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푸른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찿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니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2.봄길에서>
꽃은 다시 피어나지 않았다
단 한 송이도
입술을 열어 용서라고 발음해주지
않았다
꽃이 난만했던 그 자리쯤
마른 꽃씨들
멀건 눈으로 흩어져 있을 뿐
벌도 날아들지 않는 봄길,
그 누가 안간힘으로
꽃들의 밤을 틀어막고 있는 것일까
불임의 봄, 어떤 울음도
터져나오지 못하고 어떤 눈부심도
허락되지 않은 그 길을 따라
누군가 마음 터뜨려
괜찮다 괜찮다 대답해주기 전에는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었다
(작가 소개)나희덕1966~.시인. 교수. 충남 논산 출생. 1989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 당선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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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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