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주
백로가 지났고 추분을 앞둔 구월 둘째 토요일이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더위도 꼬리를 내리고 아침저녁으론 많이 선선해졌다. 하지부터 낮이 점차 짧아져 밤 시간으로 보태어져 이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질 추분이 코앞이다. 출근길 부담이 없는 날이라도 새벽녘 잠깨어 종이 신문을 펼쳐보고 아침밥을 일찍 먹었다. 식후 집 앞에서 월영동에서 첫차로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려 탔다.
밤이 길어져 아직 날이 완전히 밝아오지 않은 때라 거리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창원대학을 거쳐 도청을 지난 버스는 법원에서 대방동 안길로 들었다. 대암고등학교 근처 25호 국도 나들목을 지날 때 내렸다. 성주동 유니온빌리지아파트 단지를 돌아 용제봉으로 드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내보다 먼저 산행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도 더러 보였다. 그들은 식전일 테고 나는 식후 산행이다.
산길을 걸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봄날 산행은 북면 야산을 많이 다녔고 여름날엔 용제봉을 자주 찾은 편이었다. 그 까닭인즉 북면 야산에는 취나물을 비롯한 산나물 채집을 위해서였다. 이제 북면 일대도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 자연 생태가 예전만 못하다. 여름날 용제봉으로 향했던 것은 영지버섯을 찾아서였다. 이제 그 영지도 끝물이고 남았더라도 개미가 파먹을 테다.
상점령 갈림길 이정표에서 용제봉 기슭으로 올랐다. 나는 사람들이 잘 다니질 않은 희미한 길을 따라 올랐다. 숲에 들기 전 배낭에 챙겨간 토시와 장갑을 꼈다. 아직 세력을 뻗칠 개옻나무 위력이 무서워서였다. 날이 밝아오는 즈음이었지만 숲속에 드니 어둠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비탈진 숲속을 제법 오르니 그제야 사위의 물체가 식별 되었다. 대암산 신정봉 부근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그곳까지 올라감은 비탈진 산자락을 훑어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남았을지도 모를 영지버섯을 찾기 위함이었다. 예상한 대로 영지버섯은 이제 끝물이었다. 내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다녀갔을 테고 비록 참나무 그루터기 영지가 붙었을지라도 노란색에서 자색으로 바뀌어 눈에 쉬 뜨이질 않았다. 그런 속에 집중력을 발휘해 영지버섯을 몇 조각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고압 송전탑은 상점령에서 대암산을 거쳐 어디론가 뻗어갔다. 산마루에 우뚝한 송전 철탑 부근에서 다시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섰다. 아까 산비탈을 오를 때는 영지는 찾지 못하고 헛힘만 썼는데 내리막 산등선에서는 영지를 몇 개 찾았다. 발품을 팔고 땀을 흘린 노력에 비해선 그 성과가 미미했다. 그래도 제철을 지난 가을 문턱에 들어서도록 여태 남아 있는 영지가 기특했다.
새벽이다시피 워낙 일찍 집을 나섰으니 산에 들어 두어 시간 보냈어도 아직 아침나절이었다. 등산로를 찾아 정상까지 올라도 되었겠으나 내리막길이 부담되어 용제봉 숲속을 누볐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섞여 자라는 숲을 지나니 수종 갱신 지구가 나타났다. 아까 빠져나온 숲보다는 사야야 탁 트였고 개옻나무에 스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계곡엔 몇몇 사람들이 늦더위를 식혔다.
상점령으로 가는 산등성까지 가서 불모산 계곡으로 되돌아왔다. 그곳엔 내가 사랑하는 들꽃 물봉선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맑은 물이 넉넉히 흐르는 계곡으로 들었다. 허리를 굽혀 이마의 땀을 훔치고 발바닥의 씻었다. 계곡 저만치 이맘때 산등선에서 피어날 억새와 같은 달뿌리에서 갈색 이삭이 나왔다. 물봉선 꽃과 달뿌리 이삭을 폰 카메라에 담아놓았다.
하산 길 성주동 아파트단지로 나오니 연락이 오간 대학 동기가 기다렸다. 용호동 어느 선식 식당으로 가려다가 창원대학 앞 한정식 집으로 갔다. 도중 예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한 아우를 태웠다. 주말이라 그런지 정원이 잘 가꾸어진 식당은 손님이 없었다. 곁에 앉은 아우와 깔끔하게 차려나온 차림으로 맑은 술을 몇 잔 곁들였다. 계산은 낯이 선 대학 동기한테 맞기고 자리를 일어났다. 1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