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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량미달 띨띨이 원상이와 물항라기 혹시 읽을까 해서 그들의 이해을 돕기위해 " 확곡동 똥개 주인과 김일성/김정일의 상관 관계" 을 염두에 두고 읽을것을 권한다.
한국은 지금 월드컵때문에 난리도 아닌 모양이다.
좋은 일이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모든 분야에서 복장 터지는 소리만 나오다가 오랜만에 남녀노소가 한 마음 되어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하면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박지성선수를 뜨거운 가슴으로 응원할 수 있으니…
자! 천안함도 당분간 잊자! 4대강? 세종시? 이명박? 정운찬? 김정일? 박근혜? 참여연대? 모두 다 당분간 접어두자. 그리스도 깼고, 앗싸아!! 아르헨티나에는 졌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가자! 가자! 16강! 8강! … …. 공화국도 홧팅! 결승에서 우리 만나자! ‘월드컵’을 한 번 ‘한반도컵’으로 만들어보자!
근데… 老醜 수구꼴통 꼰대들이 “붉은 악마” 유니폼이 빨강색이라고 뒤에서 궁시렁댄단다. 하여튼… 꼴통들은 못말린다니깐… 욕을 벌어요, 아주… 그럼 “붉은 악마”가 파란색 입으리? 아님 깜장색 입으리? 냅둬라. 이제 살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저러다 제 풀에 넘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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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서는 한국팀 시합 중계가 새벽 5시쯤 하는 모양이다. 한참 곤히 자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애들이 어느 새 일어났는지, 테레비 켜놓고 “슛! 슛! 슈웃! 아하… … 그게 아니지… … 이런… ”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고… 한 마디로 난리도 아니다.
“조용히 못해?” 소리를 한 번 지르려다가 그냥 꾹 참고 잠을 다시 청해본다. 나도 더 이상 “수구꼴통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난 원래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운동도 좋아하는 건 거의 없지만… 특히 중계방송 보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축구를 꽤 좋아하는 척 했었다. 왜냐하면, 남들 다 미친듯이 응원하는데, 나 혼자 멀뚱?하게 앉아 있으면 이상한 눈으로들 쳐다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쪼다’된다. 그래서 술집같은데서 여럿이 모여서 중계방송 볼 때는 술기운을 빌어, “그렇지… 패스… 패스… 야! 야! 줘까! 썅! 물어뜯어!” 해가면서… 나도 그 그룹에 속해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었다.
주식열풍이 불 때는 나도 회사 경리부에서 사원대출 받아서 주식투자를 했었다. 왜냐하면, 그것마저 안하면 커피자판기 앞에서의 대화에 끼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골프바람이 불었을 때는 평촌에서 근무시간에 나가서 빌딩옥상 연습장에서 몇 바구니씩 두들기고 들어오곤 했었다. 왜냐하면, 그거 안하면 친구들이 날 안 끼워줄까봐… 그게 너무 두려웠었다.
88 올림픽 임박해서 한국에서 마이카 붐이 불었었다. 그래서 그 때는 개나 소나 차를 한 대씩 사고선, 자동차 키를 큰 고리에 걸어서 허리벨트에 연결한 다음에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게 유행이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웃기는 모양새인데, 그 때는 어쨌든 그랬다.
하루는 큰 처남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아니… 뒷주머니에 열쇠를 꽂고 있는게 아닌가!
“아니… 형님! 차 사셨수?” 했더니… 얼굴이 뻘개지면서…. “그게 아니고… 요새 하도 애들이 이 놈 저 놈 다 꽂고 다니길래… 사무실 책상 열쇠를…”
차 살 형편은 안되고, 시류에는 편승하고 싶고… 이해가 되었다.
여기 이민와서 살면서 다른 건 다 모르겠는데, 그거 하나는 정말 좋다. 내가 축구 안 좋아하면 응원안해도 된다는 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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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가? 그저껜가? 인터넷에 아주 그로테스크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여기저기에 떴었다. 난 한국대표팀 선수인줄 알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설마 일본대표팀 선수 얼굴을 한국신문에서 톱으로 띄워줄리는 없으니.
정대세? 못 들어본 이름인데…? 신인인가?
헉! 북한팀 선수란다.
난 너무 놀랐다. 정대세가 북한팀 선수라는데 놀란 게 아니고, 북한팀이 월드컵 본선에 나왔다는 데 놀란거다. 북한팀도 나와? 어떻게?
그리고, 왜 북한팀 선수의 얼굴이 대한민국 신문의 톱을 장식해?
그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조금 있더니 정대세의 모친이라는 사람의 얼굴이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녀의 사진상의 눈빛이 좀 섬뜩했었다. 그리고 이마에 쓴 “… 천리마 … “뭐라고 쓴 것도 기분 나빴고.
그런데, 이런 기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대세에게 민족애를 가르친 것은 어머니였다.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어린 정대세를 조총련계 민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로 생긴 울분을 축구로 풀게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민족애?” “자부심?” “조총련?” 이 세 단어가 우리로서 서로 자연스럽게 엮여질 수 있는 단어들인가?
그리고,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 사진과 기사가 실린 것이 공화국 신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신문이라는 것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인민복근 ‘지윤남’”
브라질과의경기에서 44년만에월드컵첫골을터뜨린북한의지윤남이 ‘인민복근’이라는애칭으로네티즌사이에서인기몰이를하고있다.
북한선수가 대한민국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그제서야 나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남들 다 필드에 나가고 있을 때, 나는 빌딩옥상 연습장에서 바구니에 들은 공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었다는 것을.
남들 다 자동차 몰고 다닐 때, 우리 처남은 사무실 책상열쇠를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있었다는 것을.
한 가지 더…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들은 16일 월드컵 축구 조별리그에서 북한이 세계 최강 브라질에 1-2 로 석패한 것과 관련, “북한이 2-1로 이겼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대통령은 이날 오전 2010 동아시아 기후 포럼 행사에 참석하고 청와대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고 참모들이 전했다.
한 참모는 “대통령이 북한의 승리를 진심으로 바랐던 마음을 드러내더라”면서 “천안함 문제로 남북관계가 악화됐지만, 정치는 정치일 뿐이고, 핏줄을 나눈 민족에 대한 감정은 별개라는 대통령의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흠… … 신음이 나왔다. 맞는 말이다.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은 “북괴”이고, 월드컵에 대표팀을 내보낸 것은 “공화국”이라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난 그 때까지 그 둘이 같은 “집단”인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애들에게서 “뭣도 모르는 수구꼴통”이라고 비난받아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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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직장생활 할 때,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회사내에 “장차장” 이라는 양반과 친하게 지냈다. 이 양반은 나보다 열한살이나 많았으니까, 거의 띠동갑 수준인데도… 거의 매일 같이 술먹고 다니면서 친구처럼 지냈는데… 언젠가 이런 얘기를 내게 해줬다.
이 양반은 화곡동에 살았는데, 동네친구가 많았단다. 한 번은 여름인데… 동네친구중의 하나가 자기 집에서 기르는 똥개가 살이 토실토실 올랐는데, 한 번 잡자고 하더란다.
얼씨구나… 덕분에 영양보충 좀 하자고… 멤버들이 다 모여서 그 집 똥개를 끌고 북한산으로 갔단다. 등산배낭에 된장하고, 식칼하고, 도마하고 챙겨넣고, 솥단지도 크다마한 거 하나 둘러메고…
편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일단 똥개는 패서 잡아야 맛이 좋다니까, 그 똥개 주인이 직접 나서서 개를 나무에 줄로 매달아 놓고 디립다 패기 시작했단다.
“깽… 깨갱… 깨갱… “
서너번을 두들겼는데, 설 때렸는지… 개는 죽지 않고 그만… 줄이 끊어져버렸단다. 그런데, 땅에 뚝! 떨어진 개가 주인한테 확! 달려들더란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란 개주인이 “엄마야!” 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뒤로 주저앉았는데… 물어뜯을 줄 알았던 그 똥개는 주인 품에 들어오더니… “끼잉… 끼잉…” 하면서 그래도 주인 손을 핥으면서 집에 가자는 듯이 애원하는 처량한 눈빛을 보내더란다.
지금 이 순간, 왜 십수년전에 들은 “화곡동 똥개” 얘기가 갑자기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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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일보 동경특파원 선우 정 기자가 쓴 “정대세의 눈물” 이라는 칼럼을 봤다.
사진으로봐서는 굉장히 젊은 사람 같은데… 정신은, 미안한 말이지만, 젊은 사람 같지 않다. 이 글은 나를 다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정말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다.
(펌) 제목: 정대세의 눈물
조선일보 동경특파원 선우 정 기자
성악가 김영길은 '나가타 겐지로'란 이름으로 일본이 인정하던 스타였다. 하지만 그는 일본도, 한국도 조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유일한 조국은 북한이었다. 김영길은 뱃길이 열리자 주저없이 북송선에 올랐다. 항구에 몰린 팬들에게 그는 당차게 말했다. "이제 나가타 겐지로는 사요나라." 오솔레미오와 아리랑을 번갈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던 청진항에 도착했다. 먼저 조국에 건너간 벗 최승희(안무가)가 눈물로 그를 맞았다. 얼마 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축하공연 무대에서 김일성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베이징 공연 때 환영해준 사람은 저우언라이(周恩來)였다. 하지만 그의 소식은 7년 만에 그 '조국'에서 사라졌다.
김영길의 화려한 북한행에 수많은 청년 재일동포가 영향을 받았다. 국립 도호쿠(東北)대 대학원에 다니던 한국 국적의 수재 조호평도 그랬다. 그는 김영길 귀국 후 2년 만에 일본인 아내의 손을 잡고 북송선을 탔다. 아버지가 식칼을 들고 말렸지만 허사였다. 조호평의 소식은 5년 후 끊어졌다. 그의 안부가 확인된 것은 28년 뒤였다. 국제인권단체의 문의에 북한이 이례적으로 답한 것이다. 간첩 혐의로 끌려간 강제수용소에서 가족과 함께 탈주하다 총살됐다고 했다. 일본인 아내, 어린 자녀 3명 모두 조호평의 '조국'에서 그렇게 죽었다.
여성성악가 전월선의 부모는 아들 4형제를 북한에 보냈다. 경상남도 출신이었지만 북한을 조국으로 택했다. 전월선의 남자 형제들이 소식을 끊은 것은 10년 후였다. 그 후 10년 동안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총련에 사정해 북한을 찾았다. 뼈만 남은 3형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제들은 몸을 떨며 속삭였다. "간첩 누명을 쓰고 9년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고, "둘째는 고문을 못 이기고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숨진 아들은 유골도 찾지 못했다.
작년 12월 오사카에서 만난 북송 탈북자 고정미는 "청진항에 도착한 날,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며 울던 오빠가 항구에서 바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유골도 없이 사망통지서 한 장만 날아온 것은 8년 후였다. 속병이 든 아버지는 숨을 거둘 때 "내가 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 출신이다.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로 북송사업에 참여해 동포 수만 명을 보낸 뒤 스스로 북한을 향했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북한을 향한 재일동포는 9만3340명. 수많은 북송 재일동포들은 생사 여부조차 알리지 못하고 '조국'의 수용소에서 사라져 갔다.
며칠 전 일본 TV아사히가 정대세에게 물었다. "일본에 살면서, 국적은 한국이면서, 왜 북한 축구팀을 택했느냐"고.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조국이니까." 어머니는 브라질전이 끝난 뒤 "오늘의 건투로 북조선에 대한 세계의 이미지도 달라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니혼게이자이신문)
반세기 전 재일동포 9만명이 정대세처럼 생각했다. 그들은 용기 있게 '조국'으로 가는 북송선을 탔다. 만약 정대세가 그때 북송선을 탔었다면 어떤 운명이 되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브라질전(戰)에 앞서 정대세가 흘린 눈물을 북에서 죽어간 재일교포들이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눈물에 감동하는 듯한 요즘 한국 일각의 분위기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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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아까 “화곡동 똥개” 얘기 마무리를 못했네...
결국 그 “끼잉… 끼잉…”하면서 매달리는 똥개를 다시 나무에 매달았고 (이번에는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흠씬 두들겨 팬 다음에 잡아서 친구들끼리 맛있게 나눠먹고 돌아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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