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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04_
젊은 두 남녀가 서로간 거리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빠른 걸음으로 샹들리에의 빛이 스며드는 곳을 벗어났다. 마
치, 황금으로 된 몸을 가진 듯, 우아하고 고풍스러워보이는 흑발의 여인은 잠시 주춤하며 오른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머리를 귀 뒤로 쓸어올리더니 어둠을 벗어나 다시 빛이 스며드는 방으로 남자를 인도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조
심스럽다. 스스로를 가시로 된 성벽안으로 가두고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또 자신이 그 성밖을 빠져나가지 못하도
록 항상 경계를 풀지 않고 있는 메마른 사막의 선인장같다.
-철컥
하는 문 소리가 들리고, 화이트풍의 고풍스런 가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귀빈실에 들어온 두 남녀는 차마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정적.. 고요한 정적 속에서, 까만 턱시도를 입은, 푸른 눈이 인상적인 그가 헛기침을 했
다.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다. 그 순간, 경계를 풀지 않은 그녀가 사내로부터 등을 돌리며 냉정하고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결혼은, 기꺼이 받아드릴거에요.」
밧줄로 인해 생긴 생채기를 가린 흰 장갑을 낀 손을 마주잡으며 루아가 말했다.
「다행이군요」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의 목소리는 라이언 베넷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게 즉흥적인 감정이나 호감이 들지 않았
으며 피차 집안끼리 맺은 백년가약이었다. 루아의 외모가 얼마나 뛰어나든, 그녀의 목소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매력적
으로 들리는지는 상관없었다. 그 건, 신부가 될 사람 쪽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이미 한 사람을 담은 몸이다. 비록 육
체적 결합은 없었다지만, 심장에 난 생채기를 다른 사람으로 치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두 사람의 전제 하에 진행된 대화에는, 당연히 서로를 향한 경고 뿐이었다.
「이 결혼은 단지 집안과의 결합과, 더욱 강력한 권력을 쥐고자 하는 양가 부모님들의 약속 하에 이루어 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틀리진 않겠죠」
「궂이 그렇게 물어보지 않아도, 귀족들의 결혼이란 게 다 그렇고 그런게 아닌가요」
「얘기가 아주 잘 될 것 같군요. 혹시라도, 허튼 망상을 하고 계실까봐요. 비록, 저희 집안이 베넷가보다
더 낮은 권력
과 더 적은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저를 우습게 보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
「물론, 베넷....」
「라이언 베넷입니다」
「예, 좋아요. 뭐가 어찌 되었든. 베넷 백자님 아드님께서는 언제든지 제 몸을 가지실 수는 있습니다.
여자의 결혼은
그 집안의 대를 이어주는 수단 중 하나인 셈이죠. 하지만....」
숨 쉴 틈도 없이, 그녀가 말을 이었다. 겉으로는 청아하지만 속은 탁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지만 그 아름다움 못지 않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베어나있다. 그를 등진 체 경고의 말을 내뱉는 그녀의 몸은 연약하고 가녀리다. 이렇게 말을 하
는 동안 머릿속을 배회하는 크리스의 그 미소-슬픔-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으나 숨을 가라앉히고 그녀가 다시
금 말을 이었다. 라이언 베넷, 그 백작의 '아드님'에게는 조금의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제 마음을 넘볼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신다면 언제든지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해 드릴 수도 있어요.」
그사람은, 아주 따뜻한 눈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 눈망울을 보고있노라면, 그 속에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저의 눈에 보이는 그사람의 모습이 보이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몰라요. 항상 나의 아명을 불러주며 사랑한다
고 속삭이는 크리스의 입술은, 당신의 입술처럼 메마르지 않았어요. 따뜻하고, 촉촉하게 젖어 제 슬픔을 달래주죠.
당신의 손처럼 어정쩡하게 허벅지옆을 맴돌고있지도 않아요. 항상 내 손을 만져주고, 부드럽게 손질된 내 머리카락
을 쓰다듬고 때론 상기되어있는 내 볼을 만지고 그 볼 위로 가끔씩 흘러내리는 눈물을 정성스럽게 닦아줘. 내 말을
듣고 나를 향하는 그의 심장. 당신과는 달라. 사막 한복판에서 무표정으로 모든것을 대하는 당신과는 달리 나를
위한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사람이야. 크리스라는 사람은.
「눈으로 보고있지 않아도 생각나는, 즉 제겐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내 뒤에 있는 사람이, 라이언 베넷이 아니라 크리스 일루엣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슬퍼하는 내 등을
감싸고
울지마라며 따뜻한 음성으로 속삭이는 크리스 일루엣이었으면 더이상 바랄 게 없겠다구.
「..........」
「어쩌면, 라이언씨를 보고있으면서도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베넷 백작님의
'아드님'께서
그런 치욕을 당해도 괜찮으시겠다면, 저는 당연히 이 결혼을 수락할 것입니다. 끊임없는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좋
은 기회이니까요, 그리고.....」
어불성설. 두서가 없다. 무슨 말을 했는지, 왜 이런 말을 꺼내고 있는지 흘러간 말을 되뇌어보지만 무어라 말을 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랑의 아픔을 그윽히 담아내고 있는 말이었다. 겉으로는 가시가 돋아있지만, 속으
로는 루아의 크리스에 대한 마음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그에게 말하고 싶어, 그의 눈을 보면서 말해주고싶었다. 그를
앞에 앉혀두고 너를 보고있지 않고 다른 이를 보아도 니가 보인다고. 크리스 일루엣이 아닌 라이언 베넷의 얼굴에서도
루아 카르텔은 크리스의 얼굴만이 보인다고.
루아의 목소리가 호소하고 있었다. 나, 나 이렇게 크리스 일루엣을 사랑한다고. 이런 자신을 좋아하면 결국 상처받은
건 베넷백작의 아들 라이언 베넷이라고. 그러니, 그러니 제발 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달라고. 그와 자신의 결
혼은 더 큰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들을 만들어내는 헛된 예식일 뿐이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넌 나를 가지지 못해,
라는 말은 형식일 뿐이었다. 카르텔 성주의 딸이라는 직책을 버리고 라이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빌고싶은 건 대뇌가
만들어내는 헛된 심상이 아니었다. 심장이 간절히 요구하는, 그 무언가 강렬하고 애타는 것이었다.
「그리고....」
떨리는 눈동자가 화려한 빛을 받아 몇 번을 깜빡이는 동안 조용히 루아의 말을 듣고 있던 라이언이 한 쪽 입고리를 올
렸다. 그리고 또각거리는 낮은 굽소리를 내며 루아의 얼굴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소녀의 표정에는 아까보
았던 담담함이 사라져있었다. 두려움, 그 자체.
「그리고 뭐지?」
비아냥 거리는 웃음. 냉정한 눈동자와 차가운 말투. 루아 카르텔의 말을 곰곰히 되뇌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루아.... 카르텔.. 이라고 했던가.. 나에게 그렇게 일깨워주지 않아도 당신을 가지려 노력하지 않아. 오직 자기 귀한
줄만 아는 잘난 여자란, 나도 질색이거든.」
「........」
「게다가, 우리집안을 이을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야. 내 형님이 나보다 먼저 멋진 손주를 아버님께
안겨드린 그
런 당연한 상식조차 모르고 있었던가?」
「.........」
「너의 육체따위도 필요없어. 넌 그냥, 인형처럼 우리집안 사람이 되서 조용히 니 사생활만 즐기며 되는거야.
나를 거
부하는 여인을 억지로 않을 만큼 천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르고있엇던가...?」
안도일까... 무언가.. 기대에 어긋난 그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당연히 자신을 가지지 않겠다는 그의 선언에 속이 후련
해짐과 동시에, 근심이 쌓였던 자리에 또다른 무언가가 작게 자리를 차지했다. 찝찝한, 그런 느낌...?
「니가 나에게 헛된 망상을 품고있었던 것 같군. 그럼, 이만」
귀빈실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이자 마자 루아가 힘을 잃은 체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이상의 눈물은 나지 않았
다. 어째뜬, 그렇게 슬픔을 주었던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것은 형식일 뿐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받아놨으며 '사생
활을 즐겨라'는 그의 말은 루아의 멋대로 크리스와의 계속적인 만남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허전하고 씁슬한 것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푸른색 눈, 갈색 머리, 흰고 깨끗한 피부, 장신의 키. 크리스와도, 또 루아 그 자신과도 너무나도 대조되는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대단한 집의 자제였으며 수제였고, 그에 걸맞게 높게 담을 쌓은 콧대라던가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말
하나하나에 무시못할 위엄마저 있는 젊은 사내였다. 금방전까지 대면했던 라이언의 얼굴을 그려보다 크리스의 미소
를 생각해 보았다.
자상하고..그리고.... 크리스..... 크리스 일루엣.....................
..............생각이......
「크리스....」
나지 않는 건......
..............
.....................
...............
.................................
화이트풍 가구들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루아카르텔에 의해 더 빛이 났던 귀빈실을 등진 그가 어둠속으로 들어왔다.
라이언 베넷을 거부하는, 감히 그따위의 망언을 지껄인 여자를 용서할 수 없는 증오감이 밀어오는 동시에, '호기심'이
란 것이 생겼다. 자신을 거부하며 제 얼굴 위에 다른 사람을 그려놓겠다고 못박아 놓는 여자는 이제껏 처음이었다. 이
런 여자를 한 번 가져보고 싶다는 그런, 어설프고 신기한 호기심에 가슴 깊숙히에서 참고 견디던 분노의 기운이 어느
정도 사그러들었다.
도대체, 어떤 사내이길래 그 어느 사람도 동경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라이언 베넷을 제 2인자로 밀려나게 만드는지.
그렇게 아름답다던 동양과 서양의 매력을 모두 지니고 있는 루아 카르텔의 마음을 뺏은 경거망동한 자가 누구인지 몹
시 궁금해졌다. 그리고, 가슴에 피어나지 말아야 하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애시당초 루아에게 한 말중 일부는 거짓이었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루아를 억지로 안을 생각은 없
었다. 엄청난 첫 관계의 고통을 맞이한 그녀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는 건 허용할 수 없는 수치였다. 하지
만, 남자에게는 '원초적 본능'이란 강한 것이 있다. 소유하지 못한 것은 소유하고 마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옆에 두고
아슬아슬한 경기를 하게 되는 그 짜릿함이라는 즐거움을 아는 그는, 라이언 베넷이다.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쥔 베넷이 다시 샹들리에 빛으로 나오면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귀부인들에게 살짝 미소지었
다. 그리고는, 다시 사교계를 휘어잡는 베넷백작의 아들, 라이언베넷으로서 칵테일의 부드러움을 만끽했다.
소유의 경기는, Ready, and START.
_05_
사무적인 분위기가 도는 공간. 로맨틱한 촛대와 그림에서만 볼 법한 진수성찬을 사이에 둔 다섯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이따금씩 화사한 불빛을 흡수하며 아름다운 반짝임을 선사하는 은으로 된 포크며 나이크가 맞부
딫히는 소리가 나거나, 우아하게 들어올린 와인잔을 하얀 식탁 위에 놓을 때 나는 둔탁한 소리 이외의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인간의 정이 절제되고, 단절된 대표적인 귀족가문의 형상이었다.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사람-어쩌면 두 사람-분의 음식이 많아졌고, 둥근 테이블에는 세 사람이 아닌 다섯 사
람이 앉아있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텅빈 듯해 보였던 흰 테이블보고 깔끔하게 마무리된 식탁은 좀 더 가득해 보였
으며 어쩌면 아침 인사 정도는 오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틀째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식사 전, 각
자 기도를 하고 '아멘'이라 말하는 것 이외에는 너무나 조용했고, 너무나 차가운 분위기였다.
입맛이 없다는 듯, 빈 접시위를 배회하던 루아의 포크가 얌전히 흰 그릇 위에 놓여졌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루아가
거북스럽다는 듯한 눈으로 제 옆에서 근사하게 아침을 먹고있는 라이언을 힐끗 보더니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그래,
그 것이 이 식탁에서 이루어진 두 번째 대화였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한 첫 번째 대화였다.
「죄송해요. 속이 더부룩해서 더이상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겠어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루아의 선언은 짧고 간략했으며 더이상 번복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눈에 확실하게 드러났다.
「루아 카르텔」
낮고, 근엄한, 그리고 보라색 눈을 가진 아버지가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읊었다. 귀한 손님이 와 계시는데 루아의 태도
는 형편없었다. 때때로 식탁에서 재채기를 한다던가, 깊은 한 숨을 내쉬고 음식을 끄적이는 그런 행동을 하는대도 모
든 것을 참아줘엇다. 그래도, 식탁에 제대로 붙어있어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음식을 먹은 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았
는데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가 괴씸한 마음에 카르텔경이 발걸음을 돌리려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불렀다.
「음식을 먹고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냥 앉아있기라도 하거라.」
카르텔경의 말을 들은 루아의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실버 홈드레스가 주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바람을 가르다 갑작
스런 멈춤에 허공에 맴돌다 부드럽게 땅에 착지했다. 루아의 두 눈이, 빈 자리 옆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있는 라이언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심장에 있는 크리스를 떨쳐내기에 많이 부족한 사
람이다. 그런 사람과 밥을 함께 먹는 다는 사실조차 버거운데 옆에 앉아있으라니. 원망스런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던
루아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더이상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조용한 걸음을 하고 그의 옆에 가서 앉았
다.
'루아 카르텔'과 친해질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발언을 했던 라이언은 그런 루아에게 일체의 시선도 주지
않았으며, 나
머지 가족들. 즉, 카르텔경, 카르텔부인, 그리고 루아의 남동생인 엘론 카르텔의 시선은 루아로부터 벗어나 다시 삭막
한 분위기속으로 접어들었다.
낯선손님때문일까, 아니면 낯설게 변한 루아때문일까. 한창 화기애애해야 할 분위기는 점점 수그러들고 있었다. 그 이
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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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고양이를 좋아하는군」
라이언의 발언-루아의 집에서 머물다가 결혼을 진행시키고 싶다는-으로 인해 루아는 집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으로부
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방 선택의 자유 뿐 아니라 문을 채우고 있는 쇠고랑으로부터 역시 해방되었으며 여
러 명의 경호원의 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루아가 키워왔던 고양이와의 재회도 허락이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그런, 고양이는 아니니 상관쓰지 않으셔도 되요」
「주인을 닮은 것 같군,.」
라이언 베넷. 그와 함께 해야 할 의식적인 시간들이었다. '친해지기 위한'방문을 지속적으로 단행하고 있는 그 라이언
베넷은 '딸과 함께 있어달라'는 카르텔경의 부탁에 의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루아와 함께 있고 말았다. 물론, 소
유하고 싶은 욕망에 가득찬 라이언의 의사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카르텔경의 부추김이 한 몫을
했다. 코끝에 느껴지는 라이언의 체취에 쇼파에 앉아있던 루아가 고양이의 털에 고개를 파묻었다. 향긋한 향이 난다.
크리스가 선물한 샴푸의 은은한 라일락향이 코끝을 은은하게 매우고 눈끝을 시큼하게 하고만다.
「내가 이 곳에 머문 이후고 늘 고양이들과만 있으니. 언제쯤 나와 이야기를 할 생각이지?」
「그게 무슨 뜻이죠?」
흰색과 회색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풍기는 고양이를 끌어안고있던 루아가 그를 보며 말했다. 거만한 표정, 오만방자
한 미소를 짓고 흰 색 기둥에 기대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갈색머리의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그
자존심 센 남자가 한 쪽 입고리를 올리며 쇼파의 손잡이에 걸터앉았다. 여유롭고 화려한 모습이지만, 그와의 조그마한
접촉도 온 몸에서 거부한다. 고양이 두 마리를 끌어안은 루아가 그에서부터 떨어진 곳으로 몸을 옮긴다.
「내가 말했듯이, 이렇게 불편한 성벽에서 지내겠다고 자초한 건 너와 친해지기 위해서야. 그런데, 그쪽은 말도 못하
고 울기만 하는 고양이틈에 파묻혀 지내고만 있으니. 며칠이 가서 친해질 수 있을지 가늠을 못하겠군..」
「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면, 책을 두어권 더 본 후에 내 말의 뜻을 곰곰히
생각해보라구」
흰색 쇼파. 그리고 체리목으로 된 손잡이. 루아가 내 준 자리에 덮석 앉은 그가 한 쪽 팔을 쇼파 등받이에 올리곤 루아
를 바라보았다. 왠지, 관능적이기까지 한 눈빛이다. 그의 파란 눈을 바라보던 루아가, 마치 빨려들어갈 듯한 느낌에 고
양이 한 마리를 눈 앞으로 끌어당겨 꼬옥 안았다. 거부하지 못하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라이언 베넷.
「분명히, 서로간 거리를 유지하며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한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렇지 않은가요 라이
언 베넷경?」
루아의 말투가 사무적으로 바뀌었다. 첫날보다 말을 순조롭게 하는 듯 하나 말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고양이 배
에 얼굴을 파묻고 즐거워하는 그녀를 바라보던 베넷이 입을 열었다. 그또한, 변함없이 여유로운듯한 모습이다.
「물론, 그 때는 그랬지. 너무 가벼운 여자같았거든.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마음이 바뀌었단 말이지」
「정말 우스우시군요」
「물론, 지금은 내가 널 소유하기위해 노력을 하지만, 곧 니가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제발 안아달라고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있을거야」
소유를 향한 남자의 선언, 그 동시에 고백. '고백'이라는 생소한 낱말을 할 줄 모르는 라이언 베넷의 말에 루아가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하려고 했던 말은 라이언의 소소한 행동덕분에 목구멍까지만 차오르고 말았다.
-냐옹~
이 자그마하고 그의 억양대로라면 형편없는 고양이에게 긁혀 생채기를 입은 그의 손등을 보며 루아가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오른 손의 상처를 보며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라이언을 보곤 루아가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고양이의 습성
은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도도한 듯, 사랑하지 않은 듯 하면서도 그들은 주인 그 이외의 사람에게는 불복종할 것을 맹
세한다. 주인이 아닌 낯선 남자의 손길에 그들의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다가오지 말 것을 경고했으며 그 대가로 낯선이
는 손등에 피를 맺게 되었다.
고양이들이 루아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일까. 호탕한 복수극에 루아가 다시 한 번 함박웃음을 지었다.
「주인과 똑같군」
주머니속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어 피를 닦던 라이언이 입을 열었다.
「도도한 척 하고 귀여운 척 앙탈을 부리면서도 가시를 꺼내어 순식간에 상처를 입히는 건」
하지만 이 따위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베넷가의 둘째아들이 쇼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원하는 것을 소유
하기 위한 생채기 따위는 얼마든지 나도 좋다. 온 몸을 바쳐서 그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온 몸을 바친다.
소유하고 싶은 자의 강한 다짐이고, 소유물에 대한 경고다.
-다만, 내 것이 된 너는 다시는 내 곁을 떠날 수 없다.
「하지만, 그 고양이들도 언젠가는 내 무릎위에서 잘 날이 있겠지. 내가 작은 동물들을 썩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니가
정 원한다면 내 집에서 키우게 해 줄 수 있어. 그 고양이들이 언젠가 내 고양이가 된다는 확신이 있다면」
'루아 카르텔. 당신이 나의 고양이가 될 날이 있다면'
작고 짧은 미소를 루아에게 보낸 라이언이 부츠굽 소리를 내며 여유롭게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여전히 고
양이를 안고 있는 루아가 방을 나가려는 그에게 다급하다는 듯이 외쳤다.
「친칠라 실버. 내 고양이들 종류에요. 낭묘(수고양이)는 레토, 여묘(암고양이)는 토비....」
「그런가..... 정보 고맙군.」
「........」
「다음엔 당신에 대한 정보가 깃들어 있는 메세지를 남겨주길」
문소리가 열린 후, 그가 루아쪽으로 돌아보며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신사적인 인사를 받은 루아는 힘이 빠진다
는 듯이 안고있던 고양이를 쇼파 옆에 내려놨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궂이 고양이들에 대해 말했는지 전혀 알 수
가 없었다. 단지,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라이언 베넷이라는 사람을 본 후로부터 크리스의 자상한 미소가 점점 사라져가고, '루이셀리아'라는 말보다는 그가 던
지는 '당신'이라는 말이 더 옳은 것 같았다. 고양이를 꼭 끌어안았다.
고양이의 향에서도 더이상 크리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크리스.. 나 어떻하니..... 니가.................기억이 나지 않는데.. 난....난........'
.........
.................
루아의 방을 빠져나온 라이언이 손에 생긴 상처를 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같은 것들도 자신을 거부하다니. 그
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심지어, 환하고 아름답고 소박한, 그녀의 체취가 듬뿍 묻어나는 그 방조
차도 자신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방으로 들어왔다. 같은 해를 향해 나있는
창문, 같은 햇빛, 들어오는 햇빛의 양도 같고 가구의 고풍스러움도 비슷한데 더 낯설게 느껴졌다. 무엇이지.....
「루아....카르텔....이라..........」
그의 입에 루아의 이름이 머물렀다. 그리곤, 햇살속에 그려지는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 그가 눈을 지긋이 감았다.
도도한 고양이와 꼭 닮았다.
「주인이 아니라면... 다가오지 말라는 뜻인가.......」
다시 한 번 생채기에 눈이 가고... 햇살 속에서 라이언의 얼굴엔 포근한 미소가
머물렀다.
고양이는 도도하다. 제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안기지 안으려 한다. 하지만, 낯선이가 주인이 되기를 청한다면, 자신
을 길들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고양이는 기꺼이 다른 주인의 품에 자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예전
의 주인을 보며 약간의 죄의식도 느끼지만 지금 당장 자신을 안고 있는 새 주인의 품도 따뜻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
이 고양이는 새 주인의 품에서 아둥바둥 거린다. 그리고, 다른 이를 향해 말한다.
-나의 주인이세요-, 그가 아니라면....
내 날카로운 발톱으로 당신의 눈을 할퀴고
말겠어요.-
루아 카르텔. 그의 옛 주인 크리스 일루엣, 그리고 새 주인인 라이언 베넷. 그녀는, 보라색 눈을 하고 관능적인 아름다
움을 지닌 그녀는 이미 라이언에게 길들여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걸,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크리스는 이미 눈에서 멀어졌다.
정루아의 동공에 맺혀있는 사람은 라이언 베넷, 바로 그 냉정하고 소유욕이 많은 사람. 루아의 고양이를 품에
안고싶
어다며 수줍은 고백을 한 남자이다. '로맨틱'이라곤 전혀 알지 못하는......
_06_
날씨는 어둑어둑하다. 오후쯔음 비가 올 것이라며 방을 치우던 시녀가 멍하게 앉아있는 루아에게 귀띔을
해주었으나
루아는 가벼운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딱 이런 날이었다. 이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옛 사랑과 헤어지게 된 날은.
이렇게 어둑어둑하고, 외출 금지와 함께 크리스와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오열을 했었던 날. 그렇게 울고있는데 비
가 왔고 천둥이쳤으며 바람이 심하게 불어왔더랬다. 마치, 하늘조차 루아와 크리스의 이별을 아쉬워 했었다는 듯이,
그렇게 루아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 눈물로 빨갛게 된 루아의 눈에는 지나치게 고요한, 하지만 비바람
으로 힘을 잃고 쓰러진 태양 아래의 세계들이 보였다.
웃을 힘조차 없었으며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지만 '크리스의 신변에 위험을 가한다'는 부모님의 협박 아닌
협박때문
에 꼼짝없이 그들의 손에 놀아나야 했던 루아였다. 몸이 찌뿌둥한 것은 습기때문에 진정이 되지 않는 머리로 표현되었
다. 차라리 다락방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방은 너무 아늑했으며 무릎에서 장난을 치는 두 마리 고
양이-친칠라 실버-때문에 가끔 느끼는 행복은 마음에 죄책감을 주었다.
-똑똑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맑은 노크소리다. 그 7일동안 숱하게 들었던, 노크소리와는 달리 신사적인 노크소리임에 틀림
없었다. 그리고, 이 노크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이언 베넷. 그자는 들어오라는 말이
없으면 정기적으로 밖에서 문을 두르릴 게 뻔하다. 따고 들어올 자물쇠가 없었지만 그가 매우 신사적이란 것은 단 며
칠동안에 간파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지니고 있는 직책또한 그의 품행을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백작의 아
들. 그 것만드로도 그가 신사적이고 예의바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말은 쉽게 했지만, 막상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큰 후회를 한 루아다. '소유'하고 싶어졌다는
라이언의 말. 충
분히 그와 거리를 가져야 한다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무의식중에, 그리고 아주당연하다는 듯 무릎에 있는 고양
이를 붉은 카펫 위에 올려두고 그를 맞기 위해 쇼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드는 생각, '앗차'.
「잠시 이 곳에 숨어도 될까?」
「예?」
「당신 동생이 날 괴롭히고 있어서 말이야. 열 두 살이라 그런지 장난기가 상당히 많군. 숨은 사람 찾기
놀이를 하는데
그녀석이 술래가 되어버렸어. 생각 해 보니깐, 내가 숨을 만한 곳은 당신 방 뿐이 없더군」
상기 된 얼굴. 한참 뛰어다녔는지 하얀 얼굴 위에 자리잡고 있는 두 볼이 붉게 물들어있다. 자연스럽게 내려온 미들컷
머리 사이로는 땀방울도 보인다.
「대답 안 해 줄건가...?」
하얀 와이셔츠를 걸치고 밖을 염탐하는 그의 모습에 넋이 나가있었나-. 자신을 보며 되묻는 라이언의 질문에
금새 정
신을 차리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세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근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곤 숨을 고르는 그의 태연한 모습에 마음속의 혼란을 겪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속내를 내색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무어라 말이라도 했더라면 얼굴이 빨개진 채 아
무런 말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웃음거리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일 것이고-.
한순간,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루아가 털실로 장난을 치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레토-를
들어올렸다.
「오늘은 유난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더군」
라이언이 '유난히'를 강조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가요?」
라이언을 보며 시니컬하게 대답하는 루아는 여전히 도도하다. 마치, 주인을 보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꼬리를
살랑 살
랑 흔들며 미소를 짓는 고양이같아.
「왜그런지 이유를 생각 해 봤더니.... 난 두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었어. 하나는.. 이런 날씨에 니가
말했던 니가 '사랑하
는' 사람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생전 처음 보는 나와 있어서 일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
「내가 어제 너를 '소유할 것이다'라고 했던 '말'때문인가?」
생기에 넘쳐 볼을 붉게 물들였던 조금전과는 달리, 다시 이성을 찾은 그가 루아에게 묻고있다. 말하기 싫은
그녀의 과
거를 들추는 질문과, 자신의 '고백'을 '말'이라는 단어로 낮추어버리면서 루아의 표정을 관찰한다. 먹이감을 찾은 한
마리의 '늑대'같이 그의 눈빛은 조심스럽고 비밀스럽다. 잠시 당황한 표정의 루아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이
내 평정을 찾는 그녀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찬찬히 그녀를 훑는다.
매력적인 그녀의 보랏빛 눈이 허공을 맴돌다가 라이언을 바라본다. 아주 여유롭다. 그녀또한 거만한 표정을
하며 쇼파
에 가서 앉았다. 이번엔, 늑대를 유인하려 살랑살랑 미소짓는 가소로운 고양이같다. 가소로운 고양이라기엔, 지나치게
도도하고 우아하다. 다리를 모으로 루아의 두 손이 무릎 위에 살포시 내여앉는다. 그리고는, 붉은 입술을 열며 라이언
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글쎄요... 그건 아마도.....」
'늑대들'. 즉, '남자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진 않지만 '어느정도'알고 있는 루아다.'소유한다'는
도발적인 말을 꺼내
어 자신의 맘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면, 여자인 정루아는......
「비가 오기 직전의 흐린날. 딱 이런날에 알맞은 사랑스러웠던 추억때문이랄까요」
그건,
「당신보다 훨씬 사내다웠고. 내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갔던, 아직도 내 마음을 쥐고있는 그 사람과 딱 이런
날에.. 만
든 추억이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남자를 위한
「형편없군요. 백작 아들이란 사람이 겨우 나같은 사람을 '소유'하기 위해 거는 수작이라곤 겨우
이런거라니.. 너무 행
복했던 추억이 있었거든요.」
질투를 만드는 것이다. 여자의 계략. 남자는 여자의 옛 사랑에 대해 질투를 한다. 그 질투는, 엄청난
사랑을 불러오고
헌신적인 사랑을 불러오는 것.
「당신과 있는 시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어. 당신과 내가 절대 만들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그러니 제발, 내가 옛
사랑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보라색과 푸른 색이 만나, 사이키틱한 스파클을 튀기며 사라진다. 보라색 루아의 눈이 귀족적인 건방짐을
내뿜다가 곳
품위있게 제 고양이고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듯한 얼굴을 하고 푸른색 눈동자를 자기에게 던지고 있
는 사내가 없는듯 행동한다. 태연하고 능청스러운 눈을 하곤 고양이를 품에 안는다. 그리고 입을 맞춘다.
당신이 나를 유혹하겠다면, 나도 맞받아쳐주겠다. 열일곱 소녀인 난, 이미 성숙했다. 사랑의 아픔이 아닌
사랑의 경험
이 내게 말해주고있어. 난 당신을 유혹할거야.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 당신을 뿌리치고 난 당당하게 크리스의 곁으로
돌아가겠어.
순진한 얼굴, 순진한 미소를 한 열 일곱 소녀의 다짐이다.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이가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억지스런..........
............................미소, 그리고 유혹.
***
최종 승자는 이단 첼리어스, 즉 크리스 일루엣이었다. 거인-한때 이단을 깔보았던-을 포함한 열 여섯의
정예된-즉 다
른 이들을 아주 무자비하게 짓밟은- 군사들을 이끈 제 7 호위 부장이 되었다. 아직도 크리스-아니면, 이단?-가 자신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몇몇 인간들을 아주 완벽하게 무시해준 이단-이라 칭하겠다-이 이마에 흐르는 땀
을 닦으며 연습장을 빠져나왔다. 짧다면 짧은, 그리고 길다면 긴 30분의 휴식을 위해 정원으로 향했다. 명목은 성을 순
찰하는 것이지만 목적은 탐색이다. 후에 올 루아와 비밀스런 사랑을 나누고, 라이언 베넷이라는 작자를 단칼로 베기위
해 어떤 곳이 적당한지 수색하는 것이다.
백작의 성. 과연 웅장하다. 이렇게 웅장하고 화려한 정원을 가진 성이 일개 백작의 성이라면 실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성은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하다, 즉 한눈을 팔다 그만 누군가와 부딫히고 말았다. 이단의 동공에 들어오는
건,
세련되어 보이는 노란색 하이힐-.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드레스에 묻은 치마를 털던 소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다그쳤다. 아직 바닥에 쓰러져
멍하게 구
두만 바라보고 있던 사내는 재빨리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상전이다. 아마... 라이언의 동생이라지. 릴리 베넷.
「죄송합니다. 제 7 호위부장이 된 크ㄹ..... 아니, 이단 첼리어스라고 합니다.」
「이단 첼리어스?」
소녀가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호위부장이라기엔 너무 지적이고 세련미가 넘치는 사람이다. 한참
그를 힐
끗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앙칼진 목소리를 드러낸다.
「내구두! 너랑 부딫혀서 내 구두가 저기 나가떨어져있어.」
한 쪽 발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소녀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이단 옆에 떨어져 있는 노란색 세련된 구두를
가리켰다.
굽이 상당히 높고 구두 코가 날카롭지만 둥글둥글하다. 노란색, 상당히 촌(..)스러운 색임에도 불구하고 귀족풍의 디
자인이 모든 것을 커버해준다. 이렇게 이쁜 구두를, 루아의 발에 신겨준다면 얼마나 로맨틱할까 생각하며 크리스가 신
발을 들어 앙칼진 소녀 릴리 베넷에게 건넨다. 하지만 그녀가 고래를 젓는다.
「신겨줘. 니가 신기란 말이야. 니가 내 신발이 벗겨지게 했으니 니가 책임져야 되지
않겠어?」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나게 하는 목소리다. 어찌 들으면 귀엽지만, 버릇없다. 세침떼기인 듯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며 귀여운 모습을 보이더니 발 끝을 세워 그에게 내민다.
'훗, 못생겼으면 시녀에게 신겨라고 할려고 했는데 특별히 니가 잘생겨서 이런 관용을 베푸는거야. 아니었음
뺨이라고
맞았을테니 감사히 내 발에 신을 신겨주는 게 좋을거야.'
「......」
「뭐해? 감히 호위 대장도 아닌 부장따위가 내 말을 무시하겠다는거야?」
한참 구두를 들여다보고 있던 이단이 조심스럽게 한 쪽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노란 실크 드레스를 들어
그녀의 발에
구두를 신겨주었다. 한 폭의 그림같다.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기엔 다소 흐린 느낌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그럼 이만」
이라는 말을 남기고 멋진 걸음을 걸으며 사라지는 이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릴리가 생긋 웃었다. 왠지,
느낌이 좋은
사람이다. 오라버니가 돌아오면 저 사람을 꼭 자신의 호위무사로 만들고 말겠다는 다짐을 한 그녀가 나풀거리는 나비
처럼 총총거리며 정원을 걸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노란 꽃의 향기를 맡으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날씨에 대한
푸념을 해서 시녀들을 괴롭힌 일이 전혀 없었다는 듯이 상냥하게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시녀에게 웃어주기도 했다.
「이단... 첼리어스.. 이단 첼리어스. 이단 첼리어스.」
그리고, 왠지 기억에 남는 얼굴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단 첼리어스, 그리고 릴리 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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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호, 시연이의 아주 약한 추측이지만 전 대학가면 레포트 하나는 참 잘 쓸 것 같아요.
세 편 쓴다고 완전 죽을 뻔 했습니다..*-_-*
하지만 글 쓸 때의 그 스릴을 아시는지요!!
생각으로는 막 여자랑 남자랑 이야기를 궁시렁궁시렁 하는데
정작 들리는 건 따다다다 거리는 타자소리 뿐이고!!
소설이 참 많이 늦었죠?
사실, 배경음악의 압박때문에 또 세 편 맞춰서 올린다고 그만..
그렇다고 내용이 없으면 안되잔아요...으컁!!
사실, 댓글 없을거란 각오하고 올렸는데 정말 놀라고 눈물이 펑펑..ㅜㅜ
히히히
그럼 제가 감사명단 올립니다^^
이코★님!! 첫빠따로 댓글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내심, 배경 이쁘다는 소리에
혹해서 순간 '미친 아이'로 낙인찍힐 뻔 했다는.. 정신없이 웃었거든요..
바다향a님!! '기대된다'는 말로 제 마음을 붕뜨게 해 주신거 알아요?? 기대 된다라..
사실 사춘기 소녀에게 그런 말보다 좋은 말은 없죠.. 어른들이 그런 말좀 해줬으면~!
미소:D님!! 와우~! 그 핸드폰 모양은 이모티콘인가요?? 아닌가..-0- 오호호 여튼 정말 감사해요!!
특히 기대 이상이라니.. 실력 없는 전, 정말 기대이상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글이 많이 늦을 것 같아요..
제가 외고준비하느라고 바빠서 틈틈히 글을 쓰게 될 것 같거든요..
그리고 세편..-_-의 압박.
이해 해 주실거죠??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가시연과 함께한 화요일......(쿨럭~!)
그래도.
Tuesday with GaShiYeon
ps.이 버젼은 동방신기 시아준수군의 목소리가 들어간 것이며
제 한푼 한푼의 용돈이 들어있으니,
저작권 어쩌고때문에 음악을 듣지 못하시는 분들은
동일한 곡이라 지루할지라도 귀를 위하여 하루종일 음악을 틀어놔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본전은.... 빼야됩니다..!@!@
첫댓글 아아아- 역시나아 기대를 져버리지않는군요! 다음소설도 기대만땅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