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은행 추가파산 공포… 이틀새 607조원 증발
[美 SVB 파산 후폭풍]
바이든 “美은행 안전” 진화에도 중소은행 주가 60% 이상 폭락
은행 12곳 주식거래 일시 중단도… 코스피 2.56%↓, 亞 최대 낙폭
13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 앞에서 기다리던 여성이 은행에 들어가기 전 건물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미 당국이 이날부터 SVB 거래 정지 조치를 풀어 예금을 인출할 수 있게 되자 예금주들은 은행 개장 전부터 밖에서 줄을 섰다. 샌타클래라=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예금 전액 보장을 외치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폭풍 차단에 나섰지만 13일(현지 시간) 미 뉴욕 증시에서 지역 중소형 은행 주가가 급락했고 추가로 파산하는 은행이 나올 것이란 불안이 여전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3, 14일 양일간 세계 금융주의 시가총액이 4650억 달러(약 607조 원) 증발했다. 2020년 세계은행 기준 태국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미국발(發) 금융리스크 우려로 14일 국내 주식시장은 2% 넘게 추락하며 올해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증시 개장 직전 연설에서 “미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투자자의 공포심을 잠재우진 못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기반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애리조나주 피닉스 기반인 웨스턴얼라이언스의 주가는 이날 각각 61.8%, 47.1% 급락했다. 이날 오전 은행주 12곳의 거래도 일시 중단됐다.
전날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담보물만 있다면 1년간 사실상 무제한 유동성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SVB, 시그니처은행 등 은행 두 곳이 문을 닫은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14일 아시아 증시도 이 여파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코스피는 전날보다 2.56% 떨어진 2,348.97에 마쳐 아시아 주요국 증시 중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지난해 9월 2일(―3.02%) 이후 최대 낙폭이다. 외국인이 약 6400억 원의 주식을 매도하며 지수 급락을 주도했다. 코스닥 지수 또한 3.91% 폭락한 758.05에 마감했다.
이는 대표적 안전 자산으로 꼽혔던 미 국채의 잠재적 위험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 채권 가격 급락으로 실현되지 않은 장부상 손실만 6200억 달러(약 810조 원)에 이른다.
이번 사태의 원인에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연준의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연준의 금리 인상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노무라증권 등은 연준이 21, 22일 열리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분간 세계 금융계 전반의 변동성과 불확실성 또한 커질 것으로 보인다.
美 중소은행들 주가 반토막… 코스피, 올해 최대폭 2.56% 급락
추가파산 공포, 금융시장 강타
美국채금리, 36년만에 최대폭 하락… 日-대만-홍콩 증시도 일제히 출렁
지역 기반 은행들 환경변화 취약… 무디스, 시그니처은행 등급 강등
“워싱턴뮤추얼(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은행)도, FTX(지난해 11월 파산한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도 파산 직전까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마불사’ 은행으로 갈아타는 것이 답인가.”
미국의 지역 기반 중소형 은행 예금주들은 13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등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에 동참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10일 실리콘밸리은행(SVB), 12일 시그니처은행 등이 잇따라 파산하고 13일 뉴욕 증시에서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지역 은행주 또한 급락하자 예금주와 주주들 사이에 급속도로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3일 증시 개장 직전 대국민 연설을 통해 “SVB의 예금을 전액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세운 SVB의 ‘가교은행(브리지 뱅크)’도 영업을 시작했다. SVB의 주 고객인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과 스타트업은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에서 일단 벗어났다. 하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다음 파산 은행은 어디일까’라는 위기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 ‘틈새 공략’ 중소銀, 환경 변화에 취약
13일 뉴욕 증시에서 지역 기반 중소형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61.9%), 웨스턴얼라이언스(―47.1%), 지온스(―25.72%)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각각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애리조나주 피닉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기반으로 한다.
이 은행들은 특수 영역에서 틈새시장을 찾는 방식으로 영업해 왔다. SVB도 테크 산업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베이에어리어 일대 포도주 회사들과 끈끈한 거래를 유지해 왔다. 지난주 뱅크런 우려 속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JP모건으로부터 7억 달러(약 9151억 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받은 퍼스트리퍼블릭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의 대부호 고객 위주의 영업으로 유명하다. 고급주택 담보대출 비중도 높다.
고객이 특정 그룹에 편중되다 보니 연준의 고강도 긴축 등 거시 환경 변화에는 취약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급증한 예금을 관리할 만한 경영진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트위터에 “SVB는 현금(예금)을 쌓아놓고도 전문가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어디에서 수익을 내야 할지 몰라 미 국채를 과도하게 매입했다가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진단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3일 시그니처은행의 투자등급을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등급인 ‘C’로 부여했다. 퍼스트리퍼블릭 등 5개 미 지역 은행에 대한 등급 강등 또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추가 파산 없이 48시간 지나야 진정될 것”
고객 예금 보증으로 당장의 불안은 잠재웠지만 미 중소형 은행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고객들은 중소형 은행에서 돈을 빼 대형 은행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엘리슨 헤네시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로이터통신에 “이런 상황이 계속 확대되면 중소형 은행에서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위기가 미 최대 온라인 증권거래업체 ‘찰스슈워브’ 등 장기 채권 보유량이 많은 대형 금융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3일 찰스슈워브 주가 또한 11.6% 하락했다. 존스트레이딩의 마이크 오로크 수석시장전략가는 CNN에 “추가 파산 없이 48시간까지 버텨야 현재 가장 큰 문제인 ‘신뢰의 위기’가 진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VB 사태의 여진은 14일 아시아 증시도 덮쳤다. 14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2.56% 하락한 2,348.97로 마쳤다. 성장주 중심의 코스닥시장은 더 큰 타격을 입어 전날보다 3.91% 떨어진 758.05에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 역시 2.19% 떨어졌다. 대만과 홍콩 증시도 1%대 하락했다. 지역 은행을 위기로 몰아넣은 국채 금리는 위기 확산에 크게 흔들렸다. 13일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준의 고강도 긴축 완화 전망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장중 한때 약 0.50%포인트 하락해 4%대 밑으로 떨어졌다. 1987년 미 증시 급락 ‘블랙 먼데이’ 이후 최대 낙폭이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