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은 1-2장이 입문이라고 이미 밝혔다. 입문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에피파네스라는 신성모독적 별칭을 가진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1장)와 이에 항거하는 마타티아스 사제와 그의 다섯 아들(요한, 시몬, 유다, 엘아자르, 요나탄)의 반란을 소개한다.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성읍과 집안에서 존경받는 신분인 마타티아스의 배교 행위가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왕명을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임금의 벗이 될 뿐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리게 될 거라고 유혹한다 (17-18절).
이에 대해 마타티아스는, 임금의 왕국에서 모두가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자신과 아들들과 형제들은 한데 뭉쳐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계약에 충실하고, 결코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19-21절).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2절)
말하자면, 야훼 유일신 신앙을 따라 정도를 걷겠다고 의지를 드러낸다. 이교도의 것을 섞어서 절뚝거리는, 양다리 걸치는 혼합 종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어떤 남자가 나와서 배교 행위로 이교도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는 일을 보게 된다. 마타티아스는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라 그를 쳐 죽이고, 이교도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제단도 헐어 버린다(25절). 마치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것이다 (민수25,1-18). "피느하스가 일어서서 법대로 다스리자 재앙이 멈추었으니 이것이 그에게 세세에 영원히 의로움으로 셈해졌다.'(시편106,30-31)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말한다.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 나서시오."(27절)
예레 34장 18절에 나오지만, 유다인들은 A와 B가 계약(berit:베릿)을 맺을때(karat: 맺다-직역하면, 자르다), 송아지를 한 마리 가져다가 반을 자르고(죽이고), 그 잘라진 틈으로 A와 B가 지나간다. 계약을 어기면, 그 송아지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계약이란 피(생명)로 맺는 것이다. 물질적인 상행위로서의 contract 이 아니라 covenant 이다.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피(생명/인격)를 나누는 교환 행위를 말한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이런 계약을 맺었다. 계약을 맺는 장면을 아무도 보지 못했으나, 피가 오고 간 것이다.
그리고 그 계약의 산물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는 십계명이고 율법인 것이다. 우리가 계명과 율법을 어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피(생명/목숨/인격)를 뿌려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계약의 당사자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몸도 마음도 갈라서서는 안된다. 다른 생각을 해서도 안되고, 다른 짓을 해서도 안된다.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몸도 마음도 갈라서서는 안된다. 충성해야 한다.
신약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뿌려 맺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도 마찬가지다. 구약의 백성이 계약의 산물인 계명을 어겼을 경우, 육신도 죽고, 영혼도 구원받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계명을 어긴 육을 가진 인간들이 모두 영육간에 죽어야 했기에, 구원받을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죄없는 예수님이 아담으로부터 인류의 종말에 이르기 까지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그로 말미암아 죄지은 인간들이 더 이상 육신이 죽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동시에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고, 영혼 생명의 단절, 즉 은총이 끊어지지만, 다시 회복되는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고백성사를 통해 주어지고, 성체성사로 다시 일치와 성화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래서 복음이다. 무상의 선물이다. 옛 계약(구약)과 새로운 계약(신약)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선물인 성체 안의 예수님을 모시기에 합당하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성전에서 말씀과 성체로 오시는 주님을 모실 때와 성전 밖에서의 삶이 일치하는가? 가정과 사회와 직장에서 어떻게 죄와 죄의 기회를 단호히 끊고 거부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마타티아스의 율법에 대한 열정, 계약을 지지하고 충성하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출처: 피앗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