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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경자 (可敬者)
시성(諡聖)·시복(諡福)이란 성덕이 높은 분이 죽으면 그 성덕을 드러내고, 모든 이가 그를 본받도록 성인(聖人)이나 복자(福者)의 품위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가경자(可敬者)란 시복을 위해 조사를 시작한 사람에게 잠정적으로 주어지는 존칭이다.
▶ 가슴 치기
이는 고백 기도를 할 때,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의 죄가 많음을 고백하면서,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하며,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동작을 말한다. 따라서 이는 우리 내심 세계의 문을 두드려 열어젖뜨리는 동작이다.
미사 때나 사사로이 기도할 때는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게 한다. 결국 자신을 일깨워 내심의 세계를 경각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으려는 동작이며, 뉘우치는 마음에 자성과 자책을 독촉하는 행위이다.
▶ 가톨릭 (Catholic天主敎)
2세기 초 스미르나의 성 이냐시오가 이 단어를 맨 처음 사용하였다. 가톨릭이라는 단어는 원래 “보편적”, “공번된”의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보편성에 대하여는 2세기 말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가 처음 정의를 내렸다. 그는 초대 교리서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이 땅에서 저 땅 끝까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까닭에, 또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을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다 포함한 교리를 가르치는 까닭에, 그리고 인간의 왕, 시민, 학자, 무식한 자 등 모든 사람을 참다운 신앙에로 이끄는 까닭에 그 이름을 가톨릭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톨릭을 천주교(天主敎)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보다 먼저 가톨릭을 전해 받은 중국에서 하느님을 천주(天主)로 부른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改新敎,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자신들과 구별하기 위해, 천주교를 ‘구교(舊敎)’라 하고, 자신들은 ‘신교(新敎)’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 감목 대리 (監牧代理)
감목은 양을 치는 목자에 비유한 주교(主敎)를 가리킨다. 그러나 정식 교구의 주교가 아닌 포교지 교구장으로서, 대목구의 대목(代牧)이나 지목구의 지목(知牧)을 말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목은 주교인 데 비해 지목은 주교가 아니다. 그러나 지목은 주교의 예우를 받으며, 주교의 복장도 할 수 있고 견진 성사나 성작 축성은 물론 예전에는 소품까지 집전할 수 있었다.
감목은 부감목(부주교로 불리는 보좌 주교)을 둘 수 있는데, 박해 등으로 갑작스런 감목의 공석을 대비하기 위해 계승권이 주어졌다. 감목 대리란 감목 대리구를 사목하는 사제를 말한다. 이 사제는 교회법상 지구장(地區長)에 해당한다.
지구장은 교구장이 교구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고, 그 지역의 수석 사제로 임명한 자이다. 그러나 포교 지역에서는 사제라 할지라도 대목이나 지목을 가리킨다. 이는 교구 창설의 준비 작업과 관련된 특전이다. 그래서 감목 대리구는 곧 교구로 승격되었다. 그런데 1956년 설정된 왜관 감목 대리구는 아직 남아 있다.
▶ 감실 (龕室)
이는 성당 안에 들어가 정면을 바라보면, 제단의 뒷면 또는 한 쪽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장(欌)을 말한다. 여기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으며, 그 표시로 빨간 등(燈)이 켜져 있다. 이를 ‘성체등(聖體燈)’이라 한다. 따라서 이 감실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기에, 누구나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혀 경배를 드려야 한다. 감실의 재료는 금이나 은으로 만들거나 도금을 하나, 현재 우리 나라에는 나무가 많다
▶ 강생 구속 (降生救贖)
이는 가톨릭 사대 교리(四大敎理) 중의 하나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예수 그리스도),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희생 제물(犧牲祭物)로 바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심을 말한다.
▶ 개두포 (蓋頭布)
이는 사제가 미사 때 입는 여러 전례복(祭衣) 중에서 제일 먼저 착용하는 것으로, 아마포(亞痲布)로 만든 네모난 보자기 형태의 천이다. 이는 옛 로마인들의 목도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양쪽 끝에 두 개의 끈이 달려 있어 사제가 어깨 위로 걸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제는 이를 착용할 때 “주님, 제 머리에 투구를 씌우시어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 견진 성사 (堅振聖事)
1. 의의와 역사: 견진 성사는 칠성사 중 세례 성사 다음으로 받게 되는 성사(사도 19, 4-6)로, 주님과의 일치는 물론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게 한다. 구약 시대에는 안수(按手)와 도유(塗油)가 행해졌다. 당시 안수는 하느님의 약속을 실천하거나 성령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행해졌었다. 도유 역시 축성(祝聖)의 행위이며 성령을 받음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이사악의 안수로 야곱이 하느님과 약속의 계승자가 되었으며, 이 약속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창세 12, 3)이었다. 또한 사무엘에 의해 사울이 도유되었으며, 다윗 왕이 사무엘을 성유로 축성했을 때, 성령이 그를 뒤덮었다(1사무 16, 13).
2. 견진과 직무: 하느님 백성은 견진 성사로 그리스도의 예언직(豫言職)에 참여한다. 그래서 견진으로 세례 때 받은 은혜가 더욱 굳게 나타나, 진리를 잘 알아듣고 이를 전할 힘과 용기도 받게 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司祭職)에도 참여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에 참여한다(1베드 2, 9). 그런데 여기의 사제직은 성직자의 사제직과 구분하여 보편 사제직(普遍司祭職)이라고 한다.
진정한 대사제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미사와 함께 성사 생활을 통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리고 견진 성사로 그리스도의 왕직(王職)에 참여하게 된다. 왕직은 이웃에 대한 봉사를 말한다. 따라서 견진 성사를 받은 우리는 세상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겸손되이 희생적 봉사를 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3. 견진과 성령의 은혜: 성령의 은혜는 우리가 행하는 일상 생활 중에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5, 22-23)에서 성령의 은총(열매), 즉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온유, 착함, 성실, 절제 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거스르는 법은 없다고 하였다.
이 은혜는 신자다운 생활을 묘사한 것이며, 숨은 성실이요 친절이다. 또한 묵묵하고 겸손한 의무 수행이며, 믿음의 신뢰이고 유혹에 대적하는 인내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도와 주는 친절이요 동정이며, 고요한 기도 중의 열렬한 마음이고 양심의 희열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의 일상적인 은혜 중 신령한 언어(方言), 예언, 치유 등은 초대 교회보다 드물다. 이는 종교적 관습의 차이나 혹은 교회 기초를 놓는 데 필요했던 것들이 완성되어 가면서, 초대 교회 때보다 그 필요성이 줄어든 탓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의 결실은 일상적이고 알기 쉬우며 교훈적이고 유익하며 봉사적인 은혜들이다(2고린 13, 13).
4. 성령 칠은(聖靈七恩): 우리는 견진 성사로 일상적인 은혜 외에 성령 칠은을 받는다. 이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를 말하며 반(反)그리스도적 사조에 대항하고 세상의 불의와 싸워 승리를 얻고, 하느님 왕국 건설을 위해 주어진다. 이 은혜는 지혜(슬기), 통찰(깨달음), 의견(일깨움), 용기(굳셈), 지식(앎), 공경(받듦), 경외(두려워함) 등이다.
이는 사랑의 실천과 관계를 맺으며, 용기는 주님을 향하는 마음과 관련되어 희망과 합하여 큰 힘을 내고, 나머지는 믿음과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일곱 가지 은혜의 효력은 다음과 같다.
슬기는 구원을 얻기 위한 모든 사정을 파고들어 연구케 하며 이에 맛들이게 한다. 그리고 통찰은 우리의 지력이 미치는 데까지 믿음의 오묘한 이치를 믿을 만한 것으로 판단하는 효과를 내게 한다. 의견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분별케 하며, 용기는 하느님의 도움을 한층 더 많이 받게 하고, 악을 대적하여 순교까지도 하게 한다. 또한 지식은 영생을 얻기 위해 믿을 것과 믿지 말 것을 분별케 한다. 그리고 공경은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하게 하며, 경외는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질까 봐 걱정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5. 성령 특은(聖靈特恩): 지금도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도 공동 이익을 위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한 바(1고린 12, 7-10) 있지만, 특은은 개인보다 단체를 위해 주어진다. 그런데 이 성령의 특별한 은총(特恩, Charisma)은 보다 두드러진 하느님의 은혜이다.
예를 들어 예외적인 사목적 능력, 밝은 지혜, 현명한 통찰력, 뛰어난 예술 활동, 훌륭한 교육, 탁월한 일생 등이 그것이다. 종종 이러한 은혜는 개인보다 단체나 대중에게 활기를 준다. 이는 공동체의 중요성과 단체에 속한 개인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자각케 한다. → 카리스마
6. 견진 성사의 전례: 견진 성사는 주교나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사제가 행한다. 그리고 사제는 임종자에 한하여 견진을 집행할 수 있다. 전례 중 주교는 먼저 손을 펴 들고 성령 칠은을 받도록 기도한 다음,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도유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항상 머무르시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증거할 용기도 주시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주교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축성된 성유를 이마에 십자형으로 바를 때, “(아무)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때 견진자는 “아멘” 하고 답해야 한다. 또한 이어서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면, 견진자는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답한다.
▶ 고해 성사 (告解聖事)
1. 의의: 고해 성사란 칠성사 중 하나로, 세례 성사를 받은 신자로 하여금 세례 받은 이후의 죄에 대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받으며, 교회와 화해하도록 하는 성사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갖고 있기에, 그분을 대신해서 교회의 대표인 사제가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자를 용서한다.
2. 제정: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2-23)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고해 성사를 제정하셨다.
그 후 이 사죄권(赦罪權)은 사도를 거쳐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와 사제들에게 전해졌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 판단하고 용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마태 18, 18), 사제는 그 교회의 대표로서 그 권한을 위임받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화해의 임무를 주셨고(2고린 5, 18; 사도 2, 38), 성령도 죄를 사해 주셨으며, 기도와 극기와 선행 등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도 있지만, 죄를 용서할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마태 10, 1).
3. 기원: 구약 시대에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벌하기 전에 하느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구세주를 약속하셨고, 니느웨 사람들이 속죄하자 벌을 거두시었다. 또한 당시 백성들은 죄를 뉘우치고 재계(齋戒)와 고행을 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았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공식적으로 통회와 함께 어린양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는 예식을 행하였다.
신약 시대에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마태 3, 2)고 외쳤고, 사도 요한은 죄를 용서해 주는 분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였다(요한 1, 29-30). 그리고 예수께서는 죄를 용서하셨고(루가 7, 48), 죄인의 회개는 하느님 앞에 즐거움(루가 15, 3-10)이었다. 또한 그리스도는 사죄권을 강조(마르 2, 1-12)하셨고, 그 전제 조건으로 통회와 다시는 범죄하지 않을 결심을 요구하셨다.
4. 발전: 3세기 이전까지는 그 형식과 시행 방법이 명백하지 않았으나, 그 후부터는 참회의 규율이 나타났다. 6세기 성 아우구스티노는 세 가지로 참회의 형식을 구분하였다. 즉 세례로 새로 나는 형식, 가슴을 치는 형식, 중죄를 공적으로 고백하는 형식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엄격하여 예외가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6세기 이후에는 사적 고백(私的告白), 즉 비밀 고백(秘密告白)의 형식이 등장하였다. 그 후 이 형식은 12세기에 쇄신되었고, 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는 확실한 규정을 세웠다.
5. 고해 성사의 특징: 양심 안에 있는 죄책감을 고백하고, 온전히 비밀이 지켜져야 하며, 고백과 용서가 윤리적인 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성사를 죽은 이의 성사라고 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죄의 상태(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다시 은총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해 성사는 새로운 세례 성사와 같다. 세례와 같이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며,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에 다시 결합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성사를 1년에 2번 이상 보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판공 성사(辦功聖事)라고 한다(1요한 1, 9).
6. 고해 성사의 요소: 1) 성찰(省察) - 고해 성사를 보기 전에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잠잠히 살펴 알아내는 것. 2) 통회(痛悔) - 성찰로 알아낸 죄를 뉘우치는 것. 3) 정개(定改) -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 4) 고백(告白) - 알아낸 잘못을 겸손되이 고해 사제 앞에서 밝히는 것. 5) 보속(補贖) - 죄를 사해 주는 고해 사제가 죄의 고백을 들은 다음 정해 주는 기도나 선행, 희생 등을 말한다. 이는 잘못에 대한 벌이기에 고해소 밖에 나와 반드시 해야 한다.
7. 공동 고백(共同告白)과 일괄 사죄(一括赦罪): 형식은 개별 고백과 개별 사죄와 같으나, 여러 참회자들을 화해시키는 예식이다. 여기서는 여러 참회자들이 모여 공동으로 참회하는 공동 참회(共同懺悔)가 강조되므로, 사목자는 철저히 준비시켜야 한다. 그리고 공동 고백을 한 후, 대죄는 마땅히 적당한 때(1년 이내)에 개별적으로 고백할 결심을 세우게 하고 일괄 사죄(전에는 共同赦罪라 함) 해야 한다.
이 형식은 죽음이 임박한 경우 외에, 신자들과 고해 사제의 수 등을 고려하여 한정된 시간 안에 개별 고백을 다 들을 수 없어, 고백자들이 자기 탓 없이 오랫동안 고해 성사의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되거나, 영성체를 할 수 없게 되는 중대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 행한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권한은 교구장 주교에게 있다.
8. 고해 성사와 신앙 생활: 이 성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보호에 대한 신뢰를 가득 차게 하고, 항상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마음에 평화를 얻도록 한다. 그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준비다. 그래서 관습이나 형식으로 교회법을 이행하는 수동적인 면에서 먼저 탈피해야 한다.
이 성사를 잘 볼 때, 하느님과 이웃과 일치하고, 공동체 안에서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핑계를 삼가고 사제는 생명을 다해 비밀을 지킨다는 점을 신뢰하여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이때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받고 신앙이 날로 깊어 갈 것이다(로마 6, 22 참조).
▶ 공복재 (空腹齋)
공복재란 신자들이 교회의 규정에 따라 영성체하기 전, 1시간 동안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성체에 대한 존경 때문이며, 초세기부터 있어 온 관습이다. 그러다가 중세기에 법적으로 이를 규정하였으며, 오늘날에는 크게 완화되었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는 꼭 지켜야 한다. 모든 음식물을 한 시간 전부터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맹물(자연수), 약(藥) 등은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다. 또한 고령자나 병자, 간병인, 2회 이상 연속으로 미사를 집전해야 하는 사제의 경우는 예외일 수 있다(교회법 919조).
▶ 공소 (公所)
이는 본당(本堂)의 성당(聖堂)보다 작은 규모의 예배소가 있는 곳으로, 본당에 소속은 되어 있으나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소규모의 작은 교회를 말한다. 이곳은 미사가 집전되지 않으므로 본당 신부의 위임을 받은 평신자(공소 회장, 선교사)가 공소 예절과 신심 행사를 주관한다. 한국 교회에서는 사제가 정규적으로 1년에 두 번 이상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정기적으로 판공 성사를 주도록 하고 있다.
▶ 관면 (寬免)
관면이란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 일시적으로 교회법 규정의 준수 의무에서 자유롭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특별법에 의거하여 영원히 법규정으로부터 해방되는 특전(特典)과는 다르다. 교황은 최고의 입법자로서 모든 교회법에 대해 관면할 수 있다.
주교는 교구 내 신자들에게 관면할 수 있으나, 교황에게 유보된 사항은 인가를 받아야 한다. 본당 주임 사제는 축일이나 재일(금식재, 금육재)에 관해 관면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가족에 한정되고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 교적 (敎籍)
교적은 신자 각자의 인적 사항 및 신앙 생활에 대한 것이 기록된 신자 가족 명부이다. 이는 세대별로 작성되며 타본당이나 교구로 이사할 때(6개월 이상 거주)는 본당 신부에게 알리고 교적을 옮겨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현지 본당 사무실에 알려야 하며, 관할 본당 신부도 찾아 인사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일 것이다.
▶ 교중 미사 (敎中Missa)
이는 교우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를 가진 미사를 말하며, 교구장이나 주임 사제는 미사 예물 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해 봉헌해야 하는 미사이다. 일 년 중 모든 주일과 몇 개의 의무 축일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교회에서는 1985년 추계 주교 회의에서 교중 미사에 관한 규정을 정하여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여기서 정한 의무 축일은 모든 주일, 4대 축일 그리고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등이다.
▶ 구교 (舊敎)
구교(舊敎)란 지금 잘 사용되지 않지만, 두 가지의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신약 시대 하느님 백성과 구별하기 위한 구약 시대 하느님 백성을 일컫고(갈라 3, 16-18. 28-29),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개신교(프로테스탄트)를 신교(新敎)라고 표현하는 반면, 가톨릭을 구교라고 일컬어 온 것이다.
그리고 구교우(舊敎友)란 대대로 내려오는 천주교 집안의 신자를 새로 영세한 신자와 구별하여 일컫는 말이나, 또한 구교우에 대칭되는 말로는 신문 교우(新問敎友)라 하여 가끔은 세례 받기를 원하는 자(豫備信者)도 지칭하였다.
▶ 구세주 (救世主)
구세주란 세상을 구제하는 자, 인류를 구원하는 자를 일컫는다. 이는 구체적으로 세상을 불행과 고통, 죄악과 파멸의 상태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말한다. 구약 시대 구세주 상(像)은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이민족의 압제와 수탈로부터 해방시키는 메시아(Messiah)였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구세주 상은 인류를 해방시키고 구원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의로운 자를 세우시고 악한 자를 벌하시는 심판자(審判者)였다. 오늘날은 인간이 악과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노력은 물론 절대자(救世主)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가 바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구원 경륜 (救援經綸)
경륜(經綸)이란 일정한 포부 아래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일 또는 그 계획을 말한다. 따라서 구원 경륜이란 천지 창조 이전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의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구원의 계획(에페 3, 9; 1고린 2, 7-8)을 말한다. 이 계획은 인간의 저항과 방해에도 인간 역사 속에서, 이미 하느님이 정하신 목적대로 실현되어 가고 있다(창세 12, 1-3). 그 실현은 마침내 강생하신 말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us聖歌)
이는 7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1세 때 형성된 것으로, 그때까지 구전되어 오던 성가를 집대성한 교회의 전례 성가이다. 여기서 전례 성가의 전통이 수립되었고, 중세 음악 교육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개혁 작업이 진행되어 왔으며, 19세기에 이르러 중세기 선율(旋律)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리고리오 성가의 부흥이 일어났다.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교령을 통해 이 성가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였다.
▶ 그리스도 왕 대축일 (王 大祝日)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중의 왕이심을 경축하고, 세례로 그리스도의 왕직(王職)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온 세상이 그리스도 왕의 통치로 새롭게 되기를 기원하는 축일이다(로마 12, 5). 이 축일은 연중 마지막 주일로서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제정하였다
▶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聖體聖血大祝日)
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성체 성사의 제정과 그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이다. 원래 이 축일은 삼위 일체 대축일 후 첫 번째 목요일이나, 한국에서는 첫 번째 주일로 정하였다. 성체 성사는 성목요일에 제정되었지만 성주간 등 다른 예식이 있으므로, 수난을 떠나 기쁨의 성체를 축하하기 위해 주일로 정하였다.
이 축일은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에 의해 지켜지기 시작하였으며, 15세기 교황 에우제니오 4세에 의해 정식으로 인가되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7월 1일)이 따로 기념되었으나, 1970년부터는 미사 경본에 이들을 합하여 성체 성혈 대축일로 기념한다.
▶ 그리스도의 신비체 (神秘體)
교회는 크게 나누어 세속, 육신, 악마와 싸우는 순례(巡禮, 또는 鬪爭) 교회, 연옥에서 단련을 받는 정화(淨化) 교회,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福樂)을 누리는 승리(勝利) 교회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교회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모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유기체(有機體)와 같이 신비한 결합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12세기경부터 이를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라고 일컬어 왔다.
▶ 글로리아 (Gloria)
이는 라틴어로 영광(榮光)을 뜻하며, 미사 전례에서는 대영광송(大榮光誦)을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가 부른 찬미가(루가 3, 4)에서 유래하며, 이 찬미가가 ‘글로리아’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6세기경부터 로마 전례서 알렐루야나 아멘 후에 삽입되었으며, 오늘날 모든 축일과 대축일(단, 사순절, 대림절 동안은 생략)에 사용된다.
그리고 영광송(榮光誦)은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기도이다. 대영광송(글로리아)은 “하늘 높은 곳에는…”으로 시작하나, ‘소영광송(小榮光誦)’이라고도 하는 영광송은 “영광이 성부와…”로 시작한다. 이는 기도 끝에 자주 바치는 짧은 기도이며, 성삼위를 찬미하는 기도와 찬사이다.
▶ 금육재 (禁肉齋)
금식재는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아침은 먹지 않고 낮 한끼는 충분히 먹은 다음, 저녁은 요기 정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만 18세부터 60세까지 지킬 의무가 있다. 금육재는 금요일마다 육식을 금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지킬 의무가 있다.
예전에는 이를 각각 대재(大齋, 금식재)와 소재(小齋, 금육재)라고 하였다. 초대 교회에서는 엄격히 저녁 한끼만 먹되 생선, 채소, 계란에 한하였다. 그러나 차츰 완화되어 오늘날은 금식이나 금육 자체보다 희생 봉사의 정신을 많이 갖도록 하며, 자신이 즐기는 것을 금하는 등,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기도에 힘쓰도록 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1990년 재의 수요일부터 주일 파공(罷功)과 금육재 관면(寬免)을 전면 취소했다. 전에는 전교 지역으로 빈곤한 경제 사정과 노동계의 형편을 고려하여, 1966년부터 주일 파공이 교황의 인준을 받아 관면되었었다. 그리고 금육재 역시 연중 매 금요일 관면되었었고, 재의 수요일과 사순절 동안의 금요일만 지키도록 완화되었었다.
이제는 모든 주일과 의무 축일에 파공을 지켜야 하며, 금육재도 연중 모든 금요일에 지켜야 한다. 그러나 한국 주교 회의는 법 준수가 불가능할 경우, 금식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하느님 앞에 탓이 없다고 하여, 자발성을 강조한 바 있다.
▶ 꾸리아 (Curia)
원래 ‘꾸리아’는 고대 로마의 한 행정 단위였다. 그런데 중세 교회에서는 교구청을, 오늘날 로마 꾸리아는 교황청을 일컫는다. 또한 꾸리아는 레지오 마리애의 한 조직 단위이다. 이는 쁘레시디움 간부로 구성되며, 쁘레시디움을 순시 지도하고 보고도 받는다. 이 꾸리아의 상부 조직으로는 꼬미시움과 그 위에 세나뚜스가 있다.
▶ 니힐 옵스탓 (Nihil Obstat)
이는 ‘아무것도 위배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이다. 저술의 내용이 신앙이나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 교회의 가르침과 위배됨이 없음을 말한다. 이는 출판되는 서적의 앞이나 맨 뒤에 인쇄하여, 독자로 하여금 책의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됨이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 대림절 (待臨節)
1. 의의와 유래: 대림절은 구세주 탄생을 기리고, 세말의 심판을 위한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로 성탄 전 4주간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다림의 기쁨을 더욱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대림절은 교회와 신자가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준비하는 시기이다(마태 3, 3; 24, 30).
오늘날 대림의 참회적 성격이 비록 교회의 전통적 의식에 다소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겸손한 참회의 정신과 회개로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겠다.
대림절은 6세기 중엽 스페인 교회에서 5주일 지낸 일이 있으나, 교황 그레고리오(590~604년)에 의해 최초로 대림절 설교가 시작되었다. 특히 프랑스는 투르의 주교 페르페투오(490년)에 의해 성 마르티노 축일(11월 11일)로부터 성탄 전까지 매주 3일씩을 축일로 정하여 지냈었다. 그러나 명칭은 대림절이 아니라 ‘성 마르티노 40일’이었다.
그리고 대림절을 속죄의 때로 지키게 된 것은 이 축일이 유럽으로 퍼져 나가면서부터였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속죄의 성격보다 성탄 준비를 위한 축제로 지내도록 하였다. 따라서 대림 시기는 기쁜 축제였고, 그 후 13세기부터 교회도 정식으로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2. 대림절과 신자 생활: 대림절의 첫 주일은 교회력의 시작이다. 전례복의 색은 보라색이며, 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와 요한 세례자의 경고를 낭독한다. 특히 대림초를 켜 놓는데 싱싱한 사철나무 위에 4개의 초를 마련한다. 사철나무는 우리에게 내려질 싱싱한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초는 구약의 4천 년을 의미한다.
교회는 대림절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기는 교회력에서 주님의 공현과 연결된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사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며, 영원한 영광과 보상을 교회 안에서 미리 맛보도록 당신의 신비체 안에 우리를 결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때 모든 신자들을 끌어들여 최후의 승리자로 종말에 영광스럽게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영신적 준비를 시킨다. 우리는 대림절 동안 기쁨이며 위안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희망 안에 기다려야 하겠다.
▶ 대세 (代洗)
대세(代洗)는 사적(私的) 혹은 약식(略式) 세례라고 하며, 사제를 대신하여 사제 외의 사람이 약식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대세는 정식으로 사제가 세례의 집행이 불가능할 경우, 전쟁이나 박해나 사고로 위급할 경우, 또는 사제를 초청하는 사이에 죽을 위험이 있을 경우에 집행되어야 한다. 그중에 위급한 경우의 대세를 비상 세례(非常洗禮)라고 한다.
한편 대세는 임종 대세와 조건 대세가 있는데, 임종 대세(臨終代洗)는 죽을 위험이 있는 자가 받으며, 최소한 사대 교리(하느님 존재, 상선 벌악, 삼위 일체, 강생 구속)를 믿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죄를 뉘우치고,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세례를 받을 원의가 있어야 한다.
결국 대세를 받기 위해서는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 건강이 회복되면 교리 교육을 받겠다는 약속, 하느님을 믿고 미신을 끊겠다는 의사 표시 등이 있어야 한다. 대세의 예식은 성수나 깨끗한 물을 이마에 흘리며 “(아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즉시 보고 양식에 따라 해당 지역 본당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비상 세례는 매우 위급하므로 우선 대세를 주고, 임종 대세 때와 같이 회심을 갖게 하며, 차츰 상황을 보아 가며 교리도 하도록 한다.
조건 대세(條件代洗)는 의식이 없거나 사망 후 1시간 이내면 조건부 대세를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하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대세를 베푸는 자는 충분히 의식과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
▶ 도유와 성유 (塗油와 聖油)
도유(塗油)란 주교나 사제가 성사를 집행할 때, 성유(聖油)를 바르는 행위를 말한다. 기름은 인간에게 충분한 영양을 제공하고 상처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며, 기계를 윤활히 작동하게 하고, 부패를 방지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유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하느님과 연결시키며 항구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성유(聖油)는 축성 성유(크리스마 성유), 병자 성유, 예비 신자 성유(세례 성유) 세 가지가 있다. 축성 성유는 올리브 기름에 향유를 섞었으며 견진 예절이나, 주교 성품 등에 사용된다. 그리고 병자 성유는 순수 올리브 기름으로 병자 성사, 종(鐘)의 축성 등에 사용된다(야고 5, 14-15). 그리고 예비 신자 성유는 순수 올리브 기름으로 세례, 사제 성품, 제단 축성 등에 사용된다. 그런데 이 기름들은 성목요일에 사제단과 함께 주교좌 성당에서 주교가 축성한다(마르 6, 13).
▶ 독서직 (讀書職)
독서직은 부제로 서품되기 전에 수여받는 직위이다. 이는 예전에 있던 차부제품 이하의 모든 품급이 폐지되면서 새로 제정되었다. 이 독서직을 받은 사람은 말씀 전례에 사제를 도와 함께 참여한다.
▶ 뗏세라 (Tessera)
이는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문과 상징하는 그림이 인쇄된 유인물의 라틴어이다. 본래는 ‘친한 벗들끼리 또는 자손들끼리 상대편을 알아내기 위해 나누어 갖던 패(認知票)’를 의미한다. 이는 레지오 단원들에게 주어져 기도하고 단원간의 친교와 일치의 증거로 삼는다. 그리고 순서는 시작 기도, 까떼나(Catena), 마침 기도 등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에 주요 부분은 까떼나의 마니피캇(Magnificat)이다.
▶ 로만 칼라 (Roman Collar)
로만 칼라는 가톨릭 성직자가 성당 밖에서 착용하는 공식 복장이다. 이는 목에 두르는 것으로 희고 빳빳하다. 수단을 정식 복장이라고 한다면, 로만 칼라와 검은 양복은 약식 제복이라고 할 수 있다.
▶ 마니피캇 (Magnificat)
이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몸으로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 부른 찬양의 노래이다(루가 1, 46-55). 그리고 마니피캇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에서 “찬양한다”는 말에 해당한다. 이 노래는 마리아가 구세주 하느님을 찬양하고, 이스라엘에 베푸신 업적을 회상하며, 아브라함에게 예언한 하느님의 계획이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감사하는 내용이다.
▶ 모든 성인의 통공 (聖人의 通功)
1. 세 가지 교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의 교회는 세 가지의 상태가 있다. 세상에 있는 순례 교회(地上敎會), 연옥을 말하는 정화 교회(鍛鍊敎會), 천국인 승리 교회(凱旋敎會)가 있다.
그런데 순례 교회는 주님의 나라를 얻기 위하여 악마와 세속과 욕망과 싸우고 있는 지상 여정(巡禮) 교회를 말한다. 그래서 이를 신전(神戰) 교회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투쟁 교회(鬪爭敎會)라고 한다.
그리고 정화 교회는 죽어서 심판을 받은 후 하늘 나라에 가기까지 정화(淨化)되어 가는 연옥의 공동체를 말한다. 그래서 이를 단련(鍛鍊) 교회라고 했다.
또한 승리 교회는 지상 영신 전쟁에서 승리(勝利)한 천상 공동체를 말한다. 그래서 이를 개선(凱旋) 교회라고 했으나 지금은 승리 교회라고 한다.
2. 통공(通功): 그런데 이 교회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서로 돕고 기도하며 서로 이 공(功)을 나눈다. 그러기에 이를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이라고 한다. 통공이란 기도와 선행의 대가를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공동체, 즉 순례 교회, 승리 교회, 정화 교회 등에 속한, 다른 이에게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천상의 성인에게 지상의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할 수 있다. 또한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을 통해 전달된다. 이처럼 기도나 선행의 대가(功勞)가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천국이나 연옥의 다른 이에게도 통하기에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치는 가장 숭고한 방법으로, 성령의 능력이 성사의 표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루어지므로, 미사 성제 때 천상 교회와 가장 잘 결합된다.
▶ 모세 오경 (Moses五經)
1. 의의(意義): 출애급의 지도자 모세의 오경은 사실상 구약을 대표한다(요한 1, 17). 모세는 기원전 15세기경에 레위족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에게서 출생하였다(출애 6, 20; 민수 26, 59). 모세 오경(Tora)은 옛 이스라엘의 종교, 도덕, 사회 생활을 규제하던 법으로,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제정 반포한 뒤에 시간이 흐르면서 세분화되었다.
이는 본래 다섯 두루마리(펜타테우코스)였으며, 기원전 13세기경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성스러운 계약에 의해,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건설됨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구전되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유배 후 고향 팔레스티나에 돌아온 다음에 문헌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인 창세기, 민족의 건설 과정인 출애급기, 예배에 대한 레위기, 계약의 궤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형성에 대한 민수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명기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5권을 전체로 이해할 때만,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뜻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2. 창세기(創世記): 이는 50장으로 되어 있다. 에덴 동산의 첫 인류에 대한 설화로 시작하여, 기원전 17세기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집트로 이주한 것까지 기록되어 있다. 여기의 중요한 주제는 1)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3, 15; 12, 1-3), 이 약속을 이행하는 데 중개 역할을 할 사람들의 지혜로운 선택(25-36장), 2) 이 약속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으로의 계약(3, 15, 17장) 등이다.
이 계약은 아브라함과 하느님과의 계약이다(12, 1-3). 온 인류가 아브라함으로 인해 축복받음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말한다. 아담에게 약속된 구원은 축복받은 셈 후손 아브라함을 거쳐, 모든 인류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곧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은 그들을 축복하심으로써 우리를 축복하신다.
3. 출애급기(出埃及記): 출애급기는 40장으로 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Exodus)에서 책이름을 땄다. 1부(1-12장)는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심, 파라오와 재난, 탈출 준비로 되어 있다. 그리고 2부(12-18장)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시나이 반도의 이주 등이며, 3부(19-24장)는 하느님의 이스라엘 백성 선택 및 계약이다. 그리고 4부(25-40장)는 계약의 궤와 성막(聖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4. 레위기(Levi記): 이는 27장으로 되어 있다. 계약의 궤와 성막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경신례의 조직에 관한 기록이다. 1부(1-7장)는 제물에 관한 법으로 이스라엘 경신례이다. 그리고 2부(8-10장)는 사제 축성에 관한 법으로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할 권한을 공적으로 부여하는 예이다. 3부(11-16장)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법으로 도덕률에 관한 것이고, 4부(17-26장)는 성스러움의 보존에 관한 법으로 서원과 예물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5. 민수기(民數記): 이는 36장으로 되어 있다. 이스라엘 공동체 사회의 조직과 시나이 산에서 모압 평원까지의 여정이 수록되어 있다. 1부(1-10장)는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 조직. 2부(11-22장)는 모세, 사제, 장로의 권위, 모압 평원까지의 여정. 3부(23-36장)는 가나안 침공 전, 모압 평원에서의 생활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6. 신명기(申命記): 이는 34장으로 되어 있으며,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에 관한 설교이다. 사랑과 명예와 하느님께 대한 순종을 민족 정신으로 삼아야 함을 가르친다. 1부(1-4장)는 하느님께 이르는 역사적 회고와 사랑의 교훈. 2부(4-11장)는 하느님과 백성 간의 사랑과 유대 관계를 다짐한 계약. 3부(12-26장)는 시나이 계약과 율법에 관한 설명. 4부(27-34장)는 40년 동안 찾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던 모세의 죽음과 마지막 설교로 되어 있다.
▶ 몬시뇰 (Monsignor)
교회는 인간의 단체이기 때문에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교계 제도를 세우셨다. 가톨릭의 교계(敎階)에는 주교와 사제와 부제가 있다. 그러나 몬시뇰은 주교와 신부 사이의 직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1308~1378년에 프랑스 아비뇽에 임시로 교황이 머물 때, 교황의 보좌관을 몬시뇰이라 하였다. 그 후 교황청의 고급 관리로서 추기경이나 주교가 아닌 일반 사제에게 적용되는 칭호가 되었다.
오늘날은 전통 있는 본당 신부나 오랜 성직 생활로 교회에 공이 큰 원로 성직자에게 교황청에서 주는 명예의 칭호가 되었다. 교회법상 권한은 없으나, 공식 의식을 행할 때는 수단 위에 빨간 띠를 두르거나 단추를 달 수 있다.
▶ 무교절 (無酵節)
무교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지내던 옛 이스라엘 농경민들의 순례 축제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 사건이라는 역사적 구원의 체험을 예배를 통해 재현해 나가면서, 무교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거행되어 온 유목민들의 과월절(過越節) 축제와 연계되어 거행되었다.
이로써 무교절은 과월절과 함께 희망과 구원에 대한 중요한 축제가 되었으며, 이스라엘 종교 생활에 핵심적인 구원 체험 축제로 자리 잡았다(이스라엘 3대 축제). 이는 신약 시대에 와서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의 축제로 자리하여, 미사 성제를 통해 이 기쁨의 향연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묵상 (默想)
1. 묵상: 이는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시켜 하느님의 현존 속에, 하느님과 관련된 일에 대하여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묵상은 신앙의 신비나 그 진리,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생애, 성서나 교회의 가르침 등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신앙을 보다 깊이 통찰하고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이는 관상(觀想)과는 구별되며,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 수련 묵상법은 그 좋은 예이다.
2. 묵상 기도: 이는 생각만으로 드리는 마음의 기도이다. 묵도(默禱)란 ‘말없이 기도하다, 묵상하다, 명상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소리 기도(염경 기도, 통경 기도)와 구분한 마음 기도(묵상, 명상)이다. 여기 통경 기도란 여럿이 함께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며, 염경 기도 역시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다.
이렇게 보면 눈을 감음(默念) 역시 마음 기도 혹은 그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눈을 감음은 생각을 모아 일체의 잡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동작이다. 일반 종교 의식이나 국민 의례에서도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음으로써, 번다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고인(故人)이나 심오한 진리에 마음을 기울인다.
우리는 영성체, 복음 낭독, 강론 후 묵상 때 눈을 감고 우리의 마음을 드높은 세계로 올린다. 언제 어디서고 조용히 눈을 감고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마음의 눈을 돌린다면, 우리는 깊은 신앙으로 인도될 것이다.
▶ 미사 성제 (聖祭)
1. 미사: 미사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Missa에서 유래한다. 중국어 미사(彌撒)나 한국어 미사는 한국 발음을 그대로 딴 것이다. Missa는 원래 Mittere(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는 가톨릭의 가장 성대하고 엄숙하며 거룩하고 존엄한 고유 의식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의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찬미하며 감사하고, 성찬을 함께 나누며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2. 미사 성제: 미사를 미사 성제, 즉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라고 한다. 이는 예수님의 최후 만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미사의 최초의 형태(形態)는 바로 예수님의 최후 만찬이다(루가 22, 19-20). 그리고 가장 완전한 미사 성제는 예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골고타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성부께 희생 제물로 바친 성제이다.
이렇게 보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질 당신의 희생 제사를 영속시키는 방법이 바로 최후 만찬이었다. 십자가 상의 제사는 일회 한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자기 희생을 이 성제와 함께 드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미사는 십자가 상 제사의 재현(再現)이다.
3. 오늘의 미사: 오늘의 미사 성제는 곧 그리스도의 지체인 인간이 그분의 수난과 죽으심에 참여하는 희생 제사이다. 따라서 미사는 십자가 상의 제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사 성제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가장 큰 우리의 의무이며 최고의 제사이다.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 상의 제사를 재현하는 이 미사는, 십자가 상의 제사처럼 무한한 가치와 효과가 있다. 따라서 미사 성제는 하느님께만 드려야 한다. 하느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완전한 제사이기 때문이다.
▶ 미사 예물 (禮物)
미사 예물은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에게 드리는 예물을 말한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미사 참례할 때, 각자 빵과 포도주를 들고 와 제단에 바쳤다. 이때 사제는 이 예물들을 관리하며, 제사에 필요한 양만을 떼어 내고, 나머지는 사제의 몫으로 생활비의 일부였으나, 매우 불편하였으므로 일정한 금액을 예물로 바치게 된 것이다.
미사는 가장 거룩하고 큰 효과를 주는 기도 중의 기도이며,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그런데 제사는 제물이 있어야 하고, 제물의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자가 특별한 지향(志向)을 가지고 미사 예물과 함께 사제에게 미사 봉헌을 청하면, 사제는 그 지향에 따라 미사를 봉헌한다.
그러나 미사 예물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기에, 액수를 정할 수는 없고 성의껏 하면 된다. 그래도 약간의 기준은 있다. 성직자의 하루의 성무 집행이나 사목 활동에 필요한 정도는 봉투에 넣어, 양식에 따른 기록을 한 다음 신청하도록 한다(1고린 9, 13).
예물 봉투에 기록할 사항은 일반적으로 원칙은 세워 놓았으나,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시대나 교구마다 다르다. 대체로 1) 미사 봉헌 연월일(요일), 2) 희망 연월일(오전, 오후, 시, 분), 3) 미사 지향으로 ‘쭛쭛쭛을(를) 위한 쭛쭛쭛미사’ 4) 봉헌자 주소(전화) 및 성명(세례명) 등을 기록한다.
▶ 미사보 (褓)
미사보 혹은 미사 수건은 미사를 비롯한 교회 예식에서 여(女)교우들이 머리에 쓰는 수건을 말한다. 이는 초대 교회부터 전해 오는 관습으로서 화려하게 치장한 머리를 가리는 정숙함과 겸손함을 나타낸다. 구약 시대에 이사악의 부인 리브가는 장부 앞에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창세 24, 65). 그리고 모세도 야훼를 만났을 때,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사도 바오로는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말하고 있다(1고린 11장). 여인의 머리는 남편의 영광으로 인정되며, 머리카락은 세속적 사치성이기에 성소(聖所)에서는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연하며 전통적이라고 하였다.
▶ 바리사이파 (Pharisaei派)
이는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율법에 대해 보다 엄격한 해석과 실천을 내세우던 학파에 속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다수인 유다인들과 소수인 자신들을 구별하여, 율법을 엄수하지 못하는 자들을 멸시하고 적대시하였다. 바리사이라는 말이 95회나 사용될 만큼 성서에 많이 나오는데, 이들의 대부분 예수님과 격렬히 대적하는 자로 등장한다.
이들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었으며, 선한 삶을 산 사람과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보상과 징벌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들은 운명론자였다. 세상 만사는 운명과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반 모임 (班 모임)
1. 의의: 반 모임은 신자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공동으로 기도하고 서로 친교를 나누며 봉사하는 본당 내의 작은 지역(班) 공동체를 말한다. 이 모임은 대개 10~15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 있는 세포가 혈액 순환으로 영양분을 섭취하여 생명의 신진 대사를 계속하듯, 그리스도의 몸인 본당 공동체도 반 모임이라는 여러 개의 세포가 서로 친교를 나누고 봉사함으로써 성장하게 된다.
2. 효과: 이는 공동체 의식의 계발, 소속감의 증대, 신앙의 성장, 전교 활동의 활성화 등에 크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발굴과 육성에 도움을 주며, 사랑의 실천과 성령 은사를 나누게 되고, 본당 사목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상호간에 정보 교환은 물론, 사목자의 사목 행정에 관한 지시 및 전달 사항의 내용과 반 모임에서의 건의 사항 등이 원활히 교류됨으로써 큰 성과를 가져오게 된다.
3. 진행: 진행은 대체로 시작 성가, 기도, 새 신자 및 예비 신자 소개, 성서 봉독과 공동 연구 및 말씀 나누기, 토의 및 건의 사항, 다음 모임의 주제나 장소 및 날짜 선정, 그리고 마침 기도나 성가 및 간단히 친교의 시간으로 진행된다.
이 모임의 인도는 보통 반장이 하나, 사전에 별도로 교육을 받은 인도자가 있으면 매우 좋다. 왜냐하면 반장은 반의 전반적인 책임을 맡기 때문이다.
4. 반장의 임무: 반장은 반 모임 회원의 파악 및 참석 독려, 방문 친교의 기회 마련, 애경사에 대한 관심, 반 모임과 본당 공동체와의 중개 역할이나 반 공동체의 문서 관리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공동체가 형제애를 갖도록 이끌고, 신자나 예비 신자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갖는다.
▶ 번제 (燔祭)
이는 구약 시대에 짐승을 전부 태워 신에게 드리던 제사의 한 형식이다. 제물로는 흠 없는 소, 양, 염소 등의 수컷을 바쳤는데, 가난한 이들은 비둘기 같은 날짐승을 바치기도 하였다(레위 1장).
공적인 제사를 담당하는 사제가 짐승의 피는 아론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단에 뿌리고, 제물은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가죽은 사제의 몫이었다. 짐승을 태워 하늘 높이 연기로 해체시킴으로써 인간과 인간에 속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전권에 종속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 병자 성사 (病者聖事)
1. 의의: 병자 성사는 병이나 사고, 노쇠 등으로 ‘죽을 위험이 있는’ 신자에게 사제가 전례서에 따라 축성된 기름을 바르며, 주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하고 위로를 주는 성사이다(1베드 5, 10).
병자 성사는 야고보서(5, 14)에 근거한다. 따라서 분명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이 성사는 초대 교회 때부터 인정해 왔으며, 3세기 오리게네스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뿐만 아니라, 동방 교회에서도 이 성사를 행해 왔다.
2. 은총: 특히 이는 성화 은총을 더해 주며, 병자가 이미 고해 성사를 볼 수 없을 때는 이 성사로써 죄의 사함도 받는다. 또한 이미 사함을 받은 죄의 흔적을 없이하고(임종 전대사),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유혹이나 임종의 고민을 이겨 낼 힘도 주며, 하느님의 뜻이라면 병자의 건강도 회복시켜 주는 성사이다(야고 5, 1-6).
이 성사는 죽어 가는 사람만 받지는 않는다.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자가 사제를 청하는 이유는 임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성사를 통해서 고유한 은총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당사자는 성사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병고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에의 참여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와 영광을 체험하게 한다. 그렇다고 병자 성사만이 유일하게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성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성사로도 생명 은총(상존 은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예절: 병자 성사는 생명이 위독한 신자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사제는 병자에게 도유 기도로써 병자의 고통을 가볍게 하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한다. 그리고 성목요일에 축성한 병자 성유를 죄악의 길로 이끈 이마와 양손에 십자가를 그리며 바르면서 기도한다.
병자 성사의 예절은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사제는 먼저 성수를 뿌리며, 그 집과 그곳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한다. 2) 고해 성사나 고해 성사를 받을 수 없으면 고백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 3) 사제는 환자의 머리 위에 안수하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병자에게서 악령의 힘이 사라지도록 기도한다. 4) 병자에게 병자 성유를 바르며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 그리고 병이 낫고 모든 죄가 사해지며 영혼이 건강을 얻도록 기도한다. 5) 사제는 기도 후 강복한다.
이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죽음 직전에 사제를 청하지 말고, 어느 정도 의식이 있을 때 성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통회하며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한 다음 청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신앙을 고백하고 병자와 일치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특히 고해 성사를 먼저 받도록 하며, 받을 수 없을 때는 죄를 깊이 뉘우치도록(완전한 뉘우침) 한다. 그리고 병자가 의식이 없을 때는 적어도 전에 암암리에 이 병자 성사 받기를 원했는가를 살펴 청해야 한다.
4. 준비: 성체를 모실 때는 병자가 믿음 소망 사랑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병자 성사나 병자 영성체는 먼저 구역장이나 반장을 통해서 본당 신부에게 청하고,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오기 전에 미리 주변을 깨끗이 한다. 그리고 상이나 책상, 흰 보자기, 십자 고상, 초, 성수 및 성수채, 성서, 성가책, 기도서, 냉수, 숟갈, 탈지면, 휴지 등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또한 병자의 상태, 병명, 의사의 진단 결과, 조당과 냉담 여부도 사제에게 자세히 알려야 한다.
▶ 병자 영성체 (病者領聖體)
이는 죽을 위험에 처한 신자의 영성체를 말한다. 본래는 라틴어로(Viaticum) ‘여행을 위한 준비(돈)’ 혹은 ‘여행을 위한 양식(糧食)’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죽음은 후세로의 여행’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결국 병자 성체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그리스도의 ‘몸과 피’(路資)로써 힘을 얻고, 부활의 보증으로 안전해지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병자 영성체를 노자 성체(路資聖體)라고도 한다.
어떤 사유에서든지 죽음에 처한 신자들은 영성체를 할 의무가 있다. 같은 날 이미 성체를 영하였을지라도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다시 영성체하는 것이 유익하다. 병자 성사는 같은 위험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 번 받을 수 없지만, 영성체는 날이 바뀌면 또다시 할 수 있고, 공복재도 필요하지 않다.
특히 병자 영성체는 병자에게뿐만 아니라, 공동체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 사제나 부제가 성체를 모셔 가 영해 준다. 예전에는 이 행위를 봉성체(奉聖體)라 하였으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도 영성체를 통해 자신이 주님의 제사와 교회 공동체에 결합되어 있으며, 형제적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 보속 (補贖)
보속이란 속죄(贖罪)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지은 죄에 대하여 그 대가(對價)를 치르는 것,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죄는 세상에 사는 동안 고해 성사로 일단 용서받으나, 그 죄 값에 해당하는 벌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벌을 사후에 받는다면 연옥에서 받아야 할 것이고, 세상에서 받는다면 고해 성사 후 사제가 정해 준 보속, 즉 기도나 희생, 혹은 선행 등을 해야 한다.
▶ 복사 (服事)
복사란 ‘봉사자’를 말한다. 미사 등 예절이 거행될 때, 주례를 도와 시종(侍從)하는 사람이나 그 일을 가리킨다. 예전에 미사 주례를 돕는다고 해서 복사를 보미사(補Missa)라고 하였다.
초대 한국 교회에서의 복사란 성인(成人)으로, 미사 복사를 할 뿐만 아니라, 선교사를 안내하고, 하인의 역할에서 통역까지도 담당하였다. 성 황석두(루가)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복사란 미사 때 주례 사제를 돕는 10~13세 정도의 어린이를 지칭한다
▶ 본시오 빌라도 (Pontius Pilatus)
본시오 빌라도는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14~37년 재위) 유다 지역에 파견된 5대 총독(26~36년 재위)이다. 그는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한 자이기도 하다(마르 14-15장; 마태 27장; 루가 23장; 요한 18-19장).
▶ 봉헌 (奉獻)
봉헌이란 웃어른께 물건을 받들어 바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 물건, 특히 자신의 모든 행위, 기도 등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뜻으로 기꺼이 바치는 것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미사, 성사 집행, 전례 의식이나 신심 행위의 경우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미사 중 성찬 예절을 시작하면서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바치는 경우를 봉헌이라고 한다.
▶ 부제 (副祭)
이는 교회의 세 가지 교계, 즉 주교, 사제, 부제 중에 하나이다. 부제는 수세기 동안 사제품을 받기 위한 하나의 입문 성품(入門聖品)이었다. 그러나 이 직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있어 왔다(사도 6, 1-6). 이때 사도들은 안수로 품위를 수여하고, 봉사의 일(재산 관리 등)을 맡겼다. 이들은 말씀 전례와 세례 성사의 집전자로도 활동하였다.
오늘날 사제의 위임하에서 설교, 세례, 혼인 예식 주례, 성체 배령 등을 집행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사제직을 준비하는 일시적인 부제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임무를 염두에 둔 독신 부제, 종신 부제 등도 둘 수 있게 하였다.
▶ 부활 (復活)
1. 의의: 부활이란 일반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소생(蘇生)이나 환생(還生)과는 다르다. 따라서 부활이란 완전히 죽은 사람이 신비로운 몸으로 살아나, 다시는 죽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기에 부활은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고, 이 부활로써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마태 28, 6; 요한 20, 16-29; 21, 1-25).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고…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1고린 15, 17-19). 따라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이고, 우리 모두는 기만당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 역시 전혀 헛된 일일 것이다.
2. 의미: 따라서 부활은 우리 신앙의 기초이며 대상이고 원천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신앙 생활은 부활한 생활이며(에페 2, 6; 골로 3, 1), 바로 부활을 향한 생활이다(로마 8, 11; 요한 5, 29). 그러기에 초대 교회부터 부활 축일을 가장 성대하게 그리고 뜻깊게 지내 왔다.
구약에서는 파스카, 즉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되었고 신약에서는 부활로 인류가 구원되었다. 따라서 부활을 파스카라고 하였으며 그리스도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예수님 이전 유다교에서도 부활을 가르쳤다. 그러나 영혼의 불사 불멸은 가르치지 않았다. 만일 사람이 하느님께 성실하고 하느님 나라를 항상 추구하는 생활을 한다면, 하느님이 그의 믿음을 갚아 주실 것이고, 그분의 나라가 설 때, 죽음이라는 잠으로부터 그들을 깨우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부활을 변화된 삶, 변형된 현존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수님의 현존은 예수와 그의 삶, 가르침, 업적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오늘의 역사 속에 이루어짐을 전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부활이야말로 신앙의 중심이라고 가르치며, 그분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확증이라고 가르친다(1고린 15, 53; 필립 3, 21; 2고린 4, 14; 요한 5, 28-29).
▶ 부활 주일 정하기 (復活主日 정하기)
유다인들은 1년을 12~13개월로 하였다. 그러면서 만월이 시작되면 그것이 월초(月初)였다. 그런데 그들은 초봄의 만월을 니산(Nisan)이라고 하였는데, 이 니산 달 14일이 파스카 축제일이었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이날을 축일로 지내지 않고, 그 다음 주일을 부활 축일로 지냈다.
따라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첫봄이 되는 달 만월이 오는 바로 그 다음 주일을 부활 주일로 정하였다. 그러다가 그 후 춘분이 지난 다음에 오는 만월에서 첫 번째로 맞는 주일로 확정하였다. 이때 영세자는 흰옷을 입고 일 주일을 지냈고, 다음 주일에야 옷을 벗었다. 그래서 부활 다음 주일을 사백 주일(팊白主日)이라 하였으며, 이때 비로소 부활의 축제를 마쳤다.
▶ 부활초
1. 의의: 부활초(Paschalecandle)는 크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부활 성야에 특별한 예식과 함께 축성된 초로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타낸다. 이는 보통 밀랍(蜜蠟)으로 만들어진다. 부활초가 만들어질 당시의 벌은 동정성(童貞性)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교부들은 벌을 그리스도의 정배(淨配)인 동정 마리아에 비유하였고, 벌들의 밀랍은 동정 잉태의 결실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밀랍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냈다. 결국 벌은 동정녀 마리아를, 벌의 밀랍으로 만들어진 밀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한편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한 것이나, 전례에 도입되면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그리스도, 옛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불기둥(출애 13, 21-22; 14, 24)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하느님이 불기둥의 형상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듯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심을 묵상케 한다.
2. 부활초와 전례: 부활초가 부활 성야 전례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4~8세기경이었으나, 부활 전례에 본격적으로 되살아난 것은 최근 1955년 전례 개혁부터이다. 부활 전례에 있어서 부활초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이요 마침이신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내일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표지이다.
그리고 피 흘린 다섯 상처도 기념한다. 이는 부활초가 불기둥의 상징에서 한 걸음 나아가, 파스카 신비의 양면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새 불꽃에서 부활초에 불을 켜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결합은 성탄의 신비인 강생(肉化)과는 다르다.
사제나 부제가 “그리스도 우리의 빛”을 세 번 외치는 것은 죄악과 어둠을 물리친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타낸다. 또한 신자들의 초가 차례로 부활초에서 점화되는 것은 온갖 어둠을 쳐 이기신 그리스도의 열렬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여, 우리가 밝은 빛 안에서 거닐게 되어,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리라는 희망으로 용솟음침을 의미한다.
부활 찬송(Exultet) 역시 부활초의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사제가 부활 성야의 전례 중에 부활초를 세례대(洗禮臺)에 담그면서 세례수를 축성한다. 그리고 부활초는 부활 시기(성령 강림 대축일 전까지) 동안 촛대에 세워져 전례를 행할 때마다 켜진다.
또한 세례식 때는 부활초에 불을 밝히며, 세례자들은 초를 여기에서 댕긴다. 그리고 세례 때 주례자는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시오”라고 말하면서, 빛의 아들로 살라고 권고한다.
▶ 분향 (焚香)
분향이란 향을 피움을 말한다. 제단에서의 분향은 하느님의 절대성 앞에 흠숭의 예를 드림을 말한다. 구약은 하느님의 왕권에 대한 승복을 말하고(1열왕 13, 1), 신약은 그리스도의 왕권과 신권에의 승복을 말한다(마태 2, 11; 묵시 5, 8). 이처럼 분향은 절대자 앞에 바치는 제물과 기도의 상징이다.
교회 예절에서의 분향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제헌(祭獻)의 신비를 담고 있으며, 하늘에 사뢰는 우리의 기도, 즉 하느님의 절대권 앞에 분향으로 승복하고 은혜를 간구함을 말한다.
한편 상가(喪家) 빈소의 신위(神位)에 혹은 사당의 제사 때에도 향을 피운다. 이때의 피어오르는 연기는 우리의 애틋한 정이 세상을 떠난 분이 계시는 명계(冥界)나 하느님이 계시는 천계(天界)로 올라감을 생각케 한다
▶ 비나시오 (Binatio)
비나시오라는 단어는 ‘두 번 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한 사람의 사제가 하루에 미사를 두 번 집전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한 사람의 사제는 미사를 하루 1회 이상 집전할 수 없으나(교회법 905조), 사제가 부족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으면, 교구 재치권자는 2회 집전을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사목상 주일이나 대축일에는 3회의 집전(Trinatio)을 허용할 수 있다.
▶ 사대 교리 (四大敎理)
이는 가톨릭의 네 가지 기본 교리로, 임종이 임박한 비상 세례(非常洗禮) 대상자나, 대세(代洗)를 받을 자에게, 적어도 알리고 믿게 해야 하는 기본 교리이다.
1) 천주 존재(天主存在) -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이 계시다.
2) 상선 벌악(賞善罰惡) - 하느님은 절대 정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신다(묵시 22, 12; 마태 25, 46).
3) 삼위 일체(三位一體) -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 세 위(三位)로 계신다.
4) 강생 구속(降生救贖) - 인간이 죄를 지어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그 대가로 세례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천국의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代贖).
▶ 사목회 (司牧會)
이는 본당, 지역, 교구, 전국 단위로 설치되어 주교(敎區長)나 사제(主任神父)의 사목적 자문에 응하며, 특히 사목 활동 등에 관련된 사항을 연구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교구를 구성하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조직한다”고 준칙을 발표하였다.
이를 본당에서는 사목회(사목 협의회), 교구나 지역 단위는 사목 평의회 혹은 사목 협의회라고 한다.
평협은 사목 평의회와는 달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라고 하며, 이는 평신도(平信徒) 사도직(使徒職)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이 협의회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조직된 것으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총괄하기 위해 교황청 안에 ‘평신도 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전국 평협, 교구에는 교구 평협이 설치되어 있다.
▶ 사순절 (四旬節)
1. 의의와 유래: 이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 예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하여 40일 동안 통회와 보속 그리고 희생으로 재(齋)를 지키는 기간을 말한다(욥기 42, 6). 이 기간 동안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은 금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켜야 하고, 제의 색깔은 보라색(보속과 회개를 의미)으로 바꾸며, 전례에서 알렐루야와 영광송을 생략한다.
이는 초대 교회 때부터 지키기 시작하였다. 3세기까지는 부활 전 2~3일, 그리고 한동안은 36일을 지켰다. 그러다가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40일로 정하였고, 재의 수요일부터 지키기 시작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부터이다. 40일은 모세가 십계판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킨 것과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금식한 것, 그리고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재를 지킨 데서 유래한다. → 사십
2. 카니발(Carnival, 謝肉祭): 이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고난을 받으시며 기도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40일간 금육, 금식, 참회, 희생 등을 해야 하므로, 사순절 전에 고기도 먹으며 즐긴 데에서 유래한다. 카니발의 Caro는 고기를 말하며 Valens는 잔뜩 배불린다는 뜻이다. 초기 사순절은 주님 공현 축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까지였다. 그러나 역대 교황들은 재의 수요일 전 한 주일로 정하였다.
3. 사순절과 신앙 생활: 사순절 동안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엄재하신 것을 본받아, 희생하고 봉사하며,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계명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극기와 절제를 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특히 십자가의 길을 자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해야 한다.
▶ 사제 (司祭)
1. 의의: 사제는 그리스어로 프레스비테로스, 라틴어로 사체르도스(Sacerdos), 영어로 프리스트(Priest)라고 한다. 이는 ‘장로(長老)’를 의미한다. 사제는 성품 성사를 통하여 사제의 품위를 받으며, 주교로부터 파견받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주교의 협력자로서 복음 전파를 위해 일생 동안 봉사한다.
원래 대사제(大司祭)란 구약 시대에는 우두머리 사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말하였다(출애 29, 29). 이때 사제는 속죄의 날에 속죄제를 집전하였고(레위 4, 5), 하느님의 계시를 구하는 임무도 갖고 있었다. 이 직무는 아론이 죽은 뒤 판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2. 사제직: 예수 그리스도는 멜키세덱(창세 14장)과 아론(레위 8장)의 예를 따라 대사제직에 오르셨다. 그리고 사제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동참한다. 그러나 일반 신자는 세례와 견진으로 사제직을 받으나, 사제는 교회의 부름을 받아 주교의 안수로 받게 된다. 이처럼 사제직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위임한 것이기에 주교와 사제들을 통하여 계승된다.
사제직(司祭職)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회복시키고(중개 역할), 인간에게 축복과 번영을 빌어 주며, 용서와 자비를 기원하는 일을 맡은 직분을 말한다. 이 직분은 일정한 절차와 의식을 통하여 임명받음으로써만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직분의 수행은 일정한 규정에 의한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사죄권 (赦罪權)
이는 고해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고백자의 죄를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는 권한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가파르나움의 중풍 병자를 고치시고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당신에게 사죄권이 있음을 보여주셨다(마태 9, 1-8). 뿐만 아니라 요한 복음(20장), 고린토 전서(6장), 고린토 후서(2장)에서는 더욱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권한을 사도들과 후계자들에게 위임하셨다(마태 18, 18).
▶ 삼위 일체 (三位一體)
1. 의의: 이는 하나의 실체(實體) 안에 세 위격(位格)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의 신비를 말한다. 삼위 일체 신비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삼위가 계시다는 신앙 교리이다. 이는 인간의 지혜로는 완전히 알아듣기 힘들지만,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바대로,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세 위격(位格), 즉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으로 계심을 말한다.
2. 삼위의 관계: 그런데 세 위격은 동일하고 영원하시며 전능하시다. 위격을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本性), 하나의 하느님 본질(本質), 하나의 하느님 실체(實體)이다.
예를 들어 인간 안에는 지능(知能)과 의지(意志)와 정서(情緖)가 있는데,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긴 다음, 그 결과를 보고 좋고 나쁘다는 느낌을 갖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세 위격의 관계를 보면 성부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자는 성부께 낳음을 받으시고, 성령을 성부와 성자 두 위격에서 발(發)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낳음’이란 마치 인간의 낳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불이 켜짐과 동시에 불꽃이 생기는 것과 같이 시공의 간격이 없는 낳음이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서도 인간적인 부자 관계(父子關係)가 아니라, 완전한 사랑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
절대 완전하신 성부는 영원으로부터 계시고, 이 성부의 이념(理念)이 성자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성자를 말씀(Logos)이라고 한다. 마치 인간이 머리로 생각한 것이 말로 표현되듯이 성자는 성부의 이념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는 서로 무한히 사랑하셔서 또 하나의 위격, 즉 성령을 피어나게 한 것이다.
3. 삼위의 신비: 삼위 일체의 신비는 우리 구원의 근거이며 목표이다. 성부는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과 역사 안에 활동하신다. 성자는 삶과 죽음과 활동을 통하여 구원을 실현하였다. 그리고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교회를 건설한다. 즉 삼위 일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류를 구원하셨으며, 교회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다. 그러나 성서의 증언에 따라 통상 하느님의 각 활동들을 각 위격에 귀속시켜 말하기도 한다. 즉 성부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創造)하시고, 성자는 구원(救援)하셨으며, 성령은 성화(聖化)하신다.
▶ 삼종 기도 (三鐘祈禱)
이는 오전 6시, 낮 12시, 저녁 6시에 성당의 종소리를 울려 시간을 알리면, 이 소리에 따라 바치는 예수님의 생애를 간추린 기도를 말한다(루가 22, 46; 마르 14, 38). 삼종이란 세 번 종을 친다는 말이다. 세 번씩 세 번 치고, 잠시 후 계속 종을 쳤는데, 이는 종을 치는 동안 기도를 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기도는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까지는 기쁨의 표시로 서서 한다. 이 관습은 11세기에 시작되었는데, 십자군이 창설되었을 때 출발 직전에 승리를 위해 종을 치고 기도를 바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만종(晩鐘)이라 해서 저녁에만 바쳤다.
한편 부활 때는 부활 삼종(復活三鐘) 기도를 바친다. 이 기도 역시 기쁨의 표시로 언제나 서서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기도를 희락 삼종(喜樂三鐘)이라고 하였다. 이 기도는 부활 시기, 즉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바치며, 성 보나벤투라(1220~1274년)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 상지의 옥좌 (上智의 玉座)
상지란 보통 사람보다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나 그 지혜를 말한다. 성모 마리아를 ‘상지의 옥좌’라고 한 이유는 하느님의 지혜인 그리스도(1고린 1, 24. 30)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성모 호칭 기도’에서 ‘상지의 옥좌’라고 일컬은 것은, 성모님이야말로 지혜의 선물을 충만히 주실 수 있는 분으로 공경하기 때문이다.
▶ 서원 (誓願)
1. 의의: 서원이란 허원(許願)이라고도 한다. 이는 보다 거룩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살겠다고 하느님과 하는 약속의 행위이다. 그래서 이 서원을 한 자는 경신덕(敬神德)의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서원을 하기 전에 무엇을 서원하는가를 분명하게 알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2. 구별: 서원에는 공식 서원과 사적 서원, 성대 서원과 단순 서원, 유보 서원과 비유보 서원, 유기 서원과 종신 서원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인적, 물적, 혼합 서원도 있다.
공식 서원은 교회에서 인정한 서원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적 서원에 속한다. 성대 서원(盛式誓願, Ordo)은 수도자의 종신 서원이며, 단순 서원은 유기 서원이다. 그리고 교황청만이 면제할 수 있는 서원은 유보 서원 그렇지 않으면 비유보 서원이다. 또한 서원한 자의 행위를 구속하는 인적 서원, 물질에 관한 약속인 물적 서원, 둘 다 포함하는 혼합 서원이 있다.
3. 자격: 그런데 서원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만 18세(유기 서원)와 만 21세(종신 서원)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수련기를 거쳐야 하며, 법률상 장애가 없고 서원의 허가가 정당한 자격을 갖춘 자에 의해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기 행위나 공포심을 유발할 행위와 관련되지 않아야 하며, 문서나 구두로 서원 사실이 표명되어야 한다.
▶ 성광 (聖光)
이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보여 조배를 드리게 하거나, 성체 강복 또는 성체 행렬 때 쓰이는 제구(祭具)를 말한다. 형체는 둥글며 금이나 은으로 도금한 것으로 중앙에 성체를 모시도록 되어 있다.
▶ 성령 강림 대축일 (聖靈降臨大祝日)
1. 의의: 이 축일은 예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이 사도들에게 강림한 것을 기념하는 이동 축일(移動祝日)이다(사도 2, 1-13). 이로써 교회가 설립되었고, 선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원래 성령이 강림한 오순절(五旬節)은 추수 감사절이었다(麥秋節: 민수 28, 26).
2. 축일과 오순절: 그런데 이 감사제가 후에 구원의 역사와 연결되어 시나이 산에서 이루어진 계약과 율법 수여를 기념하는 축제가 되었다(레위 23, 15-21). 그래서 구약의 종교적 3대 축일은 유월절(踰越節, 過越節 → 파스카, 부활), 오순절(五旬節 → 성령 강림), 초막절(草幕節, 추수 감사)이다.
유다인들은 오순절 축제를 과월절(넘이절) 첫날부터 시작하여 7주(50일) 후인 시반 달(현재의 5월) 6일에 지냈다. 이 오순절은 초봄의 과월절과 늦가을의 초막절과 함께 순례 축제여서, 13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는 누구나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할 의무가 있었다.
오순절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이다. 그리고 사도 행전은 오순절 축제 때 성령이 강림하였다고 전한다(사도 2장). 이처럼 구약의 축일 오순절(Pentecost)은 성령 강림 축일과 필연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3. 축일과 은총: 성령은 생기를 주는 물, 타오르는 불과 같다. 구약에서는 무에서 세상을 창조한 힘, ‘하느님의 영’이라 하였다. 하느님의 영은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특은이었다. 구약 시대의 은혜는 백성들을 일으키는 힘(판관 14, 6; 16, 14)과 예언의 은혜(1사무 10, 6)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은혜는 곧 성령이시며, 견진 성사로 특은을 받는다.
성령은 예수께서 보내셨다(요한 14, 26; 루가 24, 49). 부활 주일 저녁에 예수께서 숨을 내쉬시면서 사도들 위에 성령을 주셨고, 베드로는 성령 강림의 징표를 확인하였다(사도 2, 15). 사도 바오로는 영의 충만함은 넋을 잃은 황홀경임을 시사한다(2고린 12, 1-2). 최초로 성령을 받은 자는 사도 베드로였기에, 성령의 활동은 교회의 통치권에도 있다.
오늘날 성령을 찾기 힘들다고 하나, 일상 생활 중에서 공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과 같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공기 없이 살 수 없듯 우리는 성령 없이 살 수 없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께서 현존하시고,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4. 축일과 전례: 전례적으로 성령 강림부터 대림절이 시작될 때까지(연중 시기)는 조용히 하늘 나라를 묵상한다. 그리고 부활 시기 동안 기념하지 못했던 축일도 기념한다. 그 축일은 삼위 일체 신비(삼위 일체 대축일), 성목요일의 신비(성체 성혈 대축일), 성금요일의 신비(예수 성심 대축일) 등이다.
▶ 성모 승천 (聖母昇天)
1. 의의: 이는 마리아가 지상 생활을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 올려지심을 말한다. 이는 하늘로 올림을 받으신 피승천(被昇天)이다. 교회가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종신토록 동정이시고, 원죄 없이 잉태되셨고,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2. 교회의 선언: 1950년 ‘가장 풍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이라는 회칙을 통해,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을 공포하였다. 그리고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티 없이 깨끗한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상 천하의 모후로 추대를 받으셨다”고 선언하였다.
3. 승천의 확신: 교회는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의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었다”(교회 헌장 59항)고 선언하였다. 초세기부터 신자들은 마리아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하늘에 불러 올림을 받으셨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도, 강론, 신심 행위, 서적 등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성당, 수도 단체, 도시, 국가 등을 승천의 이름으로 그분께 바치거나 축복하기도 하였다. 물론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 시대부터 교회에 의해서 밝혀지고 선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죄 없는 잉태, 영원한 동정성,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분의 완전함과 친밀한 관계는 승천을 확신케 한다. 또한 성서에는 확실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마리아는 성서에서 예수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리고 마리아의 아드님은 하느님이시며 마리아는 그분의 어머니이시다.
또한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님과는 긴밀히 결합된 분이시다. 따라서 성서 전체를 숙고해 볼 때, 마리아는 확실히 당신의 아드님을 따라 지상에서 천국에 이르심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마리아의 승천을 확신케 한다(1고린 15장; 루가 1장; 묵시 12장). 4세기 중반에 마리아의 죽음과 승천이 기념일로 받아들여졌고, 7세기에는 동방에서, 그리고 8세기에는 서방에서 마리아의 승천 축일을 지냈다.
▶ 성모 칠락 (七樂)
성모 칠고란 마리아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았던 일곱 가지 슬픔과 고통을 말한다. 즉 이집트 피난, 시메온의 예언(루가 2, 35), 성전에서 예수를 잃음, 십자가를 지신 예수와의 만남,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음(요한 19, 30), 성시(聖屍)를 안으심, 장사 지냄 등이 그것이다. 1814년 교황 비오 7세는 칠고를 기념하기 위해 축일로 정하였으며, 이것은 1913년부터 9월 15일(고통의 성모 마리아 축일)부터 축일로 고정되었다.
성모 칠락은 마리아의 일생에 있어서 성서에 기록된 7가지 기쁨을 말한다. 즉 주님 탄생 예고, 엘리사벳 방문, 예수의 탄생, 주님 공현, 성전에서 예수를 찾으심, 예수 부활, 성모 승천 등이 그것이다. 프란치스코회는 특별히 축일을 정해 성모님의 일곱 가지 기쁨을 기도 하였다.
▶ 성상 (聖像)
성상이란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 천사 등의 모습을 조각하거나 주조(鑄造)한 상(像)을 말한다. 그러나 그림은 성화(聖畵) 혹은 상본(像本)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본은 성스러운 문구를 담은 카드로, 성서나 기도서 등 책갈피에 끼울 수 있는 작은 크기로 제작된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교회에서는 성상이나 성화를 모시는 관습이 있었다. 이들을 대할 때마다 보이지 않게 우리 곁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모님, 혹은 성인이나 천사들을 연상케 하고, 흠숭과 공경을 효과적으로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하느님을 흠숭하고 성인과 천사를 공경하며, 본받을 마음을 더하기 위함일 뿐, 결코 성화나 성상 그 자체를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 성소 (聖召)
1. 의의: 이는 넓은 의미로 소명(召命)을 말한다. 원래 소명이란 신하를 부르는 임금의 명령이나, 여기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성직자나 수도자로 하느님께서 부르심을 의미한다. 이를 사제 성소 혹은 수도 성소라고 한다.
2. 응답: 성소는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신 것과 같이 집단적 성소와,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예레미야 등이 받은 개별적인 성소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응답이며, 하느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응답과 결단에 앞서 있어야 하기에, 응답 없는 부르심은 은혜로움이 되지 못한다.
부르심의 은혜가 아무리 크다고는 하나, 전폭적으로 그분을 믿고 따름이 없는 부름은 구원이 없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부르신다. 따라서 부르심에 충실한 것만이 신앙인의 바른 자세이다.
3. 성소자: 사제 성소를 받은 사제는 성품 성사의 힘으로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축성된다. 수도 성소를 받은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적 권고를 따라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 한다”(마태 5, 48)는 말씀을 실천하는 성소를 받는다.
▶ 성작 (聖爵)
성작은 가장 존귀한 성당 기물(제구)로 예수께서 최후 만찬 때 쓰시던 것과 같은 잔(盞)을 말한다. 이는 성혈(포도주)만을 담으며, 재료는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안쪽만큼은 금으로 도금해야 한다. 그리고 성작 덮개는 성작 안으로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도록 덮는 작고 네모난 판이다. 이는 딱딱한 종이가 든 약간 두꺼운 아마포로 포장되어 있다.
▶ 성체 강복 (聖體降福)
이는 성체에 대한 신심의 표현으로, 성체를 현시(顯示: 성체를 성광에 모셔 나타내 보임)하여 신자들이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사제가 성체로써 강복하는 성체 신심의 한 전례이다. 제단을 아름답게 꾸미고 성체를 성광(聖光)에 모셔 현시한 다음, 분향과 성가, 그리고 묵상이나 장엄 기도 등으로 성체께 특별한 찬미와 흠숭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 성체 성사 (聖體聖事)
1. 의의: 성체라는 말은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 감사하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즉 최고의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함을 말한다. 성체는 밀떡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현존한다. 가시적인 빵과 포도주는 형태에 불과하나, 실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까지도 그 형태 안에 현존하신다.
이 성체는 그리스도 말씀의 힘으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실체로 변화한 것이다. 따라서 성체 성사는 축성된 빵과 포도주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머물러 계시며, 이를 신자들이 받아 모시는 성사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祭祀)이며 동시에 은총의 성사(聖事)이다.
2. 성체와 제사: 그리스도는 스스로 인류를 대신하여(代贖物), 당신 자신을 성부께 제물로 바치셨다. 그리고 수난 전날 최후 만찬석상에서 성체 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이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죽음에서 생명에로 건너가게(Pascha) 하셨다(루가 22, 15; 마태 26, 26).
또한 성체 성사는 계약과 희생 제사이며 파스카 기념제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짐승을 잡아, 그 피의 절반은 제단에, 그리고 나머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리며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백성들은 둘러앉아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이 희생 제사는 야훼와의 계약을 상기시킨다(출애 24, 1-11).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표지인 피묻은 문설주를 거르고 지남(Pascha)으로써,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해방(救援)됨을 기념하는 제사이기도 하다.
3. 성서와 성체 성사: 구약에서는 성체 성사에 대한 예표를 볼 수 있다(말라 1, 11; 창세 14, 18; 출애 24, 9). 신약에서는 과거의 은혜에 감사하고,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 자신이 파스카였으며, 그 성사적인 것이 최후의 만찬이었고, 그 실제적인 것이 골고타에서 십자가 상 죽음임을 확실하게 알려 준다.
예수께서는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고(요한 6, 51), 최후 만찬 때 하신 말씀(마태 26, 26-28; 마르 14, 22-24; 1고린 11, 23-25)으로 성체 성사를 세우셨으며, 그 예를 행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결국 성체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시기 위하여 수난 전날 최후 만찬 석상에서 친히 세우신 것이다.
4. 살과 피: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성체 성사를 세우신 것은 결코 비유나 상징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입법자로서 영생과 같은 중대한 문제에 명백한 용어를 쓰지 않으시고, 상징적인 말이나 비유를 쓰실 수는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빵은 만나보다 우월함을 두 번이나 강조하셨다.
그리고 특히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신 것은, 분명 비유나 상징일 수 없다. 만일 비유나 상징이라면 빵과 포도주는 하찮은 음식에 불과할 것이다. 그 음식은 아무리 먹고 마셔도 결코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5. 신앙의 근거: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분명 성체 성사는 모든 성사의 중심이며, 우리 신앙의 근거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체를 영할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까지 성체 안에 계심을 확신하고, 베풀어 주신 그 크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와 충분한 준비로 자주 성체를 모셔야(領聖體)하며, 성체께 대한 최대의 존경과 영광을 드려야 한다.
▶ 성합 (聖盒)
성합은 성체를 모셔 두거나 사제가 봉성체, 즉 환자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 모셔 갈 때 쓰는 성당 기물(제구)을 말한다. 이는 성작과 비슷한 형태이나 뚜껑이 있으며, 성작과 마찬가지로 안쪽에 금도금을 해야 한다. 그리고 허락이 있는 자만이 만질 수 있다. 또한 봉성체 때에 사용하는 성합은 작은 휴대용이다.
▶ 성호경 (聖號經)
1. 의의: 성호란 십자 성호(十字聖號)의 준말이며, 성호경이란 십자(十字)를 그으며 성부 성자 성령(천주 성삼위)을 부르는 기도이다. 이로써 교회가 전례를 거행할 때나, 신자들이 사사로이 기도할 때, 언제 어디서나 신자임을 나타낸다.
이는 천주 성삼위에 대한 신앙, 그리고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단체의 상징이며 기도이다. 이처럼 성호경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나타내며, 가장 널리 알려진 상징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삼위 일체의 신앙을 고백한다.
2. 성호경과 은혜: 초세기에는 이마에 손가락으로 십자를 그었다. 3세기에 테르툴리아누스는 “우리의 모든 일에 있어서 방에 들어서거나 나갈 때, 잠자리에서나 식사 때, 밤에 불을 켤 때, 책을 읽거나 책상에 앉을 때,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마에 십자가를 긋는다”(De Corona 3장)라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성호경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활 전체를 성삼위의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이 기도는 짧으나 준성사이다. 성호경은 악마로부터 구해짐과 구원과 하느님 자비의 표지이며 신앙인의 상징이다. 또한 “…의 이름으로”는 어명(御命)의 뜻이다.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였더니 마귀들까지도 저희에게 복종하였습니다”(루가 10, 17).
따라서 성호경은 특별한 은혜를 받게 한다. 특히 성수를 찍어 기도하면 더 많은 은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호경의 마지막 행동인 합장(合掌)은 불교의 것과는 다르다. 또한 십자 모양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그 고통을 상징한다. 따라서 경건한 자세로 할수록 더욱 마음과 뜻이 하늘로 들어 올려질 것이다.
3. 십자 성호의 구분: 이 십자 성호는 작은 십자 성호와 큰 십자 성호로 나누인다. 작은 십자 성호는 초대 교회 때부터 사용되었으나, 4세기 이후로는 손가락을 모아 편 채, 엄지손가락을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차례로 대어 십자가를 그어 왔다. 지금도 복음을 듣기 전에 우리는 이 작은 십자 성호를 세 번 긋는다.
주님의 말씀과 행하신 사적(史蹟)을 머리에 잘 담아 깊이 생각하며 간직하겠고, 신자로서 남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으며, 말씀과 사적을 잘 따르고 실행하겠다는 다짐으로 세 번 십자가를 긋는다.
큰 십자 성호는 11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왼손을 먼저 가슴에 붙이고, 오른 손가락을 모두 펴 이마에서 “성부와”, 가슴에서 “성자와” 왼편 어깨에서 “성”, 오른편 어깨에서 “령의”, 두 손을 합장하며 “이름으로. 아멘” 한다. 이 밖에 십자가는 강복과 축성 때, 사제가 손으로 긋는다.
▶ 세례 성사 (洗禮聖事)
1. 의의: 이는 칠성사 중 제일 먼저 받는 성사로,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신앙 생활을 시작하려는 자가 일정 기간의 교육을 수료한 후, 물로 씻는 예절을 통해 받는 성사이다. 이 성사는 입문 성사로 견진, 성체 성사와 연결되어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의 기초를 놓는다.
세례 성사를 통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견진 성사로 신앙이 더욱 굳건하게 되며, 성체 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빵을 받게 된다. 또한 이 성사로써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며,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요한 3, 1-6) 하느님의 자녀와 그리스도의 형제가 된다. 그러기에 세례 성사는 교회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여러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한다(로마 8, 15; 5, 2).
2. 세례의 물: 창세기의 “…신의 기운이 물위에 빙빙 돌고 있었다”(1, 2)라는 말씀처럼 물은 원천적, 근원적, 모성적 요소를 나타내며, 요한 복음은 물에서 모든 생명이 나옴을 암시한다(3, 5). 따라서 세례 때 물을 사용하는 것은 세례가 재생의 성사요,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함을 의미한다.
노아의 홍수에서 물은 재생의 법을 말해 준다. 지상의 생명체는 모두 멸망되나, 노아의 가족은 새 땅에 새로운 인류를 건설한다(창세 9장). 여기서 물은 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말하며, 동시에 새 인류 새 생명을 뜻한다. 따라서 물로 세례를 받음은 악의 요소를 멸하고 새 생명에로의 탄생을 의미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된 땅의 경계인 요르단 강물을 건너감과, 파라오의 군대를 극적으로 피해 홍해의 물을 건너감도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을 말한다.
3. 세례의 은총: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정하신 세례 성사는 받기 전에 진정한 속죄가 요구된다(루가 3, 3). 그러나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회개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며, 우리가 세례로 얻게 될 ‘죄(마귀)에서의 승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는 세례의 완성이 아닐 수 없다.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의 승리에 참여케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신적인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사도 바오로도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접붙였다”(로마 11, 24)고 하였다. 그리고 가지들이 포도나무에서 생명을 취하듯이(요한 15, 5),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
파스카로써 우리는 노예와 죄의 상태에서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생명과 자유의 상태가 되었다. 홍해의 물이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가 되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온 것은 바로 첫 성사인 세례 성사이다(1고린 10, 2). 따라서 세례는 그리스도 파스카 승리에의 참여이다.
또한 세례는 영혼이 원죄 상태 이전의 상태가 되게 한다. 아담은 원죄로 하느님의 모든 선물을 잃었으나, 세례로 초자연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인호(印號)가 주어진다. 이는 초자연적 실체이며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 결합이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기도 하다.
4. 조건 세례: 세례는 위의 정식 세례 외에 여건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먼저 조건 세례(條件洗禮)가 그것이다. 이는 세례를 받으려는 자가 과거에 유효하게 세례를 받았는지 의심스러울 때, 조건부로 세례를 주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하면” 혹은 “세례 받은 적이 없다면” 또는 “받았던 세례가 유효하지 않다면” 등의 조건을 붙인다.
5. 대세: 대세(代洗)는 사적(私的) 혹은 약식(略式) 세례라고 하며, 사제를 대신하여 사제 외의 사람이 약식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대세는 정식으로 사제가 세례의 집행이 불가능할 경우, 전쟁이나 박해나 사고로 위급할 경우, 또는 사제를 초청하는 사이에 죽을 위험이 있을 경우에 집행되어야 한다. 그중에 위급한 경우의 대세를 비상 세례(非常洗禮)라고 한다.
한편 대세는 임종 대세와 조건 대세가 있는데, 임종 대세(臨終代洗)는 죽을 위험이 있는 자가 받으며, 최소한 사대 교리(하느님 존재, 상선 벌악, 삼위 일체, 강생 구속)를 믿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죄를 뉘우치고,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세례를 받을 원의가 있어야 한다.
결국 대세를 받기 위해서는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 건강이 회복되면 교리 교육을 받겠다는 약속, 하느님을 믿고 미신을 끊겠다는 의사 표시 등이 있어야 한다. 대세의 예식은 성수나 깨끗한 물을 이마에 흘리며 “(아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즉시 보고 양식에 따라 해당 지역 본당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비상 세례는 매우 위급하므로 우선 대세를 주고, 임종 대세 때와 같이 회심을 갖게 하며, 차츰 상황을 보아 가며 교리도 하도록 한다.
조건 대세(條件代洗)는 의식이 없거나 사망 후 1시간 이내면 조건부 대세를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하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대세를 베푸는 자는 충분히 의식과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
6. 혈세와 화세: 성전(聖傳)에 의하면 세례의 형식은 주수 세례(注水洗禮: 이마에 물을 흘림), 침수 세례(沈水洗禮: 물에 담금), 살수 세례(撒水洗禮: 물을 뿌림) 등의 형태가 있다. 그중 가톨릭에서는 주수 세례를 행한다. 이상을 물로 세례를 주는 수세(水洗)라고도 한다.
그러나 교회는 물로 세례를 받지 못한 자에게도 혈세(血洗)와 화세(火洗)를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비통상적인 방법으로도 신적인 생명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세와 화세는 자기의 탓이 없이 물로 세례를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한한다.
혈세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때문에 순교를 당했거나, 구원의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쳤으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경우이다(마태 10, 39). 그리고 화세란 누구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잘못을 극도로 참회하면서, 용서받고 구원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물로 세례를 받지 못한 경우이다(루가 23, 42-43).
7. 유아 세례: 유아 세례(幼兒洗禮)란 보통 7세 미만(초등 학교 취학 전)의 철이 들기 전의 어린이가 받는 세례를 말한다. 이는 계속 연구되어야 할 문제이나, 교회는 초기부터 유아 세례를 거행해 왔다.
그 이유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요한 3, 5)의 성서 말씀, 혈세와 화세 외에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음, 유아는 죄가 없으나 원죄가 있고, 성서에 유아 세례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구약의 할례를 유추할 수 있으며, 유아의 신앙은 교회가 보충한다는 점 때문이다.
세례를 받지 못하여 원죄가 있는 유아는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렇다고 유아는 자신이 범한 죄가 전혀 없으므로 지옥에 갈 수도 없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두 가지 요건을 구비한 자가 가는 곳을 림보(Limbo)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가톨릭 교의(敎義)가 아니라, 다만 신학자들이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어느 정도 행복을 누리면서 기다릴 수 있는 장소로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유아의 구원 문제는 원죄의 새로운 이해와 함께 연구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래도 교회는 어린이가 태어나면 즉시 유아 세례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문제 해결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
8. 세례와 구원: 교회는 가톨릭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가톨릭 신자 외에는 모두 단죄를 받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구원이 가톨릭 안에서 그리고 가톨릭을 통해서 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비가톨릭 신자나 비신자라도 은총의 상태에 있다면, 가톨릭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양심과 명령에 따르고 은총 안에 산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공로를 통해서 구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세례명 (洗禮名)
세례명은 전에는 본명(本名)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이 원하는 성인의 이름을 선택하면, 교회에서 이를 세례자에게 명명한다. 이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과 함께 새로이 탄생되어 새롭게 영성 생활을 시작함을 상징한다.
특히 세례명은 그 성인의 덕성을 본받고, 그분의 도움을 전구하며, 일생 동안 자신의 수호 성인(守護聖人)으로 공경하고 보호를 받으며, 그분의 뜻을 기리도록 하기 위해 지어 준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을 ‘영명 축일(靈名祝日)’이라고 하여 축하한다.
▶ 속량 (贖良)
이는 일반적으로 몸값을 받고서 종을 풀어 주어 양민(良民)이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를 범함으로써, 죄악의 노예 신세가 된 인류를 구세주 그리스도가 구출한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속량이란 하느님의 아들인 성자께서 강생한 목적이요, 인류 구원의 내용이기도 하다.
▶ 수계 범절 (守誡凡節)
수계란 계명을 지키는 것, 또는 신자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나, 어느 종교를 믿고 그 명하는 바 계율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범절이란 법도에 맞는 일상적인 모든 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계 범절이란 하느님을 믿고 그 계명을 지키며, 교우의 본분을 행하는 일상사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는 거의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 수호자 (守護者)
수호자란 지키며 보호해 주는 자를 말하나, 교회에서는 수호 성인과 수호 천사를 일컫는다. 수호 성인(守護聖人)은 주보 성인(主保聖人)이라고도 한다. 신자가 세례를 받을 때나 단체 혹은 성당, 어떤 지방, 특별한 직업 등에서 각자 특별히 공경하며 본받고 싶은 성인이나 천사를 선택하여, 그를 수호자로 모시고 일생 동안 그의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이때 수호자가 천사라면 수호 천사(守護天使)라고 한다. 이 관습은 13세기경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교회법에서도 이를 명하고 있다. 모든 성인의 통공(1고린 12, 8. 13)과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 근거한다(1고린 12, 18. 25-30).
▶ 시노두스 (Synodus)
이는 그리스어로 ‘회의’라는 말로, 관구나 교구 등에서 주교나 성직자, 혹은 주교들만이 모여, 교리, 규율, 전례 등의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하기 위해, 교회 권위하에 개최하는 교회 회의이다.
그러나 참석자들 모두가 의결 투표권을 갖지는 않는다는 점이 공의회와 다르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시노두스(시노드)는 교구 주교가 소집하고 입법적 결정권도 갖는 교구 시노두스를 뜻하였다. 그러나 새 교회법에 의하면 주교 대의원회(주교 시노드)를 뜻하기도 한다.
▶ 시성 (諡聖)
1. 의의: 시복 시성이란 성덕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나 순교자에게, 탁월한 신앙의 모범을 본받고 공적인 공경을 바칠 수 있도록, 복자(福者)나 성인(聖人)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을 말한다.
2. 조사: 먼저 고인의 성성에 대한 명성이 높아지면, 지역 주교는 시복 준비 조사 위원회를 결성하여, 교황청에 시복 조사를 건의하기 위한 일반 자료 조사 과정을 시작한다. 고인의 언행, 저서, 기적 사례 등을 엄밀히 조사하여 교황청 시성성에 보고한다.
그 후 교황의 조사에 대한 허락이 있으면, 교황청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다. 이때 시복 대상자에게 가경자(可敬者)라는 존칭이 주어진다. 그런데 시복 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있어야 하는데 새로운 법에서는 순교 사실만 확인되면 순교자는 기적 심사가 면제되도록 하였다.
3. 시복: 덕성이 확정되고 그분을 통한 기적이 두 가지 이상 있으면, 의사나 병리학자 등이 기적에 대하여 확실히 검토하며, 기적이라는 것이 확정될 때까지 많은 관계 전문가들의 조사와 재판을 계속한다. 그리고 기적이 확인되면, 교회는 그를 복자로 선언(諡福)한다.
4. 시성: 그 후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인정될 때, 그를 성인으로 선언(諡聖)하고 의식을 행한다. 시성은 복자에 한해서 행해진다. 그리고 복자는 그 공경이 어느 지방이나 단체에 한하나, 성인은 전 세계 어디서나 누구든지 공경하게 된다. 그런데 시성은 교황만이 할 수 있는 무류성의 행위이다.
5. 축일: 또한 미사 경본이나 사제의 성무 일도에 기도문이 삽입되고, 전례력에 축일이 도입되며, 성체 행렬에서 그 유해를 공경하게 된다. 성인들의 축일은 대개 사망일로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례를 받는 자들은 이날을 영명 축일로 정하게 된다.
6. 한국 순교 성인: 한국 교회는 1857년 처음으로 82명의 가경자를 갖게 되었으며, 그중 79명이 1925년에 시복되었고, 1984년에 시성되었다. 한편 1866년 병인 박해 순교자 중 24명이 1968년 시복되었고, 1984년에 시성되었다. 이때는 새 교회법의 반포로 가경자의 기간이 단축되었으며, 이는 시성 시복의 간소화로 가경의 의의가 약화되었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한하여 한국 순교 복자 103위를 시성하였다. 물론 순교자이기에 기적 심사는 면제되었으며, 아비뇽 교황 시대를 제외하고는 교회 사상 처음으로 교황청 밖에서 시성되었다.
▶ 십자가 (十字架)
십자가는 구원과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상징이다. 원래 십자가는 이집트 와 고대 동방에서 사형에 처하던 도구(형틀)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죽음 후, 십자가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단’, ‘구원의 승리’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의 형태는 라틴, 그리스, 켈트(아일랜드 묘지), 교황, 총대주교, 티형, 안드레아 십자가 등이 있다. 그중 안드레아 십자가는 X자인데, 이유는 X자에 달려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톨릭의 십자가에는 그리스도께서 달려 있으며, 그분의 몸에는 오상(五傷: 다섯 상처)이 있다. 그래서 가톨릭의 십자가를 십자 고상(十字苦像)이라고 한다. 신자들은 이 십자 고상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모시고, 바라볼 때마다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과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한다.
그런데 십자 고상 위 부분에 “I.N.R.I.(=J.N.R.J.)”라는 글자를 볼 수 있다. 이는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Jesus, Nazarenus, Rex, Judaeorum)”라는 말의 첫 글자만 딴 것이다(요한 19, 19-22; 마태 27, 37). 본시오 빌라도가 이 글을 판에 써서 박도록 하였다. 이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각각 쓰여졌다.
▶ 아멘 (Amen)
아멘은 히브리어로 ‘신뢰할 만한’, 그리스어로 ‘진실로’, ‘그렇습니다’를 뜻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정말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의 뜻이다. 유다인들은 회당의 의식에서 능동적으로 동의함을 나타내는 말로 이를 사용하였다.
그 후 신자들이 모든 기도를 마칠 때, 반드시 아멘으로 끝을 맺었다. 이는 앞서 기도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신약에서 예수께 대한 고유 명사 곧 “진리”의 뜻(묵시 3, 14; 2고린 1, 20), 그리고 다짐하는 말로 “진실로”의 뜻(요한 6, 53), 또한 “그렇습니다”의 확인 말(마태 11, 26)로 쓰이기도 하였다.
▶ 안수 (按手)
안수란 손을 머리에 얹었다가 펴 드는 의식 또는 손을 얹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영적인 능력의 전달 방법으로 동서 고금의 종교사에서 일반적인 행위였다. 성서에서도 안수로 하느님의 능력을 전달하였으며, 이것이 전례화하여 주로 성직자의 성품식에 이용되었다. 그 외에도 견진, 혼배, 고해 성사 때 손을 얹든지 높이 펴 들든지 한다.
손은 권한을 의미한다. 그래서 안수는 하느님의 축복을 빌거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교권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유다인의 관습에서는 안수로 복을 빌며 기도하였고(창세 48, 13-15; 레위 9, 22),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할 때도 안수하였다(신명 34, 9). 신약 시대에는 성품식 때 안수를 하였고(루가 4, 40; 사도 6, 5-6; 2디모 1, 6), 세례와 함께 성령 부여의 안수(사도 8, 14-19)도 하였다.
▶ 안식일 (安息日)
안식일이란 이스라엘 민족이 한 주일 중에 야훼께 바치기로 정한 제7일(토요일)을 말한다. 유다인들은 이날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서 전혀 일을 하지 않았다(출애 20, 10). 그리고 이날 두 번씩 제사를 드렸으며 특별한 예배 모임을 가졌다(민수 28, 9-10; 레위 23, 2-3).
또한 이날 태초에 하느님이 6일 동안 창조 사업을 마치시고 제7일에 쉬심(출애 20, 11; 31, 17)과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해방됨을 기념하였다(신명 5, 15). 그리고 이날은 모든 이가 야훼께 예배를 드렸고 노예와 가축도 휴식을 취하였으며, 병 치료까지 금하였다(마태 12, 1-2).
그러나 예수께서는 안식일 자체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임과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강조하였다(마르 2, 27). 그런데 부활과 성령 강림일이 주일의 첫날(日曜日, 主日)이었기에, 초대 교회부터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개신교의 몇몇 교파를 제외하고는 이를 지키고 있다.
▶ 알렐루야 (Alleluia)
이는 히브리어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혹은 “너희는 야훼님을 찬미하여라”의 뜻이다. 히브리어 힐렐(Hillel: 찬미하라)이라는 동사의 명령어 Hallelu에 하느님 야훼(Jahve)가 합성된 말이다. 이는 기쁨에 겨워 소리지르는 환호로 찬송가와 기도문에 흔히 쓰인다.
개신교에서는 히브리어 그대로 ‘할렐루야’라고 하나, 당시 그리스어 ‘알렐루야’와 혼동해서 사용되었고, 라틴어로도 ‘알렐루야’로 발음하므로 가톨릭에서는 ‘알렐루야’로 사용한다. 이 말은 원래 구약의 시편 구절 처음이나 끝에 많이 쓰였다. 가톨릭 전례에서는 사순절을 제외하고는 모든 미사 중에 복음 환호송으로 이를 노래한다
▶ 연령 (煉靈)
1. 연령: 이는 세상에서 보속을 다하지 못하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영혼을 말한다.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한 잠벌(暫罰)이 남아 있는 영혼은 일정한 기간 동안 연옥에서 단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정화(淨化)의 기간이 끝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사는 자들의 기도와 공로, 그리고 희생과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연령을 위해 위령 기도, 장례 미사, 위령 미사를 드리도록 하고 있다. 특히 11월은 위령의 달,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 정하여, 연령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고 있다. → 모든 성인의 통공
2. 연옥: 연옥은 연령이 하느님 대전에 나가기 위해, 즉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연옥불에 의해 정화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는 일정한 장소라기보다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연옥은 최후 심판 후에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연옥은 성서에는 확실하게 계시되지 않았으나, 성전(聖傳)에서는 확실하다. 그래서 그레고리오 13세, 우르바노 8세 등의 교황과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를 신조로 정의한 바 있다.
▶ 연옥 (煉獄)
1. 연령: 이는 세상에서 보속을 다하지 못하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영혼을 말한다.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한 잠벌(暫罰)이 남아 있는 영혼은 일정한 기간 동안 연옥에서 단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정화(淨化)의 기간이 끝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사는 자들의 기도와 공로, 그리고 희생과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연령을 위해 위령 기도, 장례 미사, 위령 미사를 드리도록 하고 있다. 특히 11월은 위령의 달,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 정하여, 연령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고 있다. → 모든 성인의 통공
2. 연옥: 연옥은 연령이 하느님 대전에 나가기 위해, 즉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연옥불에 의해 정화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는 일정한 장소라기보다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연옥은 최후 심판 후에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연옥은 성서에는 확실하게 계시되지 않았으나, 성전(聖傳)에서는 확실하다. 그래서 그레고리오 13세, 우르바노 8세 등의 교황과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를 신조로 정의한 바 있다.
▶ 영성체 (領聖體)
이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우리 마음에 실제로 받아 모심을 의미한다. 이로써 하느님과 우리는 일치를 이룰 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간에도 일치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13세기까지는 빵과 포도주를 같이 받아 모시는 양형 영성체(兩形領聖體)를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사제만 성체와 성혈을 모시고, 신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체만 영하도록 이를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당화시켰다. 그런데 오늘날의 경향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양형 영성체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교황청이 규정할 경우, 주교는 양형 영성체를 허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성체 성사는 내적으로 은총의 샘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룰 뿐만 아니라, 많은 은혜, 특히 성화 은총(聖化恩寵)을 더하게 한다. 그런데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잘못이 있으면 고해 성사로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규정대로 공복재(空腹齋)를 지켜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us)
1. 의의: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사람이 되신 분이시며,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신 분이시다. ‘예수’란 ‘하느님이 살리신다’ 혹은 ‘야훼는 구원자시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는 뜻이다. 이는 히브리어로 예수아(Jeshua), 요수아(Joshua), 여호수아(Jehoshua)이다.
2. 이름의 의미: 이 이름들은 성서에 많이 등장한다. 특히 복음에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의 이름으로 예수였다. 또한 관습에 의하면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 주는데, 예수는 하느님이 지어 주셨기에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미리 예언되었고 조상들이 기다려 온 구세주이시다.
따라서 타락하였던 인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예수로 말미암아 회복된 것이다. 그러기에 기원전 4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유다 철학자 필로(Philo)는 ‘예수’라는 이름을 ‘주님의 구원’으로 표현했고, 에우세비오도 예수를 ‘주의 구원을 가져오는 자’로, 그리고 성 치릴로도 역시 ‘구원자’로 해석하였다.
‘그리스도란’ 히브리어 ‘메시아(구세주)’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말인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도유된 자’, 즉 기름 부음을 받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인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구약의 법전에는 사제, 왕, 예언자 등은 임무 수행을 위해 도유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왕직, 사제직, 예언직 세 가지의 품위가 그 인격에 겸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공생활과 죽음의 시기: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은 루가 복음(3, 23)과 요세푸스의 기록(유다 전쟁 1), 루가 복음(3, 1)에 의해 알 수 있다. 이들의 자료에는 예수께서 전도를 시작할 때가 30세쯤 되었다.
또한 예수의 사망 연도는 복음 사가들과 교부들에 의하면, 대제관 가야파와 본시오 빌리도의 통치 기간 중에 수난을 받고, 33세쯤 돌아가셨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그 날짜는 니산 달 15일 금요일이 분명하다.
▶ 위령 기도 (慰靈祈禱)
위령 기도는 전에 연도(煉禱)라고 하였으며, 세상을 떠난 교우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가톨릭 기도서 74쪽). 이는 시편(129편, 50편)과 기도문으로 되어 있다. 이는 세상에서 보속을 다 못하고 죽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연옥에서 정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고통 중의 연옥 영혼을 위해 하는 기도를 말한다.
연옥의 영혼은 자력으로 천국에 올라갈 수도, 고통을 덜 수도 없으므로 지상의 교우들이 기도와 희생으로 빨리 천국에 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는 역시 위령 미사이다. 이 미사에는 기일 미사, 장례 미사, 보통 미사 등이 있는데, 그때마다 미사 예물과 함께 사제에게 미사 봉헌 신청을 해야 한다.
▶ 은수자 (隱修者)
은수자는 아무도 없는 외딴곳에서 은수 생활(修道生活)을 하는 자를 말한다. 은수 생활은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방편으로, 수도 생활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은수자는 주로 동방 교회에 많았으나, 12세기경 서방에도 많은 수도원이 있었다. 이는 영성 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 의무 축일 (義務祝日)
이날은 미사에 참여하고 심한 육체 노동을 삼가며 쉬는 중요한 축일이다. 한국 교회가 정한 의무 축일은 연중 모든 주일, 성탄(12·25), 성모 승천(8·15),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1) 등이다. 이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축소 조정한 것이다. 원래는 이 밖에도 주님 공현, 예수 승천, 성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 요셉, 성 베드로 바오로 대축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 인호 (印號)
인호는 세례, 견진, 성품 성사 때 받는 무형의 표징이다. 성서에서는 그리스어로 도장, 인장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인호는 주인에게 예속되고 보호받고 하느님의 뜻을 이행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 받고 그분에게 속해 있음을 나타내며, 이는 보이지 않는 영적 표시로서 성사 때의 인호는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다. 특히 성품 성사 때의 인호는 사제직에 대한 영적인 권한을 의미하기도 한다.
▶ 임종 전대사 (臨終全大赦)
임종이란 숨이 끊어질 때를 말한다. 임종이란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영혼을 하느님께 드리는 엄숙한 순간이다. 임종이 시작되면 축성된 초에 불을 켜고 기도한다. 피부는 감각이 없고 눈은 보이지 않아도, 귀는 늦게까지 들리므로 소란을 피우지 말고, 조용히 기도하거나 임종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임종 시에 병자 성사를 받음으로써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보다 완전하고 확실한 통회를 하며,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런데 전대사는 받을 의향이 있어야 하고, 죽음을 주님의 섭리 안에서 순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잠벌 (暫罰)
잠벌이란 영벌(永罰)과는 반대로 일시적으로 잠시 받는 벌로서, 현세에서나 연옥에서 받게 되는 벌을 말한다. 모든 범죄에는 그 죄에 상응하는 벌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일 고해 성사로 죄를 용서받았다 할지라도, 이에 대한 잠벌은 남아 있기 마련이다. 교회는 현세나 연옥에서는 잠벌을, 그리고 지옥에서는 영벌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기도와 희생, 기타 보속을 통하여 잠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렇게 면제받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그런데 전대사(全大赦)는 연옥에서 받을 잠벌 전부를 면제받는 것이며, 한대사(限大赦)는 그 일부를 면제받는 것을 말한다.
▶ 재의 수요일 (水曜日)
이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수요일을 말한다. 이날 교회에서는 지난해 성지 주일에 축성한 성지를 태운 다음, 사제가 그 재를 찍어 신자들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얹는 예절을 행한다. 이때 사제는 창세기 3장 19절을 인용하여 “사람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시오”라고 한다.
재라는 것은 물건이 타고 남은 잔재이다. 이는 인간이 범한 죄의 잔재로 그 죄에 해당하는 보속을 상징한다. 욥이 하느님의 시련을 보고 자신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잿더미에 앉았었다(욥기 2, 8). 그리고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설교했을 때도 그랬다(요나 3, 6).
이는 신약 시대에도 계속되었다(마태 11, 21).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인생 무상을 깨우치고, 진정한 통회와 보속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제대 (祭臺)
1. 의의: 제대는 제사, 즉 미사 성제가 봉헌되는 단(壇)이며, 성당에 들어가면 앞쪽 중앙에 놓여 있는 제단(祭壇)으로 성당의 중심이다. 예수님은 최후 만찬에서 식탁을 사용하셨고, 사도들 역시 나무로 만든 상에서 ‘빵을 나누는 예식’을 행하였다.
그런데 4세기 이후에는 돌로 만든 제대가 쓰이게 되었고, 6세기 이후에는 제단이 돌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구별이 없다. 이 제대는 갈바리아 산을 의미하지만, 신령한 바위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릴 장소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2. 제단의 성당 기물: 이 제단은 주교가 축성하는데, 제대판은 제대 위의 평면을 말하고, 중앙에는 성석(聖石)이 있었으며, 십자가, 백포(白布), 촛대 등이 그 위에 놓여 있다.
여기에 놓인 십자가는 미사 성제가 십자가의 제사와 동일함을 의미하고, 촛대는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지낼 때, 어두워 등불을 많이 사용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초는 신앙의 열렬한 사랑과 희생, 신자들의 거룩한 기쁨도 의미한다. 그리고 사제를 존경한다는 뜻도 있으며, 무엇보다 주님께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심을 의미한다.
제대포(祭臺布)란 제대 위에 깔아 놓는 아마포나 대마포로 만들어진 하얀 천(白布)을 말한다. 이는 미사 성제에 대한 존경과 숭고함 그리고 주님의 시신을 쌌던 염포도 상징한다. 백포는 세 장을 깔아 놓는데, 양쪽이 땅에 거의 닿을 정도로 깔고 그 밑으로 두 장을 깐다. 이는 잘못하여 성혈을 쏟을 경우를 대비하고 성석을 덮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미사를 지낸 다음에는 제단 덮개로 덮어 둔다.
▶ 죄 (罪)
1. 의의: 죄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쁜 줄 알면서도 자유 의지로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르고,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함을 말한다. 이는 하느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을 육체적 감각적 노예가 되게 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게 한다. 결국 이는 하느님과 이웃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죄는 인간성에 속한 것이며 악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인간 본성에 대한 배신으로서, 이성을 거슬러 성덕을 파괴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죄란 영원한 법(하느님의 법)을 거스르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죄는 인간이 책임 있는 행위와 자유를 가지되 택한 목적을 위해 잘못 실행한 행위에서 생기며, 인간의 원의가 무한한 것처럼 죄의 다양성도 무한하다.
2. 성서상의 죄: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율법과 원의에 대한 침범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죄는 규율의 회피이고 침범이며, 주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불순명이다(창세 3장; 신명 28, 15-68). 구약에 나타난 죄의 근원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사악한 지향과 마음이었다. 예를 들면 야훼께 반항함(민수 14, 9; 신명 28, 15-44), 하느님의 명예를 더럽힌 것(2사무 12, 10; 이사 1, 4), 불충실과 간통(에제 16, 59; 호세 3, 1) 등이 그것이다.
신약에서는 대체로 죄의 의미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구원을 잃고 하느님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죄는 모든 자유와 선의 근원이시며 구원의 원천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떼어놓고, 인간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찬미와 영광을 거부하고 대항함으로써, 하느님을 잃고 파멸에 이름을 말한다.
또한 죄는 계시된 하느님의 의지에 대립함을 의미한다. 즉 창조주의 뜻을 거역하고, 율법에 표현된 하느님의 뜻을 어김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가장 무례한 불의를 행함을 의미한다.
3. 원천: 죄의 원천은 칠죄종(七罪宗)이다. 이는 죄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로서, 그 자체가 죄이면서 동시에 다른 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즉 교만, 인색, 음욕, 탐욕, 나태, 분노, 질투 등이 그것이다. 또한 죄의 원인의 내적 가능성은 지성, 감성적 욕망, 의지 등이고, 외부에 있는 죄의 원인의 가능성은 마귀이다.
4. 구별: 죄는 반대되는 덕에 따라 구별된다. 예를 들어 나쁜 표양은 타인에 대한 애덕을 거스름이요, 불신앙은 신앙의 덕을 거스름이고, 경신의 덕을 거스름은 바로 미신이다. 또한 덕이 명하는 중요한 의무 내지 책임을 어김에 따라 구별된다. 예를 들어 순결을 빼앗은 죄는 하느님의 은총을 거스름과 순결덕, 건강, 좋은 결혼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중용의 덕을 벗어남으로써 죄가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재산의 낭비, 과소비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죄가 많은 덕을 그르칠 수 있으므로 고해 성사 때 양심의 판단에 따라 죄의 번수와 종류를 일일이 고백해야 한다. 또한 죄는 마음의 죄와 행동의 죄로 구별할 수 있다. 내심에서 악을 즐기는 경우와 악한 의향으로써 악을 행할 실제적 결의를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5. 종류: 죄의 종류(種類)에는 원죄와 본죄가 있다. 그중에 원죄(原罪)는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인간성의 순조로운 조화에 파괴를 초래했고, 무질서를 가져다 주었으며, 모든 악에로 이끌리는 경향의 근원을 이룬다.
또한 이 죄는 인간이 하느님께 반항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이탈함과 육체가 영혼에 반항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 본성이 받았던 성화 은총(聖化恩寵, 超性恩惠)을 잃고 죄에로의 경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는 하느님께 대한 복종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생겼고, 영신의 지도를 뿌리치려는 육신의 반항적 움직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로 말미암아 잃었던 성화 은총을 세례를 통해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救援) 되었다.
본죄(本罪)는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 본성의 무질서와 결함으로부터 많은 악한 행위가 흘러 나와 이루는 죄이다. 그런데 이 죄는 크게 대죄와 소죄로 나뉜다. 그중에 대죄(大罪)는 영혼 안에 있는 성화 은총을 잃게 하여 영신적 생명을 파괴시킨다.
이 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일이나 행위가 있어야 하며, 그 중대성을 완전히 인식하고 자유 의지로 행해야 한다. 물론 소죄와 대죄의 판단은 양심에 의하나, 대죄는 성화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을 잃고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격과 모든 공로에 가담할 자격까지도 잃는다. 그래서 이를 중죄(重罪) 혹은 사죄(死罪)라고 하며, 사죄는 죽음에 이르는 죄이다(갈라 5, 19-21; 로마 1, 29-32; 2고린 6, 14-15).
소죄(小罪)는 성화 은총을 잃어버리지는 않으나, 영신적 생명의 완전하고 건전한 작용을 손상시킨다. 이는 대죄의 성립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었을 경우에 성립한다. 이 죄는 하느님을 등한히 하거나 덕행을 거스를 때 짓게 된다.
6. 범죄 예방: 결국 소죄도 하느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방해하고 갖가지 벌을 가중시키며, 대죄에 떨어질 위험을 초래한다. 따라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세상 물질의 허무함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겸손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의탁해야 하며, 자제, 극기, 보속, 희생 등으로 양심이 가르치는 바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특히 죄지을 기회를 피하도록 해야 한다.
▶ 주님의 기도 (祈禱)
1. 의의: 주님의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이기에, 모든 기도 중의 기도이다. 그리고 이는 사도 신경과 함께 가장 오래 된 기도이다. 성서에는 루가 복음(11, 2-4)과 마태오 복음(6, 9-12)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 마태오 복음이 대체로 오늘의 기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님의 기도는 7가지의 희망으로 되어 있는데, 앞의 세 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에 관한 것이고, 뒤의 네 가지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다.
2.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우리가 속해 있고,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돌보시며, 성화 은총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셨음을 시사한다. 이 말은 서언으로서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신뢰와 사랑을 그분 안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이 기도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나타낸다(로마 8, 16). 그중에 “하늘에 계신”이란 말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하느님의 왕좌(王座)”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요한 14, 2). → 하느님 아버지
3.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이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드리는 기도이다. 이는 첫 번째 청원으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시편 113, 1)는 말처럼, 만물 위에 첫째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4.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이는 하느님 왕국이 온 세상에 알려져, 모든 이가 알아 참된 교회로 돌아오며, 그 구성원으로 진실되이 살아, 마침내는 하느님 영광의 왕국에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기도이다. 이는 두 번째의 청원으로서 우리는 하느님을 창조주, 왕, 또는 주님으로 고백하고, 모든 이가 그분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5.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는 하늘에서 하느님께 천사들과 성인들이 순종하듯, 땅에서도 모든 이가 하느님께 기꺼이 순종하도록 드리는 기도이다. 이는 세 번째 청원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고 인내심을 갖게 하며, 시련도 없애 주시도록 도움을 청하는 의미도 포함한다(마태 7, 21).
6.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는 우리 육신의 물질적 생활을 지탱하는 데에 필요한 것과, 영신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매일 하느님께서 주실 것을 바라는 기도이다. 이는 네 번째 청원으로 “오늘”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날에 필요한 양식만을 매일 청하기를 원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지 않는 조건하에서, 우리가 현세적인 은혜를 청하도록 허락받았음도 보여준다.
7.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는 우리가 하느님께 잘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웃을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다섯 번째의 청원 기도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마태 6, 14-15).
8.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와 “악에서 구하소서”: 이는 우리가 세속과 마귀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라고 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의 기회를 피하고 그것을 배척하기 위해 항상 깨어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마태 26, 41; 1고린 10, 13). 마지막 청원 “악에서 구하소서”는 우리를 영육간에 해로운 모든 것으로부터 항상 보호해 주실 것을 청하는 기도이다.
▶ 주모경 (主母經)
이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두 기도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주모(主母)란 주님과 어머니 마리아를 의미한다. 따라서 주모경이란 주님께 드리는 기도와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합하여 한 말이다.
▶ 지성소 (至聖所)
이는 가장 거룩한 곳이라는 뜻으로, 특별히 신에게 봉헌된 장소로, 침해될 수 없는 은밀한 곳이었다. 구약의 성전(聖殿)은 ‘거룩한 장막’의 본을 따 건축했다. 그래서 장막(帳幕)과 같으며 좀더 큰 곳을 성전(聖殿)이라 하였다. 이 성전 안(本殿)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다.
지성소란 히브리말로 ‘거룩함 중의 거룩함’, 즉 최고의 거룩한 곳을 의미했다. 이곳에는 올리브나무로 제작한 정방형의 궤에 황금을 입힌 ‘계약의 궤’가 안치되었고, 그 궤 위에는 높이 4m 정도의 거룹(천사)이 양편에 날개를 펴고 있었으며, 이는 하느님의 임재(臨在)를 상징하였다.
이곳은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 들어갔으며, 그 주위에는 분향대, 촛대, 빵을 놓은 제사상, 번제를 위한 제단, 물통 등이 있었다(예: 솔로몬 성전). 성소, 특히 지성소는 하느님의 처소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중심이었다(1열왕 6-8장). 오늘날에는 영원한 천국을 상징하며 그리스도 현존의 표상이 충만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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