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에 나와 있는 글귀를 읽어보지 않고 내 나름대로 김훈 작가의 하얼빈과 이문열 작가의 불멸을 읽은 소감을 서로 비교하며 짧막하게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
김훈 작가는 등장하는 인물의 심리에 공을 많이 기울인 것 같다. 이문열 작가는 <불멸>에서 안중근을 영웅으로 묘사했다면, 김훈 작가는 <하얼빈>에서 안중근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세 자녀를 둔 아비요,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자 신께 모든 것을 맡긴 신앙인으로 묘사한다.
하얼빈에 아내와 애들이 하루라도 일찍 왔었다면...
하얼빈에 오기 위한 여비를 구하지 못했다면...
하얼빈에 되돌아가지 않았다면...
이토를 향해 총구를 든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안중근의 의지였고 신의 도우심이었다고 평가한다!
-2023. 1. 16. 페이스북에 쓴 글-
『하얼빈』의 부제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그늘을 걷어낸 인간 안중근의 가장 치열했던 일주일이라는 글귀처럼 김훈 작가는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빌렘 신부, 미조부치 검찰관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현미경 드려다보듯이 그려내고 있다. 이미 안중근 의사가 직접 쓴 자서전인 안응칠의 역사를 통해 안중근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쯤은 읽어보셨기에 김훈 작가는 구구절절 자서전에 나와 있는 안중근의 생각들을 옮기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김훈 작가가 생각해 낸 안중근, 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살펴보며 인간적인 고뇌와 역사적 운명을 대화 속에 간결하면서 묵직하게 쏟아냈다.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을 단지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마치 곁에서 동행한 사람처럼 그려냈다니 말이다.
『하얼빈』을 읽어본 독자라면 대부분 가족을 생각하며 순간 갈등하는 장면에서 인간적인 면을 함께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하얼빈에 아내와 아이들이 하루라도 일찍 왔었다면.... 아마 총을 들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작가는 써 내려간다.
만약 안중근의 후원자 정대호가 평양에서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면 역사의 물결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해 보면 안중근은 신께서 자신에게 이토를 맡기셨다는 확신한 신념이 있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평가한 듯 싶다.
마치 각본을 짜 맞추기라도 한 듯이 이토와 안중근은 서로 각자 다른 방향에서 하얼빈으로 향한다. 동양의 평화를 생각하는 결이 서로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하얼빈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그 두사람이 하얼빈으로 향할 때 함께 보조를 맞추는 우덕순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지금 당장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행동하겠다는 결심으로 역사적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아직 『하얼빈』을 접해 보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이참에 뚜벅 뚜벅 한 걸음씩 하얼빈으로 초점을 맞춰가는 김훈 작가의 펜 끝을 따라가보라. 하얼빈의 10월 26일 이른 아침의 기온이 영하의 날씨였다고 한다. 한국의 1월 날씨처럼 말이다. 아내와 자녀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을텐데 그는 품 안에 있는 권총 방아쇠에 집게 손가락을 과감히 주저하지 않고 갖다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