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간부, 조합비로 주유-정당후원금 내”… “사용처 알려달라 했다가 폭행 당하기도”
노조 회계 관련 신고 내용 보니
위원장 개인통장으로 조합비 받아
노조 86곳, 회계 자료 제출 거부
#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산별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A 씨는 노조 지부가 조합비 통장을 여러 개로 ‘쪼개기’ 운영하면서 그중 한 개의 통장만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았다. 지부장은 감사를 받지 않는 통장에 든 돈으로 차량에 주유도 하고 특정 정당 후원금까지 내고 있었다.
#2. 금융회사 노조 조합원인 B 씨는 조합비 결산을 들여다보다가 원래 매달 500만 원이어야 할 간부 활동비가 1000만 원 넘게 지출된 것을 확인했다. 사용 내역을 살펴보니 위원장이 사는 동네 편의점 물건 구입, 운동연습장 교습비까지 있었다.
위 사례는 고용노동부가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통해 13일까지 접수한 노조 회계 관련 신고 중 일부다. 1월 26일부터 이날까지 총 396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노조 회계 관련 신고는 수십 건에 이른다.
횡령이나 배임으로 의심되는 신고들도 있었다. 노조 집행부가 본인들 선거 자금으로 조합비 2000만 원을 가져다 썼다거나, 한동안 쟁의행위가 없었는데 연간 업무추진비로 수천만 원이 사용됐다는 내용 등이다. 조합원이 1000명 넘는 노조에서 조합비 통장은 위원장 개인 통장을 쓰고, 회계감사를 노조 간부의 배우자가 맡은 노조도 있었다.
조합비 모금을 둘러싼 부조리 의혹도 접수됐다. 건설업계 노조원 C 씨는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들로부터 매달 5만 원의 조합비를 받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발전기금’ 명목으로 추가금전을 요구했다고 제보했다. 안전사고로 사망한 조합원의 유족을 돕는 성금이라며 조합원 당사자 동의도 받지 않고 대필 서명으로 급여공제를 신청해 돈을 걷어간 공공기관 노조 사례도 있었다.
회계 관련 신고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열람 거부’였다. 한 공공기관 노조원은 노조 지도부에 조합비 사용처를 알려 달라고 여러 번 요구했다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신고했다. 급여공제 절차를 설명해 달라는 조합원 요청에 대해 노조 지도부가 “궁금하면 소송하라”고 대꾸하거나, 3년 치 회계자료를 무더기로 주며 “여기(사무실)서 오전 중 다 보고 가라”고 한 경우도 있었다.
현재는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의 정당한 목적의 회계 열람을 막아도 제지하거나 처벌할 수단이 없다. 회계감사원 자격 규정도 없다. 집행부의 횡령·배임 의혹을 밝히려면 조합원 개개인이 고소, 고발을 통해 소송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2021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탈퇴한 원주시 공무원노조는 2018년 전공노 시절 지부장이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유령 직원’을 등록해 월 200만 원씩 총 16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해 이 지부장을 지난해 고소하기도 했다. 문성호 원주시 노조 사무국장은 “노조가 떳떳하다면 회계 공개를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노동조합 319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결과 최종적으로 86곳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상급단체별로는 민노총 소속 노조의 미제출률이 62.9%(62곳 중 39곳),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노조의 미제출률이 18.5%(173곳 중 32곳)였다. 고용부는 제출을 거부한 노조에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조합원 3분의 1이 원하면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2분의 1이 요구하면 외부 공시도 의무화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도 이달 중 발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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