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45-49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을 목격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자 그 중 일부가 자신들의 지도부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렸고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할지 의논을 하였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항상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것은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귀로 듣게 하시고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눈으로 보게 하시려는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 기적에 대해 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하는 내용이다.
45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예루살렘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다. 이들 예루살렘 주민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이다. 대부분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본래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이었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목격하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 편에서 보면 배신자들인 셈이다.
46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가 하신 일을 그들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유대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이라는 말을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바꾸어가며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유대 사람들이라는 말과 바리새파 사람들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란 대제사장들과 함께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던 율법학자인 바리새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여기서 바리새파 사람들이란 산헤드린 공회 안에서 가장 열정적인 정통보수그룹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인 대제사장들이 함께 나올 때는 예외없이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는 바리새파 지도부를 말한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에게 알렸다는 것은 마르다 가족이 바리새파 사람들이었고 그 친척들인 조문객들도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이들 중 일부가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기에 자신들의 지도층에게 가서 알린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란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일이다. 이들은 함께 간 예루살렘 사람들 대부분이 바리새파를 배신하고 예수님 편이 되었다는 것도 알렸을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기적이 자신들이 속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바리새파는 평민 계급이었지만 귀족계급인 사두개파를 제치고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지배층이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의 지배층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면서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보다 회당에서 율법을 배우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였기 때문이다.
47절은 “그래서” 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부분이 예수님 편으로 돌아섰고 그 중 몇 명만이 빠져 나와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렸으므로 예루살렘에는 비상이 걸린 것이다. 바리새파 입장에서 보면 다 예수께 사로잡혔고 그 중 몇 명만이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와 그 위기를 알린 것이다. 문제는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렸다는 것만이 아니다. 조문을 갔던 많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유대교 지도자들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데 있다. 그래서 47절 앞부분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공의회를 소집하여 말하였다” 라고 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던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 이 문제 때문에 급히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본래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앙숙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제사장 가문으로 전통적인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계속 지키려 했다. 반면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귀족들은 아니지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통해 실질적으로 지도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스라엘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다투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다음에 나오는 48절을 보면 만약 이대로 그를 내버려 두면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 까지도 다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편이던 일반 백성들과 심지어는 바리새파까지 모두 다 예수님편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지도권이 예수님께 송두리째 넘어가고 자신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될 상황에 놓이자 이들은 대적인 사두개파와 함께 연합한 것이다.
47절 끝부분에서 보고를 받은 바리새파 지도부들이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해서 한 말은 “이 사람이 표징을 많이 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는 것이다. 원어의 뜻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라는 뜻이다. 답은 아무것도 없다 이다.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고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12:19절에 “너희가 하는 일이 쓸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라고 나온다. 분명히 자기들 편인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까지 예수님편으로 넘어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을 빼앗기는 것 말고는 아무 대책도 없다는 뜻이다.
48절에서는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 라고 했다. 따라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주목하는 문제는 자기 사람들을 다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지 죽은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다. 저들은 그대로 두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것이라며 두려워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증거를 보고 들었다면 공회원들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로마 사람들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로마 사람들은 자기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다. 대제사장도 로마인들이 세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웠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로마인들을 두려워한 것이다. 공회원들이 두려워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구약에 증거된 메시야라고 믿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모든 지배세력들을 몰아내고 강력한 이스라엘 제국을 이루어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었다. 예수를 중심으로 반로마 독립투쟁이 일어나게 되면 로마인들이 땅과 민족을 다 빼앗아 가게 될 것이라며 염려하고 있다. 땅과 민족이란 원어에서 “우리의 장소와 나라” 라는 뜻이다. 장소란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거룩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고 나라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의 터전인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밥줄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다 죽이고 잡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전은 자신들의 장소가 아니고 하나님의 장소였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의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저들은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신들이 차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오직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성전과 백성들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성전과 백성들을 이용해서 누리던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적 지위를 빼앗길까 염려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빼앗길까 염려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9절에 보면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걱정만 하고 있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보고 답답했던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앞에 나선 것이다. 본래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었다. 그런데 유대인인 요한이 그걸 모르고 “그 해의 대제사장” 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요한은 대제사장이 로마의 꼭둑각시가 되어 언제 짤릴지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조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지 나흘이 된 사람을 살리는 것을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행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것을 바리새파 지도부들도 모두 다 안다. 그렇다면 저들도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사실 하나님 보다는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백성들을 가르치고 통제하던 권세를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세를 계속 지키려고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될 상황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은 앞으로 죽여야겠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