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비름의 도움으로
큰아이 가졌을 때 지독한 피부염으로 고생을 했다. 습진이 손목에서 어깨를 향해 번지고, 발목을 타고 무릎을 향해 올라왔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고통이 더했지만 약을 쓸 수 없어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려움 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쳤고, 태교는커녕 하루하루 견디는 것도 고역이었다. 가벼운 몸으로도 움직이기 힘든 더위에, 부른 배를 안고 처음엔 동네 병원을 다니다가, 나중엔 좀 더 큰 병원을, 마지막엔 유명하다는 피부과를 찾아 전국으로 돌아다녔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고단하기 짝이 없다.
예전엔 ‘아토피’란 말을 따로 쓰지 않았지만 지금의 아토피와 비슷한 증상 때문에 자랄 때도 나는 가끔 특별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 먹으면 안 좋다는 음식이 있어 때로는 내 먹을 것이 따로 준비되었고, 익모초 달인 물이라며 한약 같은 걸 한 사발씩 먹어야 해서 도망간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처방에도 완치되지 않았듯 임신 중엔 더 방법이 없었다. 뾰족한 수가 없어 고심하던 중 어머니가 오래된 기억 한 가지를 끄집어내셨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처방이라며, 쇠비름을 달여서 상처에 발라보자는 것이었다. 옛날 먹을거리 없을 땐 나물로도 먹었던 풀인데 몸에 바르는 거야 어떻겠냐는 게 어머니 생각이셨다.
깨끗해야 한다며, 그날부터 어머니는 새벽에 나가서 이슬 맞은 쇠비름을 한 자루씩 뜯어오셨다. 삼복더위에도 불구 화덕에 솥을 올린 뒤 그걸 넣고 불을 지피면, 쇠비름은 물기를 뿜어내다 결국은 끈끈한 즙이 되었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웬 걸, 두어 번 바르고 나서부터 상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즙액 때문에 피부는 꺼매졌지만 진물도 가라앉고 가려움도 없어졌다. 낫는 기미가 보이자 어머니는 더 열심히 새벽걸음을 하셨고, 풀물의 힘으로 난 힘든 시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그 여름 그렇게나마 나를 진정시켜주었던 풀, 그게 바로 쇠비름이다. 옆으로 기면서 자라는 이 풀은, 줄기가 자줏빛으로 통통해서 똑똑 잘라 껍질을 벗기며 팔찌나 목걸이를 만들며 놀았던 풀이기도 하다. 잎이 말의 앞니를 닮았대서 ‘ 마치채(馬齒菜)’란 약명(藥名)을 지니고 있고, 풀과 설탕을 반씩 섞어 담근 쇠비름효소는 벌레에 물렸을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 물어오는 이가 있었다. 중학생 아이가 피부염이 심해 산 아래로 가서 살고 있는데 좋아지기는커녕 여름이 되면서 더 심해졌다는 거다. 상처 때문에 긴 옷을 입어야 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며 속상해하는데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아토피에 대한 지식이야 그가 더 잘 알 테고, 내가 경험한 것은 양약, 한약, 민간요법, 보습제 등 워낙 다양해서 어떤 게 더 좋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무 거라도 도움 될 게 있으면 얘기해달라는 말에 결국 쇠비름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밭둑에 무성한 쇠비름을 보니 그 엄마 생각이 난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가 그랬듯 그 엄마도 새벽마다 밭을 돌며 쇠비름을 뜯고 있을지 모르겠다. 온갖 정성으로 내 피부가 괜찮아졌듯 그 집 아이도 좀 나아져서 올여름이 부디 견딜만한 계절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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