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
1588년 ~ 1599년경 또는 1602년경,
캔버스에 오일,
145 cm × 195 cm(57인치 × 77인치),
바르베리니 궁전의 갤러리아 나치오날레 다르테 안티카
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 거야?
[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헤럴드경제 기사 입력 2022-06-11 05:23:14
이원율 기자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1598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 유디트는 그제야 웃음을 거뒀다. 적장(敵將) 홀로페르네스가 야전침대에 구겨진 채 누워 코를 고는 걸 본 뒤였다. 유디트는 그가 침대로 향하며 막사 바닥에 내팽개친 칼을 주웠다. 손잡이가 차가웠다. 이 서슬 퍼런 칼날에 수많은 우리 유대인이 죽었다. 유디트는 이 순간만 기다렸다. 한껏 치장한 뒤 홀로페르네스가 이끄는 아시리아 군 진영 한가운데 나선 일, 스스로 민족의 배신자가 된 양 홀로페르네스에게 달콤한 말을 쏟아낸 일, 해가 지자마자 미소를 흘리며 홀로페르네스의 막사에 들어가 그가 취해 잠들 때까지 술을 따른 일 모두 지금을 위해서였다.
유디트는 천으로 된 막사 입구를 살짝 들춰 밖을 살펴봤다. 막사 근처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불침번 두 명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유디트는 저 멀리에 시선을 두고 손짓했다. 유디트의 늙은 하녀가 병사의 막사들 사이로 걸어왔다. 원래 전쟁터에서는, 그 누구도 늙은 여인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법이다. 이 덕에 유디트의 충성스러운 하녀는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적장의 막사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다 계획대로였다. 곧 모든 일이 끝난다. 이쯤부터 유디트는 밀물처럼 들어오는 두려움을 느꼈다. 홀로페르네스가 잠든 게 아니라면? 자는 척을 하며 내 암살 계획을 눈치채고 있다면?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애초 술을 마신 척만 했는데도 술에서 덜컥 깬 기분이 들었다. "주여, 이스라엘의 신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시고 지금 제 손으로 행할 일을 지켜보소서." 크게 심호흡을 한 유디트는 술독에 빠져 잠든 홀로페르네스의 목에 칼을 댔다. 다행히 이 남자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중이었다. 그 큰 덩치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유디트는 자루를 쥔 늙은 하녀를 봤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털을 움켜쥐었다. 칼을 쥐고 있는 힘을 다해 그의 목덜미를 두 번 내리찍었다. 떨어지는 번개처럼 순식간이었다. 홀로페르네스는 태어나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고통에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본 건 유디트의 껄끄러운 표정, 차가운 무언가에 뜯어지는 자기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붉은 피였다. (…)』
1598년 이탈리아 로마. 한 남성이 읽고 있는 노트를 탁 덮었습니다. "그래, 이거잖아.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썰고 있는 이 순간! 이거야말로 가장 극적인 장면이잖아. 화가라면 응당 이 장면을 그려야지. 목을 베기 전? 벤 후? 이 전후 상황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고상한 척하는 샌님들 같으니!" 홀로 작업실에 있던 이 남성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버럭 외칩니다. 옆에 놓인 술병을 들고 쭉 들이켭니다. 거친 입김 사이에서 술 냄새가 바짝 올라옵니다. 이 남성은 몸이 뻐근한 듯 두 팔을 크게 돌려댑니다. 온통 시퍼런 멍투성이입니다. "내가 말이야. 내가 진짜를 그려주지. 이 머저리들." 그는 꺽 하며 긴 트림을 내뱉습니다.
동네 건달 같은 이 남성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1571~1610)입니다. 별명으로 더 유명한 화가인데, 그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은 카라바조입니다. 분노에 찬 그가 이를 갈며 그린 그림은 훗날 바로크 미술의 문을 연 열쇠로 기록됩니다.
‘연극 공연’ 같은 이 그림, 너무 노골적인데…?
금발의 여성은 유디트입니다.
피를 뿜는 남성은 홀로페르네스, 그의 잘린 머리통이 담길 자루를 쥔 여성은 유디트의 하녀입니다. 유디트는 성경의 외경(外經) 중 유딧서에 등장합니다. 부유하고 아름다운데다 덕망까지 있는 미망인입니다. 그녀는 전쟁에서 패할 위기에 처한 자기 민족,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하려고 아시리아 군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후 목을 벱니다. 그녀 덕에 이스라엘은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림 속 유디트는 어려 보입니다.
머리를 능숙히 손질했고, 반짝이는 귀걸이도 달았지만 여전히 앳돼 보입니다. 당연히 검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겁니다. 유디트의 표정도 묘합니다. 결의와 혐오, 사명과 불안 등 여러 감정이 묻어납니다. 유디트는 죽어가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채를 최대한 멀리서 쥐고 있는데요. 힘의 역학으로 보면 이 자세로 목과 몸통을 깔끔히 떼어내는 건 어렵습니다. 이 또한 유디트의 서툰 칼질, 그녀가 품은 분노와 공포 사이 복잡한 심경을 보여줍니다.
유디트에게 더 힘을 주라고 부추기는 듯도 하고, 평소 부드럽기 그지없는 여주인의 살인 행위에 깜짝 놀란 듯도 합니다. 웃통을 벗어 던진 홀로페르네스는 온몸을 뒤틀며 울부짖습니다. 목은 절반 넘게 잘렸습니다. 그 틈에서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옵니다.
그림은 노골적입니다.
유딧서를 줄줄 외운 사람들에게도 폭력적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부모라면 아이가 이 작품을 못 보게끔 두 눈을 가렸을 테고, 피가 튀는 충격적 장면 탓에 악몽을 꾸는 이도 많았을 겁니다. 카라바조의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유디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