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우리 집 여름 방학 풍경
조은영
올 여름 방학은 우리 가족에게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었던 행복한 방학이었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여름, 겨울 방학을 보름 정도는 시골에 가 있거나 여행을 하거나 했었는데 아이들이 크고 남편이 학교에서 방학 중에 하는 일 때문에 몇 년을 근신하다 시피 조용히 지냈었다. 그런데 올 해는 남편이 일을 줄여서 시간이 좀 여유로워 떠나고 싶은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자~ 이제부터 우리의 여름 방학 풍경을 그려보겠다.
2012. 7월 20일 현진이 방학식으로부터 시작하는 방학, 다음은 일엽이가 7월 24일, 남편이 7월 25일. 우리 집은 서로 네 방학이 길다는 둥 짧다는 둥 실랑이를 하곤 한다. 그럴 땐 애나 남편이나 똑 같다. 내가 선생인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선생님에 대한 환상이 확 깨져 버렸다. 선생도 똑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 그것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아이들과 수준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여행은 시 할머니 제사부터 시작되었다.
2012. 7월 28일 토요일 이번에는 남편이 토요일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집에 두고 우리 둘만 기차 타고 다녀왔다. 요양병원 계신 어머님을 뵙고 형님 집으로 가서 제사 준비를 하고 맛있는 갈비찜을 사 먹었다. 다음 날 우리는 일 나가시는 형님을 배웅하고 일이 있다고 나가시는 아주버님도 배웅하고 우리가 알아서 현관문 잠그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어느 때는 이런 상황이 참 서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손님 대접을 받으 려는 건 아닌데 마음이 좀 그렇다. 어쨌든 방학 중의 큰 행사를 한 가지 치루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리의 본연의 여행에 충실하려는 기대에 마음이 즐거웠다.
2012. 8월 1일 강원도 평창의 수가솔방 펜션으로 갔다. 휴가의 절정기에 떠나는 거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명절 분위기 못지않게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남편의 지인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서울 은평, 상암 , 경기도 남양주에서 출발을 했는데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그 곳은 찜질방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 펜션이었는데 에어컨도 없는 펜션이 맘에 들지 않았다. 가격은 하룻밤에 이십 육만 원 이라는데 시설은 시골집이었다. 허기 진 배를 채우고 우리는 가벼운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산 이름이 수가 산 이라고 했는데 보기와는 달리 해발 600미터 정도 되는 곳에 우리가 와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한참을 가다보니 꼭 무서운 산 짐승이 나타날 것 같이 숲이 우거져서 얼마 못가 되돌아 왔다. 아줌마 셋이 산책을 하면서 서로 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우리 모두 비슷한 시기에 아버님들이 돌아가시고 모두 비슷하게 어머님들에 대한 걱정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서로를 공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더위에 지쳐서 찜질을 하고 해가 저문 뒤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쑥방, 솔방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신선한 쑥 향과 솔 향 만 으로도 내 몸이 건강해 지는 것 같이 개운했다. 한 참을 즐기고 있는데 함께 간 분이 쓰러져 찜질방 전체가 술렁거렸다. 다행히 그 분은 남편이 취한 응급처치에 정신을 차렸고 우리는 다시 아무 일 없듯이 저녁을 준비하러 나갔다. 저녁이 되니 신기하게도 서늘하고 춥기까지 했다. 그리고 모기도 없었다. 하늘에는 곧 손이 닿을 것처럼 별이 총총했고 보름이 다가오는지 달도 내 손에 닿을 것 같았다. 밤이슬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며 별을 바라보는데 프로방스에 가 보진 않았지만 꼭 알퐁스도데의 별이 저런 모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 되니 추워서 이불을 목까지 꼭 끌어안고 잤다. 그제 서야 에어컨이 없는 이유를 알았다. 한 낮에도 나무 그늘에 있으면 정말 시원하니 서울의 여름과는 정말 달랐다. 이래서 피서를 오는 걸까?
2012. 8월 2일 우리 가족은 다시 전남 영광으로 향했다. 평창에서 점심을 먹고 전라도로 향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 내가 졸고 있는 사이에 남편은 막히는 길만 골라서 가고 있었다. 영광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동해 끝에서 서해 끝으로 남편이 고생이 많았다.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을 개 눈 감추듯 먹고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또 피서를 즐겼다. 엄마로부터 동네 이집 저집 소식을 들으며 우리 남편과 나는 아는 체를 해 주었다.
한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왔으니 얼마나 무료한 날도 많았을까 생각하면 가끔 우리가 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게는 신선한 소재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그날이 그날인 시골 생활인데도 엄마는 항상 바쁘고 활기가 넘쳤다. 오늘은 이 집 제사니 들여다 봐야하고 내일은 저 집 누구 생일이니 들여다 봐야하고 엄마를 찾는 곳도 많지만 내가 보기엔 오지랖 넓은 우리 엄마가 알아서 찾아가 주는 센스도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셨는데 아빠의 정성으로 이제는 예전의 우리 엄마 모습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 나는 친정에 가면 밥상만 차리지 밥은 하지 않는다. 엄마가 해주는 것이 맛있기도 하지만 엄마가 아직 나에게 자리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것도 감사 할 일이다. 아직은 엄마가 힘이 있으니 해주고 싶다고 하신다. 김치도. 친정에서의 4박 5일 일정을 뒤로 하고 서울로 왔다.
2012. 8월 6일 영광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은 아직도 집이 한증막처럼 더웠다. 남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캠핑장으로 가자고 했다. 다행히 텐트를 예약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엄마가 싸 준 음식 그대로 들고 다시 여행 꾸러미를 챙겼다.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텐트에 짐을 풀고 오수를 즐기기로 했다. 역시 건물 속에 있는 것 보다 시원했다. 오후가 되니 바람도 불고 피서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텐트촌을 산책했다. 다음날 아침으로 라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또 어디를 갈 것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2012. 8월 11일 중국으로 살러간 남편의 후배 부인과 딸이 한국에 다니러 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머물렀는데 그들이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 집에 있었지만 또 다른 곳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집에 있는 동안 날마다 새로운 일들과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아이들과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고 그 동안 현진이랑 함께 하지 못했던 일들을 그들과 함께 원 없이 한 것 같았다. 그들의 5박6일의 여정이 끝나고 우리는 그들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우리는 새벽에 건강검진을 끝내고 12시에 함께 삼천포로 향했다. 그 동안 우리는 동해나 서해는 여행을 해 봤지만 남해 쪽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다. 우리는 삼천포에 가서 숙소를 따로 잡지 않고 후배 부인의 친정집에 머물렀다. 그 어머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장어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장어로 배를 채우게 해 주셨다. 우리 남편을 큰 사위라 부르며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내고 여자들은 이마트로 남자들과 할머니는 사우나를 하러 헤어지고 우리는 11시가 넘어서야 그 친정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공룡박물관으로 관람을 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다랑이 논과 독일인 마을을 관광하러 다녔다. 하늘과 구름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리고 독일마을의 빨간 지붕과 파란하늘, 파란 바다는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서해, 동해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었고 가슴이 탁 트였다. 나는 삼천포 일대를 돌면서 맘마미아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우리는 하룻밤을 더 묵고 가라는 만류에도 아침밥을 먹지 못하는 불편함도 있고 너무 신세를 진 것 같아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향했다.
드디어 현진이가 개학을 하고 일엽이 남편 순으로 개학을 했다. 지난 8월 한 달간의 우리 집 방학 풍경은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일엽이가 지방으로 학교를 가게 되면서 우리는 주말이 없어진 것 같다. 온전히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개학을 하는 날 남편은 겨울 방학을 헤아려 보고 또 겨울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우리는 소박한 여행을 하며 한 달을 잘 보냈다. 남편은 이렇게 여행을 해 줘야 개학 할 때 힘이 난다고 하는데 나도 이번에는 그런 기분을 더 느낀 것 같다. 서울을 벗어나는 것,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것이 다음 생활의 활력이 된다는 것을 더 실감한 여름이었다.
여행을 했을 때 생기는 가족의 결속력은 또 하나의 여행의 덤이다. 이렇게 소중하고 예쁘게 쌓여가는 우리들만의 추억. 언제나 이러한 시간이 허락된 것에 감사한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아주 급하게.................................
2012년 우리 집 여름 방학 풍경.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