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行錄曰 恩義를 廣施하라 人生何處不相逢이라 讐怨을 莫結하라 경행록왈 은의 광시 인생하처불상봉 수원 막결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 노봉협처 난회피 경행록에 이르기를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느 곳에 선들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짐과 원한(망)을 만들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고 하였다.
⋇ 景行錄(경행록) : 송(宋)나라 때의 책 이름. ⋇ 讐怨(원수 수. 원망할 원): 원수와 원한. (해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잠을 자지만, 때린 사람은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샌다.”란 말이 있듯이 잘못이나 양심에 거슬리는 일을 하면 스스로의 가책에 후회하며 반성하는 마음에 편치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또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신의 눈에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라는 말은 절대적으로 남에게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경고성의 의미로 이처럼 세상사는 얼핏 보기에 조금은 불공평한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정의로운 원상태로 돌아가기에 “事必歸正(사필귀정)”이란 성어가 나왔지요. 배금사상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베푼다는 것은 사치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으나 남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자원봉사활동이 사회적 관심을 고조시키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례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겨울철 세모에 접어든 요즘은 경제 한파가 겹쳐서 조금은 소홀한 면도 있다고 하지마는 다행스러운 점은 예부터 이웃과 상부상조하는 국민성이 남 잘되는 꼴은 못 봐도 불쌍한 이를 돕는 온정에는 팔 걷고 나서는 데는 너와 내가 없다. 사랑의 온도계라든가 구세군 냄비의 모금액의 예상금액이 모두 초과 달성될 예정이라는 보도를 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는 보통의 이웃들의 참여가 높다고 한다. 배고프고, 추위에 떨어 본 사람만이 그 어려움을 더 잘 알기에 그 시절을 떠 올리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간자체입니다. 義(옳을 의)는 “义”로, 廣(넓을 광)은 “广”로, 處(곳 처)는 “处”로, 難(어려울 난)은 “难”으로, 錄(기록할 록)은 “录”으로, 結(맺을 결)은 “结”로 표기합니다.
자원입니다. 恩(은혜 은)은 心자와 因 (인할 인)자의 합자로 남에게 의지해 신세진 마음을 뜻하는데, 因자는 사람(大)이 어떤 바탕(口) 위에 있음을 나타냄.
“積恩爲愛, 積愛爲仁, 積仁爲靈 (적은위애 적애위인 적인위영) : 은혜를 쌓는 것은 사랑이라 하고, 사랑을 쌓는 것은 인이라 하며, 인을 쌓는 것은 영이라 한다. 따라서 마음을 靈(얼)이라 하는 까닭은 仁이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설원)
義(옳을 의)자는 羊자와 我(나 아)자의 합자로 양 무리처럼 순응하며 전체를 위해 일체하는 개인행위를 뜻함. 我자는 手자와 戈(창 과)자의 합자로 손에 창을 들고 지킨다의 뜻임.
處(살 처)는 虍(호피무늬 호)자와 夂(뒤쳐져 올 치)자와 几(안석 궤)자의 합자로 돌아와 편히 기대어 쉬는 곳을 뜻함.
逢(만날 봉)자는 夆(끌 봉)자와 辶(착)자의 합자로 끌 夆 자는 산봉우리에 올랐다 내려오는 발을 표시함. 따라서 길을 가다 어느 고비에서 마주치다의 뜻.
讐(원수 수)는 새 두 마리(隹隹)가 지지 않으려 부리로 말하듯 서로 쪼는 모습.
難(어려울 난)은 堇(찰흙 근)과 隹(새 추)의 합자로 새가 가뭄으로 진흙바닥이 들어난 곳에 있는 모습. 찰흙 堇은 黃과 土자가 합해진 글자임.
怨(원망할 원) 자는 心자와 夗(누워 뒹굴 원)자의 합자인데, 남에게 굴종하는 마음을 뜻함.
狹(좁을 협)자는 夾(낄 협)자와 犬자의 합자로 좁은 형상을 말함. 夾자는 양팔에 사람을 안은 모양이고, 犬은 속이 좁다 란 의미를 가짐.
避(피할 피)자는 辟(임금 벽)자와 착(辶)자의 합자로 특정한 사람이나 사건을 가려서 멀리 가다, 피하다의 뜻. 辟자는 끓어 앉은 죄인(㔾 : 병부 절)의 이마에 묵형(辛)을 행할 것을 명하다의 뜻.
得隴望蜀(득농망촉) - 隴(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한 말. - 삼국시대, 魏(위)나라 曹操(조조)와 촉나라의 劉備(유비)가 한참 싸울 때의 일이다. 조조는 촉나라 북쪽에 연결되는 섬서성 남쪽 농 땅까지 쳐들어가 그 일대를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부하 사마의(중달)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촉나라의 본거지를 뺏을 수 있겠습니다(今若曜威漢中 益州震動 進兵臨之 勢必瓦解 因此之勢 易爲功力 聖人不能違時 亦不失時矣 : 금약요위한중 익주진동 진병임지 세필와해 인차지세 이위공력 성인불능위시 역부실시의).”하고 말했다. 그러자 조조는 “인간이 만족하기란 쉽지 않아, 이미 농 땅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랄 것이야 없지.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야(人若無足 旣得隴右 復欲得蜀 : 인약무족 기득농우 복욕득촉).”하고 말했다. 조조는 그것이 너무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後漢(후한)의 광무제에게도 그가 隴西(농서)를 평정한 뒤 다시 촉을 친 데서 유래한 이와 비슷한 고사가 있음.(兩城若下 便可將兵擊蜀虜 人固不知足 旣平隴復望蜀 每一發兵 頭髮爲白 : 양성약하 편가장병격촉로 인고부지족 기평농복망촉 매일발병 두발위백. - 양성이 함락되면 곧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촉나라를 쳐라 사람은 만족할 줄 몰라 이내 농서를 평정했는데 다시 촉을 바라게 되는구나 매번 군사를 출동시킬 때마다 그로 인해 머리가 희어진다. : 後漢書)(출전 三國志 :삼국지) ※ 虜(포로 로), 隴(고개이름 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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