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가 열을 지어 서있다. 아침을 싱그럽게 열고 더위를 식혀준다. 가까이 다가가면 생각보다 상처가 많다. 연륜이 주는 훈장이다. 살아온 수명보다는 사람의 손에 의한 상처로 자연의 재해와는 거리가 있는 아픔이다. 어느 하나 완벽하다 싶은 나무가 없지 싶다. 그래도 나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바람이 불면 잎을 팔랑팔랑 흔들어 댄다. 얼핏 상처를 훈장처럼 지니고 밝은 모습에 질서정연하다. 다만 살아있음에 불평은 사치인 양 끄집어내지를 않는다. 당연한 것으로 입을 꾹 다물고 오가는 세월을 지켜보며 다가오는 가을이면 애지중지 같이 지내던 잎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로수는 천덕꾸러기 같다. 잡혀 온 노예다. 나무의 기상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입맛 따라 언제든 옮기고 팔다리 같은 가지를 잘라내는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도로 장식품으로 존재할 뿐 개성은 없이 길들어졌다. 한 해가 지나면 머리를 깎듯이 웃자란 가지를 무참히 잘라낸다. 하늘바라기 발돋움 해보아도 그마저 불가능하다. 저 높은 곳을 향한 꿈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선택을 받아 가로수로 심겼을 때는 신바람 나서 사람들 사랑을 듬뿍 받아보고 싶었으나 입맛대로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그래도 원망이나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오직 길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자긍심을 지녔다. 오가는 차량뿐 아니라 사람까지 지켜보면서 묵묵히 푸르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가로수가 때로는 울타리가 되고 꽃 이상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정서적 아늑함 같은 것이 묻어나고 계절을 읽을 수가 있다. 한여름이면 한 줌 그늘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배짱이 듬직한 새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데도 집을 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소곳이 들으며 새끼를 키운다. 잎이 지고 나서야 실체가 드러난다. 그런데 가게를 가린다고 눈총받고 가을이면 은행이 떨어져서 지저분하고 고약스러운 냄새에 눈살을 찌푸린다. 가로수에 혜택받으면서 무엇을 해주었는지 당당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