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6:4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개역개정판)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개역개정판)
요한복음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개역개정판)
요한 덕분에
우리는 공관복음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 소개된 내용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일상과 일생, 성격에 대해서 단정짓는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하고 무례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관된 경향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텐데
일단,
부활절 이후로는 도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엠마오의 두 제자 이야기도 있지만
요한복음에 나오는 도마에 관한 이야기를 묵상해보았다.
도마에 관한 이야기 세 부분...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에게 보인 반응과
십자가 지시기 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 드렸던 질문,
그리고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손자국와 옆구리에 대한 의심과 관련된 부분이다.
도마복음 뭐 이런 이야기는 모른다.
그렇지만 도마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용기 있게 말한다.
다른 제자들이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요 11:8)라고 하며 주님을 만류하는 듯한 느낌의 말을 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요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개역개정판)
용기 있는 사람이었고
직진 본능도 있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이 직진 본능이 그를 인도까지 선교하러 가게 했다고 하면, 그건 사람의 시각일 것이고
성령께서 그러한 그의 성향을 활용하신 것이 분명하지만
요한복음 14장에서 그가 드린 질문은 누가 봐도 소위 노빠꾸, 일명 직진 본능이 강하게 느껴진다.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고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다.
그리고 4절 말씀에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도마는
그 말씀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요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개역개정판)
그리고 그러한 그의 질문이
복음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빛을 비춰주는 귀한 주님의 대답을 이어지게 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개역개정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안다고 하셨는데
도마는 아니오,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라고 반문한다.
이것이 무슨 반발심리나 억하심정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말씀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 대꾸하는 빈정거림 같지도 않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겠다는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다고 하는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용기가 없었다면 감히 질문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용기... 그래 용기가 있었던 같다.
제자들이 모두 문을 닫고 방 안으로 숨어버린 날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은둔을 위해 필요한 생활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용감하게 나간 것은 아니었을까?
뭐, 성경에 기록이 없으니
상상하고 추정하는 건 우리 자유다.
성경에 기록이 없으니
반드시 그럴거야 라고 착각하는 건 확증편향일테지만..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개역개정판)
이미 여자들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고
10명의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했는데
이게 무슨 고집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믿고 싶지 않거나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과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없이 팩트로 수용하면서
신앙의 영역에 대해서는 아무런 호의없이 대적하는 현대인들의 반응에 가깝기는 하나
도마가 이러한 시니컬하거나 막무가내에 가까운 태도였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 만일 함부로 믿지 않으려는 신중한 태도였다면
그는 저돌성과 신중함을 다 가진 인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마치 베뢰아 사람들(행 17:11)처럼
이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상고했던 태도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주님은
충분히 생각하고 의심하며 상고할 생각을 주시고
무려 8일 뒤에 다시 오셔서 말씀해 주신다.
여드레 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누가봐도 도마를 위한 방문으로 보인다.
목사님의 이번 주일 설교 말씀 그대로
칭찬보다는 책망을 많이 듣던 제자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도마에 의심에 대한 책망보다는
그 마음을 확인시켜주시는 주님의 배려가 엿보인다.
도마는 그렇다치고
우리는 어떤가?
혹시...
부활주일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고난주간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이지 않은가?
삶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다.
해결되야 믿겠다.
좀 뭐가 보여야 믿겠다.
달라지는 느낌이라도 있어야지 믿겠다.
이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이 있다.
보이지 않아도
예수가 계시니
실수가 없으신
신실하시고 완전하신 그 분
부활이 남 이야기 같고
부흥은 옛 이야기 같으며
부담은 내 이야기 같은데
그래도 믿는다.
그래도 버틴다.
그래도 붙든다.
이런 분들이 많이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이런 분들한테
안쓰러움을 주는 부족함 때문에
참으로 송구하다.
잠언 묵상을 하다보면
기쁘고 즐거운 내용보다는
어둡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 목사님 설교 말씀처럼
예수님께 칭찬 듣는 일보다는
책망과 야단을 듣는 일이 많았던 제자들이다.
그래서 현실은 늘 불쾌하고 답답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회개와 돌이킴의 메시지가 거의 대부분인
폴 워셔 목사님의 설교도 그러한데,
어제 부활주일에 아주 드문 영상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시고 행복하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당신에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좋은 환경을 주시지도 않았는데 '믿음'을 가졌잖아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고 자랑하실 거예요.
“여기 내 종을 보거라 Look at my servant
인생의 어두운 시기를 빛도 없이 지나고 있는 내 종을 who walks in darkness and has no light
그저 내 이름만 믿으며 이겨낸 이 종을 말이다. but TRUSTS in MY NAME!"
그렇구나
주님 보시고 싶어하시는 것이
이거였구나.
그래서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고 하셨구나.
그때까지
잠언 6장 4절 말씀처럼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하신 그 말씀처럼
부지런히
그러면서도 빛을 바라보며, 빛을 바라며
한 걸음씩 걸어가야겠다.
봄날의 꽃잎은 흩어지지만
우리의 소망은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믿으려 한다.
믿는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으니
평강이 있을 것이다.
첫댓글 https://youtube.com/shorts/n42DI-Tz3Io?si=ImC2MKVCox8me-_8
https://youtu.be/w-Rbq8h0NN8?si=U4VjF2Aw9hVndH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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