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일: 1946년
구분: 공립
소재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선수촌로 86(반여1동 1449-5)
교훈: 남과 더불어 나의 꿈을 키우는 장산 어린이
교목: 보리수나무
교화: 동백꽃
1973년 부산시의 시내 재개발 사업 추진에 따라 동구 좌천동 고지대의 철거민 1,643세대가 이주해 오면서 지역 인구가 급증하였고, 이후 1974년에는 중구 영주동 고지대 철거민 1,145세대, 1975년에는 동구 초량동 고지대 철거민 802세대가 연이어 이사 오면서 세대 수가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인구 유입과 지역 확장에 따라 1979년 8월 8일에는 반여2동에서 분동되어 반여3동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반여3동은 1970년대 이후 '무지개 마을'로도 불렸는데, 이는 당시 10여 평 규모의 협소한 연립주택 지붕에 빨강, 파랑, 노랑 등의 페인트가 칠해진 모습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이 명칭은 이주민들이 희망을 품기 위해 스스로 붙인 별칭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1946년 9월 1일 6학급으로 개교한 뒤, 인구 유입에 따라 학교들이 점차 확장되고 분리되었습니다. 1974년 3월 1일에는 반여국민학교가, 1975년 3월 1일에는 안락국민학교가, 1980년 2월 27일에는 재송국민학교가, 1998년 3월 1일에는 반석초등학교가 각각 분리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2002년 3월 1일 반안초등학교, 2005년 3월 1일 무정초등학교, 2006년 3월에는 삼어초등학교와 송수초등학교가 각각 분리되어 학교 시설과 지역 구획이 더욱 세분화되었습니다.
뒤에 보이는 산은 장산
이 학교에서 3학년까지만 다녔던 기억은, 바켓스에 강냉이죽을 타온 것뿐입니다. 그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배고픔이 일상인 어린 시절,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강냉이죽 한 그릇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릅니다. 배가 고파 목이 바짝 마른 상태에서 먹던 그 따뜻하고 달콤한 강냉이죽은, 사실 먹는 것 이상의 힘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정성껏 내어주던 그 강냉이죽은, 배고픔을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한켠 깊숙이 따뜻함과 사랑을 주던 소중한 식사였습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나눠 먹던 그 작은 행복은, 지금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