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풀의 노래
강덕환
짓밟혀 억눌린 서러움쯤
힘줄 돋운 발버둥으로 일어서리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후미진 구석
모로 누워 새우잠 지새우는
목 타는 들녘의 얼룩진 밤에도
가녀린 목줄에 핏대 세우며
흔들림도 꼿꼿이 서서 하리라
없는 듯 낮게 낮게 엎디어
봄을 예감해온 눈빛끼리
밑동에서 길어 올린 자양분
은밀하게 서로 나누면
인동의 단맛 스미고 스며
마침내 열리는 눈부신 봄날
돌아눕는 계절
그슬린 겨울만이 마지막 여운으로 남아
햇빛 앉은 돌담 위로
발돋움하고 보는 아침이 열린다
먼발치로 다가서는 일상의 되풀이가
흙 묻은 껍질을 깨트리며 일어서고
맨몸으로 살아온 씨앗에게도
눈부셔 비비는 시간이 머문다
태곳적에도 요동(搖動)의 역사는
아침에서부터였을까
뿌리에서부터였을까
기다림에 살이 터져 새싹을 추스르는 대지는
본래는 한 덩이였던 육체를 둘로, 셋으로
수만 개로 가르는 아픔을 견디라 한다
하늘에 다다르려는 가지에도
아직 가리지 못한 한 뼘의 공간으로 남기를 빌며
계절은 이제 돌아누울 자리를 다독인다
― 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 (삶창 / 2021)
강덕환
1961년 제주 노형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신세대〉 활동과 〈풀잎소리문학동인〉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지역문학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겠다면서 제주문화운동협의회 제주청년문학회 활동을 했고, 94년 제주민예총 문학위원회를 거쳐 98년 출범한 제주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다. 92년 첫 시집 《생말타기》, 2010년에는 4.3을 다룬 시집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를 상재했고, 이외에 《제주4.3유적지기행-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학민사), 《만벵디사건의 진상과 증언》(7.7만벵디유족회),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자들》(역사비평사), 《4.3문학지도Ⅰ, Ⅱ》(제주민예총), 《제주4.3 70년 어둠에서 빛으로》(제주4.3평화재단) 등을 공동으로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