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는
손을 씻지 않으시고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놀란다.
예수님께서는 겉을 깨끗이 씻기 전에
먼저 마음속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 루카 11,37-41).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십니다.
겉으로는 의인처럼 행세하지만 속에는 탐욕과 사악함으로 가득 차 있는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말만 하고 정작 자신들은 말한 바를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남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운 채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내면의 추한 모습을 가리고자
겉만 화려하게 꾸민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기어(綺語)의 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기어’란 ‘비단 같은 말, 번드레하게 꾸며 낸 말,
교묘하게 꾸며서 겉과 속이 다른 말’이라는 뜻입니다.
진정성이 없는 말을 많이 해, 이 죄를 가장 많이 범하는 사람이
바로 종교인들, 그중에 지도자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인들이 이런 ‘기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 가는 곳이 있답니다.
그곳은 한시도 고통이 멈추지 않는,
혀가 뿌리째 빠지는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말로써 신앙을 고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으로 자신의 믿음이 올바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일 것입니다.
사제로 살면서 신자들에게 강론이나 훈화 등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에게 한 말을 제 자신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신자들에게 말은 그럴듯하게 하여 무거운 짐을 지워 놓고
정작 저 자신은 잘 실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저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들여다보라는 말씀으로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제인 저에게 위선과 이중적인 삶을 극복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숙제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축일 10월 15일
대데레사 또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라고 불리는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에스파냐 카스티야의 아빌라에서 신심 깊은 아버지 알론소 산체스 데 세페다와
어머니 베아트리스 데 아우마다 이 쿠에바스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고향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9세 때에 아빌라의 강생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해오던 그녀는 1537년 11월에 수도서원을 했으나
지병으로 잠시 수녀원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수도생활에 정진한 그녀는
극심한 고행으로 인해 몸이 쇠약해져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기도 했으나,
40세에 이르러 내적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특히 그녀는 1554년 수난 받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통해
내적 회심을 경험한 이후 여러 번 환시를 보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데,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성 베드로 신부는 그 모든 환시가 진실한 것임을 그녀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그 당시의 다소 느긋한 수도생활보다
카르멜회의 초기 규칙대로 보다 엄격한 수도 생활을 원하는 4명의 수녀들과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를 시작하면서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다.(1562년)
1567년 카르멜회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는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우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였다.
메디노 델 캄포에 제2의 수도원을 세울 때
그녀는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이란 젊은 수도자를 만났으며,
1568년에는 두루엘로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
이것이 최초의 맨발의 카르멜 남자 수도회였다.
성녀 테레사는 에스파냐 전역을 다니면서 카르멜 수도원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으나,
1575년의 총회에서는 그녀의 개혁 그룹을 제한하기도 했었다.
1580년까지 카르멜회 내부의 완화파와 개혁파 간의 투쟁은 격심하였다.
이윽고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개혁을 추구하는 '맨발의 카르멜회'를
완화 카르멜회로부터 분리시켜 독립 수도회로 인정하게 되었다.
성녀 테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자서전인 "천주 자비의 글"(1562-1565년),
"완덕의 길"(1565년), "영혼의 성"(1577년)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명인 성녀 테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으며, 매력적이며 깊은 영성을 지녔다.
그녀는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이다.
그녀는 1582년 9월 말경 부르고스에서 아빌라로 가는 도중
알바 데 토르메스 수도원에 머물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10월 4일 선종하였다.
그녀는 1614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교황 성 바오로 6세에 의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