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내가 부부 동반 교육에 참석했는데 이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부부는 대화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잘 모르게 되고, 갈등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각자의 장단점을 다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날 밤, 아내는 집에 와서 남편에게 서로 부족한 점을 하나씩 번갈아 나눠보자고 했습니다.
남편은 낮에 받은 교육 내용이 생각나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지요.
그러자 곧바로 아내 입에서 남편의 단점이 쏜살같이 이렇게 나옵니다.
“당신은 식사할 때 너무 소리를 내면서 먹어요.
이제 주위 사람도 생각해서 앞으로는 좀 교양 있게 좀 드세요.”
이번에는 남편 차례입니다. 남
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마침내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별로 생각나지 않네.”
이기고 지고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위에 선 사람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사실 단점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아내가 먼저 자신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가지를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별로 생각나지 않네.”라면서 아내에 대한 믿음을 표시합니다.
이런 마음이 가득한 가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상대방의 단점을 드러내는 가정이 아니라, 상
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가득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이 가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할까요?
단순히 모두가 세례를 받고서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가정입니까?
이것만을 가지고 성가정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정 안에 단 하나의 고통 시련도 없이 모든 것이 잘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받는 가정을 말할까요? 이것도 예수님의 가정을 떠올려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복음만을 봐도 예수님이 태어나신 뒤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지요.
헤로데의 폭력을 피해서 이집트까지 피신하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 이스라엘 나자렛으로 이동하지요.
지금처럼 이삿짐센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교통이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이 밖에도 어려움이 이 가정 전체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도 성가정이라고, 또 이 가정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면서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가정을 만드십시오.
사랑의 첫 번째 계명은 먼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희생은 사랑의 고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발타자르 그라시안).
여러분 가정이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맙시다.
어느 마을에 400년이 넘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목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무는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수십 차례 산불의 위험도 있었고, 자그마치 14번이나 벼락을 맞는 고초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그 많은 위험 속에서도 긴 시간을 꿋꿋이 견디어 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 강대한 거목이 말라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낸 원인은 작은 딱정벌레였습니다.
나무속 줄기를 갉아 먹는 딱정벌레들 때문에 결국 나무 속살에 상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거목에 비한다면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상처들은 조금씩 모이면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 것입니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이 이야기는 전해줍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 가정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등의 말로 우리는 쉽게 말하고 쉽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과 행동이 모여서 거목이라는 가정이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스페인의 성가정 성당.
첫댓글 희망의 말
사랑의 말
희생의 맘
위로의말
겸손의말
성가정이 되는 작은 힘♥♥♥.
그렇네요. 작은 상처가 모이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