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요리는 못 참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면 요리의 역사
무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먹었다는 그 요리,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먹고 있다는 그 요리, 바로 ‘면 요리’입니다.
한국에서는 국수라고 부르죠. 한반도의 선조들도 국수 사랑이 엄청났는데요. “10여 종류의 음식 중 국수 맛이 으뜸이다.(食味十餘品而麪食爲先)”라는 말이 『고려도경』에 나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사랑 마지않은 요리였습니다. 오래전부터 면발을 빠는 쾌감을 알아버린 한반도의 선조들은 그 이후로 다양한 국수 요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부터 한국인의 국수 사랑을 역사 속에서 확인해봅시다.
밀이 없다면 메밀로 간다
특별난 국수 사랑 때문이었는지, 밀 재배가 어려워 밀로 된 면 요리를 접하기 힘들어지자 한반도의 선조들은 묘안을 냅니다. 바로 메밀이었죠.
헬스조선“국수는 원래 밀가루로 만들지만, 우리나라는 메밀가루로 만든다” 기록이 『고사십이집』이라는 농서에도 적혀 있습니다. 밀이 없으니 메밀을 국수의 재료로 사용했던 것이죠. 밀은 농사가 가능한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었던 것에 반해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 식물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메밀로 면일 뽑을 수 있게 되자 조선시대 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국수 종류만 해도 50여 종에 이르렀죠. 국수의 주재료는 대부분 메밀이었습니다만 밀가루, 녹두가루 등 다양한 재료로도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궁중에서도 메밀국수를 으뜸으로 쳤고 국물은 꿩고기를 삶은 육수를 썼죠.
조선은 의례음식이나 궁중연회 음식으로 국수를 내었는데요. 이때의 국수도 대부분은 주로 메밀을 이용했습니다. 국수가 의례 음식으로 사랑받았던 이유는 면 모양이 길게 이어진 것이 ‘경사스러운 일’이나 ‘추모의 의미’가 길게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었죠. 국수는 지역에 따라 재료와 모양을 달리하며 발전해 나갔습니다. 서울은 왕족을 비롯해 ‘있는 집 양반’들이 살던 지역인지라 오색 고명을 얹은 국수나 비빔국수를 먹었습니다.
비빔국수
해안지역에서는 주로 해산물로 국물을 낸 칼국수를 먹었고, 강원도와 같은 산악지역에서는 도토리, 메밀, 감자, 옥수수 등을 이용한 메밀국수나 막국수를 먹었죠.
옹심이 메밀 칼국수
전라도나 경상도는 경북 안동은 유독 양반가를 중심으로 접대 요리가 발전했는데요. 안동건진국수가 대표적이죠. 이외에도 황해도 쪽의 동치미 국수 평안도와 함경도의 메밀 베이스의 냉면 등이 발전했습니다.
안동건진국수
이제 우리도 밀가루 국수 먹는거야?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밀 재배가 시작된 시기는 1920년대, 그러니까 일제시대부터입니다. 일제는 쌀과 밀을 조선의 주요 작물로 선정합니다. 그리고는 조선에서의 밀 재배를 유도하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일본 품종의 밀이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부터는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적합한 개량종이 황해도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보급되었고 이곳에 제분 회사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밀로 만든 요리는 아직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특히나 밀로 만든 빵과 같은 요리는 ‘서양’을 상징하는 요리로 인식되면서 고가에 팔려 나갔죠.
밀을 활용한 요리가 대중적으로 퍼질 수 있게 된 시기는 해방 이후였습니다. 해방 후 미국에서 밀을 무상 원조해주면서 한국에 대량으로 미국산 밀이 풀릴 수 있었죠. 이후 밀가루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합니다. 밀은 이제 상류층의 식재료가 될 수 없었습니다. 밀의 위상이 달라진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혼분식장려운동’ 때문이었습니다. 정부 주도의 혼분식장려운동으로 밀 원료의 가공식품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죠.
정부에서는 노골적으로 ‘가정에서나 음식점에서는 잡곡을 넣어 밥을 할 것’, ‘낮에는 술을 팔지 말 것’, ‘쌀을 원료로 하는 음식을 만들지 말 것’ 등을 권고했습니다. 심지어 쌀로 만든 모든 식품을 밀가루로 대체하라고 말할 정도였죠.
이때 밀가루는 삼백산업 중 하나로 미국에서 원료를 값싸게 들여와서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양을 싼값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정책이 가능했습니다. 밀가루 소비를 높이기 위해 ‘쌀밥보다 영양가가 우수한 밀가루 음식’, ‘밀이 쌀보다 영양가가 우수하여 밀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인이 한국인보다 크고 건강하다’는 식의 프로파간다도 잊지 않았죠.
5.16 쿠데타 이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 시기의 혼분식장려를 더욱 노골적으로 시행합니다. 박정희는 이를 ‘식생활 개선 운동’이라고 이름 붙였죠. 1964년 1월부터 모든 음식점에서는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해서 팔아야 했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은 아예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육개장과 설렁탕, 그리고 곰탕에는 쌀이 50%, 잡곡이 25%, 면류가 25% 이상 섞여 있어야만 판매가 가능했습니다. 요즘도 설렁탕집에서 파는 설렁탕에 밀가루 국수가 들어가 있는데요. 이때부터 시작된 ‘만들어진 전통’이었던 것이죠.
이때부터 국수의 주재료는 메밀에서 밀로 바뀌게 됩니다. 밀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음식 문화에도 큰 변화가 있게 된 것이죠. 이때부터 국수라는 말이 ‘밀로 된 면 요리’로 규정되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국수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밀가루 국수인 이유죠.
자, 이제부터 본격 ‘냉스플레인’
하지만 한국인들은 메밀국수를 잊지 않았습니다. 밀가루가 아무리 싸게 들어온다고 해도 (과장 조금 섞어)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먹어왔던 메밀국수를 쉽게 버릴수야 없는 노릇이었죠. 그것이 바로 평양냉면이 존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사실 요즘은 냉면이라 하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으로 나누고는 합니다. 평양냉면은 메밀 기반의 국수에 차가운 동치미나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적당히 섞은 육수에 만 장국 냉면입니다. 이에 반해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을 베이스로 한 국수에 매운 양념장에 무치고 그 위에 양념한 홍어회를 얹어서 먹는 비빔냉면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아니었는데요. 엄밀히 이야기하면 비빔냉면은 냉면이 아니라 비빔국수가 되는 겁니다. 냉면이 처음 기록된 『동국세시기』라는 책에서도 냉면은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메밀국수를 말고 여기에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 하고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 간장(진간장)을 메밀국수에다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麵:비빔국수)이라 한다. 냉면은 평안도 냉면이 최고”
냉면 만드는 법은 최초로 소개된 『시의전서』라는 책에도 냉면은 “청신한 나박김치나 좋은 동치미국에 말되, 화청(和淸:음식에 꿀을 타는 것)하고, 위에 양지머리, 배, 좋은 통배추김치를 다져 얹고 고춧가루와 잣을 흩어 얹는다”고 설명하고 있죠. 조선에서 궁중음식을 만들던 안순환이 남성 요리사들과 궁중 나인을 데려와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을 차렸는데요. 『부인필지』라는 책에서는 명월관에서 만드는 냉면 조리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책에 의하면 “동치미국에 국수를 말고 무와 배, 유자를 얇게 저며 넣고, 제육을 썰어 넣고 달걀을 부쳐 채썰어 넣고, 후추, 배, 잣을 넣는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평양냉면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생각해보면 메밀을 주로 먹었던 한반도 지역의 국수 전통으로는 온면보다는 냉면이 더 발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밀은 끈기가 없기 때문에 면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서 치대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면발은 뜨거운 국물에서는 빨리 퍼지고 식감이 떨어지게 되죠. 그래서 메밀을 베이스로 한 면발은 온면보다는 냉면에 어울리게 발전하게 됩니다.
한편 우리가 흔히 함흥냉면이라고 부르는 음식은 메밀에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 전분을 넣어 면발을 만드는데요. 전통이 오래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제시기 초기 함흥에서는 개마고원에서 생산된 감자를 가공해 감자 전분을 생산하는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감자녹말을 이용한 국수 요리가 발달하게 됩니다. 이때 고구마 전분 베이스의 물냉면인 농마국수, 그리고 회와 매운 양념장을 넣고 비빈 회국수가 탄생하게 되었죠.
이후 한국전쟁 때 흥남 철수로 인해 강원도와 부산 지역에 함흥 출신의 피난민들이 많이 살게 되었는데요. 이때 고향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을 열면서 상호에 ‘함흥’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고 함흥식 회국수가 평양식 물냉면과 비교되면서 국수 대신 ‘냉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평양이 냉면이라는 이름을 독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쭉 살펴봐왔던 것처럼 한반도의 다양한 지역에서는 냉면을 다채로운 형태로 저마다의 특색을 가진 채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서 냉면을 즐겼다고 봐야겠죠.
ⓒ누들푸들 농심넓은 의미에서 냉면은 ‘차갑게 식힌 면’ 혹은 ‘차가운 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합니다만 1980년대 외식산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평양’이라는 이름이 다른 지역의 냉면을 밀어내고 왕좌를 차지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