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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춤은 함경남도 단천이 원적인 김홍필, 김달순(1886~1962), 그 자제 학천과 학현으로 전해졌다.
함경남도 북청에 산포수 연합이 관청 허가를 받고 조직되어 활동 했다.
산포수들은 이 수박춤을 연희 했다.
김홍필과 김달순은 함경남도에서 사냥으로 생업을 하던 포수출신들이었고
압록강 건너 장백조선족자치현으로 이주해 간 뒤 그 자제 학천에게 전수했다.
김달순과 김학천은 백두산, 중국식 장백산을 터전 삼아서 사냥을 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 서고 법으로 장백산에서 사냥하는것을 금했다.
이후, 생계가 곤란해진 김학천은 산짐승을 잡기 위해 지어 놨던 움막에서 과수나무를 기르며 근근히 생활했다.
김학천의 무덤은 중국 장백조선족자치현 14도구 깊은 산골에 있고 중국 CCTV에서도 방영했다.
이와 같이 김홍필, 김달순, 김학천, 김학현으로 이어진 수박춤은 타 지역, 평안도나 이남 지역의 관련 기에, 수박춤과 그 가지들에 비해 향토적 성격이 짙다.
본래 수박춤은 고려, 조선시기 군사들이 했던 수박, 즉 무예 동작에 몸짓과 장단을 넣어 추던 것이지만
함경남도 산포수 출신들이 수박춤을 하면서 여기에 사냥문화가 습합되었다.
사냥문화의 근거로는 위에서 얘기한 기능자들이 함경남도 산포수들이었고
수박춤 동작에 호랑이 발톱 세우기라던지 곰 흉내를 낸다던지, 맷돼지 소리 등을 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산짐승 움직임을 흉내 내고 소리를 모방하는 등 사냥문화 영향을 받았고
소도구에도 산짐승을 어깨에 짊어진다던지, 올가미,, 올무를 만들고 한다던지
눈썰매에 올라 타서 제자리에서 뱅뱅 돈다던지, 여러가지가 있다.
문화는 전파성이 있고 또, 이쪽과 저쪽의 문화가 서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가고
타 지역과 다른 특색 있는 향토문화가 된다.
함경남도에서 전해진 수박춤은 평안도나 타 지역과 달리 향토문화로써 학술적 가치가 있다.
사냥춤은 사람이 춤을 추는것으로는 1차적인 것이다.
그만큼, 연원이 오래 되고 문화적 가치 또한 크다.
중국은 이미 2006년에 중국 문화부에서 중국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등재 시도하다가
김학천의 사망, 그리고 김학현 선생 개인 사정 등으로 미뤄지다
2008년 중국 백산시무형문화재로 지정을 해 놧다.
중국측 얘기는 반은 맞는 얘기다.
장백산에서 사냥꾼들이 하던 것이다! 라는데
장백산에서 산포수들이 한것은 맞다, 그러나 함경도에서 전해져 간 것을 생략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실관계를 다 얘기 하지 않기에 왜곡이라는거다.
함경남도 북청에 조직되었던 산포수들은 활동무대가 그냥 북청 인근이 아니고
삼수, 갑산 등 개마고원과 백두산까지도 그분들의 활동지역, 사냥터 였다.
따라서 중국측 얘기가 반은 맞다는거다.
[도구제작]수박춤 올무만들기,눈썰매 동작/구르기,도약 등
https://www.youtube.com/watch?v=pH6_cqxVk-o
수박춤에 사냥문화의 영향이 있다.
시기적으로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18세기의 기능자였던 김홍필, 김달순 등이 함경도에서 사냥으로 생업을 하던 산포수 집안 출신이였고
압록강을 건너 장백조선족자치현으로 김달순이 이주한 뒤 그 아들 김학천과 생계유지를 위해서 사냥을 했다는것은
고, 김학천, 김학현 등의 증언과 수박춤에 남아 있는 사냥문화적 영향, 새나 산짐승 소리를 모방하거나 동작 등에 습합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일제강점기때까지도 입으로 새, 짐승소리를 흉내내던 것을 구기, 또는 구희라고도 했다한다.
입으로 하는 기술, 내지 유희라는건데 수박춤에서 소리는 개념적으로 이 범주에 포함될듯 하다.
올가미를 만들어 짐승을 잡거나 겨울철에 눈썰매를 타고 산비탈을 내려오는 등 함경도의 산포수들 당시를 추측하게 할 수 있다.
눈썰매에 한발을 올려 두고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동작을 하기도 했고
구르기는 뱀이 목에 올무가 걸린체 몸부림치는 것을 형상화 했다하지만 무예적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다.
도약은 고, 송창렬 선생님이 뜀뒤기라 한것과 같은것으로
고, 오진환 할아버지가 하셨던 양팔을 옆으로 벌리고 양쪽 어깨를 번갈아 가며 으쓱대던 동작을
고, 김학천이 했다, 이는 두분 영상으로 비교할수도 있다.
http://www.jl.gov.cn/szfzt/dbhbbh/hbgs/js/201801/t20180119_4494894.html
수박춤을 중국에서는 2008년 중국 백산시 무형문화재로 등재를 하고 원래부터 중국, 즉 중국의 장백산 사냥꾼들이 하던 것이라고 왜곡을 하고 있다.
수박춤은 주지하다시피 함경남도와 평안도에 근대 이후까지도 전해져 왔으며 전라남도 광주, 경상도에도 그 가지가 남아 있다.
함경도는 산이 깊어 사냥문화가 있었다.
고려, 조선시대 착호갑사, 호랑이를 잡던 특수병종 분 아니라 산포수라고 해서 민간에서도 호랑이, 맷돼지 등을 잡아서 생활을 했다.
독립군 홍범도 장군도 잘 아다시피 산포수 출신이었다.
수박춤이 중국측 주장대로 원래부터 중국 장백산의 사냥꾼들이 하던게 아니고
함경남도 단천에서 일제강점기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이주했던 김달순 대부터 중국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해 왔던거다.
중국은 이와 같이 함경남도에서 중국땅으로 전해진걸 얘기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얘기하는데
사실관계를 다 얘기하지 않기에 왜곡이라 하는거고
또, 사냥꾼들이 했을수 있지만 그 이전부터 수박이라는 무예동작에 몸짓과 장단을 넣어서 추던것임은 북한 학계에서 밝히고 잇다.
북한의 조선말사전- 북한, 언어문학 연구소 사전연구실 편찬에는
수박춤을 의병들이 손벽을 치며 추는 춤/1989년 이라고 했다.
사냥문화의 영향이 있는것과 원래부터 사냥문화는 차이가 크다.
중국측 문화공정, 역사왜곡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 수박춤을 지켜야 한다.
아래는 중국 길림성 민속학자인 조보명이 김학천 선생을 만나서 공개한건데 위와 같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측 주장데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짐승의 소리를 아는 사람, 수박춤 김학천 선생
https://www.youtube.com/watch?v=FJNp7r7HR6E
짐승의 언어를 아는 사람! 수박춤 김학천 선생
http://www.chinawriter.com.cn/n1/2023/0217/c404018-32625613.html
김학천 선생은 수박춤으로 중국 전역에서 유명했던 분이다.
2--6년 중국 문화부에서 제1차 중국 국가급무형문화재 지정때 이 조선족의 수박춤을 지정하려 했으나 몇가지 사유로 등재가 되지 않았고
2008년 중국 백산시 무형문화재로 등재를 해 놨다.
김학천 선생의 일가는 함경남도 단천이 원적지 이다.
할아버지인 김홍필, 부친인 김달순 등이 사냥으로 생업을 했다고도 한다.
김달순이 1886~1962년인데 중국 장백조선족자치현으로 이주한것은 19세기 초이다.
그 전까지는 김홍필, 김달순 모두 함경남도 단천에 거주했고 이 수박춤에 사냥문화의 흔적이 있는것은
함경도가 원체 산이 깊고 산포수 등이 많았는데 그런 주변상황으로도 이해가 되는거다.
짐승의 언어를 김학천 선생이 알았고 소리로 산짐승들을 소환 한다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지금도 고양이를 찾거나 부를때 냐옹!~ 냐옹!~ 입으로 소리를 흉내 내거나
강아지를 부를때도 입으로 쭛쭛쭛쭈,,,, 등 하듯이
그리고 풀피리로 새 소리 등을 흉내 내던 이런 주변 문화라면 문화인 것들이 지금만 있는게 아니고 일제강점기때도 그 이전 시대에도 있었다는 얘기다.
김학천 선생이 수박춤 독무를 할때 호랑이 소리를 하고 한바퀴 도는게 있고 맷돼지 소리를 흉내 내거나
새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런것들은 다분히 위와 같은 상황에서 주변문화의 영향을 받았던거다.
짐승의 언어를 아는 사람으로 돌아 가서, 김학천 선생이 짐승 소리를 흉내 내고 동작을 모방했다해서 그것이 곧
사람과 동물들간의 언어를 이해했다거나 대화를 했다거나 비약하는것은 맞지가 않다.
함경도의 사냥꾼들이 숲에 숨어서 꿩이나 맷돼지, 노루, 호랑이 등을 잡기 위해서 유인하려는 방편으로 자연스럽게 짐승소리를 흉내 내지 않았나 생각된다.
Lu Xun 씨는 "설형 평가"에서 "흰 사슴 동굴의 호랑이 이야기"라는 책을 언급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모두 말을 잘합니다. 말할 때 호랑이라고 부릅니다. 물고 물면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색이 변한다." 세상에는 짐승의 언어를 기록한 책도 있고, 짐승의 언어를 알아듣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포효하는 호랑이들. 《청사사고》에는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동물의 언어를 알고 고양이처럼 호랑이를 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를 신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서에는 의술왕 손사묘(孫simiao)가 호랑이의 언어를 알았다는 기록도 있다. 한번은 의술을 하러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막혀 "나한테 부탁할 것 없느냐"고 묻자 호랑이는 길가에 고분고분하게 누워 입을 벌렸다. 약왕은 호랑이 목에 뼈가 박힌 것을 보고 호랑이에게 "움직이지 마세요. 가면 곧 돌아올 겁니다."라고 말하자 호랑이는 입을 벌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아가서 호랑이 입에 '호랑이 막대기' 한 줌을 집어넣고 천천히 목에 걸린 뼈를 꺼냈다. 호랑이는 그에게 엎드려 감사 인사를 한 뒤 그를 데리고 사방으로 의술을 행했습니다.
당대의 작가 중에서 동물언어에 능통한 사람을 본 사람은 길림성 문화학자인 조보명(曹寶命) 선생이 단 한 명뿐이었다. 그의 걸작 『세상에서 새와 짐승의 언어를 아는 최후의 사나이』는 이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한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960년대 장백산 배후 십사계곡에 동물의 언어를 아는 이상한 남자 진설천(金雪泉)이 있었는데 그는 수렵 가문의 11대 후손으로 그의 집에는 손으로 쓴 세 권의 두꺼운 상자가 있었다. 상세한 기록을 담은 책 《행복》 다양한 동물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에 어울리는 신체 움직임.
김설천은 할아버지 진홍비와 아버지 진달춘에게 말과 행동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복』이라는 책에 능숙해졌다. 이 책은 진씨의 조상이 지은 것이지만 내용은 장백산에서 수렵을 했던 많은 선인들의 경험을 요약한 것이다. 자연계는 소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조상들은 '만물의 정령'이 된 이후부터 산채, 야생과일 채집, 야생동물 포획에 의존해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동물의 언어를 해독하고, 다양한 시간에 다양한 동물의 활동 패턴을 파악했으며, 다양한 동물의 다양한 심리적 활동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모두가 함께 앉아 동물의 언어와 움직임을 흉내내며 사냥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진씨 가문의 선조들은 이러한 경험을 글과 그림의 형태로 책에 기록하고 이를 '행복'이라 명명하였다.
Cao Baoming은 정말로 "장백산의 첫 번째 펜"으로 Jin Xuetian을 몇 년 동안 알고 있었고 그를 따라 여러 번 사냥을 위해 산에 갔으며 Jin Xuetian의 마법 기술을 직접 볼 수있었습니다. 호랑이가 포효할 때는 표정이 매우 복잡하고 사람을 극도로 겁에 질리게 만들어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입을 왼쪽으로 기울인 다음 입꼬리가 귀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입의 당김으로 인해 코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얼굴 오른쪽 절반의 주름이 많이 뒤틀려 있으며, 왼쪽 눈은 작아지고, 오른쪽 눈은 아주 크게 뜨고 밝게 빛나며, 두 팔과 손가락이 호랑이 발톱처럼 앞으로 뻗어 있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갑자기 모든 것을 찢을 듯한 무서운 호랑이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갑자기 산과 숲의 색이 변하고 땅이 흔들리고 바람이 사방으로 불어서 무섭고 간과 담낭이 터지고…
"새와 짐승의 언어를 이해하는 세계 최후의 사람"은 Jin Xuetian이 눈먼 곰을 소환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입에서 '카카' 소리를 낸다. , 치치무~' 거칠고 깊은 비명. 발바닥이 땅에서 먼지를 일으키고, 입에서 나오는 울부짖음과 연동하여 계곡에서 큰 메아리가..."
곰이 숨어 있던 나무 구멍에 다가가자 그의 포효는 "카카, 카치, 카카치, 카카, 카치치..."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울음소리는 곰이 할 수 있는 내용을 표현합니다. 이해하고 인간의 언어로 번역합니다. , "좋은 것을 찾았으니 와서 도와주세요!"라는 뜻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흑곰이 나무 구멍에서 몸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Jin Xuetian은 사냥꾼이 겨울에 밍크를 쫓을 때 밍크와 계속 대화하여 덫으로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짝을 구애하는 밍크의 울음소리와 비슷합니다. 수컷 담비가 암컷 밍크를 쫓을 때는 “구-구리구자-”라는 연속 소리를 내고, 암컷 밍크가 수컷 밍크를 쫓을 때는 “루-구리구자- 끽끽” 소리를 냅니다. - 삐걱거리는 소리 -".
늑대, 여우, 장백산 뱀 등도 있습니다. Jin Xuetian은 장백산의 모든 동물과 대화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행복』 3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소리는 자연의 보편적인 언어입니다. 고대 사냥꾼들은 동물을 포획할 뿐만 아니라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의 언어를 습득했습니다. "행복"은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사냥꾼의 고유한 기술이자 사냥꾼의 성격을 시험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사냥꾼은 산에서 사냥할 때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사랑을 사냥"할 수 없습니다. 즉, 임신한 암컷 동물이나 사랑에 빠진 동물을 포획할 수 없습니다.
장백산에서 사냥할 때 또 다른 중요한 규칙은 "겨울에는 채식을 하지 않고 여름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는 "야채"라고도 하는데 꿩 등의 새는 물론 토끼, 살쾡이, 땅다람쥐 등의 작은 생물체를 일컫는 말로서 몸집이 작아 겨울에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추운 계절에는 그들을 해치지 않도록 노력하세요. '고기'라고도 불리는 '고기'는 멧돼지, 노루 등 대형 동물을 일컫는 말로 여름에는 크기가 커서 사냥한 후에는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사냥을 하지 않도록 하세요. 보관하기 쉽고 빨리 상해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행복"과 같은 훌륭한 책이 나중에 불태워진 것은 유감입니다. 진설천 노인의 죽음으로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짐승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장백산 깊은 곳에는 호랑이 소리, 용 소리, 늙은 곰, 멧돼지, 노루, 꽃사슴, 여우, 오소리, 새…
그렇다면 장백산의 깊은 산과 오래된 숲 속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생생한 광경은 무엇이었을까? 저명한 학자이자 지방민속문학예술협회 회장인 언론인 조보명(曹寶命)은 수년 동안 바람, 서리, 비, 눈 속에서 산과 마을을 자주 여행하여 현지 풍습에 대한 심층적인 방문을 수집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긴 여정 동안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설, 멋진 이야기. 호랑이 문화에 관해 말하자면, 이것은 조보명의 마음 속에 있는 민속 문화의 가장 흥미로운 장입니다.
조보명(曹寶命)이 쓴 『세상에서 새와 짐승의 언어를 아는 최후의 사람』이 있다. (사진은 모두 데이터 사진입니다)
Cao Baoming은 감동적으로 말했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장백산의 원래 생태가 놀랍습니다! 도처에 푸른 나무와 오래된 숲이 있고 멀리서 보면 "검은 색과 녹색의 지역이며 사람들은 감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청나라 오교의 "관성 수필"), "만주에서는 숲을 둥지라고 부릅니다. 길림성 전체에 둥지가 48개 있는데, 어떤 것은 천 리가 넘고, 어떤 것은 수백, 수십 리 떨어져 있는데, 너무 높아서 햇빛을 가려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손내민 편집, 『길림총사』 제2권).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산과 숲을 이해해야 하며, 더 중요하게는 호랑이, 표범, 새 등 산과 숲에 사는 생물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2008년 9월, 한 기자가 중국작가협회 제5회 부주석이자 유명 작가인 장자룡(江村龍)과 인터뷰했는데, 장자룡은 자신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길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특히 길림 작가 조보명(曹寶命)과 호(胡)의 작품을 언급했다. 동린. 그는 감격적으로 기자들에게 "이 사람들은 동북 문화에 심오하고 다채로운 필치를 썼다! 길림의 북동풍은 강력하고 강력하다"고 말했다. 새와 짐승'은 자신의 언어로 새와 동물을 소환할 수 있는 김학천을 인터뷰한다. 학자 왕딩링(王丁陵)이 지은 『동북호문화』(2007년판 중화서적)에는 조보명이 호랑이 언어를 아는 장백산에서 금설천과 금가의 저서 『행복』을 조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후의 새와 짐승의 언어를 아는 사람'(조보명 지음)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천지의 이치, 인간과 자연의 조화
북동쪽 장백산 배후의 석도구 지역에 진설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에는 짐승의 '언어'를 기록한 『행복』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그는 짐승의 언어를 알았다고 한다. 수류. 수렵가문의 11대손으로 할아버지의 이름은 진홍비, 아버지의 이름은 진달순이다. 형제는 모두 4명인데 막내입니다. 10살이 되던 어느 날, 산에서 사냥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오는데, 아버지의 입이 한동안 동서로 기울어져 무서운 소리를 내는 것을 보더니... 아버지가 아픈 줄 알고 "이게 뭐죠?"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버지는 "나는 동물의 언어를 말하고 있다"고 말했고, 김설천은 "당연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해하겠습니까?" 그는 서둘러 "예"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나에게 배우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입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아버지가 내는 소리는 무엇이든 했습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내가 가르쳐 줄게!"라고 했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라가 맹수를 '소환'해 사냥을 하게 됐다.
소환은 짐승의 '언어'를 이용해 짐승을 소환하는 것으로, 당시 동물의 상황을 판별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사냥꾼의 고유 스킬이자 사냥꾼의 성격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짐승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사냥꾼의 미덕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990년대 조보명은 김설천을 인터뷰하러 갔는데, 김설천은 자신의 오두막 앞에서 조보명에게 사냥꾼은 산에서 사냥할 때 산의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돈을 잃거나' '돈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산 들판을 청소하는 것." 문제입니다. 소위 '패배하는 사랑'은 사냥꾼이 짐승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임신한 암짐승을 때리거나 '사랑에 빠진' 특정 동물을 때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모두 '패배하는 사랑'이다. 산 들판을 진흙탕으로 만든다'는 것은 각 계절의 사냥규칙, 즉 '겨울에는 고기 사냥을 하지 않고 여름에는 고기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채식주의자와 고기는 동물의 크기를 말합니다. 꿩, 토끼, 살쾡이, 땅다람쥐 등 채식 요리는 '채식 요리'라고도 부르는데, 이 동물들은 몸집이 작아 겨울에 생존하기 어려우므로 추운 계절에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고기 요리는 고기요리라고도 불리는 것은 호랑이, 곰, 멧돼지, 노루 등의 대형 동물을 말하는데, 이러한 동물은 몸집이 커서 사냥한 후에는 먹을 수 없으므로 여름에는 사냥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저장하기가 쉽지 않고 쉽게 죽는다 이것들은 모두 사냥당한다 도덕은 또한 '산들의 법칙'이다. 만약 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산에 사는 사람들은 “산이 진흙탕이 됐다”고 말할 것입니다.
산과 숲 속에서 호랑이를 신으로 숭배하고 호랑이를 왕으로 숭배하라
북동쪽 장백산에는 지식이 곳곳에 있다. 산에 들어간 후에는 먼저 "노반두"사를 지어야 합니다. 이런 행위는 자연의 호랑이를 숭배하는 행위이다. 호랑이는 신이며, 《후한서》에 "호랑이를 신으로 숭배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길림 전통문화에는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많이 존재한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면 먼저 산신에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호랑이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호랑이는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신으로 여겨져 왔으며, 길림 사람들은 호랑이를 산신이라 부르며 '산신제'를 열고 있다. 장백산 지역은 특히 산신을 숭배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며 깊은 산속의 오래된 산과 시냇물에 갈 때마다 나무 판자로 지어진 작은 사찰과 사찰 앞에 수직의 나무 기둥이 있습니다. 산신의 조각상을 모시기 위해. 주로 산에 사나운 짐승이 많기 때문에 옛 지도자에게 제물을 바치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에게기도합니다. “신앙받는 신으로는 호랑이신과 독수리신이 있다”(구창춘 편집 『길림지방문화조사』). 길림성 장백산에서 열리는 산신제(호랑이 축제), 무바제, 노바오터우 생일은 모두 음력 3월 16일이다. 그러나 《용지현기》에 따르면 산신과 옛 지도자의 차이가 있는데, 산신은 구체적으로 호랑이를 가리키는 반면, 옛 지도자는 인간을 가리킨다. 이날은 장백산에서 산에서 일하며 인삼, 약초를 채취하고 나무를 베고 사냥을 하는 사람들의 공동 축제로, 이날 산사 모임이 있고 참가 가구별로 기금을 마련한다. 연극을 하면 산골 마을에 신을 숭배하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호랑이는 장백산에서 독특하고 존경받는 생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97년 Cao Baoming과 Jin Xuetian(왼쪽)이 장백산에 있었습니다. (사진은 모두 데이터 사진입니다)
왜 북동쪽 사람들은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기나요? Cao Baoming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주된 원인은 과거 장백산의 생태환경이 좋았고, 먹이사슬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대형동물 호랑이가 생존하기에 적합했으며, 동시에 사람들은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기며, 호랑이는 이마에 왕이라는 글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곰, 표범 등 대형 동물과의 싸움에서는 호랑이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 관념적으로 호랑이를 숭배한다. 동북과 장백산 지역의 모든 민족은 정령숭배 사상과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호랑이는 산과 숲을 돌아다니며 왕으로서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기는데 이는 민간신앙과 일치한다. 장백산에서는 “일반적으로 호랑이 발자국을 보면 앞쪽에서 나오더라도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 일정 구간을 따라가다가 천천히 돌아야 한다”(청나라, 유젠펑, “장백산”). " "강강지루") 이는 사람들이 동물, 특히 호랑이를 매우 중시하고 객관적으로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사람을 자연스럽게 찾는 호랑이도 호랑이를 피하게 만듭니다. 자연은 결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남기지 않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
그러므로 사람들은 영웅을 찬양할 때 그것을 자연 숭배와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전설에 따르면 청나라의 시조인 누르하치는 어렸을 때 소한자라고 불렸으며 매우 영리하고 호랑이와 매우 좋은 친구였습니다. 소한자가 13살인가 14살이었을 때, 음식을 구걸하다가 어느 곳에 왔는데, 지방 행정관은 자신이 체포하려는 인물이 소한자를 보고 백성들에게 소한자를 체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현 행정관은 앞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를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Xiaohanzi를 묶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군수 부인이 “그 사람을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라고 물으니 군수는 “죽여라”고 했고, 군수 부인은 “죽이지 말고 호랑우리에 던져라. 내 눈으로 보고 싶다.” 어떻게 호랑이에게 한입씩 먹게 하였는가?” 현수는 “참 좋은 생각이구나”라며 기뻐했다. 알고 보니 군수는 호랑이를 좋아해서 그는 호랑이를 많이 잡아서 집 뒤뜰에 가두어 구경만 하게 했고, 죄수들은 호랑이 우리에 던져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아내가 이 소원을 이루자 그는 즉시 누군가에게 샤오한자의 밧줄을 풀라고 명령했고, 두 사람이 그를 업고 높이가 2피트가 넘는 호랑이 울타리 벽에서 그를 던졌습니다. 어린 소년은 땅에서 일어나 호랑이인 것을 보고 아무 말도 없이 한쪽 다리를 타고 "이건 누구의 큰 고양이냐? 그냥 타면 안 될까?"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타고 있던 호랑이는 정말 온순했고, 샤오한자에게 호랑이를 태운 후 호랑이 원을 따라 도망갔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17~8번 연속으로 샤오한자가 "그만! 그만! 배고파요"라고 소리칠 때까지 샤오한자는 호랑이 몸에서 떨어졌지만 호랑이는 겁에 질려 벽에 숨었습니다. . 현 행정관과 그의 아내는 호랑이가 샤오한자의 말을 듣고 샤오한자가 호랑이를 큰 고양이로만 대하는 것을 보고 샤오한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청사 원고"와 일부 고대 서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종이 유비의 다섯 호랑이 장군으로,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동물의 언어도 이해한다고 합니다.
의술사 손사묘(孫simiao)는 호랑이의 언어를 알았다고 한다. 한번은 의술을 하러 나갔다가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고 꼼짝도 못하고 물러설 수도 없어서 호랑이에게 “나한테 부탁할 게 있소?”라고 말하자 호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 현자는 앞으로 나아와 호랑이의 목에 뼈가 박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Sun Simiao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가면 곧 돌아올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도시에 가서 대장간을 발견하고 "호랑이 버팀대"를 만들어 호랑이 입에 채우고 잡아 당겼습니다. 한 번에 뼈 박차를 빼십시오. 나중에 호랑이는 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종종 그를 데리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의사가 쇠고리를 들고 휘두르며 걷는 모습을 보고 그를 '유명한 의사'로 여겼는데, 이것이 의술사 손사묘가 전수한 '호호자'라고 한다. - 이 의사는 의술이 뛰어나다는 뜻이고 나는 호랑이를 치료한 경험이 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 생명의 법칙을 존중
겨울이면 장백산은 두꺼운 눈으로 뒤덮인다. 모든 새와 짐승은 숨겨져 있었고, 동물들은 멸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냥꾼들은 생존을 위해 조상들이 대대로 자연을 관찰하면서 먹이에 대한 이해를 정리하고, 다양한 사냥 방법을 채택해 왔다. 매우 중요한 측면은 동물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Jin Xuetian이 동물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모두 데이터 사진입니다)
금설천이 서술한 '행복'의 여러 면모는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동물의 심리를 분석하고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는 매우 중요하고 귀중하며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Jin Xuetian은 늦겨울에 호랑이가 "루! 루!"라고 포효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면 동반자를 잃은 외로운 호랑이라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호랑이의 대부분은 수컷 호랑이이며, 보통 밧줄을 사용하여 잡는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조상들이 사냥을 하고 돌아올 때, 특히 겨울에 종종 손에 올가미를 끼고 썰매를 타고 죽은 호랑이 주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
오늘날 호랑이를 가두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행복』은 호랑이를 향한 사람들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많은 동물들의 본성을 묘사한다. 사냥꾼의 춤에는 "구르기" 동작이 있습니다. 즉, 사냥꾼이 썰매를 빙빙 돌고 때로는 뒤집어 땅에 쓰러지고 구르며 한동안 몸부림치다가 뛰어올랐다가 다시 뛰어오르고 다시 "구르는" 동작이 있습니다. . "압록강 삼백년"에 실린 도면 선생의 기록에 따르면, 호랑이는 매우 유치하고 소심한 면모를 갖고 있어 사람들이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실이라고 느끼게 합니다. 사실, 모든 동물은 인간을 두려워하며, 많은 동물은 사람이 만지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는 데 결코 앞장서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생태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자연보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생태는 자연의 본성이며, 인간과 자연의 '인간과 자연의 조화'이기도 한 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조보명은 한때 기자들에게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험준하고 가파른 장백산길에서 달라호(유명한 장백산 도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달라이는 "나는 어둠 속을 걷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는 구리 손과 쇠못을 가지고 있고, 7개의 꼬챙이와 8개의 금강을 가지고 있으며, 사방에서 빛나는 불룡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날 이 진언을 외우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신(호랑이)이 당신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룡은 용의 빛나는 두 눈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호랑이의 눈을 가리킨다. 그 눈은 밤에 두 개의 등불처럼 빛나며 사방을 비추어 밤 여행자의 안전을 지켜준다.
사실 여기에는 두 가지 개념이 언급되어 있는데, 하나는 호랑이 자체가 산에서 가장 큰 동물이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동물이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호랑이를 포함한 모든 동물은 사람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이는 원시 상태의 자연의 선함을 반영합니다. 동시에 사람들이 동물에게 선을 행하면 동물도 사람에게 선을 행할 것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인간의 좋은 희망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평화는 자연도 보호한다. - 이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중요한 개념이다.
삶과 삶 사이의 큰 사랑, 보살핌, 감시
장백산지역에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문화내용이 풍부하고, 독특한 다양성과 민속풍속의 기초가 깊다. 전설에 따르면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어렸을 때 명나라 장군 이승량을 피해 장백산으로 도망쳤는데, 도중에 여진 8명을 만나 의형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막내였는데 사람들이 그를 라오가오라고 불렀습니다. 모두가 함께 인삼을 캐러 산에 갔으나 며칠 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인삼은 캐지 않았다). 어느 날 밤, 호랑이 한 마리가 오두막집 문으로 다가와 머리에 말했다. "이건 사람을 잡아서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야.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다들 모자를 하나씩 내던져. 호랑이가 누가 고르든 간에." 모자를 쓰고 나가서 그를 따라올 것이다." 호랑이야, 가자." 호랑이는 모자를 던질 때까지 노인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호랑이는 노인과 노인이 나오자마자 그것을 집어 들고 떠났습니다. 어린 소년의 모자가 버려졌습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샤오한자와 타이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샤오한자를 먹지 않고 인삼이 자라는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다음 날 소한자가 돌아와 모두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인삼을 많이 캐서 비싼 값에 팔았고, 그 결과 병사와 말을 모집해 천하를 정복하고 정치 세력을 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만주족은 호랑이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Jin Xuetian이 동물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모두 데이터 사진입니다)
산과 숲에 사는 사람들은 호랑이를 존경하며 그 기원을 누르하치(Nurhaci) 전설에서 찾아낸다. 효과. . 민속문화의 강력한 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산신인 호랑이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보호하며, 그것이 거대한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장백산 일대에서는 사람들이 나가서 거두어 거두거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려면 근처 나무에 호랑이 코와 눈을 새기고 나무에 붉은 천을 묶어 제사를 지내야 한다. 산신님., 이곳을 지나가는 다른 사냥꾼, 벌목꾼, 채집인들도 멈춰서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이는 자연에 주어진 친절에 대한 보상, 즉 인간이 감사할 줄 아는 삶의 질이라고 믿어집니다.
길림성 장백산노보두제와 범절은 예로부터 장백산지역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해 온 귀중한 실천이며 우리의 귀중한 자연유산이자 력사유산이며 문화유산이다. 청나라 이후 청나라 정부가 자체 시스템 구축에 채택한 민족 및 민속 문화 개념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 있으며, 특히 청나라 순치 시대(1644)에 출판된 『대수라지전전서』( 진은휘 등이 정리) 에는 장백산의 자연과 동물 보호에 대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이 중요한 역사적 문서는 미국의 옐로스톤 공원 보호법보다 218년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오랫동안 길림성 인민들이 법과 규약으로 통치해 왔으며 이는 인민 생존의 도덕적 기초에 깊이 박혀 있는 큰 문화적 이념이다.
조보명(曹寶命)은 동북호표범공원의 건립은 역사문화적 기억을 간직한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부르고 있다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생태 이민자들이 가져오는 문화적 기억, 즉 소중한 자연적 기억, 역사적 기억, 문화적 기억의 상실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 관점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우리의 자연생태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동북호표범공원을 확정함에 있어서 중국 동북지역 동물의 생태적, 문화적 기억을 보존하는 사업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인류문화유산의 중요한 범주이자 유형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장백산 사람들은 아직도 자연생태보호에 대한 심오한 개념을 많이 물려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숲에 들어가면 피곤할 때 나무기둥에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산신(호랑이)과 늙은 지도자(산림의 조상)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이 나무기둥을 특별히 공경해야 하며, 그 위에 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소변을 보거나 욕을 해서도 안 되고, 산신을 어지럽히고 더럽힐까 두려워서 그 주위를 돌아다녀야 합니다. 오늘의 알림 사람들: 생명과 자연에는 따라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도끼가 돌면 '산에서 나온다'는 뜻, 돌에 부딪히면 '마오'가 돌 때문에 물린다는 뜻(죽음의 소리와 비슷), 배에서 생선을 먹을 때 송화강, 압록강, 두만강에서 이 국수를 먹고 저 국수를 먹으려고 뒤집어서 먹고 싶을 때 "뒤집어"라고 할 수 없고 "스와이프"라고 하는데... 에 사실, 이러한 많은 금기는 인간의 삶과 생산 활동, 자연에 대한 존중을 일깨워줌으로써 사람들이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원활하고 상서롭게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과 삶의 모든 관습은 그 존재에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지켜왔고, 자연도 인간에게 풍요롭고 아름다운 환경과 생태를 돌려주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삶이 잊지 않는 위대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연에서 어떤 생명도 인간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죽음으로부터의 좁은 탈출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연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자신도 보호하는 것이며, 자연생명을 찬양하는 것은 인간존재의 질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머나먼 자장가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늑대가 온다, 호랑이가 온다
늙은 곰이 등에 북을 메고 왔어요.
자기야, 이제 자러 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갈 것입니다 ...
과거의 아이들은 대부분 '호랑이엄마'의 노래를 들으며 잠들었지만,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의 삶으로 돌아와 사람들이 동화 속 자연의 품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백호랑이의 포효, 용의 포효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생생함을 되새겨보세요.
후원: 길림성정부총국, 동북호표범국가공원관리국, 길림성임업부,
공동주관: 국가임업국, 동북호표범감시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