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해 전 대간 할때 일이다.
밀가루 장사만 하면 된바람이 불더라고 대간 떠나는 일욜만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비에 아주 혀를 불렸었다.
특히 기중 압권은 대간 최장 구간인 댓재-백복령 산행때에 무려 13시간을
아주 비 맞은 생쥐가 되어 악전고투의 산행을 했었다.
옛재 방향의 오솔길.
이후 더위 먹은 소가 달 보고 헐떡이고 고두리에 놀란 새가 댓가지에 기함 하더라고
우중 산행 소리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해 진다.
지난 구간 역시 비에 쫓겨 천성산을 양보한 탓에 땜빵의 주름살이 또 하나 늘어났고
어쩌다 보니 이빨 듬성한 개호주 모양으로 너덜너덜한 정맥길이 되고 말았다.
법기리 갈림길.
각설하고 옛날 한창 때는 돈 깨나 재미를 보았을 법한 다람쥐 캠프장이 오늘의 산행
기점이 되었다.
에전엔 사람이 들끓었겟지만 지금은 진짜 다람쥐가 와글거리는 캠프장은 여고괴담
따위의 납량물 세트장으로 활용하면 안성맞춤의 궁합이겠더라.
얇은 지계곡을 왼편으로 치고 오르면 금새 등판이 뜨뜻한 땀이 한출첨배로 쏟아지고
언뜻 언뜻 무리진 두견화는 봄을 밝혀 주는 등불인양 환하게 빛이 난다.
운봉산.
도상과는 다르게 4차선으로 포장된 남락 고개는 목숨을 걸고 횡단해야 하는 위험이
따라 또 다른 정맥 답사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도로 건너편 농장엔 똥딱지를 덕지 덕지 엉덩짝에 붙인 젖소 두어 마리가 기가 빠저
노골 거리는 객을 헤실헤실 곁눈질 한다.
구제역을 용케 이겨낸 놈들의 건투가 가상해 짐짓 목자만 부라리고 만다.
참꽃,두견화,진달래.
철골만 앙상한 산불 감시탑이 있는 쬐끄만 봉우리는 계명봉과 장군봉 라인이 기가 막히게
조망되는 전망대를 갖추고 잇어 쉬어 가기엔 그만이다.
녹동교를 지나 지경 고개 들머리를 밟으면 계명봉 초입이 지척이고 오뉴월 복날이면 개장국
신세를 면치 못할 똥개 서너눔이 허리가 부러져라 초인사를 개어 올린다.
자두농원을 지나 개활지를 오르면 삼거리를 만난다.
계명봉-고당봉-장군봉.
곧장 추어 오르면 계명봉이요, 오른편으로 사면을 우회하면 안부 사거리로 우회를 하게
되는데 힘이 부치는 답사자들은 한번쯤은 생각을 갖게 하는 길이다.
계명봉에서 쥐가 나 불불거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범어사의 와각을 내려다 본다.
맨 밥에 물 말아 김치 한쪽 찢어 얹어 먹고는 고당봉으로 길을 더듬어 간다.
닭울음봉.
금정산을 오르는 길에 기여히 탈이 나고 만다.
계명봉 된비알에서 치도곤을 당한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키며 까탈을 부린다.
입으로는 화타와 편작을 부르고 손으로는 두다리를 문지르고 부추겼으나 종시 나아질
기미가 없다.
지릿재 누님과 순원 형님의 훈수로 겨우 겨우 금정산으로 올라선다.
대장부 체면에 이래 저래 마가 끼어 궁색한 면목이 남 보기 민망스럽다.
끝까지 객을 버리지 않은 두분.
지인지감이 뛰어난 동고 대감(이준경)이 어느날 조회에서 선조께 아뢰었다.
"전하 지금 나라의 동량이 될 천하 기재가 중병으로 죽어가고 있으니 이 어찌 통분할
일이 아니 겠읍니까?"
놀란 선조가 물었다.
"의원이 손을 쓰지 못하는 걸 과인인들 무슨 방도가 있더란 말인고?"
"의원 말이 강삼(강원도 산삼) 삼십근을 복용 해야 된다는데 심마니가 아닌 신이 어찌
감당 하오리까."
이에 선조가 웃으면서,
"청빈한 선비가 병을 핑계하고 과인의 산삼을 도적질 하려는 속셈이구려."
"황공 하옵나이다."
금정산.
그리고는 사옹원에 명해 강삼 삼십근을 하사 하라 명하고는 대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세월이 좀 흘러 선조는 문득 그때의 산삼 약효가 궁금 하여 다시 동고를 불렀다.
"그래 경이 천거한 기재의 차도가 어떤가?"
"성은지덕에 쾌차를 보았나이다."
"그를 볼 수 있겠는고?"
"황송하오나 좀 일어 서셔야 볼 수 있나이다."
그리고는 누구 뒤에 누구라며 그 기재를 지목하니 잔뜩 기대를 갖고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선조는 용상에 앉으며 탄식했다.
"허,,, 강삼 삼십근만 버렸군.'
강삼 삼십근을 버린 잔망한 체수의 기재가 조선조 최고의 명재상 반열에 오른 바로 오리
이원익 선생이시다.
금샘이 저기 어디인데..
일찍이 율곡이 평양 감사로 있을때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길 정도로 뛰어난 일처리로 신임이
두터웠고 중국 사신이 우연히 그를 한번 보고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항차 소년 재상이 될 겄이로다."
변변한 구실 없이 반정을 일으킨 인조는 제일 먼저 서인이 아닌 남인인 오리를 영상에
올렸을 정도로 백성의 신망이 두터웠고 인목 대비와 반정 공신들이 광해군의 처단을 극구
주장했으나 오리 정승의 반대로 제주에 유배 시킨것을 보면 거의 정치적 무게 또한 유추해
볼 수 있다.
의 상봉.
아픈 다리를 달래며 금정산을 내려서 산성고개로 가는 길은 아름답고 운치 있는 오솔길이
고즈넉히 이어진다.
산꾼 보다는 산책 나온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금정산이 얼마나 부산시민들에게 사랑
받는 산인지를 가늠케 한다.
남문.
남문을 너머 만덕 고개까지는 고저의 변화가 크지 않아 쉽게 내려 설수 있다.
오리 정승의 영상 수직석 얘기는 천상 백양봉을 넘어 설때 다시 하기로 하고
이젠 즐비한 대폿집에서 아란배, 대폿잔 기울여 대취하는게 옳을듯 하다.
만덕령을 오르는 찻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진다.
2011년 4월 11일 난테 진맹익청정.
첫댓글 의상봉 쪽 사진 기가 막히게 잘 찍으셨네요.
카메라 바꾸셨나요? 멋진 글과 사진 즐감하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격려로 알아 듣겠읍니다.
삼을 삼십근이나 먹었는데도 키가 안큰걸 보니 거의 유전적 요인이 많은듯 합니다 ㅎㅎ
부산 금정산도 난테님의 필설에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귀주대첩의 강감찬도 오척이 되시지 않는 다니 키작은 분들이
더 대단한건 정설인가 합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우선 오타부터 수정하시우 4월 11일이 아니라 4월 3일이 아닌지?
그런데 그날 부산은 비가 조금 밖에 안 온 모양입니다. 시계도 좋고 사진도 좋고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복날이면 개장국 신세를 면치 못할 똥개 서너눔이 허리가 부러져라 초인사를 개어 올린다.' -- 요 대목은 앞으로 좀 써 먹어야 겠수. ㅋㅋ
아! 스크랩이라 수정하기 힘들겠구려.. 그렇게 알고 보면 되지요. 이런 경우가 다음에도 생길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스크랩 보다 나는 복사해서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꼭 복사해서 올리고 있지요. -- 유일하게 윤도균형님 카페에만 올리지만
에구 ,,, 한주를 건너 뛰었읍니다.
비는 조금 오시다 말았고 전체적으루 아주 산행하기에 좋은 날이였읍니다.
담부턴 좀 더 신경을 쓰겠읍니다.
산행 하면서 역사의 일부를 알려주시고,
넘 잘 풀어 주시어,,또다른 느낌이 나시게 하시는군요.
역시 사람은 많이 배우고 볼일 입니다.
이곳에 오니 저도 덩달아 배울게 많아서 참 좋습니다.
여러분야에서 저마다의 소질을 발휘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이제는,
산에 다녀오시는 날만 지달립니다.
산행기 넘 좋고 ,..사진도 그렇네요. 기종 변경하셧나봐요,..
아니면,.? 내공을 숨기고 계셨거나,.? 감사.
애고,,
남들 다아는 얘기를 그냥 갖다 붙였을 뿐인데..
그림은 수정 조금 했읍니다. 늘 고맙습니다.
실제로 뵙고 주님을 친견하면 난테님의 그 좋은 넉살을 들을 수 있지나 않을까 싶습니다.
글재주보다는 입담이 더 좋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ㅎㅎㅎ
허풍쟁이가 더 어울리겠지용,,,
언제 같이 주님 모실 날만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