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축제일 <0815-2>
요엘 2,22-24.26ㄱ 묵시록 14,13-16 루카 12,15-21
<진행 순서> 미사시작, 고백기도, 자비송, 앞으로 나와서 하는 분향, 자리에 앉아서 하는 위령기도, 한가위미사-본기도...... <위의 순서로 한다고 소개하고, 아래 기도도 소개할 수 있음> <분향 때 하는 기도> 주 하느님, 세상의 삶을 마치고, 당신의 자비를 간절히 바라는 영혼들, 저희가 기억하는 조상과 부모, 형제와 자매, 친척과 은인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허락하소서. 아멘. |
2024. 9. 17. (화) 10:00(주임)
주제 : 우리가 하는 행동으로 축복을 청하기
오늘은 한가위 축제일입니다. 가을 저녁이라는 낱말로 해석하는 추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요즘에 들어서 많이 쓰는, 한가위란 음력 8월의 보름을 가리키는 의미가 있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한가위라는표현을 사용하면서, 여기에 추수에 대한 감사를 곁들이고, 우리에게 수확의 축복을 허락하신 하느님과 조상에게 감사의 표현을 담는다면, 오늘 해야 하는 일로는 시작을 잘한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윗날, 한자리에 모여, 나보다 먼저 세상의 삶을 마친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나보다 먼저 세상에 사시면서 내가 살 바탕을 준비하셨고, 그분들이 애쓰셨기에, 지금의 내가 좀 더 잘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면 우리가 바치는 정성은 누구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요즘에는 세상의 삶을 마친 분을,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모십니다만, 그분들을 기억하는 올바른 의미를 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행동을 형식으로만 생각하여, 해외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으로 제사상을 부르고, 거기에서 후다닥 절을 몇번 하고, 몸은 비행기를 탈 준비를 한다면서 서두른다면 권장할 만한 행동이라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 루카복음과 요엘예언서의 말씀으로 들은 내용은, 우리나 동양에 사는 민족이 생각하는 한가위의 의미를 담은 표현은 아닙니다. 우리가 전례에서 기억한 내용은 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이스라엘, 다시 말해 히브리민족이 추수를 기억하던 일에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를 맞춘 것이므로, 시기상으로 같은 의미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누구에게 들으니, 같은 아시아인 필리핀에는 추석이라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동양사람들이 기억하던 한가윗날의 풍습은 조상에 대한 감사였고, 그일을 우리는 제사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해에도 10차례나 20차례 이상의 제사를 바치는 가정에서 생각한다면, 여러 번 제사를 바쳐야 하는 날의 하나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것은 여러 번 해야 하는 많은 일의 한가지가 아니라, 특별히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조상들에게도 이제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날입니다. 오늘이 늘 맞이하는 1년의 하루일 수도 있지만, 나의 삶에서 단 한 번만 맞이할 수 있는 단 하루의 특별한 날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요엘예언서로 들은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축복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삶에서 노력하는 일에 더하여,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더 큰 축복이 생긴다는 기본적인 자세가 요엘예언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하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시작에 함께한 위령기도와 세상의 삶을 마친 이들에게 이루어지기를 청한 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바라는 분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습니까? 세상에 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간절히 필요한 일로 연결된 일이기에, 우리가 그 효과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함께하는 마음은 필요할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와 형제 자녀와 가족에게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생길지 아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분들을 기억하고 청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그 결과를 확실하게 깨닫고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올바른 표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참여하는 모양과 그 결과로 하느님께 우리가 가진 뜻이 전달되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 좋은 모양을 갖추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사람을 향해 세우신 계획을 바꾸시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도라는 표현으로 하느님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어야 하겠지만, 복음서에서 만난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을 우리가 보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은 우리의 생각대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오늘 한가윗날에 우리가 갖는 좋은 생각이 하느님께 예물이 되고, 그 예물이 다시 우리의 삶에 축복이 되게 해주시라고 겸손하게 청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