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그녀
이경숙
피로회복으로 따끈한 쌍화탕을 사갈까, 아니다 그러잖아도 볶아대느라 불 앞일 텐데 시원한 비타500을 사갈까, 계속 생각을 했다.참 아쉬운 게 내 마음이 무언가를 주고 싶더라도 이제는 이것저것 너무 많이 생각한다. 받는 사람이 기분 좋아할까, 괜찮을까 그러다 보면 ‘에이, 하고 나서 기분 상하느니 하지 말자’가 돼버린다. 그렇게 지극히 순한 마음이 들었던 정겨운 마음을 혼자 접게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요즘 그녀를 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홍반장이 생각난다. 낮에는 요구르트 아줌마로 동네 중앙에서 사통팔달 역할을 한다. 문방구에서도 얼굴이 보이고, 야채 가게에서 대파도 다듬고 있고, 무심코 들어간 곱창집에서는 포장해 주는 알바를 하고 있다.그녀를 처음 만난 게 7, 8년 전인 거 같다. 앳된 얼굴로 요구르트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싣고, 밝은 얼굴로 조선족 발음이 섞인 말을 했다. 천성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지 주변 상가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간간이 눈이 마주칠 때면 웃음 섞인 눈인사를 나누곤 했다.하루는 무슨 일인지 그녀의 요구르트 차 앞에 낯익은 아이가 나이 든 아저씨와 함께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이었다. 앳된 그녀와는 다르게 너무 나이 든 아저씨였다. 결혼 못 하는 한국 남자와 조금이라도 돈이 필요한 연변 여인의 결혼이었을까. 그들의 사연도 모르면서 마음속으로 속단해 버린다. 그녀의 젊음과 생기가 얼마나 아까운지 참 안쓰러웠다. 그럼 열심히 요구르트를 사주면 될 텐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요구르트를 그렇게 먹지 않으면서 사지 않게 되고 눈인사만 건네곤 했다.이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근 20년을 살고 있다. 우리집 아이들이 성장하듯이 요구르트 카트 앞에 발을 올리고 몸을 실었던 그녀의 아이도 자라났다. 이제는 엄마 껌딱지처럼 노상 사람들이 오며 가는 사거리 요구르트 카트 앞에서 아이를 보는 일이 드물었다. 그럴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더 밝아졌고 ‘언니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는 더 높아졌다. 그에 비해 한국말 발음은 여전히 서툴지만, 지방마다 다른 사투리 정도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겨울을 지내고 자주 보지 못하다가 바람이 느슨해지면서 요구르트 정복 모자에 가려졌던 그녀의 머리가 드러났다. 예전에 보지 못한 빠글빠글한 머리에 깜짝 놀랐다. 이젠 앳된 새댁이 아니었다. 내가 세월을 먹듯 그녀도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생활에 더 다부지기로 한 것인지 이제는 딴딴한 아줌마 내공이 느껴졌다. 그녀와는 상관없이 괜히 나 혼자서 그녀의 처지에 대해 상상하고, 가엾어하고, 안쓰러워하던 시간들이 갑자기 미안해졌다.
요즘 들어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것을 갚지 못해 안달인 상태가 된다. 사소하게는 은행 볼일을 보는데 세심하게 안내해 주고 조금이라도 인정 어린 말을 하는 직원을 보면 음료수라도 하나 안겨야 마음이 편하다. 직원 입장에서야 본인의 할 일이건만 무신경하게 일 처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좀 더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월급 받고 자기 일을 하는 것인데 마치 받아서는 안 되는 엄청난 호의를 받은 듯 안절부절못한다. 내 마음이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작은 무언가를 전하기도 했다. 그래야지 마음이 편했던 거 같다.
다시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를 은행 직원에게 이렇게 할진대 친한 사람한테는 어떻겠는가.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찾아뵙는 고등학교 은사님이 계시다. 친구와 함께 찾아뵙는데 선생님이라고 무언가를 받으려고 하시는 게 아니고, 우리가 한번 사드리면 다음번에는 꼭 당신이 사주려고 하시는 그냥 우리보다 한참 더 나이 많은 친구 같은 느낌이다. 역시 당신을 참 좋아하고 존경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별히 선생님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 집에 주문하면서 선생님께도 보내게 되었다. 한번은 지인이 감자를 판매하니까 팔아 주는 의미에서 우리 집도 사고, 선생님께도 보내고, 며칠 있다가 모시송편이 필요해서 주문하면서 선생님께도 보내고 한 세 번을 며칠 사이 간격으로 연속 보낼 때가 있었다. 마지막에 잘 받았다는 전화를 주시면서 ‘너무 과하다. 인정하시지 자기가 너무 과하다는 거. 너무 부담스러워 야’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과하다’ ‘부담’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니 섭섭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내 진심이 그렇게밖에 전달되지 않았나, 나를 그렇게 모르시는구나 싶었던 거 같다.
그때부터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점검하기 시작한 듯하다.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 과한 걸까?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것을 너무 오버하는 것은 아닌가.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동네에 아주 장사가 잘되는 김밥집이 있다. 몇 년 전에 슈퍼로 동네에 들어왔다가 마지막에는 잘되지 않아서 이 동네를 뜬 집이다. 작년에 김밥집이 새로 생겨서 무심코 들어갔는데 쨍쨍한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낯도 익은데 어디서 봤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는데 사장님이 먼저 알아보시고 ‘지하요’ 하니까 ‘아 슈퍼’라는 게 생각이 났다. 어찌 보면 슈퍼를 망해서 나갔다가 너무 잘 되는 김밥집으로 금의환향한 느낌도 들었다. 간혹 그 집을 이용하는데 어느 날 ‘잘못 싼 게 있어서 드리는 거예요’ 하면서 덤으로 김밥 한 줄을 더 주셨다. 말이 그렇지 완전히 새 김밥을 하나 주신 거였다.
그때 바로 음료수를 한 박스 사다 드릴까, 뭘 사다 드릴까? 신이 나서 머리를 말똥말똥 굴리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러다가 아차, 이건 아니지 싶었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오늘 끓인 사골국물을 주었다. 그러자 상대방이 바로 보답해오면 나는 마음이 좋을까? 그래, 그것은 아닌 거 같았다. 무언가 보답을 생각하고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지금 내가 이 사골국물을 끓이면서 당신을 생각했다는 내 마음을 대신한 것일 뿐이니까. 그래서 마음을 접었다. ‘다음번에 김밥을 사러 가면 그때 내 마음을 표현하자. 상대방의 호의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자’ 하고 말이다.
야쿠르트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를 내 마음대로 판단하여 안쓰럽게 여겼다는 것을 그녀가 알면 기분이 어떨까? 그녀가 곱창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알기에 곱창을 사러 가면서 무언가를 갖다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켠에 밤낮으로 일하는 그녀를 안쓰럽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음료수를 줄까, 무얼 줄까 했던 것도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손으로 곱창집에 들어서니 ‘어? 언니’ 하며 반갑게 맞는 그녀의 손에는 이미 시원한 음료수가 들려 있었다. 가게 일하시는 세 분 모두 음료수를 마시는 잠깐의 여유 시간인 듯했다.
앞서가는 마음을 접은 오늘의 선택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베푼 호의가 상대방의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나 못지않게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있을,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바라보아야겠다, 싱그러운 이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