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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18년(1585)에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
임금을 그리는 정을 간곡하게 읊은 것으로, <송강가사>에 실려 전한다.
-*사미인곡 전문 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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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詞 -임과의 인연 및 이별과 세월의 무상함
<전문풀이> II.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고하였더니, Ⅲ.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홀러가는구나.
본사Ⅰ -춘원(春怨)-충정을 임에게 알리고 싶음 <전문풀이>
본사2 -하원(夏怨)-외로움과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
본사3-추원(秋怨) -선정(善政)의 갈망
<전문풀이>
본사4-동원(冬怨)-임에 대한 정성과 외로움
<전문풀이> 따뜻한 봄 기운을 (부채로)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結詞 : 변함 없는 충성심
<전문풀이> 차라리 사라져(죽어져서) 범나비가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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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별곡의 산실 식영정息影亭
식영정을 창건한 연대는 소쇄원보다는 30여년 후인 1560년(명종 15년)으로 명확히 알려져 온다.
처음 식영정은 지금처럼 기와 지붕이 아닌 초가로 만든 허름한 정자였지만 훗날 후손들이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식영정을 건립한 사람은 식영정의 바로 아랫자락에서 살던 김성원이다. 김성원은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하여 식영정을 지어주고 자신은 그 아랫자락에 서하당을 짓고 살았다.
현재 식영정의 관리는 송강 정철의 후손이 하고 있는데 이는 석천 임억령이 말년에 해남으로 내려가고
이곳에서 석천에게 시문을 배웠던 송강 정철의 족적이 깃들인 것을 기억하는 송강의 후손들이
관리하면서 부터이다. 송강정과 환벽당, 식영정 이 세곳을 송강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김성원은 정철의 처외재당숙으로 정철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정철이 이곳 성산에 와 있을 때
환벽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문이다. 식영정 건너편에 있는 환벽당은 어린 시절 정철의 운명을
바꾸어놓게 한 沙村 金允悌가 기거했던 곳이다.
식영정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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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억령(1496-1568)이 담양부사를 그만두고 성산에 머물렀는데 김성원이 정자를 지어주면서 이름을 부탁하자, '그림자를 쉬게 함', 또는 '그림자를 끊음'이라는 의미로 [장자] 제물편에 나오는 말인 식영(息影)으로써 당호를 삼았다. 세상 영화를 일부러 버리고 산림에 묻혔던 석천, 그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았던 선비였다. 집 이름에 담긴 뜻은 식영정을 지으면서 집 이름을 짓게된 연유를 담은 <식영정기>를 참고하면 된다.
金君剛叔吾友也 김군 강숙은 나의 친구이다. 乃於蒼溪之上寒松之下 맑은 시내 위 푸른 솔숲 아래에 得一麓構小亭 산 기슭 한 곳을 얻어 자그마한 정자를 짓고, 柱其隅空其中 네 귀에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를 비웠으니, 以白茅翼以凉 띠풀로 덮고 대나무 자리로 날개를 달았으니, 望之如羽盖畵舫 바라보면 마치 새깃으로 뚜껑을 한 놀잇배와 같다. 以爲吾休息之所 나의 휴식처로 삼고 請名於先生先生曰 정자의 이름 지어줄 것을 나에게 청함에 내 이르기를, 汝聞莊氏之言乎 그대는 장주(莊周)의 말을 들었는가? 曰昔有畏影者 장주 이르되 옛날 그림자 두려워하는 자가 있었다. 走日下其走愈急 그는 햇빛 아래에서 도망을 감에 빠를수록 而影終不息 그림자는 끝까지 쉬지 않고 따라 왔다. 及就樹陰下影忽不見 나무 그림자 아래에 들었더니 그림자는 문득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夫影之爲物一隨人形 무릇 그림자는 물체의 형상이 되어 오직 사람의 형체를 따르기만 하여, 人府則俯人仰則仰 사람이 굽히면 따라서 굽히고 일어서면 따라서 일어서며, 其他往來行止唯形之爲 그 밖에 가고 오고 다니며 머무는 일 등이 오직 형체가 하는 대로이다. 然陰與夜則無 그러나 그늘에서나 밤이면 없어지고 火與晝則生 불빛에서나 낮에만 생겨난다. 人之處世亦此類也 사람의 처세도 또한 이와 같다. 古語有之 옛날에 이르기를 曰夢幻泡影 인생은 몽(夢) 환(幻) 포(泡) 영(影)이라 하였다. 人之生也受形於造物 사람은 태어날 때 조물주로부터 그 형체를 받아 나왔다. 造物之弄戱人 그러므로 조물주가 사람을 희롱함은 豈止形之使影 어찌 형체가 그림자를 부림만 못하리오. |
식영정은 성산(별뫼)의 한끝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곰실곰실한 소나무가 가득한 성산 봉우리가 섰고, 앞으로는 광주호가 내려다보이며
그 건너로 무등산이 언제나 듬직하게 바라다보인다.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주인을 찾아 , 이곳에는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다.
송순, 김윤제, 김인후, 기대승, 양산후, 양산보, 백광훈, 송익필, 김덕령.....그중에서도
임억령, 김성원, 정철, 고경명은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들은 식영정에서
보이고 들리는 풍경들을 시제로 하여 수많은 시를 남겼다.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이 곳을 가장 유명하게 한 것은 송강의 <성산별곡>이다.
<성산별곡>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 주변의 풍경과 그 속에서 노니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 김성원의 풍류를 그리고 있다.
-식영정에서 내려다 본 광주호-
무등산 북쪽 원효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은 창계천(창암천)으로 흐르다가
광주호에 잠시 머문다. 광주호는 영산강 유역 개발사업의 하나로 광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호수인데, 신작로나 댐이 생기기 전의 창계천가에는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름 내내
꽃구름을 이루었다. 그래서 창계천의 옛 이름은 자미탄(紫薇灘)이었다.
(자미는 배롱나무의 한자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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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별곡(星山別曲) - 정철(鄭澈)
**원 문** **현대어 풀이**
[1]
엇던 디날 손이 성산의 머믈며셔 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듯소.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을 들어보소
인생 세간(世間)의 됴흔 일 하건마난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건마는
엇디한 강산(江山)을 가디록 나이 녀겨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 산중의 들고 아니 나시난고 적막한 산중에 들어가고 아니 나오시는가.
송근(松根)을 다시 쓸고 죽상(竹床)의 자리 보아 솔뿌리를 다시 쓸고 대나무 침대에 자리를 보아
져근덧 올라 안자 엇던고 다시 보니 잠시 올라앉아 어떤가 하고 다시 보니
천변(天邊)의 떳난 구름 서석(瑞石)을 집을 사마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이 서석을 집을 삼아
나는 듯 드는 양이 주인과 엇더한고 나가는 둣하다가 들어가는 모습이 주인과 어떠한가.
창계(滄溪) 흰 믈결이 정자 알픠 둘러시니 시내의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러 있으니
천손운금(天孫雲錦)을 뉘라셔 버혀 내여 하늘의 은하수를 누가 베어내어
닛는 듯 펴티는 듯 헌사토 헌사할샤 잇는 듯 펼쳐 놓은 듯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산중의 책력(冊曆) 업서 사시(四時)를 모르더니 산 속에 달력이 없어서 사계절을 모르더니
눈 아래 헤틴 경(景)이 쳘쳘이 절노 나니 눈 아래 헤친 경치가 철을 따라 절로 생겨나니
듯거니 보거니 일마나 선간(仙間)이라 듣고 보는 것이 모두 신선이 사는 세상이로다.
[2]
매창(梅窓) 아젹 벼테 향기예 잠을 깨니 매창 아침볕의 향기에 잠을 깨니
선옹(仙翁)의 해욜 일이 곳 업도 아니하다 산늙은이의 할 일이 아주 없지도 아니하다
울 밋 양지 편의 외씨를 삐허두고 울타리 밑 양지 편에 오이씨를 뿌려 두고
매거니 도도거니 빗김의 달화 내니 김을 매고 북을 돋우면서 비 온 김에 가꾸어 내니
청문고사(靑門故事)를 이제도 잇다 할다 청문의 옛이야기가 이제도 있다 하리라.
망혜(芒鞋)를 뵈야 신고 죽장(竹杖)을 흣더디니 짚신을 죄어 신고 대나무 지팡이르 흩어 짚으니
도화 픤 시내 길히 방초주(芳草洲)의 니어셰라. 도화 핀 시냇길이 방초주에 이어졌구나.
닷봇근 명경名鏡 중中 절로 그린 석병풍(石屛風) 잘 닦은 거울 속에 저절로 그린 돌병풍
그림애를 버들 사마 서하(西河)로 함끠 가니 그림자를 벗 삼아 서하로 함께 가니
도원(桃園)은 어드매오 무릉(武陵)이 여긔로다 무릉도원이 어디인가, 여기가 바로 그곳이로다.
[3]
남풍이 건듯 부러 녹음(綠陰)을 혜텨 내니 남풍이 문득 불어 녹음을 헤쳐 내니
절(節) 아는 괴꼿리난 어드러셔 오돗던고 철을 아는 꾀꼬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희황(羲皇) 벼개 우희 픗잠을 얼픗 깨니 희황 베개 위에 선잠을 얼핏 깨니
공중 저즌 난간(欄干) 믈 우희 떠 잇고야 공중의 젖은 난간이 물 위에 떠 있구나.
마의(麻衣)를 니믜 차고 갈건(葛巾)을 기우 쓰고 삼베옷을 여며 입고 갈건을 비껴쓰고
구브락 비기락 보난 거시 고기로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기대면서 보는 것이 고기로다.
하루밤 비 끠운의 홍백련(紅白蓮)이 섯거 픠니 하룻밤 비 온 뒤에 붉은 연꽃과 흰 연꽃이 섞어 피니
바람끠 업시셔 만산(萬山)이 향긔로다 바람기가 없어서 모든 산이 향기롭다.
염계(염溪)를 마조보와 태극(太極)을 뭇잡는 듯 염계를 마주하여 태극성을 묻는 듯
태을진인이 옥자(玉字)를 헤혓는 듯 태을진인이 옥 글짜를 얻은 듯
노자암 건너보며 자미탄 겨테 두고 노자암을 건너보며 자미탄을 곁에 두고
장송長松을 차일(遮日)사마 석경石逕의 안자하니 큰 소나무를 차일삼아 돌길에 앉으니
인간(人間) 유월(六月)이 여긔는 삼추(三秋)로다 인간 세상의 유월이 여기는 가을이구나.
청강(淸江)의 떳는 올히 백사(白沙)의 올마 안자 청강에 떠 있는 오리가 흰 모래에 옮겨 앉아
백구(白鷗)를 벗을 삼고 잠 깰 줄 모르나니 흰 갈매기를 벗 삼고 잠깰 줄을 모르나니
무심코 한가하미 주인과 엇더하니 무심하고 한가함이 주인과 비교하여 어떤가.
[4]
오동(梧桐) 서리달이 사경(四更)의 도다오니 오동나무 사이로 가을달이 사경에 돋아오니
천암만학(千巖萬壑)이 나진들 그러할가 천암만학이 낮보다도 더 아름답구나.
호주(湖洲) 수정궁을 뉘라셔 옴겨 온고 호주의 수정궁을 누가 옮겨 왔는가.
은하를 띄여 건너 광한전의 올랏는 듯 은하수를 뛰어 건너 광한전에 올라 있는 듯
짝 마즌 늘근 솔란 조대(釣臺)예 셰여두고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에 세워 놓고
그 아래 배를 띄워 갈 대로 더뎌 두니 그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니
홍료화紅蓼花 백빈주(白빈洲) 어느 사이 디나관데 홍료화 백반주를 어느 사이에 지났길래
환벽당(環碧堂) 용(龍)의 소히 뱃머리예 다하셰라. 환벽당 용의 못이 뱃머리에 닿았구나.
청강(淸江) 녹초변(綠草邊)의 쇼 머기난 아해들이 푸른 풀이 우거진 강변에서 소 먹이는 아이들이
석양의 어위 계워 단적(短笛)을 빗기 부니 석양의 흥을 못 이겨 피리를 비껴 부니
믈 아래 잠긴 용이 잠 깨야 니러날 듯 물 아래 잠긴 용이 잠을 깨어 일어날 듯
내끠예 나온 학이 제 기슬더뎌두고 半空의소소 뜰듯 연기 가운데 나온 학이 제집을 버려두고 방공에 솟아 뜰듯
소선(蘇仙) 적벽赤壁은 추칠월(秋七月)이 됴타 호듸 소동파의 적벽부에는 가을 칠월이 좋다 하였으되
팔월 십오야(十五夜)를 모다 엇디 과하는고 팔월 보름밤을 모두 어찌 칭찬하는가.
섬운(纖雲)이 사권(四捲)하고 믈결이 채 잔 적의 잔 구름이 흩어지고 물결도 잔잔한 때에
하늘의 도단 달이 솔 우희 걸려거든 하늘에 돋은 달이 소나무 위에 걸렸으니
잡다가 빠딘 줄이 적선(謫仙)이 헌사할샤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졌다는 이태백의 일이 야단스럽다.
[5]
공산의 싸힌 닙흘 삭풍(朔風)이 거두 부러 공산에 쌓인 낙엽을 북풍이 걷으며 불어
떼구름 거느리고 눈조차 모라오니 떼구름을 거느리고 눈까지 몰아오니
천공(天公)이 호사로와 옥(玉)으로 고즐 지어 천공이 호사로워 옥으로 꽃을 피워
만수천림(萬樹千林)을 꾸며곰 낼셰이고 온갖 나무들을 잘도 꾸며 내었구나.
앏 여흘 가리 어러 독목교(獨木橋) 빗겻는듸 앞 여울물 가리워 얼고 외나무다리 걸려 있는데
막대 멘 늘근 즁이 어내 뎔로 갓닷 말고 막대를 멘 늙은 중이 어느 절로 간단 말인가.
산옹(山翁)의 이 부귀를 남다려 헌사마오 산늙은이의 이 부귀를 남에게 소문내지 마오.
경요굴(瓊瑤窟) 은세계銀世界를 차자리 이실셰라 경요굴 은밀한 세계를 찾을 이가 있을까 두렵도다.
[6]
산중의 벗이 업서 한기(漢紀)를 싸하 두고 산중에 벗이 없어 서책을 쌓아 놓고
만고(萬古) 인물을 거사리 혜혀하니 만고의 인물들을 거슬러 세어 보니
성현(聖賢)도 만커니와 호걸(豪傑)도 하도할샤 성현도 많거니와 호걸도 많고 많다.
하늘 삼기실 제 곳 무심(無心)할가마는 하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어찌 무심하랴마는
엇디한 시운(時運)이 일락배락 하얏는고 어찌 된 시운이 흥했다 망했다 하였는가.
모를 일도 하거니와 애달옴도 그지업다 모를 일도 많거니와 애달픔도 끝이 없다.
기산(箕山)의 늘근 고블 귀는 엇디 싯돗던고 기산의 늙은 고불(古佛) 귀는 어찌 씻었던가.
박소래 핀계하고 조장이 가장 놉다 소리가 난다고 핑계하고 표주박을 버린
허유의 조장이 가장 높다.
인심이 낫 갓타야 보도록 새롭거늘 인심이 얼굴 같아서 볼수룩 새롭거늘
세사(世事)는 구롬이라 머흐도 머흘시고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비즌 술이 어도록 니건나니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느냐?
잡거니 밀거니 슬카장 거후로니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의 매친 시름 져그나 하리나다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거믄고 시옭 언저 풍입송(風入松) 이야고야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을 타자꾸나.
손인동 주인인동 다 니저 바려셔라.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장공(長空)의 떳난 학이 이 골의 진선(眞仙)이라 높고 먼 공중에 떠 있는 학이 이 골의 진선이라.
요대(瑤帶) 월하(月下)의 행혀 아니 만나신가 이전에 달 아래서 혹시 만나지 아니하였는가?
손이셔 주인다려 닐오대 그대 긘가 하노라. 손님이 주인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곧 진선인가 하노라.
[작품 개괄]
- 지은이 : 정철
- 연대 : 조선 명종 때(1560년)
- 갈래 : 서정 가사, 양반 가사
- 형식 : 총84절(행), 168구이며 3·4조가 주축
- 성격 : 전원적, 풍류적
- 주제 : 성산의 풍물과 김성원의 풍류를 예찬
- 특징 : 한어구(漢語句)와 전고(典故)가 많아 한시적인 분위기가 짙고,
한 개인과 지역에 대한 칭송이기 때문에 보편성이 희박한 점이 아쉽다
- 구성 : (서사) 김성원의 전원 심취와 식영정 주변의 모습(∼세상이로다)
(본사1) 성산의 봄 풍경(春景)(∼그곳이로다)
(본사2) 성산의 여름 풍경(夏景)(∼어떤가)
(본사3) 성산의 가을 풍경(秋景)(∼야단스럽다)
(본사4) 성산의 겨울 풍경(冬景)(∼두렵도다)
(결사) 전원 생활의 멋과 풍류(∼끝)
* 줄거리
제1단은 서사(緖詞)에 해당한다. 서하당·식영정에 머물며 세상에 나가지 않는 주인 김성원의
풍류와 기상, 그리고 선간(仙間) 같은 식영정의 자연경관을 노래하였다.
제2단은 춘사(春詞)로 성산의 봄 경치와 주인공의 생활을 그린 것이며,
제3단은 하사(夏詞)로 신선하고 한가한 성산의 여름 풍경을 묘사하였다.
제4단은 추사(秋詞)인데, 성산의 가을 달밤 풍경을 읊었다.
제5단은 눈 내린 성산의 겨울 경치와 이곳에 은거하는 늙은이의 부귀를 노래한 동사(冬詞)이다.
제6단은 결사(結詞)로서 산중에 벗이 없어 독서를 통하여 고금의 성현과 호걸들을 생각하고 그
흥망과 지조를 느끼며, 뜬구름 같은 세상에 술 마시고 거문고나 타는 진선(眞仙)같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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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제와 정철의 만남, 환벽당 (環碧堂) |
당시 환벽당은 인근의 식영정(息影亭) 및 소쇄원(瀟灑園)과 함께 '한 마을의 세 명승 (일동 삼승一洞三勝)'이라 일컬어지면서 많은 문인들이 출입하였던 문학 활동의 주요한 무대였으니, 송순ㆍ임억령ㆍ김인후 김성원ㆍ정철ㆍ백광훈 등의 시가 지금도 전한다.
연기의 기운인지 구름까지 겸했는지 烟氣兼雲氣
소나무 아래는 맑은 못, 바위 위에 정자 松下澄潭岩上亭
푸른물결 맑아 맑아 먼하늘 잠겼는데 綠浪 잠碧天 돌시내 고기새우 굽어 잡게 마련되고 石瀨魚蝦供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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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당과부용당
식영정 바로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서하당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정자를 지었는데,
없어졌다가 최근 복원되었다. 《서하당유고》 행장에 따르면, 김성원이 36세 되던 해인 1560년(명종 15)에
식영정과 서하당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오른 쪽이 서하당. 왼쪽의 연못 위의 정자가 부용당
(서하당 棲霞堂)
부용당(芙容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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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가의 무대인 면앙정(俛仰亭)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가사 문학의대가인 송순(1493~1582)이 고향마을인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뒷산 제월봉 언덕 위에 지은 정자이다. 면앙정은 정자의 이름이면서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
면앙(俛仰)이란 땅을 내려다 보고 하늘을 쳐다 본다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는
너르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는 송순의 마음이 여기에서 읽힌다.
송순이 처음 이 정자를 지은 것은 나이 41세 되던 조선 중종 28년(1533)이었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던 그는 당시 조정에서 김안로 일파가 세력을 잡자
고향으로 돌아와 뒷산에 소박한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3년을 은거하던 송순은 김안로 일파가
실각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가, 몇 차례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에 이르기까지
관직생활을 했다. 마침내 관직을 은퇴한 그는 9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온전히
면앙정에 머물며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많은 시를 남겼다.
또한 김인후, 임억령, 정철, 임제, 양산보, 김성원, 기대승, 박순 등이 좋은 경치와
노학자를 찾아 이곳을 드나들며 시짓기를 배우고 즐겨, 이곳은 호남 제일의 가단(歌檀)을 이루었다.
송순은 60세 때 정자를 증축하고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땅을 내려다 보기도 하며
바람을 쐬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되었으니 나의 본래의 원하던 바가 이제야 이루어 졌다" 라고
기뻐하며 기대승과 임제에게 <면앙정기>와 <면앙정부>를 부탁했었다.
원래의 정자는 선조 30년(1597)에 임진왜란으로 부서졌고 1654년에 후손들이 다시 지은 후
몇 차례 보수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건물 자체는 간소하지만 역사적 의의가 크기에
1972년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 면앙정터에는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金魚와 玉帶를 두른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오락가락하는 꿈을 꾼 그는 자기 아들이 벼슬을 할 것이라 여겨 공부를 시켰지만
뜻대로 되지도 않고 집안마저 가난해 졌다. 곽씨는 이곳의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송순이 그 터를 사 놓았다가 나중에 정자를 지었던 것이다. 뒷날 이곳이 소위 면앙정가단을 이루어
허다한 학자, 가객, 시인들의 창작의 산실이자. 휴식처가 된 것을 보면, 곽씨가
해몽은 틀리게 했지만 꿈은 제대로 꾸었던가 보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이 만년에 면앙정을 두고 읊었다고 정해지는 이 시에는
우리 민족의자연주의적 정원관이 잘 나타나 있다.
정자 안에는 퇴계 이황과 하서 김인후의 시, 고봉 기대승의 <면앙정기>,
백호 임제의 <면앙정부>, 석천 임억령이 면앙정에서 바라보는 30가지 좋은 경치를 노래한
<면앙정 30영>, 그리고 송순 자신의 <면앙정 삼언가> 등이 판각되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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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가(俛仰亭歌) - 송순(宋純)
무등산 한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무등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서
멀리 떼쳐 와 제월봉(霽月峰)이 되여거늘 멀리 떨쳐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무변대야(無邊大野)의 므슴 짐쟉 하노라 끝도 없이 넓은 들판에서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닐곱 구비 한데 움쳐 므득므득 버럿는 듯 일곱 굽이가 한 곳에 움츠려 무더기를 벌여 놓은 듯하고
가온데 구비는 굼긔 든 늘근 뇽이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갓 깨야 머리를 언쳐시니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았으니
너라바회 우희 송죽(松竹)을 헤혀고 정자를 언쳐시니 너럭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얹어 놓았으니
구름탄 쳥학靑鶴이 천 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버렷는 듯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구나.
玉泉山, 龍泉山 나린 믈히 옥천산, 용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정자 압 너븐 들헤 올올(兀兀)히 펴진 드시 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퍼져 있는 듯하구나
넙꺼든 기노라 프르거든 희디마나 넓거든 길지 말거나 푸르거든 희지 말거나
쌍룡(雙龍)이 뒤트는 듯 긴 깁을 채 폇는 듯 쌍룡이 몸을 비트는 듯, 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어드러로 가노라, 므슴 일 배얏바 어디로 가려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닷는 듯 따로는 듯 밤낫즈로 흐르는 듯 달려가는 듯 따라가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하는가
므조친 사정(沙汀)은 눈갓치 펴졋거든 물을 따라 펼쳐진 모래밭은 눈같이 퍼졌는데
어즈러온 기러기는 므스거슬 어르노라 어지럽게 나는 기러기는 무슨 정을 통하려고
안즈락 나리락 모드락 흐트락 앉았다, 내렸다, 모였다, 흩어졌다
노화(蘆花)를 사이 두고 우러곰 좃니난고.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쫓아다니는가.
너븐 길 밧기요 긴 하늘 아래 넓은 길 밖의 긴 하늘 아래로
두르고 꼬즌 거슨 뫼힌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노픈 듯 나즌 듯 긋는 듯 닛는 듯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듯
숨거니 뵈거니 가거기 머물거니 숨기도 하고 보이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거니
어즈러온 가온데 일홈난 양하야 하늘도 젓치 아녀 어지러운 가운데 유명한 체 뽐내며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웃독이 셧는 거시 추월산 머리 짓고 우뚝 선 것이 (여러 개인데), 추월산이 머리를 이루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버러거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원근(遠近) 창애(蒼崖)의 머믄 것도 하도 할샤 멀고 가까운 푸른 언덕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 많기도 많구나
흰 구름 브흰 연하(煙霞) 프르니난 산람(山籃)이라 흰 구름, 뿌연 안개와 놀, 푸른 것은 산아지랑이구나
천암만학(千巖萬壑)을 제 집으로 사마 두고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으로 삼아서
나명셩 들명셩 일헤도 구는지고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면서 아양을 떠는구나.
오르거니 나리거니 장공(長空)의 떠나거니 오르락내리락 넓은 먼 하늘로 떠나기도 하면서
광야로 거너거니, 프르락 불그락 여트락 디트락 넓은 들로 건너 갔다가, 푸르기도 붉기도 옅기도 짙기도 하여
사양(斜陽)과 섯거디어 세우조차 뿌리난다 지는 해와 섞여 가랑비조차 뿌리는구나.
남여(藍輿)를 배야타고 솔 아릐 구븐 길로 오며 가며 하난 적의 가마를 재촉해 타고 소나무 아래 굽은 길로
오며가며 할 적에
녹양(綠楊)의 우는 황앵(黃鶯) 교태 겨워 하는괴야 푸른 버드나무에서 우는 꾀꼬리는 흥에 겨워 아양을 떠는구나.
나모 새 자자지여 수음(樹陰)이 얼릔 적의 나무와 억새풀이 우거져 녹음이 짙어진 때
백척(百尺) 난간의 긴 조으름 내여 펴니 긴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
수면 양풍(凉風)이야 긋칠 줄 모르는가 물 위의 서늘한 바람이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즌서리 빠딘 후의 산 빗치 금수(錦繡)로다. 된서리 걷힌 후에 산 빛이 수놓은 비단 같구나.
황운(黃雲)은 또 엇디 만경의 퍼겨 디오. 누렇게 익은 곡식은 또 어찌 넓은 들에 퍼져있는가.
어적(漁笛)도 흥을 계워 달랄 따라 브니난다. 고기잡이 하며 부르는 피리도 흥을 이기지 못하여 달을 따라 계속 부르는가
초목 다 진 후의 강산(江山)이 매몰커늘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산이 묻혀있거늘
조물(造物)이 헌사하여 빙설(氷雪)로 꾸며 내니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꾸며내니
경궁요대(瓊宮瑤臺)와 옥해은산(玉海銀山)이 안저(眼底)의 버러셰라 경궁요대와 옥해은산 같은 눈에 덮힌 대자연이
눈 아래 펼쳐져 있구나.
건곤(乾坤)도 가암열사 간 대마다 경이로다. 하늘과 땅도 풍성하구나. 가는 곳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경치로다.
인간을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업다.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에 틈이 없다.
니것도 보려 하고 져것도 드르려코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혀려 하고 달도 마츠려코 바람도 쐬려 하고 달도 맞으려 하고
밤으란 언제 줍고 고기란 언제 낙고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고
시비란 뉘 다드며 딘 곳츠란 뉘 쓸려뇨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 것인가
아침이 낫브거니 나조헤라 슬흘소냐 아침 시간도 모자란데 저녁이라고 (자연구경이) 싫겠는가.
오날리 부족커니 내일리라 유여(有餘)하랴 오늘도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겠는가.
이 뫼헤 안자 보고 뎌 뫼헤 거러보니 이 산에 앉아보고 저 산에 걸어보니
번로(煩勞)한 마음의 바릴 일리 아조 업다 번거로운 마음이면서도 자연은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쉴 사이 업거든 길히나 젼하리야 쉴 사이가 없는데 (남에게) 길을 전할 틈이 있으랴.
다만 한 청려장(靑藜杖)이 다 므듸어 가노매라 다만 지팡이가 다 무디어져 가는구나
술이 닉어거니 벗지라 업슬소냐 술이 익어가니 벗이 없을 것인가.
블내며 타이며 혀이며 이야며 (노래를) 부르게 하며 (악기를)타게 하며, 켜게 하며 흔들며
온 가지 소리로 취흥(醉興)을 배야거니 온갖 소리로 취흥을 재촉하니
근심이라 이시며 시름이라 브터시랴. 근심이 있겠으며 시름이 붙어 있으랴
누으락 안즈락 구부락 져츠락 누웠다 앉았다가, 구부렸다 젖혔다가
을프락 파람하락 노혜로 놀거니 시를 읊었다가 휘파람을 불었다가 하며 마음대로 노니
천지도 넙고 넙고 일월도 한가하다 천지도 넓고 넓으며 세월도 한가하다.
희황(羲皇)을 모를러니 이 적이야 긔로고야 복희씨의 태평성대도 모르고 지냈더니 지금이야말로 그때로구나.
신선이 엇더턴지 이 몸이야 긔로고야 신선이 어떤 것인지 이 몸이야말로 신선이로구나.
강산풍월 거늘리고 내 백년을 다 누리면 강상풍월 거느리고 내 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 샹의 이태백이 사라오다. 악양루 위의 이태백이 살아온다 한들
호탕(浩蕩) 정회(情懷)야 이에서 더할소냐 넓고 끝없는 정다운 회포야말로 이보다 더할 것인가.
이 몸이 이렁 굼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