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멀리는 삼형제봉, 촛대봉, 가리봉
白雲有起滅 흰 구름 일어 사라지나
靑山無改時 청산은 바뀔 때가 없다
變遷非所貴 변하는 게 좋은 것이 아니라
特立斯爲奇 우뚝 선 그 모습이 특별하도다
―― 순암 안정복(順菴 安鼎福, 1712~1791), 「구름과 산을 읊다(雲山吟)」
▶ 산행일시 : 2020년 9월 6일(일), 흐림, 비, 안개
▶ 산행인원 : 4명(광인, 캐이, 두루, 악수)
▶ 산행시간 : 9시간 14분
▶ 산행거리 : 도상 11.2km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신남 가서, 택시 타고 매고개로 감
▶ 올 때 : 정자리 길령골에서 택시 불러 타고 신남 와서, 직통버스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00 - 홍천터미널(홍천터미널에서 08 : 10 출발)
08 : 40 - 신남터미널
09 : 00 - 매고개, 산행시작
09 : 38 - 전망바위
10 : 16 - 수리봉(△703.3m)
11 : 40 - 721.5m봉
12 : 06 ~ 12 : 13 - 점심, 727.7m봉
13 : 50 - 862.8m봉
14 : 16 - 856.0m봉
14 : 40 - 망태봉 갈림길
14 : 57 - △833.5m봉
15 : 20 - 764.4m봉
16 : 12 - 868.0m봉
17 : 17 - 기영산(△944.9m)
17 : 50 - 길령고개
18 : 14 - 길령골, 산행종료
19 : 10 ~ 20 : 16 - 신남, 저녁
22 : 02 - 동서울터미널, 해산
1-1. 산행지도(수리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어론 1/25,000)
옛날 지형도라 최근의 지형도와는 고도 표시가 약간씩 차이가 난다.
1-2. 산행지도(윗망태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어론 1/25,000)
1-3. 산행지도(기영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어론 1/25,000)
▶ 수리봉(△703.3m)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눈과 귀에 익은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 1840~1924)의 ‘청춘(Youth)’이란
시의 첫 부분이다. 나 역시 아직은 산에 관한 한 청춘이고 싶은데 캄캄한 밤에 얼핏 잠이 깨
고 비가 온다는 먼 산에 갈 일을 생각하면 전에 없이 심란해지니 열정이 식어가나 보다. 생각
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차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한다. 신남 가는 07시발 첫차다.
승객은 불과 열댓 명이다. 버스는 홍천까지 서울양양고속도를 달려 1시간이 걸린다. 예전에
국도를 달릴 때보다 20분이 덜 걸린다. 이후는 국도로 간다. 차창 밖 산천경개 구경한다. 멀
리 공작산, 운무산 등은 ‘흰 구름이 일어 사라지는’ 기산(奇山)이고, 소양호는 대해를 방불케
한다. 거의 만수위다. 소양호의 이렇듯 만수는 처음 본다.
신남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택시부터 수배한다. 신남에 두 대 있다는 택시 중 그 한 대가 오는
동안 등산화 끈 조이고 비 올 것에 대비하여 배낭덮개 씌우는 등 산행준비를 마친다. 광인 님
이 수년래 단골손님인 택시기사님이 왔다. 기사님은 목적지인 매고개를 대번에 알아듣는다.
우각천을 부평교(富坪橋)로 건너 바로 매고개다.
수리봉이 명산으로 발돋움했다. 생태숲 탐방로를 개설했다. 안내도 그려놓고 목재계단과 핸
드레일을 설치했다. 거리 1.65km, 소요시간 80분. 오지산행에서는 이 길을 11년 전 봄날에
갔었다. 그때는 탐방로가 생기기 전인 인적 드문 능선이었다. 13명이 갔었다. 대장 대간거사,
악수, 더산, 캐이, 가난한영혼, 여울, 바람부리, 메아리, 신가이버, 솔개, 해마, 영희언니, 상고대
봄날 그때, 시인 강옥구(姜玉求, 1940~2000)의 ‘그 고움만 보았네’를 보며 갔다.
산보하다
한 송이 들꽃을
보았네.
이름을 모르기에
그 고움만
보았네.
첫발자국부터 가파르다. 목재계단 길이라 해서 가파름이 수그러든 것이 아니다. 위 계단이
머리에 받칠 듯 엎드려 오른다. 금방 숨이 찬다. 가쁜 숨을 돌릴 겸 오르다말고 뒤돌아보는
육팔이고지 아래 소양호가 온통 황토물이다. 고랭지채소 밭 혹은 태양광 발전소에서 흘러나
오는 황톳물이 아닐까 짐작한다. 긴 한 피치 38분 걸려 전망바위다. 가리산이 등대다. 가리산
을 기준하여 대룡산 녹두봉, 바위산, 사명산을 가늠한다.
다시 곧추선 오르막을 한 차례 오르면 되똑한 암봉이 나온다. 그 위에 오르면 또 다른 조망이
트일까 들렀지만 신통치 않다. 등로는 암봉 밑을 돌아간다. 가을의 전령사인 구절초가 하얀
꽃술을 흔들며 반기는 등로다. 헬기장 지나고 수리봉 정상이다. 삼각점은 ‘어론 410’이다. 발
로 수렴 걷어 대암산을 하늘금으로 본다.
2. 매고개에서 수리봉 가는 초입
3. 멀리는 가운데는 가리산
4. 멀리 왼쪽은 가리산
5. 중간 오른쪽은 망태봉
6. 멀리 가운데는 대암산
7. 멀리 가운데는 안산과 귀때기청봉
▶ 기영산(△944.9m)
수리봉에서 계속 동진하는 길이 다듬어졌을까? 여러 눈으로 인적을 찾는다. 북사면으로 무
명의 표지기 한 장을 앞세운 흐릿한 인적이 보인다. 인적 꼭 붙들고 살금살금 내린다. 캐이
님도 나도 마찬가지다. 11년 그때 여기서 혼쭐이 났던 기억만 또렷하다. 좁고 비스듬한 테라
스로 오른쪽 가파른 슬랩을 트래버스 한다. 아래는 깊은 협곡이다.
어렵사리 얕은 안부로 기어오르고 암봉을 오른다. 설악산 쪽으로 조망이 살짝 트인다. 안산,
귀때기청봉, 삼형제봉, 촛대봉, 가리봉이 반갑다. 이어 뚝 떨어진 안부. 왼쪽의 얕은 골짜기
로 핸드레일 밧줄이 달려 있다. 설마 하산 길이려고. 낙엽 헤친 흐릿한 인적은 직등한다. 핸
드레일 밧줄은 하산 길이 아니라 등로 유도선이다. 따라간다. 밧줄은 바위 슬랩 중턱을 가로
지른다.
슬랩은 북사면이라서 축축하여 여간 미끄럽지 않다. 땀난다.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게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자 갈림길 안부. 험로는 끝났다. 휴식하며 여태 두근거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바로 앞의 721.5m봉이 아까부터 첨봉이었다. 슬랩이나 암릉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박차 오른다. 능선에 오르면 소슬한 가을바람이 분다.
선두로 나선 나에게 점심자리 물색하라는 주문이 밀려들고, 727.7m봉 직전 노송 아래 공터
명당이 나와 자리 잡는다. 산정에 부는 소슬바람이 금방 춥다. 셰프인 캐이 님이 버너 불 피
워 오리훈제 덥히고, 넙죽이 오뎅과 라면을 차례로 끓인다. 탁주보다는 독한 마가목주가 적
당하다. 마가주목 얹은 커피로 입가심한다. 얼근하여 일어난다.
술기운이었을까, 이때만 해도 저울산(△985.1m)과 먹구너미고개는 절대 놓지 않았다. 이제
는 봉봉 오르내리막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부드러운 산길이다. 사면 풀숲을 기웃거리며 가는
여유가 생겼다. 등로 주변의 아름드리 거목인 소나무가 대단한 볼거리다. 송이가 나왔을까
그 밑을 살피기도 한다. 몇 차례 출렁거려 오른 ┳자 능선 분기봉인 862.8m봉에서 오른쪽으
로 직각방향 꺾는다.
등로와 그 주변은 풀숲이다. 좌우 사면까지 누비며 간다. 그러나 빈 눈 빈 손이다. 광인 님은
주력(酒力)이 곧 주력(走力)이다. 862.8m봉을 넘고 냅다 줄달음하더니만 등로 벗어난 윗망
태봉(855.6m)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울창한 키 큰 나무숲속이라 전도를 목측하기는 어렵고
지도에 눈 박고 간다. ┳자 윗망태봉 갈림길. 오른쪽 윗망태봉까지 도상 0.5km다.
오지산행에서는 14년인 2006년 이른 봄 잔설이 깊던 날 소치분교에서 망태봉과 윗망태봉을
넘어 이곳을 왔었다. 그때 기억은 없고 기록은 남아 있다. 배낭 벗어놓고 윗망태봉을 다니러
간 광인 님을 기다리느라 잠시 서성이며 소리쳐 불러주고 간다. 일기예보에 오후 3시부터 비
가 온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활엽 숲속에서는 호우가 내린다.
어둑한 숲속 길 더듬어 △833.5m봉이다. 삼각점은 ‘어론 414, 2005 재설’이다. 길을 잃는 건
길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 아프리카 스와질리아의 속담이라고 한다. 흐릿한 인적이 그나
마 끊긴 건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서다. 잣나무 숲의 울창한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주등
로를 잡는다. 마루금을 중심으로 왼쪽 사면은 모수 소나무 몇 그루 남기고 벌목하였다.
8. 멀리 가운데는 안산
9. 오른쪽 멀리는 삼형제봉, 촛대봉, 가리봉
10. 등로 주변의 노송
11. 멀리 가운데는 가리산
12. 가는장구채
13. 윗망태봉 갈림길
비에 더하여 안개가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한다. 안개 걷히는 첩첩 산의 경치가 사뭇 비
경이라 우산 받치고 카메라를 꺼내면 그새 안개에 묻히고 만다. 키 큰 잡목 숲 헤치느니 벌목
한 사면으로 비켜 풀숲 헤친다. 속속들이 젖는다. 양말까지 젖는다. 벌컥거리는 발가락이 걸
음걸음 간지럽다. 빗물 산상샤워가 춥다. 우산 받친다.
울창한 잡목 숲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와 자욱한 안개가 암릉이나 슬랩의 험로를 대신한다.
이때쯤 내내 붙들었던 저울산과 먹구너미고개를 만장일치하여 놓아주기로 한다. 마음고생을
더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벌목 사면을 벗어나고 868.1m봉을 길게 내리는 도중 큰통골 임도
가 가깝게 보이지만 우리는 미동도 않는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비는 가늘어졌다가도 이내 굵어진다. 오르막이 긴 것으로 보아
기영산이 틀림없다. 암벽이 나오고 왼쪽 사면으로 돌아간 인적 쫓는다. 기영산은 사면 돌아
지나친 암벽 위였다. 뒤돌아간다. 암봉이다. 경점이겠는데 안개로 사방 가렸다. 새마포산악
회에서 ‘기영산, 해발 934m’이라는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삼각점은 ‘어론 416, 2005 재설’이다.
하산! 줄달음한다. 마구 헤치는 젖은 잡목 숲에 물보라가 인다. 883.5m봉을 대깍 넘고 주르
륵 미끄러지듯 내린다. 임도 고갯마루. 길령고개다. 지도에 따라서는 기영, 기령, 길령 또는
길령고개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한자쓰임은 어떠한지,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
다. 임도 왼쪽은 원대리 자작나무 숲으로 가고, 오른쪽은 정자리로 간다. 우리는 정자리로 탈
출한다.
임도 따라 산굽이 돌고 ‘마을임도’와 만난다. 마을임도가 풀숲 우거졌지만 지름길이리라. 마
을임도로 간다. 다시 산을 가는 것처럼 풀숲을 헤친다. 거목이 쓰려져 임도를 가로막고 있다.
낮은 포복하여 통과한다. 철조망 울타리와 맞닥뜨리고 철조망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자물쇠
가 채워져 있지는 않아 철조망에 손가락 넣고 밀어서 연다.
농원이 나온다. 비닐하우스 십 수 동에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농원이다. 농원 입구에 ‘들풀농
원’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농원 입구의 빈 비닐하우스에 들어간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듣는
빗발은 더욱 거세다. 차디찬 비바람 가리니 한결 낫다. 아침에 이용했던 신남택시 부르고, 택
시 기다리며 젖은 옷을 갈아입는다.
헤드라이트 켜고 달려온 택시가 그새 반갑다. 기사님의 여러 배려가 고맙다. 몸 녹이시라 히
터 틀어주고, 서울 가는 차편도 알아왔다. 신남에서 20시 10분 버스가 동서울을 직통으로 가
는 막차라고 한다. 기사님은 우리의 저녁 부탁도 들어 중국집 신남반점에 뜨듯한 국물의 짬
봉을 주문한다. 신남 가는 도중 신남 토박이인 기사님의 말씀, 예전에 정자리로 박정희 대통
령의 딸이 농활을 왔는데, 박대통령이 딸로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두메산골이더라는 얘
기를 듣고 전기를 가설했다고 한다.
소양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신남은 대처였다고 한다. 그때는 인근에 군사령부와 미군부대가
있었고, 더불어 열 대 여섯 곳의 재래 다방은 성업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방 아닌 커피 집
이 한 두 곳 있을까?
캐이 님이 세 번의 산행으로 모은 더덕이다. 그 더덕주 가득 담은 그라스를 높이 들어 오늘의
무사산행을 자축한다.
14.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 숲이 보기 좋다.
15. 비가 내리고 안개는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한다.
16. 비가 내리고 안개는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한다.
17. 기영산 주변, 가도 가도 잡목 숲이 울창한 오지다
18. 큰갓버섯, 맛있는 식용버섯이다.
첫댓글 거기 수리봉에서 굴러떨어질때, 바람부리가 붙잡아 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 수도~ 바람부리님 고마워유.
그때 그랬죠. 여러분들 부의금 낼 돈 굳었으니 그 돈으로 저녁을 푸짐하게 먹자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