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지 그래도 그렇지
같은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1등과 2등인 두 학생이 나란히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응시하여 2등은 합격하고 1등은 아쉽게 떨어졌다. 많은 뒷이야기가 오가며 극단적인 반응이었다. “아이고, 어쩐다나. 시험이라는 것이 꼭 된다는 보장이 없어 발표가 나 봐야 안다. 하지만 붙고 떨어지는데 학교 순위가 따로 없고 장담할 수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한다.
다소 위로가 담긴 말을 하는가 하면, 냉소적인 말도 거침없이 오간다. 왜 하필 같은 학과에 나란히 응시해서 이런 사달이 났을까. 둘이 같이 합격했으면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2등이 합격했는데 1등이 떨어졌다는 것이 그래 말이 되는가. 아무리 입학시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한다.
다소 감정이 뒤섞여 불만스럽다는 말투다. 그렇다고 떨어진 학생이 다시 합격 되는 것도 아니고 큰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부아통이 치밀면서 사기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지나가는 말로 듣기에도 좀은 거북스럽다. 당사자의 입장은 어떠할까. 한낱 꿈이기를 바라겠지만 엄연한 현실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것이다.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똑같은 사안을 어깨너머로 귀동냥이라도 하듯 얻어듣고는 입맛대로 쏟아놓는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격려 섞인 말이 있는가 하면, 다소 냉소에 희망보다는 좌절하면서 불신하듯 부정적인 면이 담겨있지 싶기도 하다. 시험이나 인사는 떠도는 말만 들어서는 안 되고 마지막 결과가 발표되어야 알 수 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중간에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승진하거나 전보 발령자로 처음에는 들어있었으나 중간에 뒤바뀌어 새로운 명단이 들어가고 빠질 수도 있어 엉뚱해진다. 시험에서 맞은 줄 알았는데 틀렸거나 잘못 기표하였을 수도 있으며 틀린 줄 알았는데 맞을 수도 있다. 확실치 않아 달라질 수 있어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려보자 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는 어찌 보면 단순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달관하는 모습이 아주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본인의 일이라도 마치 남의 일처럼 소극적으로 자신감을 잃은 방관자처럼 보이기도 하여 다소 섭섭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해의 폭이 다소 넓고 트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끝났으니 다시 하면 된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도 있지 싶다. 꼭 이라고 하기보다는 때에 따라 혹은 형편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야말로 내가 하는 일이라도 내가 장담할 수 없는데 공적이거나 다수가 참여하는 일에 나 혼자서 일방적으로 당연하다고 할 수 없어 내가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다소간 여백이 있는 셈이다.
‘그래도 그렇지’는 너무나 당연했는데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아 어안이 벙벙하다.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면 곧바로 의문과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반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절대적 믿음 같은 신념이 담겨있어 쉽게 뒤바뀔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어 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생각하는 틀이나 마음의 폭이 고집불통으로 너무나 협소할 수도 있다. 은근한 반발 기류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내 마음과 같지 않다. 엉뚱할 수도 있고 어긋나기도 한다. 그래도 받아들이려니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다. 남의 일도 그러한데 내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자칫 삐치고 불만이 생긴다.
여럿이 사이좋게 어울려서 함께 산을 오른다. 곳곳에서 낯선 여러 개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가파른 만큼 가깝게 여겨져 올려다보기도 한다. 힘에 겨우면 다소 여유를 가지고 돌고 돌아서 갈 수도 있다. 취향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기에 내 기준에 맞추라고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다. 저마다 한마디씩 의견을 내놓는다.
같은 목표지점이라도 어느 길로 어떻게 가는가는 각자 다를 수가 있다. 이미 가본 길일 수도 있고 왠지 기분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의견을 모아서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된다. 산은 봉우리가 높아야만 좋은 산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개중에는 비록 높이는 조금 낮아도 빼어난 경관을 지닌 산이 많다. 따라서 꼭 어느 쪽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보고 느끼는 것도 다를 수 있어 선택의 문제이다. 사람은 가장 고등동물이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미생물로 가장 하등동물인 바이러스에게는 맥을 못 춘다. 강한 것에는 아주 강하면서 약한 것에는 아주 약한 모습을 보인다. 바이러스와는 창과 방패로 끊임없이 다투면서 경쟁하고 있다. 최근에는 몇 년 주기로 크게 충돌하고 있다.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나면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여 다시 곤욕을 치르게 한다. 마음 같아서는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싶어도 오히려 되잡혀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싶다가 그래도 그렇지’ 싶어진다. 자연은 무관한 듯해도 어김없이 계절이 바뀐다. 먼발치서 멀뚱멀뚱 초라한 모습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사람마다 독특한 개성이 있어 마음 씀씀이나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끝은 대부분 승복하면서 그 기본적인 맥을 이어가게 된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다가 ‘그래도 그렇지’에서 보듯이, 굳이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으면서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항상 일률적일 수 없어 그때그때 조심스럽게 판단하여야 한다.
세상을 넓게 보려는 관점에서는 그래도 긍정적인 자세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를 두는 것이다. 부정적인 자세에서 마음을 닫고 매사 쫓기는 것 같은 다급한 마음보다는 아무래도 낫다 할 것이다. 그런데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보편적인 사항이면서 괜스레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