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완
2. 즉흥
3. 비논리적 대화
오늘 수업이 시작되고 김진근 선배님이 왜 배우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우리들에게 물었다. 답변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원하는 사람만 자율적으로 이야기하게 하셨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자신있게 내가 왜 배우가 되고 싶은지, 왜 연기가 하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겠지만 그동안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기를 쉬면서 그로 인해 그 이유가 옅어져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우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응당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처음 꿈을 꾸게 된 계기를 내가 잊었구나, 이제는 와닿지 않는 이유가 되었구나 싶다가 또 새로운 이유가 생기겠지, 아니 나 왜 이 수업을 신청해서 이 시간에 이 공간에 있으면서 나 왜 목적이 없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 생각에 조금은 괴로운 시간이 짧게 지나가고서 나는 내게 그 답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또 선배님께서는 좋은 배우는 좋은 인성이 뒷받침 되는 배우라는 말씀을 하셨다.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선배님이 말씀하신 막내 스태프들을 챙기는 것 외에도 좋은 인성이 있어야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대할 때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들지 않을테고 거기서 배우의 간접경험이 쌓일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착하기만 한 배우는 되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기 밥그릇은 챙기며, 아닌건 아니라고 말할 줄은 알아야지.
1. 이완
이완을 대하는 리 스트라스버그 선생님들의 견해 차이와 선배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셨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이완에 대해서 중요하다, 하등 쓸모없다로 나뉘는 것이 신기했다. 한참 연기에 열중이던 2년 전에는 연습실에 요가매트를 들고 가서 몸의 이완에 집중하고 요가 학원도 다녀보고 명상도 꾸준히 했던 기억이 났다.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되었는가 하고 되짚어보니 나는 이완을 징크스 적인 측면에서 이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가 잘 된 날은 역시 이완을 잘 해서 내가 편해라고 생각했고 연기가 잘 안 된 날은 오늘은 이완을 할 때 대충했나보다하고 생각했다. 그 두 날의 차이는 크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여튼 선배님께서 등받이 의자에 우리들을 앉히시고 앉는 자세와 팔, 목의 위치들을 설명해주셨고 자세는 다음과 같다. "등받이에 엉덩이를 밀착시키지 않고 팔은 엉덩이 양 쪽 옆으로 늘어뜨린 뒤 목은 편안하게 들되 숙이지 않도록 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앉아 숨을 쉬며 편안함을 찾으려 애썼다. 아침에 눈을 뜨고 여기 앉아있기 까지의 과정들을 떠올리다 머리가 비워지고 선배님의 음성에 맞춰 몸의 각 부위의 신경에만 집중하는 것이 잘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목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거북목이 초래한 목의 통증이 점점 더 느껴지고 불편해 턱을 당겨 목의 긴장을 푸려 했지만 잘 안 됐다. 몸의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 음성에 맞춰 목이 불편한 것을 빼고는 몸을 편하게 만들었다. 중간에 선배님께서 팔을 언급하실 때에 나는 놀랐다. 상체를 다 지났는데 팔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다. 통증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오고 그때부터 집중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완이 끝나고 휴식을 가졌다.
2. 즉흥
휴식을 끝내고 돌아오니 무대에는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선배님이 룰을 설명해주셨다. "먼저 앉아있는 사람은 가만있고, 빈 자리에 앉거나 들어오는 사람이 운을 뗀다. 그 말을 듣고 즉흥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켜보다가 둘의 놀이가 루즈해질 때에 스톱을 외치고 새로 들어갈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갈 때 나오는 사람은 먼저 앉아있던 사람이고 똑같이 새로운 사람이 들어가며 운을 떼고 반복한다." 즉흥 상황극을 보다가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 한 번 스톱을 외치고 싶은 순간이 생겼는데 둘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으려 타이밍을 보다가 아쉽게 선수를 뺏겼다. 역시 타이밍을 잘 치고 들어가야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도 쓸 데가 있구나 하고 느꼈다. 그러다 손을 들고 들어가려는데 긴장이 살짝 됐다. 2년만에 다시하는 연기의 첫 시작점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완을 방해했다. 계획에 없던 사투리가 나오고 발음도 꼬였다. 상대 분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순간 흠칫했지만 연기가 시작된 이상 자의로 중단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에 태연하게 진행시켰다. 그렇게 연기를 하다보니 떨리던 몸도 진정이 되는듯 했다. 다음 분이 들어오실때 머릿 속이 조금 복잡했다. 새 캐릭터로 가야 하는 건가 아님 같은 캐릭터로 가야 하는 건가 하고 말이다. 같은 캐릭터로 가기로 하고 날을 좀 세우기로 했다. 그러다 자가당착에 빠져 말려버렸고 다음 분께서 구출(?)해주셨다. 즉흥 에쮸드 놀이여도 역시 논리와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다른 분들의 연기도 다 끝나고 선배님께서 놀이를 중단 시키고는 즉흥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정해져 있지 않은 대사와 상황이 주는 이점들을 말씀해주셨고 공감이 많이 갔다.
3. 비논리적 대화
문장은 완성하되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하면 된다고 하셨다. 선배님의 시범을 보고 얼마 전에 본 유튜브 영상이 생각나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어려웠다. 말을 계속 완성하려고 뇌가 열심히 일하며 자유로운 단어 나열을 방해했다. 그러다 세 번쯤 돌았을 때, 말에 집중하지 말고 키워드에만 집중해보자 하고 상대방의 말에서 키워드를 뽑아 말을 해봤는데 길이는 짧지만 비논리적인 대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재밌었다. 살짝 조현병 환우들의 지리멸렬한 글쓰기가 떠올라 무섭기도 했다. 그러다 비논리적인 대화를 하면서 머릿 속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텅~비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 했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않게 돕는 훈련법이라고 하셔서 집에서 혼자 많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조준하배우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갑자기 사투리가 나오고 발음이 꼬였다는
그 부분을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준비됐으나 준비되지 않는 그 부분에서 어쩌면
살아있는 날 생선같은 연기가 나올 수도 있갰죠.
내일 또 많은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