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 말씀: 시편 16:1~1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핵심 메시지】
하나님은 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우리의 몫으로 주시며, 그 몫을 친히 붙들고 계시기에 아무것도 그 몫을 빼앗을 수 없다.
* 설교 중심 문장: 선물은 사라져도, 선물 주신 분은 내 몫으로 남아 계십니다
【말씀 나눔】
나이가 들수록 "이제는 하나씩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운전대를 내려놓고, 평생 하던 일을 내려놓습니다. 약 봉지는 늘어나고, 함께 늙어 가던 친구들의 부고가 하나둘 날아옵니다. 젊을 때는 쌓으며 살았는데, 이제는 정리하며 삽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끝까지 내 손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읽는 시편 16편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다윗의 노래입니다.
1절,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시인은 무엇으로부터 지켜 달라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누구의 기도도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새벽 무엇 때문에 마음이 무거우시든, 이 첫마디는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복'이라고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토바(טוֹבָה)',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 밖에는 내게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무엇이 좋은지 목록을 대지 않습니다. 그냥 '주님'입니다.
우리는 평생 "복 주세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잘못된 기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주님, 주님이 저의 복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 아시죠?
사람들은 황금알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황금알보다 더 귀한 것은 그 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복도 그렇습니다. 건강도 귀하고, 자녀도 귀하고, 평안한 노후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보다 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황금알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복이라는 고백은 복이 많을 때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져도 여전히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기쁨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3절,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하나님이 귀해지니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도 귀해집니다.
하나님이 나의 복이 되실 때,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목장 식구들도 소중한 선물이 됩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길도 있습니다. 4절,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사람들은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다른 신을 찾아갑니다.
더 풍요로워지고, 더 안전해지고, 더 행복해지려고 찾아갑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길의 끝에 괴로움이 더해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 자리에 앉히면, 처음에는 그것이 나를 지켜 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그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잃을까 봐 두렵고, 부족할까 봐 불안하고,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길에 발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전혀 다른 잔을 듭니다.
5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산업, 분깃, 그리고 6절의 줄로 재어 준 구역과 기업. 이 말들은 모두 여호수아 때 가나안 땅을 나누던 장면에서 나왔습니다.
지파마다 제비를 뽑았습니다. 줄을 대고 땅을 쟀습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너희 몫이다."
그런데 그때 다른 지파들처럼 자기 지파의 영토를 기업으로 받지 못한 지파가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8:20, "너는 그들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겉으로 보면 가장 가난해 보이는 지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네 몫이다" 하셨습니다.
다윗은 지금 그 고백을 자기 고백으로 드립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내게 좋은 몫을 주셨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이시니." 하나님이 몫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몫이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붙들고 지탱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받은 몫을 내 힘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분깃을 붙들고 계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분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어서 하나님이 내 것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손주와 길을 건널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이는 자기가 할머니 손을 잡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넘어지지 않는 진짜 이유는 할머니가 그 작은 손을 꼭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붙들고 계시기에, 나는 그분을 나의 분깃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6절 고백이 나옵니다.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다윗의 생애를 돌아보면 형편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조금 전 우리가 함께 부른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은 미국의 패니 크로스비가 지은 찬송입니다. 영어 원문의 첫 줄은 "주님은 나의 영원한 몫"이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방금 읽은 5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여섯 주 만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평생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혼해서 얻은 어린 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복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그녀는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주님은 나의 영원한 몫, 생명보다도 귀하신 분"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누군가 그녀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눈을 떠서 처음 보게 될 얼굴이 우리 주님의 얼굴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앞을 보는 눈은 그녀에게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기업이신 하나님은 빠져나가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의 기업이 아름다웠던 이유도 같습니다. 그 기업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일상을 보게 됩니다.
손에 쥐었던 것들을 하나씩 놓게 될 때 "이제 내게 남은 게 뭐가 있나" 싶습니다.
본문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다 내려놓은 그 손에도 가장 좋은 몫이 남아 있습니다.
선물은 사라져도, 선물 주신 분은 내 몫으로 남아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몫이라는 고백, 참 좋습니다.
그런데 잠 못 이루는 밤에도, 병원 침대 위에서도, 마지막 숨을 쉬는 날에도 이 몫이 정말 남아 있을까요? 다윗의 노래는 여기서 둘째 걸음을 내딛습니다.
7절,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훈계'라고 하니 꾸중처럼 들리지만, 원래는 '조언하다, 길을 일러 주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르치신다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밤에도 그 교훈은 계속됩니다.
나이가 들면 밤이 길어집니다. 잠은 짧아지고 생각은 많아집니다. 낮에는 잊고 지냈던 걱정이 어두워지면 다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밤을 염려의 시간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고, 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하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습니다.
8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앞에 모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라고 합니다. 오른편은 옛날에 보호자가 서는 자리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셨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이미 내 곁에 서 계셨습니다. 나의 분깃을 붙들고 계신 그 하나님이 지금 내 오른편에 계십니다.
9절,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러므로'는 내가 잘 모셨으니 상을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시니 마음도, 존재 전체도, 몸까지도 그 안에서 안전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갑니다.
10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스올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다윗은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나를 거기 버려두지 않으신다"라고 합니다.
죽음은 옵니다. 그러나 버려지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주의 거룩한 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시드(חָסִיד)'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관계 안에서 그분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사람을 뜻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의지하는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내가 죽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드신 하나님이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죽음 이후의 일을 얼마나 분명하게 알고 있었는지는 우리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다윗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문제까지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11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생명의 길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오늘의 삶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니면 의지할 곳이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8절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의 오른편에 계셨습니다. 다윗을 지키시고 붙드시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11절에 이르면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영원한 즐거움이 흘러나옵니다.
나를 붙드시던 바로 그 하나님이, 이제 영원한 기쁨까지 주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손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손이 다른 손이 아닙니다.
6절의 '아름다운 곳'과 11절의 '즐거움'에 같은 히브리어 뿌리 '나임(נָעִים)'에서 나온 말이 사용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 땅에서 맛본 하나님의 좋으심이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켜 달라고 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노래의 끝에 가면 영원한 기업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시 몸을 피할 곳만 허락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을 우리의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는 분입니다. 선물 주신 분이 내 몫이시기에, 죽음도 그 몫을 빼앗지 못합니다.
우리 손에서 많은 것이 빠져나갑니다. 힘도, 사람도, 시간도. 그러나 하나님은 빠져나가지 않으십니다. 내가 겨우 붙들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예배당을 나서면 다시 하루가 시작됩니다. 약해진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실 것입니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실지도 모릅니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날 마음 한쪽에서 '이제 내게 남은 게 뭐가 있나' 하는 소리가 들릴 때, 다윗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이 고백은 손에 가진 것이 많아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줄어도 하나님이 여전히 내 몫이시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스올에 버리지 않으신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죽었습니다. 그의 몸도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헛된 바램일까요?
오순절에 베드로가 바로 이 문제를 짚었습니다.
그는 시편 16편을 인용하면서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선포했습니다. 다윗이 고백했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그 충만한 의미를 드러냈습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살리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에게도 죽음 너머의 소망을 열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훗날 그 소망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베드로전서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다윗이 노래한 기업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세월도, 질병도, 죽음조차도 빼앗을 수 없는 몫입니다.
선물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선물 주신 하나님은 사라지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몫이시고, 그분이 우리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오늘도 빼앗기지 않는 그 몫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무엇을 가장 많이 구해 왔습니까?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 자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2절)
② 요즘 내 손에서 하나씩 놓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놓아도 여전히"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2절)
③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목장 식구들은 나에게 어떤 선물입니까? 오늘 누구의 이름을 떠올리며 감사하고 싶습니까? (3절)
④ 나를 지켜 줄 것 같아서 붙들었는데, 오히려 내가 지키느라 지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4절)
⑤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셨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5, 8절)
⑥ 잠 못 이루는 밤, 나는 주로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밤에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깨닫게 하셨습니까? (7절)
⑦ 죽음조차 빼앗지 못하는 몫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 새벽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은 나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10–11절)
【추천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94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은혜의 찬양】
주 품에: https://youtu.be/-VHCGZg_HqQ?si=1ufKyl7VnmKb_msn
예수 안에 소망있네:
https://youtu.be/_vpEqqPwYGQ?si=uP9zmvF5Co2hb2sO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https://youtu.be/Hng3fLxtH6c?si=x9wBDEcXxr2W3GBJ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EnrFA2Q_Gs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