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봄소식이 전해올 때쯤이면 바깥세상이 궁금하다. 곳곳에 온갖 꽃이 피고 지면서 마음도 꽃을 피울 듯 활짝 열린다. 나무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산자락마다 풍성한 초록 숲을 이룬다. 겨울엔 빈 숲에 새 한 마리 토끼 한 마리가 뛰고 나는 모습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가려져서 그 안쪽이 궁금하다.
간혹 토종 다람쥐가 바위에 올라 봄볕을 쬐면서 두리번거리는 앙증스러운 모습이 눈길을 끌면서 귀엽기만 하다. 한동안 뜨내기 시커먼 청설모와 생존의 영역 다툼에 곤욕을 치르고 악착같이 살아남은 것이다. 눈빛이 더 또랑또랑하다. 산행하는 사람이 뜸해지면 지나가던 바람이 텅 빈 산길을 깨끗이 비질하고 해말간 햇살 혼자서 노닐다 슬그머니 사라진다.
겨울나무는 무뚝뚝해 생사를 몰랐는데 봄이 되면 잎이 싹 트고 꽃이 피면서 살아 있음을 안다. 대추나무는 봄나들이 꽃구경에 들썩이며 주위에서 아우성쳐도 아무런 반응 없다. 귀를 꼭꼭 틀어막고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혹시 죽은 것은 아닌지 들여다볼 때쯤 뒤늦게 싹트고 유월 중순에서 무더운 여름의 칠월 초복이 가까워져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마치 좁쌀처럼 작고 노란 꽃은 잎에 가려지고 향기마저 별수 없어 여간해서는 알아보지도 못한 채 그냥 지나친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유난히 계절 감각이 무디고 게으름 피우는 느림보로 아리송하다. 나무 그 자체는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박달나무 못지않게 단단하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도장 목으로 좋다고 인기에 도리깨를 만들어 보리타작하였다.
대추나무에 새싹 돋고 꽃이 필 무렵이면 이미 봄은 끝나 보따리 싸고 여름이 성큼 들어서 무성한 신록에 더위로 짜증을 부리게 한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비록 꽃은 늦게 필망정 열매는 잽싸게 맺고 서둘러 익으면서 추석이면 ‘조율이시 홍동백서’로 제사상 맨 앞줄 첫 번째에 진열된다. 과일 중에 서열 일등으로 꼽힐 만큼 사랑을 듬뿍 받는 재롱꾼 대추다.
항간에서 공공연히 “대추를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라고 할 정도로 대추나무 곁을 지나갈 때면 갈등을 겪었다. 열매는 떡, 약식, 술, 차, 약용 등에 쓰이며 나무는 문양이 좋아 가구나 조각 등에 쓰였다. 오종종한 대추나무는 얼핏 잠꾸러기로 보잘것없어 보여도 짧은 기간에 약삭빠르게 제 몫을 다하면서 인기가 많다. 그런데 고약스러운 가시가 만만치 않다.
두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아이를 보면 마치 ‘대추나무 방망이 같다’라고 하며 귀여워했다. 대추나무로 만든 방망이가 아주 단단하여 마구 두드려도 끄떡없는데 아이가 그처럼 튼튼하게 생겼음에 견주어서 하는 말이다. 아이가 야무지게 생겼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런가 하면 대추나무 연 걸리듯 하였다고 하여 여기저기 빚이 많아 궁색함을 일컬었다.
그 밖에도 ‘대추를 통째로 삼킨다’라고 하여 무슨 일을 내용도 모르면서 막힘없이 거뜬하게 해치운다고 하였다. ‘대추 씨 같다’라고 하면서 비록 키는 작아도 성질이 야무지고 단단하여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대추나무는 농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나무로 열매는 쓰임새가 많아 인기를 누렸으며 나무는 공예품으로 곧잘 입줄에 오르내렸다.
대추나무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밤나무 감나무와 함께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면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대전 근교에서는 충북 보은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경북 군위, 경산, 청도와 경남 밀양도 빼놓으면 섭섭하다고 할 만큼 손꼽히는 지역이다. 대추는 9월~10월에 수확하며 생것으로 먹어도 좋은데 한계가 있어 말려 건과로 이용한다.
대개는 삼계탕, 떡, 약밥, 한과, 대추차 등 식용으로 사용되면서 특히 자양 강장을 도와주는 약용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대추는 제사상이나 잔칫상은 물론 장을 담글 때도 긴요하게 쓰이고 새 며느리 첫 절을 받을 때 시어머니는 폐백상에서 대추를 집어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주면서 아들 낳기를 소원하였다. 여기저기서 옛날의 풍습을 엿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