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1 총선에서 서울 동대문을의 승부는 쉽게 갈렸다. 출구조사 결과에서부터 민주통합당 민병두 후보가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를 압도했다. 최종 개표 결과도 득표율 52.9% 대 44.5%로 민 후보의 낙승이었다.
"그 동네에선 택시 기사들이 민병두한테는 택시 미터기도 안 켠다더라", "민병두는 5층 내외 모든 건물들에선 신문배달원, 녹즙배달원하고 같이 엘리베이터 안 타고 빌딩치기한다더라"는 식으로 여의도에서 간간이 회자되던 '동대문 전설'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CA(제헌의회) 그룹의 거두였던 운동권 시절, <문화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언론인 시절,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장을 지낸 정치 입문 이후까지 반평생을 '기획통', '전략통' 소리를 들었던 그가 여의도와 발을 딱 끊고 '변신'했다. "독하다", "아무리 그대로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는 소리들이 많았다. 쉽지 않았던 여당 거물과 승부에서 압승한 뒤 민 후보는 "난 4년 간 철저히 잊혀지는 길을 택했고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나는 풍향계가 어디로 가든 이기겠다는 결심이었고 바닥에서 시작된 진정성이 여론 바람을 만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로 단 한 번도 두려워하거나 승리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며 "돌아다녀 보면 안다"고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이 동대문을에만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뭘 알아야지"라고 하면서도 그는 민주당의 총선 패인, 박근혜에 맞서야 하는 향후 대선 구도,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전망들을 풀어놓았다.
그의 총선 복기는 두 군데에 착점하고 있었다. 그는 "부산에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피했어야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마치 대권프레임이 아닌 것처럼 하면서 대권프레임을 집어넣으며 부산에 자주 갔는데 때문에 총선이 'MB심판'에서 '미래권력 선택'으로 이동하는 계기를 줬다. (민주당이) 빨리 수도권으로 넘어와서 수도권을 우선 제압하고 충청, 강원으로 퍼져나갔어야 맞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주당 지도부 혹은 친노 부산 진영은 '박근혜vs'문재인' 구도로 맞붙었다. 문성근이 문재인 대망론을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공연히 설파했고 '김용민 파동'이 터진 직후 나꼼수에 출연한 문재인은 "국회의원 해보고 싶어서 이번에 출마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민 당선자는 야권 연대 전략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선도 마찬가지다"고 전제하면서도 "야권연대를 하면서 두 정당이 서로 득을 봤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이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합집합을 늘렸어야 하는데, 교집합이 너무 컸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박근혜 비대위의 새누리당이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중원에 들어왔는데 민주당은 그에 밀려 혹은 통진당에 견인되서 중원을 비우고 너무 왼쪽으로 가버렸다는 것. 결국 새누리당은 오른쪽에 대한 걱정 없이 레인지(범위)를 중도까지 끌고 가서 성공했다. 민주당이 그대로 왼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원을 지키면서 통합진보당을 통해 레인지를 왼쪽까지 끌고 가 외연을 확대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건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고 확언했다.
'박근혜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는 질문에 그는 "우선 지역영토 싸움에서는 PK를 가져야 한다. 수도권에서는 2030이라는 '세대의 영토'가 있다. 지역영토와 세대영토가 발견돼 있는 것"이라고 구도를 그렸다. 이어 그는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만 규정해서 네거티브 한다고 이길 순 없다. 박근혜가 박정희 딸인 걸 모르는 국민이 있나. 그 부분에 대해선 전국민이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박근혜에 대해 "우리 삶을 바꾸는 문제에 대한 '무능' 프레임을 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항마'에 대해 민 당선자는 "이 사람으로 가면 이긴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는 문재인에 대해 "고유의 '스토리'가 부족하다. 노무현의 충신이었다는 건 노무현의 스토리지 문재인의 스토리가 아니다"고 했다. 안철수에 대해선 "스토리는 강점인데 (대선까지) '바람'을 '브랜드'로 만들어내고 8개월의 검증을 버텨낼 정치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부호를 달면서도 "타이밍을 고르는 등 정치적 감각은 좋은 것 같다"고 평했다.
민 당선자는 "대선 구도는 '어게인 2002'가 될 가능성이 크다. 흐름 자체는 1997년 버전이 아니라 2002년 버전"이라고 내다봤다. 1997년은 이회창-이인제가 분열이 대선의 중심축이었고 2002년은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가 축이었다. 2012년에도 새누리당이 분열될 가능성은 극히 낮은 대신 민주당 쪽과 안철수가 힘을 합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말이다.
그는 "안철수가 당내 경선에 들어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안철수 입장에서 길은 여론조사밖에 없다. (안철수와 민주당 후보의) 단일화를 일찍 할 것 같지는 않다. 12월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민 당선자는 "정당이, 정치인이 관료를 압도할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전략과 과학, 가치를 알고 공유하는 지혜의 그룹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300명 있지만 정치는 어떻게 보면 그 중 10~20%가 주도하는 것이다. 훈련된 목적의식적 그룹, 지혜의 그룹이 있는 게 중요하다. 지혜의 그룹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지금 새누리당은 박근혜를 보필하는 '지혜의 그룹'이 이미 짜여진 것 같다. 민주당은? 안철수는?
다음은 지난 13일 오후 동대문구 장안동 민병두 당선자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전문.
"어떤 풍향계에서도 이기겠다고 결심했고,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