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무지개의 여신…노랑붓꽃은 한반도 특산종
▶예나 지금이나 위태로운 붓끝
옛날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컬어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바른 민족이라 하여 군자君子의 나라로 불렀다는 기록이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중국 고서에 남아있다. 이러한 군자로서 마땅히 삼가야할 3가지 끄트머리 3단三端이 있으니 필단筆端, 설단舌端, 도단刀端이다. 즉 문사文士의 붓끝, 변사辯士의 혀끝, 무사武士의 칼끝이 그것이다. 이 3가지 끝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살인삼단殺人三端이라 했고 군자라면 절제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살릴 수 있다는 말도 되겠는데 문사의 붓끝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가. 조선시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 대문장가에 얽힌 일화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는 이야기.
길 가던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명제命題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심약한 한 사람이 자기 분에 못 이겨 그만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는 꼼짝없이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래서 당대의 대문장가를 찾아가서 전후 사정 얘기를 하고 고을원께 올릴 변론장을 한 편 써줄 것을 눈물로 호소를 했다. 첫 번째 변론장 아무리 지독한 술이 곁에 있어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않고 썩은 노끈이 손안에 있어도 당기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는다 이 변론은 어떠한 형태로든 너로 인하여 사람이 죽었으니 살인죄를 면치 못한다는 뜻. 다시 쓴 변론장 등잔의 호롱불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기름이 다하면 절로 꺼지고 가을에 익은 밤은 사람의 손이 가지 않아도 자연이 떨어진다 다시 써준 변론은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 자연이 죽은 것이니 무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붓끝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니 문사는 곡필아세曲筆阿世 왜곡된 글로 세상에 아부하는 글을 써서는 안되며-친일파문인들의 글들, 언론은 혹세무민惑世誣民사람을 속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자사 이익을 좇아 특정 정당을 폄하 혹은 지지하는 언론. 그리고 변사-법조인의 혀끝, 무사-군인의 칼끝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3가지 끝단이 지극히 위태로운 줄 알아 활인活人 사람을 살리는데 이바지할 줄 아는 사람을 군자라 한다고 했다.
▶붓꽃-무지개 여신
붓꽃이라는 이름은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 모습이 모필붓과 흡사하게 닮아서 붙여진 것이다. 붓꽃은 이 땅의 산야초원, 계곡, 냇가 어느 곳에서나 습기가 있으면 잘 자라는 붓꽃과에 속해있는 여러해살이 초본식물로서 해가 거듭할수록 땅속뿌리줄기가 굵어지고 잔뿌리가 옆으로 뻗어가며 새싹을 내어 군락을 이루어 간다.
잎은 땅 밑 근경根莖에서 난잎과 비슷한 깊잎이 모여나는데 잎 밑동은 붉은 빛이 감돌며 그 잎 사이에서 꽃대가 돋아 나와 키 60cm 높이로 자란다.
초여름 6월에 꽃줄기 끝에 1~3 송이 진보라빛 고운 꽃이 피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꽃받침과 꽃잎이 구분되지 않은 꽃잎 6조각을 가지며 이 가운데 바깥쪽 3장은 뒤로 휘고 안쪽 3장은 곧추 선다. 열매는 세모진 삭과로 익으며 씨앗은 갈색이다.
붓꽃속의 식물은 300여종이 세계에 퍼져 살고 있으며 풀 전체에 향긋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유명한 바이올렛 향수essence of violet를 만드는 이리스근orrisroot도 붓꽃식물에서 얻는다. 그리고 포도주 향에도 이용된다. 붓꽃은 프랑스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이며 프랑스의 국화이기도 하다.
붓꽃을 꽃가게에서는 아이리스Iris라 부르는데 서양이름 아이리스는 알아도 붓꽃은 모르는 사람들. 아이리스란 붓꽃속 학명 첫 글자이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 여신의 이름으로 하늘의 제왕 제우스Zeus와 그 아내 헤라Hera의 뜻을 이 지상에 전하기 위해 하늘과 땅 사이를 무지개를 타고 오고 갔다는 전설이 있다.
▶노랑금붓꽃 한반도 특산
이 땅에도 여러 가지 붓꽃들이 자생하고 있는데 짙은 보랏빛 붓꽃, 노란꽃이 피는 금붓꽃, 흰꽃 바탕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노랑무늬붓꽃, 부채붓꽃, 타래붓꽃, 제비붓꽃, 애기붓꽃, 솔붓꽃, 각시붓꽃들이 자라고 있다. 이 가운데 노랑붓꽃은 학명 아이리스 코리아나Iris Koreana에서도 나타나듯이 한반도 특산식물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창포와 잎이 비슷한 붓꽃을 들꽃창포라 불러왔다. 한방에서 생약이름 계손溪蓀, 연미鳶尾, 수창포水菖浦라 하며 씨앗과 뿌리를 약용한다. 약성의 맛은 달고 성질은 평하다. 약효는 청열, 해독, 지혈, 건위, 이습의 효능이 있다. 적용질환은 소화불량, 복부창만-배가 부풀어오르는 증세, 질타손상-넘어지거나 두들겨 맞아 생긴 신체의 손상, 어혈-피멍, 황달, 주독, 폐렴, 인후염, 편도선염, 해수, 백일해, 토혈, 이질, 자궁출혈, 옴, 종기, 옹종 들에 쓰이는 약재다. 특히 한방보다는 민간약으로 예로부터 쓰여왔고 일부지역에 전래되는 민간요법으로 사지가 냉해서 관절의 굴신이 자유롭지 못할 때 뿌리 말린 것을 달여먹는다고 한다.
가을에 뿌리와 열매를 채취하여 씻고 잘게 썰어 햇볕에 말려두고 쓴다. 내과적인 질환에는 하루 쓰는 양 3g 물로 달여 나누어 복용하고 외과적인 질환에는 약초 전체를 달인물로 씻거나 생잎즙을 바르고 또 말린 약재를 가루로 만들어 환부에 개어 붙인다.
<艸開山房/oldmt@hanmail.net> **** 글: 이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