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그리스도의 지성소 봉사가 마치고 그분이 이 땅으로 재림하시기 전에 잠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때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보자도 없고 믿는 사람들은 홀로 남겨진 것처럼 외로운 투쟁을 해야만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 기간에 중보자 없이 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중보자 없이 선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사람들은 중보자가 없기 때문에 그때 마지막 남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의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의 백성들은 완전해야 하고 최후에 예수님의 샘플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리스도의 중보가 끝나기 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고정되고 확정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인을 받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았다.
(계 22: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사람들은 계속 그들이 살아 온 삶을 살아갈 것이고 더 주어진 날들 동안 삶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중보자 없이 선다는 말은 중보자가 계시지 않는다는 인지적인 표현이지 거기에 사람이 자신의 의로 서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인간이 자기 스스로 의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씻음을 받고 중보자가 없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을 의지할 것이다.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야곱의 환란의 때에 사람들은 야곱처럼 기도할 것이다. 그들은 아무도 자신의 의로 서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시간에도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 30:5-7).
환난의 때에 야곱이 승리한 것은 자기의 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전능하신 분의 팔을 붙잡았고 그것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중보자 없는 시기에 가장 큰 유혹과 시험은 하나님의 은혜의 팔을 놓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끈질기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팔을 놓도록 유혹할 것이다.
“사단은 천사들 앞에서 야곱을 비난하고 그가 그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 받음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에서를 충동하여 야곱을 향하여 진군해 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 믿음의 족장이 기도로 밤을 새울 때 사단은 그에게 범죄한 것을 깨닫게 하여 그를 낙심케 하고 하나님을 붙든 손을 놓쳐버리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야곱은 거의 절망할 지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야곱은 진정으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받고자 탄원하였다.”(쟁투, 618)
그는 이미 이전에도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지만 홀로 버려진 나루터 건너 어두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자비의 은혜를 얻고자 탄원한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의 죄를 버리게 해 주십시오. 우리를 붙잡고 있는 죄를 버리고 회개하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죄가 우리를 붙잡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손은 주님의 자비의 팔을 붙잡을 수 있도록 힘주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려 있을 때 우리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과 관계에 걸림이 되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도록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정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 주소서. 주님을 닮게 하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