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영화를 보았다. 실제 인물 배형진군을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 말아톤. 마라톤을 즐겨하는 나에겐 제작 당시부터 호감을 느끼게 한 영화다. 마라톤이라는 주제만 갖고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이야기인데 자폐아인 청년이 마라톤에 도전하여 완주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제작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또 말아톤 영화에 참여할 엑스트라 마라토너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에도 적잖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래서 신청을 해놓고 촬영일자를 기다렸지만 정작 그 날이 바쁜 일과와 겹쳐서 촬영장에 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시간은 지나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시사회가 시작되고, 시사회를 다녀온 분들의 영화 평들을 읽으면서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더 많이 증폭되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에 대한 나의 상상은 마라톤을 통한 인간승리, 또는 누구나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가 마라톤의 장점과 어우러져 감동적인 이야기로 승화될 수 있다는 줄거리일거라는 짐작을 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단순한 나의 생각에 부끄러움이 느껴졌고 많은 철학적 메시지가 함축된 영화에서 세상을 그리고 세상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그런 안온한 마음이 가득 차 있음을 느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자폐아인 초원은 사물을 느끼지 못하고 사람과 어울리지를 못한다. 엄마는 그 초원에게 세상과 세상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초원이의 상태는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인다.
그런 초원에게 세상으로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달리기가 연결되었고 처음 나간 10km 경주에서 3등으로 입상을 하고 엄마는 초원이를 풀 코스 마라톤 완주에 도전을 시켜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코치의 영입. 그러나 코치의 부정적인 태도와 불성실한 훈련에 못 마땅하면서도 완주를 시켜야 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엄마는 초원이가 달리는 건 자신이 좋아서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달리는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엄마의 강요나 세뇌로 인하여 초원이의 욕구와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모하게 마라톤에 도전시키는 거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런 엄마에게 이번엔 코치가 초원이는 스스로 충분히 마라톤에 완주할 수 있으며 초원이가 여기서 마라톤을 중단하게 되는 건 그 것 또한 엄마의 욕심이라고 말한다. 즉 초원이가 한 해 먼저 죽기를 바라는 것은 엄마 스스로가 초원이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초원이에게 위로 받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이러한 엄마와 코치와의 갈등이 있은 후 한동안 초원이에게 마라톤은 잊혀진 듯 보인다. 목표한 춘천대회는 다가오고... 초원은 부모 볼래 춘천행버스를 타게되고 마라톤의 스타트 라인에 서게된다. 그리고 가족과 코치의 도착.
초원과 엄마의 마라톤 출발선에서의 힘 겨루기. 그러나 초원은 당당히 마라톤의 긴 여정을 출발하게 되고 중간에 지쳐서 쓰러지지만 다시 일어나 힘차게 달려 골인을 하게 된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게 끝이 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핵심어는 자폐(自閉)에서 자개(自開)로 이어가는 물줄기이다. 자폐란 스스로를 닫아버리고 울타리 속에 갇힌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개란 스스로 문을 활짝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사람들과 호흡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스스로에게 갇혀 있던 초원은 말아톤을 통하여 세상과 어울려진다. 어렸을 적 공원에서 자폐아를 포기한 엄마가 초원이의 손을 놓아버렸지만 마라톤 출발선에서 초원은 이제 자폐의 굴레를 벗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엄마의 손을 놓는다.
그동안 엄마가 수없이 세뇌교육을 시켰던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 자리 다리' 의 되뇌임을, 마라톤 출발선에서 초원이의 마라톤 출발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초원이가 도리어 엄마에게 초원이 다리는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그것은 이제는 나도 엄마의 손을 놓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세 가지의 상징어들이 경주하듯 돌아가며 등장을 한다. 첫 번째 상징어는 비이다. 이것은 어렸을 때 사물을 느끼게 하기 위해 엄마가 아이와 함께 직접 비를 맞으면서 비를 맞았을 때의 느낌을 교육한다. 그 교육은 효과가 없어 보였지만 엄마가 아팠을 때 느낌은 어떨까 하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비를 연상하게 되고 비의 감촉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비가 내릴 때가 더 달리기 좋다던 코치의 말을 기억하고 달리다가 비가 내리면 더 빨리 달리라는 코치의 말을 떠올리며 마지막구간에서, 정말 너무 빨리, 너무 즐겁게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 이였다. 아마도 코치는 마라톤에서 마지막 구간쯤에 열기를 식혀주기 위해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지점을 알려주기 위함 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초코파이이다. 초원이는 어렸을 때부터 초코파이를 좋아했다. 그것은 엄마가 초원이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음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엄마의 품 이였고 엄마의 힘 이였다. 그러나 마라톤의 여정 중 중간에 힘이 소진하여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초코파이를 내밀었다.
그 초코파이는 엄마를 연상하였고 다시 일어서서 달리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던져버린다. 즉, 이제는 엄마의 품과 엄마의 힘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마음으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세링게티 공원의 얼룩말이다. 초원이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의 왕국을 좋아했고 세링게티 공원의 동물들을 그리워했다. 그 중에서 특히 얼룩말을 좋아했다. 이것은 모든 동물은 모든 사람은 원초적인 뛰고 달리는 것에 대해 본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원이 역시 그런 본능적인 사람 이였고 그래서 동물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달리는 것에 대한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늘 초원이의 생각은 그 본능에서 여행을 하였고 그 여행은 마라톤으로 인해 열매를 맺게 된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울고 가장 많이 웃은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에게 얻어맞고 있는 초원을 껴안은 엄마의 품속에서 엄마를 대신하여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어요"하며 수없이 반복하는 장면........
많은 눈물을 쏟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면 이였다.
가장 웃긴 장면은 자기가 싸온 자두를 코치가 몰래 먹어버린 사실을 알고는 자두가 든 가방을 둘러메고 달리는 모습. 자폐아들에겐 남들에게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게 교육을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초원을 이해하게 된 코치의 모습도 인상적 이였다.
그런 초원이 달리기를 통해서 심상이 뛰는 것을 느끼고 또 달리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남도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그래서 코치에게 물을 건네는 장면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 개한 무척 아름다운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마라톤을 도입하여 만든 영화지만 마라톤 영화나 스포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써브쓰리가 어떻고 마라톤의 감동이 어떻고 극적인 효과가 어떻고 하는 기대들은 자못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방향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아톤'은 갇혀있는 자신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통로로 마라톤을 도입했을 뿐이다. 결국 엄마의 손을 놓고 달리는 초원은 혼자서 세상에 나아가게 되고 달리면서 '런너스 하이'를 경험하게 된다. 달리면서 몰아지경에 이르러 지하철을 달리고 슈퍼마켓을 달리고 수영장을 달리고 세링케티 공원에서 얼룩말과 함께 달린다. 초원은 행복했으며 즐거움에 도취된 상태로 힘차게 달려 풀 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가자고 한다. 마치 지난 모든 일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선사한다.
마치 정상인이면서도 스스로에 갇힌 많은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첫댓글 형 진짜 글잘쓴다^^*....옛날 산 타다가 죽은 친형이 똑같은 책을 같이 읽고 그느낌을 글로 표현했을때 나는 왜 안될까? 한없이 초라해지던 사춘기시절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아직 영화를 안봐서 더욱보고싶네요 영화후기 감명깁게 잘읽었습니다
찐한 감동이 함께한 아늑한 시간이었씀다. 공짜로 말아톤 한프로 했음다.감솨아,,,,,,
문호리~~ 뭔 그런 과찬을 말씀을... 재밌게 본 영화 글로 옮기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이나 즐겁더구만... 아무튼 힘이다. 힘~~~
곰돌이 형님~~ 이거 공짜 아닙니다. 돈 받습니다. 헤헤~~ 힘~
아직보지 못했읍니다~~~꼭보도록 하겄읍니다
같은눈,같은 머리로 똑같은 영화를 봤는데....ㅜㅜ ...천리마님의 글을 읽고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반성,또 반성,근데 반성해도 도저이 않되기에...그냥 포기하고 잤습니다.
영화싸이트`nkino`에 감상문 올려보세요....어느 평론가가 이보다 더 잘쓸수있을까요....잘읽었습니다.
저도 아들이랑 조카들이랑 같이 봤는데 울 성관이는 내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더라구요 조카들이랑 성관이랑 10km마라톤 대회 나가기로 했는데.. 저도 몇몇 장면에서 눈물이.. 천리마님의 후기로 더욱더 선명한 영화 감상 매듭짓게 되네요..
나도 꼭보고서~~~느낌쓰겠읍니다
우선 촬영장에 못가신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자폐에서 자개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마음에 와닿네요. 손을 뻗치어 비의 촉감을 얻는 상징성을 이 글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되었습니다. 분수대 물줄기를 통과할 때는 마치 제자신이 뛰는 것처럼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余를 넘어서 세상속으로 나온 초원이는 마음의 장애를 앓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보았습니다.. 행복합니다..
이젠 고전이되어버린 "마이웨이"와 "마라톤맨"그리고 "천국의 아이들" 모두 감명깊게 보았던영화들인데... 말아톤도 본다본다 하면서도 아직은 보지못했는데... 천리마님의 영화평론때문에 더욱보고싶어지는데요....너무 잘 읽고 갑니다. ..
아직도 못 봤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