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32]만행산 등반과 기우축문(祈雨祝文)
막역한 친구들과 모처럼 등반을 했다. 남원의 만행산(萬行山.해발 909.6m), 산 이름부터 기분이 좋다. 장수 팔공산에서 시작해 만행산-노적봉-풍악산-문덕봉-고리봉(남원 요천과 섬진강의 합수지점)까지 59.5km를 천황지맥이라 부르는데, 풍수적으로도 의미가 큰 산이라 한다. 사매면의 혼불문학관 뒤에서 시작하여 대산면 풍악산을 거쳐 대강면의 비홍재까지 등반한 적이 있었지만, 천황지맥 60km 완주는 아득한 일이다. 등산 시작지점인 용평제 주차장에 ‘기우제단’과 축문 안내판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비가 너무 오지 않으면 남원부사가 이곳에서 비를 내려달라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후기 학자 안재직의 <희당집>에 있는 축문(같이 간 한문학자가 넉 자씩 쓴 명문이라 했다)을 멋들어지게 의역을 해놓았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길 옆의 무성한 풀들의 예초작업이 한창이다. 막 잘려나가는 풀들의 풋풋한 냄새와 장마 뒤끝인지 맑은 날씨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봉사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잘린 풀들을 즈려 밟고 가시라’는 인사에, 국민시인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구절이 떠올라 ‘뭣 좀 아시네’라며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정상은 천황봉(일제가 조작한 이름이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천황봉이라 했다), 정상 오르는 길은 경사가 50도는 돼 솔찬히 가팔라도 녹음으로 그늘이 져 크게 힘들지 않았다. 정상은 말 그대로 ‘파노라마 뷰’. 지리산과 덕유산의 연봉이 보이고, 특히 내 고향마을이 진짜로 보이는 듯했다. 보절면의 들도 제법 넓다. 상서(상사)바위를 거쳐 용호계곡으로 내려오는 길, 물소리가 우렁차 귀까지 즐겁다. 토요일인데도 인적이 거의 없어 계곡 맑은 물에 홀라당 꿰(옷)을 벗고 칠순의 남자 4명이 ‘알탕’을 즐겼다. 으히- 그맛이라니? 한 친구는 이런 알탕은 처음이라며 숫제 감격이다. 한 친구는 바위에서 고추 말리기가 몇 년만이냐며 ‘고추 중에 제일은 임실 태양초 고추’라는 흰소리를 날렸다.
‘5학년 3반’이라는 세종시 사는 여인이 산행을 하는데, 넙죽넙죽 대답도 잘 한다. 아이를 키우고 남편 내조하느라 짬이 없었는데, 이제 겨우 벗어나 10개월에 걸쳐 혼자서 한국의 100대 명산을 섭렵했다고 한다. 내친 김에 영혼이 자유로운 여성이 되어 ‘100+ 명산’을 20여곳째 훑으고 있다며 환하게 웃으며, 그냥 지나쳐버려 조금은 아쉬웠다. 알탕을 같이 했으면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으련만. 내가 내생에 여인으로 태어나면 나는 ‘싼티’라는 말을 듣는다해도 주저없이 동참하리라. 흐흐. 역시 산행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한 달에 한번 정도 다니는 게 쵝오인 것같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됐지만, 왕년에 서울에 살 때에는 고교 친구들과 ‘6山회’라는 등반 모임을 만들어 10여년 동안 10여명이 몰려 다녔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산을 오르다보면 알탕의 명소들이 있는데, 또 그맛이 주긴다.
이곳 출신의 서울 충무로 동물병원 원장께 “정상에서 보니 보절의 한자가 보배 보(寶)에 마디 절(節)인 게 실감이 난다”며 안부전화를 드리니 반색을 하신다. 이 분이 지난해 오수개의 세계화를 위하여 임실군에 1억을 지정기탁하신 윤신근(74) 박사이다. 그 덕분에 제대로 된 오수개 조형물을 원동산공원에 모시고 성대한 제막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 윤박사의 바톤을 이어받은 듯, 또 한 분의 어르신이 오수개의 발전기금으로 써달라며 1억을 기탁하셨다.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그분들의 고귀한 뜻에 보답하는 길은,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여 오수를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만드는 일이다. 천 년 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의견비의 건립연대를 공인받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홍보맨’은 능력은 턱없이 부족해도 자나깨나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 산행을 누가 기획했느냐? 우리 팔순까지는 한 달에 한번 이런 만행(漫行)을 하면 안될까? 기분이 좋으니 마구 떠든다. 한 친구가 노랫말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생소한 노래를 불렀다. 범능스님의 <푸른 학으로>. <사색을 먹고 사는 눈 푸른 운수납자/구름에 쌓여 있는 인간사 속진을 떠나/나 여기 한 마리 꾸밈없는 푸른 학 되어/무심천을 날아가리/뜬 구름 같은 인생/청산을 닮아가며/자연의 순리따라/한 삶을 살으다가/어느날 문득 지는 석양에/내 모습을 불태우리라>. 제법 어울리는 노랫말이지만 음치인 게 아쉽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주인공 현각스님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스님은 진정 아까운 ‘찬불가 가수’였는데 급성 당뇨로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신 게 너무 안타깝다. 유작의 노래 <나 없어라>를 감상해 보시라.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지듯, 우리의 인생도 깊어질 것이다.
산행에 있어 먹는 재미가 빠트릴 수 없다. 정상 막걸리는 이제 옛 얘기가 됐지만, ‘내조의 여왕’이 새벽부터 싸줬다는 샌드위치와 김밥 몇 줄에 감사의 말을 날리고 허기를 채우며 흰 소리를 뱉아내는 ‘흰머리 소년’들의 하루가 늘 오늘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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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이 지역의 학자 안재직의 <희당집>(喜堂集>에 실린 기우(祈雨)축문이라는데, 그의 아들이 1984년에 국역해 펴냈다고 한다. 한자와 한문은 거의 까막눈이지만, 의역(意譯)해놓은 것을 읽고 너무 감탄을 했기에 그 번역문을 적어놓는다. 남원시 공무원들이 고맙기까지 했다. 옛사람들이 얼마나 하늘을 공경하고 세상을 착하고 조심조심 사셨는지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하늘이래도 그 정성이 어여뻐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비를 내려줬을 것같다. 실제로 돼지의 피를 뿌리고 이 축문을 낭송하며 기우제를 지내면, 돌아가는 남원부사 일행에게 ‘비 선물’을 내려줬다는 믿거나말거나 식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아, 착한 조선 백성들이시여! 우리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 0년 0월 0일, 기운이 힘차게 모이고 형세가 연이어 감돌아 특별히 빼어난 이곳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드러내고 증험하여 일찍이 전하였습니다.
지금 어찌 어여쁘게 보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리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춘삼월이 이르렀는데 이전에 없던 심한 가뭄으로 ‘베틀북’은 이미 비어있고 밭두둑 또한 황폐해졌으니, 불쌍한 우리는 곤궁하고 외로워 앞으로 장차 쓰러져 죽을 뿐입니다. 농사를 근본으로 삼았기에 시일을 늦출 수 없습니다. 올해 윤달이 지났는데도 한여름에 초승달이 드리워져 백성이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신께서 진실로 이를 살피시어 봉(封)한 지역 안에서 신명(神明)을 오로지 하시면 가뭄 귀신의 횡포를 쉽게 다스릴 수 있고, 용의 게으름을 채찍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혜택을 모아야만 오래도록 권위를 빌리겠습니까? 비 내리고 햇빛 비춰우저 일찍이 우리가 잘못되게 한 적이 없었으며, 심고 거두는 것이 무엇인들 신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향긋한 술통이 맑고 풍성하여 감히 근심을 호소하오니, 바람을 내리고 구름을 타서 부디 정성과 경건한 마음을 흠향하소서.>
원문은 이렇다. 維年月日 氣鍾扶輿 勢盤連綿 作鎭特秀 著驗夙傳 何意今者 邈不虔見憐 三春抵比 一旱絶前 李柚 旣乏 田疇且捐 哀我窮獨 逝將顚連 農以爲本 時不可廷 今歲衍閏 仲夏重弦 民孔痹矣 神實監旃 封部之內 神明攸專 魌虐易誅 龍懶可鞭 曷屯惠澤 久假權 日雨日暘 曾莫我愆 乃稼乃穡 孰非神恩潔腯 敢龥悶悁 降風乘雲 庶歆精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