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일(현지시간) 미군에 암살된 오사마 빈 라덴과 2008년 2월 12일 제거된 이마드 무그니예가 어떤 점이 닮았느냐고 물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30년 잔뼈가 굵은 밀턴 베어든은 곧바로 “병리학적 살인자들”이라고 답했다. 병처럼 죽음을 퍼뜨린다는 취지다.
빈 라덴이 조종한 2001년 9.11 테러가 있기 전까지 어떤 이보다 많은 미국인들의 목숨을 해쳐 CIA가 제거 1순위로 꼽았던 인물이 레바논 베이루트 태생의 테러 지도자 무그니예였다. 1983년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 차량 폭탄 테러를 시작으로 25년 동안 CIA가 없애기 위해 안달했던 인물이다.
비어든은 2013년 '포린 폴리시'의 마크 페리에게 "빈 라덴에게는 늘 꾸준히 아마추어스럽다는 얘기가 따라다녔다. 배경을 서투르게 꾸며댔고 뻥이 심했다. 비겁했고 숨었다. 그에 반해 무그니예는 일생 동안 우리를 놀려먹었다"고 털어놓았다.
티빙에 쇼타임 제작, 파라마운트 플러스 배급으로 지난해 7월 공개된 '베이루트의 암흑(Ghosts of Beirut) '을 이제야 시청했다. 무그니예가 처음으로 자살폭탄 테러를 조종한 1983년부터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CIA와 모사드의 합동 비밀작전에 의해 제거될 때까지를 에피소드 4편에 생생하게 담았다. 그렉 바커가 연출했는데 실제 요원들의 증언과 역사적 기록, 가공의 드라마가 교차돼 볼 만하다. 바커는 'Manhunt: The Inside Story of the Hunt for Bin Laden'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마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위에 가공의 얘기를 입혔다'는 자막이 나온다.
무그니예가 획책한 테러로 스러진 미국인들은 350명이 넘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수십년 동안 그의 정체를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마스쿠스에서 이란 출신의 새로운 연인 와파를 만나 베이루트의 가족과 소원해졌고, 가족이 뜻밖에 다마스쿠스를 찾아오는 바람에 CIA와 모사드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암살 허가 행정명령을 받아내고 CIA와 모사드가 알력을 빚어 첫 번째 암살 시도가 실패했지만, 대량살상무기(WMD)를 손에 넣고 싶어했다는 결정적 증언을 확보, 행정명령의 연장을 허가받아 2008년 2월 드디어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이 꽤나 긴박하게 그려진다. 역시 2022년 드론 공격으로 제거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과 무그니예의 우의(?)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지난해 5월 시리즈가 공개됐을 때 밀리터리 타임스는 제작진에 자문한 더글러스 런던과 인터뷰했다. 런던은 미 해병대 출신으로 CIA와 정보 업무를 34년 동안 협력했으며 무려 17년 동안 무그니예의 해외 활동을 추적했다. 런던은 “무그니예는 정통성을 무던히도 부정했다. 그가 특별히 효율적이었던 것은 기존에 있었던 일들을 넘어서 혁신적이었던 것에 있었다"고 단언했다.
사실상 자살폭탄 수법을 자신의 권력과 입지를 강화하는 방편으로 삼은 최초의 인물이 무그니예였다. 조지타운 대학 안보연구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런던은 “이슬람 테러리스트 그룹들에게 순교라는 발상은 당시만 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며 “자살은 꾸란에 금지돼 있는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지금 우리가 알카에다와 이슬람 국가에게서 보는 것처럼 다른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혼란과 공포를 조장하는 방법을 찾는 데 가히 혁신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고위 인사 납치도 그가 서슴치 않은 일이었다. 1984년 3월 CIA 지부장 윌리엄 버클리를 백주 대로에서 납치해 처참하게 살해했다. 버클리는 일년 전 미국 대사관 테러 공격 때 스러진 로버트 에임스의 역할을 대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에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할 것을 강하게 압박했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로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버클리의 납치는 CIA가 맞닥뜨렸던 테러 양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저 무릎을 맞대는 수준이 아니라 악착같은 감시와 정보 수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런던은 "그들이 우리에게 직접 손을 뻗치다니 새로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버클리는 14개월 감금 끝에 다음해 6월 3일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의 시신은 1991년에야 모국으로 송환됐다.
자신감을 얻은 듯 무그니예는 레바논을 벗어나 이라크, 이스라엘, 아르헨티나까지 테러 작전 반경을 넓혔다.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고 배우는 이들이 생겨났다. 런던은 "적을 과소평가하면 절대 안된다는 것을 알리는 경종이었다"고 돌아봤다.
개인적으로 시리즈를 보며 무그니예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아미르 크후리의 선한 얼굴과 함께 빈 라덴의 선한 눈매가 자꾸 겹쳐 보였다. 둘의 선한 얼굴과 자폭 테러 자원자에게 '"천국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설득하는 모습이 내내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 CIA와 모사드가 오랜 협력 끝에 무그니예를 제거했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개운찮은 속내를 감출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해체하겠다고 야세르 아라파트가 선언해놓고 뒤로는 자신의 경호원이었던 무그니예에게 총기를 물려준 것이나 그걸로는 안된다며 자폭 테러를 기획하는 모습,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하마스에 군사 지원을 처음 시작한 이가 헤즈볼라 2인자였던 무그니예란 사실 등이 아프게 다가온다.
1편과 2편은 크후리가 젊은 시절의 무그니예를 연기했고, 3편과 4편의 2007년 무렵부터 제거될 때까지는 히샴 술레이만이 연기했는데 체격과 외모가 너무 눈에 띄게 달라져 당혹스려웠다. 무그니예 암살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는 레바논계 CIA 요원 리나 아사이란 역할은 디나 쉬하비가, 에임스 국장 연기는 더못 멀로니가 맡았다. [파라마운트+][티빙] 베이루트의 암흑 (Ghosts of Beirut, 2023) 예고편 - 한글 자막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