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일본 문학을 낮잡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노벨라(중편) '태풍(野分)'을 읽고 많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시대와 조류에 영합하지 못하는 두 헛똑똑이 지식인 얘기다. 육십 넘어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거장의 작품을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이토가 조선 병합의 야욕을 감추지 않던 1907년 쓴 작품인데 지식인을 다룬 책인데도 무겁지도 경박하지도 않고 술술 읽히며, 117년이 흐른 지금도 전혀 낡지 않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1장은 시라이 도야란 인물 소개다. 대학 졸업 뒤 시골 중학교 세 군데에서 쫓겨난 경위를 설명하며 아내와의 불화를 소개한다.
진보하지 못한 이 세상을 그토록 과대평가하여 한달음에 시골로 내려간 것은 바닥을 다지지도 않은 채 튼튼한 집을 세우려고 조급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우기 시작하자마자 바람과 비라는 방해꾼이 와서 무너뜨려버렸다. 땅을 다지고 비바람을 몰아내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차분하게 살아갈 수 없으리라. 그런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천하의 지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돈도 권력도 없이 천하의 지사로서 당당히 일을 해내려면 붓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혀의 도움을 빌려야만 한다. 머리를 쥐어짜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어내야 한다. 머릿속은 마른다, 혀는 부르튼다, 붓은 몇 자루고 꺾인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하의 지사라도 먹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다. 설령 그는 먹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아내는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
2장은 염세가 다카야나기와 부잣집 아들 나카노의 대화다.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비아냥거리길 잘하는 다카야나기와 대범하고 원만하며 고상한 취향을 지닌 수재인 나카노가 옆에서 보기에도 의아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됐다. 다카야나기는 스승이었던 시라이 도야가 학생들 때문에 쫓겨났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들려준다.
3장은 나카노가 집에서 시라이 도야 선생을 만나 다카야나기 얘기를 들려준다. 사랑과 연애 등 시덥찮은 얘기를 나누다 다음 얘기로 넘어간다.
세상은 명문을 찬양한다. 세상은 부호를 찬양한다. 세상은 박사와 학자까지도 찬양한다. 공정한 인격을 만나고도 지위나 금전, 학력, 재주와 기예를 무시하고 인격 그 자체를 존경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근본 의의인 인격에 비판의 기준을 두지 않고 그 껍데기인 부속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 이 부속물과 공정한 인격이 싸울 때면 세상은 반드시 부속물에 뇌동하여 인격을 유린하려 한다. 천하가 한 사람의 공정한 인격을 잃으면 천하는 한층 더 광명을 잃는다.
4장은 다카야나기와 나카노가 음악회를 찾는다. 마지막 곡이 바그너의 '탄호이저' 중 행진곡이었던 것은 정녕 우연이었을까? 나치즘이 발호하기 한참 전이고, 일본 제국주의가 발톱을 드러내기 한참 전인데도 나쓰메 소세키가 1907년 작품을 쓰며 바그너를 언급하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싶었다. 그는 ' 만주와 한국 여기저기(滿韓ところどころ)'(1909)에서 중국인이나 한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기도 했다.
5장에서 다카야나기는 '해탈과 얽매임...유세이시'란 글을 읽는다. 그는 '위의 깨달음'이란 대목을 읽고 재미있어 한다. 평생 위경련에 시달리면서도 먹을 것을 탐했고 대식가였던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의 얘기임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타인이 아무리 얽어매려 해도 자신은 얽매이지 않는 것이 하나의 해탈 방법이다. 남들이 자신을 향해 곁눈질을 하든, 귀를 세우든, 혹평을 하든, 매도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을 척척 해나가면 된다. 오쿠보 히코자에몬(에도 시대 무사, 가마를 타고 성에 들어가는 걸 금지당하자 커다란 대야를 타고 들어갔다. -옮긴이)은 가마 대신 대야를 타고 성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6장은 옛 사제가 다시 만나 외톨이로 사는 기분을 공유한다. 7장은 비너스와 셰익스피어 등 미학론 등을 주절거리다 8장에서 두 사제는 외톨이로 살아가는 기본 자세를 공유한다.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름처럼 미덥지 못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일하고 있을 뿐이죠. 결과는 악명이 되든, 오명이 되든, 미친 짓이 되든 상관없습니다. 단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을 얻을 수 없기에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저의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의 삶은 길을 따르는 것 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은 길의 동물이니 길을 따르는 것이 가장 존귀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따르는 사람은 신도 피해야만 합니다. 바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하하하."
9장에서 다카야나기는 적들로 가득한 원유회에서 친구의 부부를 만난다. '우정의 삼분의 일은 복장에서 오는 법'이라 친구는 다카야나기를 알아보지 못한다. 친구 부부는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다카야나기를 안타까이 여긴다. 10장은 시라이 도야가 아내로부터 닦달을 당하는 모습이 처절하게 그려진다. 아내는 남편이 각성할 수 있도록 아주버니와 꾀를 내기로 한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도야 선생이 연설회에 나선다는 사실을 알고 걱정이 앞선다.
11장은 도야 선생의 연설 '현대 청년에게 고함'을 들려주는데 문예부흥에 관한 강조가 압권이다. 메이지 유신 40주년을 맞아 제국주의에 머리를 들이밀기 전 일본 지식인의 생각과 고민이 엿보인다. 꼭 한 번 챙겨 읽을 것을 권한다. 12장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스승이 제자의 도움으로 일시적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그런데 그게 무슨 근본 해법이 되겠는가?
육십년을 살며 꽤나 운이 좋아 헛똑똑이로 살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 그 허점을 얼마나 메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아 참, 나쓰메 소세키는 원래 작품의 제목을 밋밋하게, 작품 내용과 별 상관 없이 짧게 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체로 태풍이란 제목은 온 세상을 뒤집을 듯 다가오는 시대의 조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늘 평지풍파를 일으켜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친다는 두 주인공을 풍자하는 뉘앙스도 있어 보인다.
2. Tannhäuser Grand March 입장행진곡과 합창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