 에인트호벤 — 스카우터로서의 자신의 유능함을 널리 알렸던 곳 — 에서는 거스 히딩크를 ‘잉글랜드식 권력형 감독’으로 세우고자 했던 PSV의 구조 변경 방침으로 인해 아르네슨 자신의 설 땅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따라서 무리뉴와 아르네슨의 ‘동거’ 또한 위험한 귀결을 낳을 가능성이 애시당초 농후했고, 무리뉴가 알렉스 퍼거슨과 아르센 벵거 못지않게 ‘팀 구성과 운용’에 있어 궁극의 권한을 행사하고자 하는 성향임을 감안할 때 더더욱 그러하다. 무리뉴와 아르네슨 사이에 존재해온 심리적 차원의 갈등을 차치하고라도, 선수에 대한 선호도 및 평가 기준의 불일치는 올 시즌 현재 첼시가 겪고 있는 곤경을 어느 정도 ‘예고된 사태’로서 보이게끔 하는 원인의 하나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가장 근본적인 원천은 틀림없이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스타성 농후한 무리뉴와 같은 감독을 데려온 이후, 다시금 아르네슨을 클럽에 안착시킨 것은 선수단 운용에 자신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둔 것 이외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아브라모비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러시아-이스라엘-네덜란드 커넥션’은 주목을 끈다. 아르네슨을 아브라모비치에게 천거한 장본인인 네덜란드 스카우터 피에트 데 비세르는 히딩크 감독 — 무리뉴가 첼시를 떠날 경우 틀림없이 몇 명의 후임자 후보들 중 한 명 — 의 선수 시절 스승이자 PSV에서도 함께 일한 경력의 소유자. 또한 포츠머스에 머무르고 있는 전 이스라엘 대표 감독 아브라함 그랜트야말로 최근 화제가 된 ‘안드레이 셰브첸코의 부활을 도울 러시아어가 가능한 새 코치 후보’의 주인공이다. ‘로만 제국’ 초창기부터 제국 건설에 깊이 관여해온 이스라엘 출신 ‘수퍼 에이전트’ 피니 자하비가 그랜트와 아브라모비치의 친분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실상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대표팀에도 애정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지며, 따라서 이스라엘 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장에서 그의 모습이 발견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랜트와 아르네슨 또한 서로 간의 유대 관계를 이미 증명했는데, 둘은 몇 개월 전 하포엘 텔 아비브와 첼시 간의 유스 차원의 교류를 성사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금력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구단주 덕분에 무리뉴는 분명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부러움을 사는 축구 감독이었지만, 그의 스탬포드 브리지 여정은 바로 그 구단주에 의해 힘겨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케년의 ‘건강한 긴장 상태’는 ‘전운에 휩싸여 있는 스탬포드 브리지’로 바꾸어 기술하는 것이 훨씬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이 ‘내전’의 상황에서 적어도 클럽의 상층부에는 — 보다 정확하게, 아브라모비치의 주변부에는 — 무리뉴를 위한 아군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리뉴의 등 뒤엔 실로 중요한 아군들이 존재한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풋볼위클리』의 새로운 손님 스티브 맥마흔의 포인트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는데, 틀림없이 무리뉴는 선수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부류의 유능한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위건과의 경기에서 요즈음 보기 드문 첼시의 대승을 이끌었던 아르옌 로벤이 무리뉴를 지키기 위해 목청을 높인 존 테리에 동조했던 것은 의미가 있다. 로벤이 심심찮게 무리뉴와 불협화음을 일으켜온 인물인 까닭이다.
애시당초 무리뉴가 선호하는 실용주의 노선의 축구관은 우아한 ‘현실 게임’의 차원에서 축구를 즐기는 — 설사 그의 출발점에 현실 정치상의 이유가 결부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 억만장자의 취향과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푸른 유니폼을 착용한 안드레이 셰브첸코가 아름다운 골들을 펑펑 터뜨리는 광경이야말로 어쩌면 아브라모비치가 꿈꾸어온 진정한 축구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는 조세 무리뉴든 거스 히딩크든, 아니면 알렉스 퍼거슨이나 마르첼로 리피를 막론하고 퍼포먼스(performance)가 나쁜 선수를 ‘꿈의 실현’을 위해 무작정 기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셰브첸코가 위컴과의 칼링컵 준결승 2차전에서 펼쳐보인 활약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면, 무리뉴의 선발라인업에서 셰브첸코는 자연스레 가장 첫머리에 위치할 것이다.
필자의 짧은 견해로는, 축구 그 자체에 있어 더 중요한 이는 ‘기술이사’가 아니라 ‘감독’이다. 또 ‘회장님의 방’보다 ‘선수들의 라커룸’이 더 중요하다.
- 사커라인 한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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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첸코와 발락의 영입은 구단주(로만)의 상상속의 축구를 현실화 시키기 위한거였군.......이래저래 구단주의 상상속의 축구를 실현시키려 노력하시는 무링요 감독이 존경스럽군....로만이라는 존재는 첼시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였어 역시.....그의 돈은 첼시를 정상으로 올려 놓았지만 그의 백일몽이 첼시를 추락하게 만들고 있고....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것은 역시 조세 무링요의 능력이였구만.....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ㅋ
정말 좋은 글 ^.^
마지막말 동감임.. 아무튼 무감독-로만구단주 잘 해내리라 믿음
마지막 문장이..공감
오오오 준희형님 이정도로 해박하신줄을 나도 몰랐수
서울대 물리학과 ㅋㅋㅋㅋㅋ
서울대 물리학과?????초초초초초상위층이네...
역시 한준희 +_+
로만씨 그냥 무링요만 믿으면 돼 -_- 첼시를 명문으로 올려놓을 양반이니까;;;
아르네센이 문제 -_-;; 로만이 이스라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이겠죠. 좋은 글이네요
역시 본질을 집어내는 능력 준희형 짱 ㅋㅋ
역시 한준희님 해박하셔..대학이 중요한건가...
오오..
오~~ 공감.
‘기술이사’가 아니라 ‘감독’이다. 또 ‘회장님의 방’보다 ‘선수들의 라커룸’이 더 중요하다.. 요기서 감동.. ㅠㅠ 준희횽님 역시
역시 준희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브첸코와 발락의 영입은 구단주(로만)의 상상속의 축구를 현실화 시키기 위한거였군.......이래저래 구단주의 상상속의 축구를 실현시키려 노력하시는 무링요 감독이 존경스럽군....로만이라는 존재는 첼시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였어 역시.....그의 돈은 첼시를 정상으로 올려 놓았지만 그의 백일몽이 첼시를 추락하게 만들고 있고....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것은 역시 조세 무링요의 능력이였구만.....
조낸 개념글 ㄷㄷㄷㄷㄷㄷ이삼.....
자신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둔 것 이외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 문맥이 이상해보임;;
사람이름 조낸 많이 나오네...
진짜 대단하다...어쩜 저리 해박하고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지...저렇게 글쓰는 사람....마이 부럽네...
글 좋음!!
난 읽고도 이해가 안되는데;;
복잡하게 생각하지않아도 알것같네요 한마디로 "감독과 선수들을 믿어라" 이 말 같네요
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그동안 저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던것을 한해설위원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신듯.
와 진짜 해박하다...저정도되야 축구해설하는거구나 ㅡㅡ;;;
역시.. 준희옹!!
와 글 재밌다~
어떤누구보다도 축구지식만큼은 최고.... 유럽축구를 중계하는대.. 정말 세세한거.... 카메라한샷한샷에 의미까지 꿰뚫어서 설명할수있는.. 능력...
어떤누구보다도 축구지식만큼은 최고.... 유럽축구를 중계하는대.. 정말 세세한거.... 카메라한샷한샷에 의미까지 꿰뚫어서 설명할수있는.. 능력...
탈 벤하임의 오퍼도 이스라엘 커넥션의 영향?
로만의 안배라고 해야될까요..모든 계획이 있다니-_-
마지막문장에 내 아이디가 뜨는군;;
괜히 한준희가 아니다
김C 가 해설하는데..저런 해박한지식들을 가지고있을까요? .. 선수이름도 다알지못하는거같던데- _-...그래서 맘에안듬...전문가가해야지 연예인이나와서 하는지 ㅡ ㅡ
저도 김C맘에안듬 ㅡ,ㅡ
그래도 어느정도 지식이 있으니까 해설을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전에 2006월드컵 할때 새벽 3신가 매일 SBS에서도 방송 했었는데... 저는 김c괜찮던데요
오호... 새로운 사실들 많이 알게 되었음....PSV커넥션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커넥션은 의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