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신앙적 성찰
서울영동교회 정현구 목사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지금 전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 코로나 사태가 지금 한국에서는 온 백성들의 눈과 귀를 점령하고 있고, 바쁘게 돌아가던 한국이란 엔진이 일시 정지시키고 있다. 우한에서 생겨난 바이러스 감염이란 나비의 날개 짓이 온 세계를 뒤흔드는 강력한 태풍이 되고 만 것이다. 온 세계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의 감옥에 가두면서 세계적 사건이 되어 버린 이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사건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와 교훈은 무엇일까?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당시 일어난 두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이 나온다. 하나는 빌라도가 갈릴리인들의 피로 제사를 드린 사건이다. 갈릴리는 반로마 정서가 강했고 반로마 저항운동이 빈번히 일어났던 곳이다. 그때마다 로마는 로마에 대한 저항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하려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진압했다. 십자가 형이 그 한 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마에 저항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붙잡아 참혹히 죽인 후에 그들의 피를 로마 제단에 바치는 제사에 사용한 것이다. 유대인의 피가 이방의 제단에 드려졌다는 사실로 인해 이 사건은 더 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로 인해 로마에 대한 증오는 더 심해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피가 이교도의 제사에 사용된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그들은 다른 갈리리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았기에 그런 비참한 일을 당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한 사람의 불행을 그의 죄와 연결해서 생각하던 사고가 매우 익숙했던 때였다. 그렇게 함으로 죽은 이들의 명예까지 죽임으로 죽은 이들을 또 한번 죽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요즘에도 그런 일이 간간이 일어나곤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못박으신다. 그리고 화제의 초점을 죽은 자들에게서 산 자들에게로, '그들'이 아닌 '너희'에게로 돌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한다라고.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죽음을 그들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산 자들에 대한 경고로 보게 하신 것이다.
로마에 저항하다 죽은 갈릴리인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무력저항만이 답이라고 여기면서 또 다른 무력행동을 꾀하고 있는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향하여 그들도 죽은 자들처럼 된다는 경고를 하신 것이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를 끝까지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는 무력과 투쟁을 통해서만 온다는 그들의 생각을 고집하고 행동한다면, 그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됨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망할 수 있다고 보신 것이다. 실제 AD 70년 로마에 저항하면서 일어난 유대 전쟁을 통해서 그런 경고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예수님은 그 사건을 죽은 자에 대한 심판이 아닌 그 시대의 산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로 보게 하신 것이다.
이어 또 하나의 사건을 언급하셨다. 실로암 망대 공사 중에 열 여덟 명이 죽는 사고다. 당시로는 매우 큰 대형사고에 대해 사람들은 습관처럼 죽은 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여기고 또 믿었다. 그릇된 종교적 사고가 망대사건의 실상을 보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망대사고는 우연한 사고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건 뒤에 분명히 숨겨진 원인이 있다. 누군가가 망대 공사비를 빼돌렸을 것이고, 그로 인한 부실공사로 인해 안전사고가 났다면, 죽은 이들의 죽음은 누구의 죄 때문인가? 죽은 이들의 죄인가, 산 자들의 죄인가? 산 자들이 여전히 불의한 행동을 계속하면, 또 다른 망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로 이 사건을 보게 촉구하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접하며 산다. 나와 상관이 없으면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그 일들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세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도 역시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시대의 표적을 분별(마 16:3)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코로나 19사태에 대해서도 성경적 성찰을 통해 메시지를 듣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이 사태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세상을 향한 경고
인용한 누가복음 말씀에 의지해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코로나 19 사태를 세상을 향한 경고로 볼 수 있다. 코로나 19 사태를 두고 WHO는 전염경보의 최상위 단계를 발령했다. 팬데믹의 상태에 가까이 갔다고 본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작한 <세계멸망 10대 시나리오>란 영상이 있다. 멸망 시나리오 1위가 합성 바이러스 출현이다. 2위가 인공지능, 3위를 핵전쟁, 4위를 기후 재앙, 5위를 인공 불랙홀, 6위를 변종 바이러스다. 코로나 19는 변종 바이러스 사태이다. 이것이 세계적 충격을 준다면, 북한을 비롯한 중국 우한에서 연구하고 배양하는 합성 바이러스가 무기로 사용될 경우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실제 1979년 3월 소련의 생화학 무기공장에서 합성 바이러스인 탄저균이 잠시 새어나가는 사고가 있었는데 순식간에 수백 명이 죽었다. 생물학적 체르노빌이라고 부른 사고였다.
이런 인류멸망 시나리오들은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만약 창조의 질서를 계속 무시한다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핵이나 유전 기술을 통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계속 넘는다면, 어떤 더 큰 재난이 올 지 모른다. 이번 사태를 이런 위험을 알리는 경고로 들어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을 맘대로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 그러나 9.11사태를 생각해 보라. 납치된 항공기가 뉴욕의 무역센터를 공격했던 그 엄청난 사건에 사용된 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조종사의 목을 겨눈 칼 하나였다. 한 평론가는 거대한 기술 문명이 칼 한 자루에 의해 무참히 무너졌다고 썼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최첨단방식으로 위험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해도, 사소한 실수 하나로 엄청난 재난이 올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호모 데우스가 된 인간이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이토록 불안해하고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 사태를 문명의 교만에 대해 회개하고, 인간의 한계를 깊이 자각하라는 경고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은 더 큰 위험을 피하고 살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
또한 우리는 이 사건을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각 나라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경로가 다르다. 하지만 유독 한국은 신천지 집단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신천지 집단의 실상이 폭로되고 있다. 드러난 것은 이 집단이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포교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 은밀히 들어와서 교회를 무너뜨리고, 신분을 숨기고 은밀히 접근하여 포교하고, 144,000명 속에 들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며 불안과 공포의 바이러스를 마음 속에 은밀히 심는 방식을 사용했다. 바이러스처럼 은밀하게 활동했던 이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무너지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신천지가 '신천지 교회'로 소개되면서 한국교회도 신천지 집단처럼 생각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이 사태가 주는 메시지를 알아야 한다. 신천지 집단은 사이비 집단이지만, 그곳에 넘어간 일반 신도들은 대부분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그곳에 빠지게 된 것일까?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교회다. 신천지는 기존교회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기존 교인을 현혹하는데, 한기총을 타락한 기독교의 전형으로 삼아 신천지와 비교하면서 그들의 신앙적 우위를 주장하여 포교한다. 또한 그들만이 성경의 깊은 진리를 알고 있다며 선전한다.
그렇다면 다수가 신천지로 넘어가게 된 이유를 한국교회에서 찾을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고, 성도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도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신천지와 같은 이단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또 신천지는 속임의 방식이지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포교했다. 그래서 다수가 넘어 갔는데, 그들이 그렇게 할 동안에 한국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전도에 온 힘을 다 쏟을 때, 한국교회는 우리만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교회는 전도에 대한 열정이 너무 약하지 않았는가? 수많은 영혼들이 신천지로 넘어가게 된 책임이 교회에 없지 않다. 따라서 신천지가 깊이 연관된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신천지에 대한 정죄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경고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향한 경고
셋째, 이 사태를 우리 자신을 향한 경고로 들어야 한다. 지금 온 세계가 바이러스 감염을 두려워하고 있다. 집 밖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각종 모임들이 취소되고 있다. 온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포로로 잡혀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매우 두려워하며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서 드는 불편한 생각이 하나 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뿐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두려워해야 할 바이러스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코로라 사태를 통해서 확산되는 혐오의 바이러스만 해도,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서 마스크를 사재기해서 폭리를 취하는 이들이 있고, 접촉자 행세를 하면서 유급휴가와 생활지원비를 얻어내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기심의 바이러스가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이 나라에 널리 퍼진 분열의 바이러스를 그대로 두면 또 어떻게 될까?
신천지에 청년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 왜 많은 청년들이 그런 극단적인 교리에 빠지는 것일까? 신천지는 144,000명의 수가 차면 세상이 말 그대로 신천지가 되고, 그 수에 든 이들은 세상을 통치하며 산다고 믿는다. 그 교리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 많겠지만, 그 기저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절망과 포기의 바이러스가 청년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신천지는 그것을 이용해서 청년들을 현실에서 종교로 도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바이러스가 계속 전파된다면 그 결과는 코로나 집단감염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기심, 분열, 절망의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그런 바이러스들을 찾아내어야 하고, 그것을 치료하는 백신은 말씀과 복음임을 알려야 한다. 우리가 그 백신으로 회복되고 또 회복시켜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을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경고로 들어야 우리들이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과 공동체가 참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빨리 종식되고 속히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이 사태를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보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사태가 주는 깨달음을 전혀 얻지 못하고,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이전처럼 되돌아가 다시 과거를 반복한다면 우리는 이 사태를 헛되이 낭비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경고는 더 큰 재난을 막아주고 그것을 듣는 자를 살게 한다. 이 사태가 세상과 한국교회와 우리를 향한 경고라면, 그 경고를 들어야 더 큰 어려움을 예방할 수 있고, 산 자들이 제대로 살게 된다. 모쪼록 이번 사태를 통해 주시는 경고를 잘 들어 이 사회가 방향을 새롭게 하고, 교회가 다시 새로워지고, 개인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 사태가 더 큰 재난을 예방하는 계기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기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